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독서보다 테레비 뉴스에 더 몰입했습니다. 저에게 책읽기는 삼시세끼나 다름없는 일상이지만 요즘 뉴스는 책 보다 훨 드릴넘치고 재미지다보니 어쩔 수 없군요. 아마 여러분도 그러지싶은데 요즘 우리사회는 영화,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합니다. 자고나면 깜짝놀랄 기상천외한 사건으로 차고넘치니 이거 도저히 테레비를 안보고는 살수 없을지경이네요.   

 

대체 우리시대 정치, 사회 주변을 관통하는 인간군상의 모습이 이보다 더 흥미로울수 있을까요. 시쳇말로 머리좋고 많이 배우고, 또 일류 대학 출신이거나 권력깨나있다고 다 사람되는게 아니라는 평범한 진실을 똑똑히 목도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누가 기본마저 결여한 저질의 인간인지, 반면에 진정한 품격과 실력이 어떤것인지.....


세상 살면서 그 어떤것도 공짜로 얻을수 없듯, 아무리 열심히 따라하고 교과서를 착실히 배워도 민주주의는 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히 알겠습니다. 비록 더디지만 민주주의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제도로 정착되어가는지도. 


글쎄 소시민의 심정이 이럴정도이니 이즈음 재판정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 권력자들의 주변에서 기생하는 무리들의 적나라한 모습은 필경 소설쓰는 분들에게 최상의 소설꺼리거나 공부가 되리라 짐작됩니다. 


어젯밤 트럼펫 레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길문고에 잠깐 들렀습니다. 근자 이런저런 일로 분주하다보니 서점 나들이도 쉽지가 않은 형편이네요. 

 

퇴직하면 꼭 읽어보려한 했던 책이 몇 권 있었습니다. 이른바 중국의 4대奇書니 6대奇書니 하는 책도 그중 하나인데, 우선 <삼국지연의><금병매><홍루몽>만큼은 꼭 읽어보려 했지만 그동안  사정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금병매>는 몇 종의 기존 번역서가 있습니다만, 원전 번역이 아니어서 믿을만하지 못한 형편이지요. 그나마 원전을 완역한 강태권 교수의 솔출판사본이 낫다해서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절판 중이라 구할수 없다는군요. 어쩔수 없이 과거 60년대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된 김동성 번역본을 찾아봐야겠는데 이마저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니 원~  


<삼국지연의>와 <홍루몽>은 그나마 형편이 좀 나은 편입니다. <삼국지연의>야 워낙 유명해서 이문열, 황석영 등 소설가들도 번역을 한터라 비교적 종수가 많은 편인데, 명번역은 재야학자인 김구용 선생의 솔출판사본을 최고로 치고 있군요. 문제는 분량이 워낙 많아 잠시 미루고 우선 호기심을 끄는 <홍루몽>쪽으루다가...

                      

 

              

 

 

 오랫동안 <홍루몽>을 연구했던 고려대 중문과의 최용출 교수의 번역서가 나남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전 6권으로 구성된 <홍루몽> 중 우선 1, 2권과 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칭해지는 구니기타 돗포의 단편집 <무사시노>을 사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한길문고를 나섰습니다. 뭐 그렇다고 당장 뉴스를 안볼수 없겠습니다만, 한동안 테레비 뉴스와 병행해서 <홍루몽>의 재미를 만끽해야겠군요.


"<홍루몽>은 중국어로 씌어진 소설 중 가장 위대한 작품"   - 클리프턴 패디먼, 존 메이저 공저 <평생의 독서계획>

 

"<홍루몽>은 18세기 중반에 나온 중국 최고의 명작소설 (...) 인간의 감성세계를 정교하게 그려낸 소설로서 인생의 교과서와 같은 책이다. 이 작품은 인간에게 사랑의 세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고 있다. 찬란한 봄날의 환희로부터 시작하여 활짝 피어난 모란꽃 같은 찬란한 여름이 지나고 낙엽지고 비 내리는 늦은 가을로 접어드는 삶의 행로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홍루몽>은 아마도 우리에게 영혼의 안식처를 마련해주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수많은 미로들을 따라가다보면 인생의 진리를 배우게 될 것이고 인간관계의 이치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될것이다."   - 나남판 최용철 역자 해제

 

* 우연히 파워블로거이자 서평가로 유명한 이현우의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생전의 마오쩌둥은 <홍루몽> 을 애독하고 높이 평가했다는데, 다음은 <마오의 독서생활>(꿍위즈 외 저, 글항아리)을 소개한 로쟈의 글 일부입니다.  


마오는 <홍루몽>을 ‘역사’로 읽었다. 봉건사회의 계급투쟁을 묘사한 소설로 간주하며 호평했다. 그는 <홍루몽>의 저자 조설근이 살던 시대는 “소설 속 가보옥처럼 봉건제도에 불만을 가진 인물들의 시대”라며 <홍루몽>에서 묘사된 4대 가족의 쇠망을 통해 봉건통치계급의 쇠망을 이해하려 했다. 마오는 <금병매>도 높이 평가했지만 “다소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홍루몽>과는 달리 “주로 암흑을 폭로하기만 했”다고 비교한다. 그는 조카손녀에게 “네가 <홍루몽>을 읽고자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봉건사회를 알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마오의 이론서나 역사서 탐독은 당연했겠지만 문학작품에까지 애착을 보인 건 왜일까. <홍루몽>처럼 봉건사회의 구체적 생활상을 묘사한 문학작품을 읽어야 봉건사회에 대해 세밀하고 생동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되며, 이는 이론서 같은 것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다고 <마오의 독서생활>의 저자는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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