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 -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재민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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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해 글을 쓴 거라는 생각에 조금 더 분명한 어떤 증명 혹은 분석을 듣고 싶었던 듯하다. 정재민의 소설 『보헤미안 랩소디』는 나에게 그런 기대감으로 읽게 아였다. 그 누구보다 법에 대해 잘 알 거라는 생각에, 판사가 법과 정의에 관해 썼다는 이 소설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의사의 오진(?), 그로 인해 한 생명의 죽음, 개인에게는 분노를 일으킬만한 사건이다. 하지만 그 분노가 정의를 대신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내놓기가 어렵다. 그 분노는 복수를 꿈꾸게도 하고 체념하게도 만들지만, 그 가운데서 복수를 한다는 게 정의와 동의어로 들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그 부분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주인공에게 복수를 생각하게 만든 사건, 그 사건에 대한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이나 결과를 정의라고 부를 수 있는지.

 

우연처럼 듣게 된 한 마디가 시작이었다.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오랜 시간 꾸준히 진료를 받던 어머니가 어느 날 암으로 죽었다. 어머니의 암 투병을 이미 알고 있던 주인공 하지환 판사는 어머니가 암으로 죽은 줄로만 알았다. 맞다. 어머니는 암으로 죽었다. 그런데 그 암의 발병 원인이 어머니가 오랫동안 진료받던 류마티스 관절염이란 병 때문이라는 것은 의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처방받은 약을 꾸준히 먹으면서 위에 무리가 왔고 위암을 얻었다는 게 된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류마티스 관절염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고 놈이 노쇠하면서 생기는 평범한 퇴행성관절염이었다. 지방의 소도시인 신해시에서 우동규라는 류마티스 권위자(?)에게 꾸준히 진료받고 처방받은 결과다.

 

이제야 그 이야기를 제대로 시작한다. 어머니의 죽음 후에 시작된 그 진실을 드러내려 애쓰던 시간의 이야기를, 친구인 황동혁의 부음을 듣고 2년여 만에 다시 신해지로 내려온 지금에서야...

 

사회적으로 의사는 환자들의 생명, 신체를 다루는 최상의 전문가로 존경받는 존재이다. 환자들은 의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자신의 건강을 의사에게 맡긴다. 의사라면 양심과 전문 지식에 따라 환자들의 질병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최적의 치료 방법을 선택해야 하며, 환자들에게도 자신의 질병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줄 책임이 있다. 그러나 본건의 피해자 우동규는 환자들의 신뢰를 악용하였다. 이상,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 스무 명의 피해자들에 대한 피의자 사기 혐의가 충분히 인정된다는 판단으로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다. (130페이지)

 

과연 진실이 드러날 수 있을까?

지환이 어머니의 죽음의 원인을 알고 분노했을 때, 진실을 밝히겠다고 분노했을 때, 의롭지 못한 이 모든 상황을 고소하겠다고 다짐했을 때,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나는 불안했다. 지방의 작은 병원 하나, 권위를 내세워 환자들에게 거짓 병명과 위협과 공포를 선사했던 의사가 전부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멀쩡한 사람들을 빠져나오지 못할 병에 묻어버린 의사의 뒤에 어떤 배경과 욕심을 바탕으로 한 이기심이 자리하고 있을지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점쟁이처럼 알아낸 게 아니다. 현실을 살면서 내가 본 것들이 그런 노파심을 만들고 있다. 그건 사실이었다. 판사로서 앞으로의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이 싸움을 지환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워야만 했던 지환의 마음이 보이기에 지켜볼 수밖에... 하지만 정의는 쉽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지환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사건은 흘러가고 좌절한다. 지환은 정신분석을 통해 자신의 내적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지경에 이른다.

 

