오늘자(2018. 1. 5) 한겨레신문에 <2018년, 이 책 찜했어>라는기사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국내 40개 출판사별로 올 해 출간할 책 중 대표적인 책 한 권씩을 추천받아 소개하는 내용인데, 이른바 ‘적폐의 성역’ 한국교회의 문제를 파헤친 김진호 외 공저<권력과 교회>(창비)를 비롯 소설가 윤흥길의 대하장편 <문신>(문학동네), 이정우 <세계철학사 2권>(길) 등 몇 권의 책에 관심이 갔다. 특히 이정우의 <세계철학사>는 이미 1권을 읽은바 있어 ‘아시아세계의 철학’이라는 부제를 단 2권 출간 소식은 반가웠다.

나에게 철학자 이정우(경희 사이버대 교수)라는 이름은 이미 낯익다. 젊은 나이에 서강대 교수직을 사임한 그는 수유리에 ‘철학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국내 최초 철학 사설교육을 시작했고, 이후 디지털 강좌 시스템으로 유명한 ‘아트 앤 스터디’에 이르기까지 명강의로 이름을 떨쳤다. 나는 초기 철학아카데미 때부터 그의 강좌를 여러 과목 청취한 경험이 있다.

그 시절, 지방에 거주하는 나는 현장 수강을 할 수 없어 부득이 카셋테이프를 이용해야했다. 하지만 워낙 명강의라 육성 청취만으로도 이해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물론 그의 저서도 여러 권 구입하고 읽기도 했다. 가령 박사학위논문을 책으로 펴낸 푸코 연구서 <담론의 공간>을 비롯, 철학개념어 사전인 <개념-뿌리>에 이르기까지 상당 수의 저서를 구입해서 읽었다.

'지중해세계의 철학세계철학사'라는 부제를 단 1권은 지난 2004년 출간되었는데, 서양의 고대에서 중세까지 다룬 고중세철학사에 해당하고, 올해 출간 예정인 2권은 아시아세계의 철학, 3권은 근현대 서양철학사다. 참고로 이정우의 <세계철학사> 시리즈는 그동안 이뤄졌던 강의록을 뼈대로 내용을 보완한 것으로 짐작된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저술된 철학사들은 대개 세계철학사가 아니라 일정한 지역적 테두리를 전제한 철학사들이었다. 철학사의 대부분이 ‘서양 철학사’이거나 ‘중국 철학사’, ‘한국 철학사’, ‘일본 철학사’, ‘인도 철학사’ 등이었던 것이다. 특정한 지역이나 언어권을 다룬 철학사가 대부분이며, 세계철학사는 드물었다.(…)‘세계철학사’라는 제목을 달고서 나온 저작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비서구 지역의 철학 전통을 서구 철학사의 한갓 전사 정도로 보았을 뿐이었다. 『세계철학사』 3부작은 다음과 같은 구도를 취하려고 한다. 우선 철학이라는 행위가 주로 유라시아 대륙에서 진행되었고 근대 이전에는 동과 서의 철학 전통이 따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1권을 ‘지중해세계의 철학’에 그리고 2권을 ‘아시아세계의 철학’에 할애했다. 그 후 마지막 3권에서는 지리적 기준이 아니라 시대적 기준에 입각해‘근현대 세계의 철학’을 살펴보려 한다.” 라고 말하는데, 저자는 서구 편향적인 철학사를 지양하면서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놓고서 보다 보편적인 시각으로 철학사를 보려 했다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자 장점으로 꼽힌다.

내 경우 이정우의 철학사 강좌는 복잡한 서양철학을 우리의 주체적인 시각으로 일목요연하고, 투명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점이 돋보였다. 또한 강의 시간내내 물흐르듯 막힘이 없이 강의가 이뤄졌고, 전혀 강의록을 보지 않은채 자유롭게 강의하는것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과거 버드란트 러셀을 필두로 렘브레히트, 슈퇴릭허, 유물론 관점으로 기술된 세계철학사 등 몇 종의 철학사를 접한바 있는데, 국내 학자가 쓴 철학사는 이번 이정우의 <세계철학사>가 유일하다. 그의 철학사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가 어떤지 몰라도 나와 같은 철학 딜레탕트에게는 최상의 길잡이다.

과거 수강 청취한 철학사 강의를 비롯 <세계철학사> 1권을 읽은 소감을 말한다면, 무엇보다 그의 강의는 흔히 말하는 명강의라는 점이다. 가령 아무리 복잡한 내용이라도 그는 쉽고 투명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나와 같은 철학 비전공자, 특히 일반 수강생들이 이해하는데 용이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우리의 주체적인 관점으로 강의를 하기 때문에 설사 유명한 철학자라하더라도 우리의 시각에서 과감하게 평가절하 했고, 또 어떤 경우는 한 철학자에게 과대하게 시간을 할애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너무 주관적인 해석이 아닐까하는 의아심이 들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이해하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한편으로 그는 서양철학사 강의중에도 중국의 사상서들을 적재적소에 소개함으로써 수강생들이 비교철학적 관점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물론 동양철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다소 피상적이라는 한계는 있었지만 강의를 듣는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작업이다. 과거 도올 김용옥이 동양철학자면서도 자유자재로 서양철학을 언급하며 강의를 펼친것도 같은 방식일 터인데, 그런점에서도 더욱 서양철학자로서 아시아세계의 철학을 다룬 <세계철학사> 2권의 출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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