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계론>이었던가, 교양선택이었는데, 무렵엔 참 드문 그리고 신선한 강의였다카페 한 구석 독서토론을 가장한 '불온한' 모임에서나 나눌 법한 문답이 강의실에서 이뤄졌으니까.  선생님이 한창때 작고하시는 바람에 거의 마지막 강의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강의실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 중 하나가 이집트 나세르 대통령(1918~1970)이었다.

우연히 영화 <코드명 엔젤>(The Angel, 2018)을 보았다. 주인공 아슈라프 마르완이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의 사위라는 점이 끌렸다. 엔젤(Angel)은 그가 적국 이스라엘(모사드) 정보기이 주여한 코드명. 이집트 정부를 위해 일한 고위직 공무원 아슈라프 마르완이 이스라엘의 스파이가 되어야 했다. 이런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다.

아는 만큼 보인다. 더 이상은 스포일러이고감상하기 전에 필요하다면 나무 위키 등에서 나세르나 후임 대통령 사다트’ ‘3차 중동전쟁’, ‘4차 중동전쟁정도의 배경지식을 읽기 권한다. 나세르는 아랍사회주의를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범아랍주의를 추진하여 그의 사상은 나세르주의로 불릴 만큼 세기의 정치가였다. 영화의 배경은 나세르 후임 안와르 사다트가 주도한 제4차 중동전쟁(1973106~1025.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으로 이어짐) 전후다.

나세르 대통령은 평소 사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아슈라프는 갈등을 겪는다영국 유학 시절홧김에 영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 먼저 전화하여 정보를 넘기겠노라 시도하고, 훗날 이집트 고위 관료(대통령 비서실장)가 되어 이스라엘에 이집트의 전쟁 정보를 주게 된다그런데, 영화 전반부에 아슈라프는 잠자리에 든 아들(아말)의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준다. 길지 않지만, <양치기 소년>으로 알려진 우화 한  편을 통째로 읽어주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옛날 옛적에 어린 양치기 소년이 있었어요. 소년은 산기슭에서 양 떼들을 돌보았죠. 근처엔 어두운 숲이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산에서 마을을 향해 다급히 뛰어 내려왔어요. 소년은 큰소리로 외쳤죠. ’늑대다! 늑대다!‘ 그 소리를 듣고 온 마을 사람들이 뛰쳐나왔어요. 그렇게 외친 지 3일째 되던 날, 소년은 뭔가를 보았어요.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요? 늑대였죠. 소년은 큰소리로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지만 이미 두 번이나 거짓말에 속은 마을 사람들은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아무도 소년을 도우러 나오지 않았죠. 그리고 소년은.. 소년은 그저.. 계속 외쳤어요. 늑대다! 늑대다!”


아래는 천병희의 원전번역이다.


318. 장난치는 목동

어떤 목동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양 떼를 몰고 가서 장난삼아 외치곤 했다. 늑대들이 양 떼에게 덤비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두세 번쯤 마을 사람들이 놀라서 달려갔다가 웃음거리가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로 늑대들이 나타났다. 늑대들이 양 떼를 찢어 죽이자 목동은 마을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목동이 여느 때처럼 장난치는 줄 알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하여 목동은 양 떼를 잃고 말았다.

 

거짓말쟁이가 얻는 것은 한 가지뿐인데 진실을 말해도 남들이 믿어주지 않는다. 다시 영화. 1983년에 다시 만난 아슈라프와 알렉스(모사드 담당자), 그들의 짧은 대화로 영화는 끝난다. 알렉스가 아슈라프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하는데, <이솝 우화>(아래 사진).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화 한 편이 실제 역사에 활용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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