개인의 분노와 복수심이 정의를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나는 그렇다, 아니다, 로 말할 수는 없었다. 분노로 시작한 복수가 결과적으로 정의를 끌어낼 수도 있고, 복수가 복수로 끝날 수도 있음을 알기에 어느 한쪽으로만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이 소설에서 내가 주인공을 통해 본 것은 그런 나의 개인적인 생각에 변화를 일으켰다. 주인공 지환이 분노로 시작한 복수는 정의를 향해 가고 있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 정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다. 개인의 욕심을 위해 사기 의료도 서슴없이 행하는 사람에게, 개인이 시작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복수는 감정적인 흥분으로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같은 일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림으로써 함께 바로잡고 싶은 정의였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지환의 어머니처럼 의료 사기를 당하고 결국 죽음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고 있는 사람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기에, 그 사람들과 뜻을 함께하면서 바로 잡고 싶었던 거라고,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복수와 다른 사람의 피해를 막으면서 사기성 짙은 의료행위의 단절을 보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우동규를 둘러싸고 있는 그 끈끈한 연결고리들, 언론이나 정치, 사법, 종교, 의료 기관까지 그 정의를 묻어버리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정의를 이루겠다고, 진실을 밝히겠다고 자신의 앞날에 걸림돌이 될 일을 서슴없이 행하고 있는데도 전혀 나아갈 수 없는 모습에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 속 세상을 보게 한다. 선배, 동문, 상사, 지인 등등 언제 연결되었던 적이나 있었던가 싶은 사람들이 좋은 결말을 보자고 연락해오는 모습이 추했다. 우동규의 사기를 방관하다 못해 동조하는 이들의 모습이다. 서로서로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리베이트를 받아도 우리 약을 써주면 좋은 거고, 환자를 망가뜨리고 있어도 병원에 꼬박꼬박 나와 진료비를 내주니까 좋은 거고, 명의라고 소개되는 감투로 인해 쌓이는 재력과 권력이 좋은 거고...

 

바로 눈앞에 진실이 보이는데도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로 그 진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을 봐야만 하는 것일까. 법이 그 공정한 절차를 통해서도 적용되지 않음을 본다는 건 아이러니다. 주인공인 판사가 그걸 확인하는 과정이 그래서 더욱 씁쓸했다. 권력이라면 권력일 수도 있는 배경을 가진 사람조차 그 공정함을 적용받지 못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벌을 받는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그게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 것을 봐야 하는 것. 정의가 사라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정의가 무엇인지 묻고 싶은 의문을 갖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 그 물음을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는 판사에게 묻고 있음이다. 그런데 그 판사조차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아니, 주지 못한다.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들려주고 있음에도, 그래서 그 정의를 묻고 있는 의문에 대한 답이 절실함에도, 답을 주는 것이 어렵다. 우리가 오늘을 살면서 보고 있는 현실, 믿기 어렵겠지만, 그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정의에 대한 물음이자 한 개인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이야기다. 상처의 깊은 뿌리가 온전하게 뽑히지는 않았어도, 그 정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함께 드러내고 치유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부모로부터 시작된 유년기의 상처는, 상처인 줄도 모르고 커지다가 성인이 된 후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인공이 정신분석 치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도 그 상처의 근원이었다. 결국은 그 시작을 찾아내어 끌어내고 치유해야 다음 행보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셈이다.

 

뒤늦게 알게 된 진실로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 그로 인해 찾으려 애쓰던 정의까지 다양하면서도 깊은 문제들이 우리 현실 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불행은 늘 나에게 찾아올 수 있고, 삶을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비록 그게 절망이라 할지라도, 불확실한 정의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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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 좋은 방
용윤선 지음 / 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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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줄, 한 페이지 읽다가 결국에는 구매해버렸다. 차분한 그 느낌에, 커피향에, 어딘가 구석으로 처박혀 있으면서 함께 하고 싶은 글.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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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작정하고 그랬던 건 아니었는데, 최근 읽은 몇 권의 책에서 재능에 관한, 그 재능이 발휘하는 천재성에 관한 언급을 계속 보게 되었다. 그 재능이란 것이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선천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깊은 능력으로 타고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느 쪽으로든 분명하게 판단할 수는 없다. 그때의 감정에 따라 이쪽저쪽으로 휘둘리는 판단일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때로는 긍정적으로 끄덕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그 화살을 나 자신에게 돌리기도 한다. 나에게 오지 않은, 오지 않을 그 어떤 것에 대해 조급함 보다는 좌절이 먼저 찾아오는 듯하다. 안 보면 그만인 것을, 안 해도 별 상관없는 일들 앞에서 괜한 감정만 소모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 뻔하게 나올 수 있는 답은 하나인 것 같다. 각자의 색깔이 있다, 저마다 더 잘하는 게 있다, 괜찮다... 물론, 괜찮을 거다. 그래야만 한다. 안 그러면 자신에게 없는 것에 대해, 그걸 가진 사람을 보면서 생기는 그 부러움을 어떻게 감당하고 추스를 수 있겠나. 또 그런 감정을 어떻게 감당하느냐 하는 것 역시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걸 좀 객관적으로 보고 넘어가고 싶어진다. 모두가 다 같을 수는 없으므로, 어떤 현상쯤으로 보고 넘기고 싶은 것. 그게 가장 안전한 방법, 나를 죽이지 않고 흘러갈 수 있는 방법 같아서. 외모든 타고난 재능이든 살면서 배운 현명함이든, 각자의 몫인 듯하다. 그 몫을 감당하는 것 역시도...

 

 

 

8살, 6살 남자 형제 조카가 있다. 큰 아이는 쌍꺼풀이 없는 눈, 동그란 얼굴, 보기 좋게 통통한 체형이다. 작은 아이는 쌍꺼풀이 있는 눈, 약간 갸름한 얼굴, 조금 마른 체형이다. 딱 봐도 알겠지만 두 아이의 외모가 풍기는 분위기가 다르다. 형제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내 눈에는 두 아이의 얼굴이 닮아서 분명 형제라는 게 느껴지는데 보통 첫눈에는 전혀 다른 아이들로 보이기도 한다. 바로 그 외모 때문에. 첫눈에 작은 아이는 누가 봐도 잘생겼다, 예쁘다, 라는 말을 듣는다. 여러 명이 있어도 유독 눈에 띄는 얼굴이다. 그에 반해 큰 아이는 그저 평범한 외모다. 내 눈에 큰 아이가 더 귀엽고 예뻐 보인다. 실제로 나는 큰 아이를 더 예뻐한다.(비밀) 하지만 작은 아이와 함께 있으면 큰 아이가 옆에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잘 못 알아본다. 분명 같이 있는데 작은 아이에게 먼저(아니면 작은 아이에게만) 말을 건다. 외모에 대한 칭찬은 기본이면서 관심을 쏟는 상황...

어느 날 큰아이가 엄마(내 여동생)에게 심각하게 얘기했다고 한다.

“엄마, 나는 얼굴을 바꾸고 싶어요.”

큰 아이에게 어떤 얼굴로 바꾸고 싶으냐고 물었단다.

(이 질문을 할 때까지 심각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하는 말이니 웃으면서 그런(얼굴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엉뚱함이라고 여겼던 듯하다.)

“00(작은 아이)의 얼굴로 바꾸고 싶어요.”

전해 듣는 나도 가슴이 철렁했다. 이제 겨우 8살 아이가 동생과 함께 있을 때, 혹은 동생에게만 몰리는 시선에서 뭘 봤기에 그런 말을 할까 싶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엄마, 나는 이름을 바꾸고 싶어요.”

(큰 아이의 이름은 수학을 공부할 때 나오는 이름이다. 혹시나 학교에서 친구들의 놀림이 되었나 싶은 마음에 걱정했단다.)

어떤 이름으로 바꾸고 싶으냐는 엄마의 물음에 아이가 대답한 건,

“00(작은 아이의 이름)으로 바꾸고 싶어요.”

라고 말했단다.

그러니까, 큰 아이가 생각했을 때 작은 아이의 외모가 질투의 대상이었을까. 굳이 보고 싶지 않아도, 같이 다닐 때마다 항상 사람들의 관심이 저절로 쏠리는 동생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렇다고 그 질투 때문에 동생을 함부로 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저 평범한 형제 사이로 보인다. 같이 놀고, 장난치고, 먹고, 돌봐주고. 그런데도 가슴 속에 담아두는 상처가 생기기 마련인가보다. 외모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이나 무심코 던지는 한 마디 때문에.

큰 아이는 4살 때 한글을 더듬더듬 익히기 시작하더니 곧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그 아이가 한글에 대해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 주변의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일찍 한글을 알았구나, 하는 정도였다. 꼼꼼한 성격에 종이접기에 취미를 붙였다. 지금은 책을 보고 종이접기를 즐길 정도가 된 듯하다. 얼마 전에 와서 접어준 꽃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나는 손으로 하는 건 정말 못한다. 내손만 닿으면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수준이다.) 요즘 아이들 종이접기 수준이 다 그 정도인가 했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닐 것이다. 엄청나게 말을 안 듣는 개구쟁이이기도 하지만, 차분하게 뭔가를 하는 모습이나 공부하는 모습을 볼 때면 그게 저 아이의 장점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큰 아이가 가진 장점이 반짝반짝 빛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다.

반면 작은 아이는 아직도 한글을 잘 모른다. 겨우 자기 이름을 쓰는 정도다. 그런데도 당당하다. 형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서, 형이 귀찮아하면 “나는 책을 못 읽으니까 형아가 읽어줘야지!” 라며 큰 소리 친다. 얌전하게 앉아서 뭘 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다. 뭘 하더라도 항상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굳이 공부 쪽으로 생각해보자면, 작은 아이는 공부보다는 다른 것을 더 개발하도록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정도? 이 아이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혼나서 울 때 말고는 항상 웃고 있다. 뭐가 그리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봐도 모르겠다. 항상 웃고 있어서 웃는 모습이 이 아이의 일상처럼 보인다. 어쩌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게 이 아이의 장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 한글을 몰라도, 공부를 못 해도, 이 아이만의 매력이 넘치는 모습을 더 많이 봤으면 좋겠다.

 

 

 

 

 

 

 

 

 

 

 

 

사쿠라기 시노의 <순수의 영역>과 히가시노 게이고의 <몽환화>를 읽으면서 두 아이를 많이 생각했다. 너무 다르게 보이는 두 아이의 장점이 앞으로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하면서 살짝 두렵기도 했다. 혹시라도 그 장점이 다른 이유로 방해받고 묻힐 수도 있을까봐... 두 작품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는 많고 다양했지만 유독 내 눈에 들어왔던 단어 두 개, 소설 속에서 ‘재능’과 ‘천재’라는 단어가 풀어내는 그 욕망과 무모함이 어떤 결말을 만들어낼지 궁금하게 했다. 예상했을 수도 있지만, 그 욕망의 끝은 결코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 끝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번쯤은 갈망하는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 손을 뻗고 싶은 것이 인간의 모습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객관적으로 본다고 해도, 내 몫이니까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이상을 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 아닐까 하고. 그러면서도, 그럼 안 된다는 생각에 그 위험을 붙잡아야 하는(붙잡는 척하는) 것이 이 마음의 아이러니다. 어떤 게 맞는 거라고 앞으로도 분명하게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를...

 

 

가능하면 챙겨보고 싶은 TV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진짜사나이>의 군대 무식자 헨리도, 음악 천재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손대는 악기마다 연주할 수 있는 놀라움을 발휘하면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그는 더 이상 ‘군대 무식자’라는 수식어보다 ‘음악 천재’라는 수식어가 앞서 오는 사람이 되어 버린 듯했다. 그럴 때마다 쌍엄지를 추켜들도록 만들더니 요즘에는 방귀를 조절하지 못하는 민망함으로 함박웃음을 주더라. 방귀에 대해 심각한 대화를 해야 할 정도로(혹 그게 예능의 설정이라 하더라도)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음악 천재도 방귀 조절을 못하는 단점 하나 있을 수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배시시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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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존재 1 - 담박한 그림맛, 찰진 글맛 / 삶과 욕망이 어우러진 매콤한 이야기 한 사발
들개이빨 지음 / 애니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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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간절한 갈망. 식탐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 모든 욕망이 가득한 듯하다. 함께 온 김치라면 맛있게 먹었다. 반전과 함께 하는 즐거움으로 이 더위를 날리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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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다닐 때, 그런 선배가 있었다.

어떤 제품을 사용하더라도 꼭 제품사용 설명서를 먼저 정독하고 물건을 대했다.

특히나 전자제품 같은 경우 설명서를 첫 페이지에서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정독한 후에 물건을 개봉했다.

 

 

 

 

 

 

 

 

나는 속으로, '뭐가 이리 꼼꼼해?' 라고 잠깐 생각했었고, 곧 그러려니 했다.

사람이 외모부터 성격까지 다 다를수밖에 없으니, 저런 모습도 당연하게 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 같으면 제품사용 설명서 대충 읽거나 아예 읽지 않고 제품 사용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러다 그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사용설명서를 펼치거나 한다.

그 선배가 그런 꼼꼼함을 보였던 것을 다른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그 선배는 제품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실수가 거의 없었다.

마치 예습 철저히 하고 시험 보는 사람처럼... ^^

 

 

알라딘 이용한지 10년이 훨씬 넘었다.

작년에는 알라딘과 10년 계약까지 체결했다.

2023년까지 플래티넘회원 등급을 부여받았다.

주구장창 알라딘을 애용할 거라는 마음의 자세를 다잡았다. (원래 그랬지만서도... ^^)

 

그렇게 애용하던 알라딘에서 늘 궁금한 게 있었다.

'왜 알라딘에서는 현금영수증 발행을 안해주지?'

 

 

처음 사용할 때는 모든 결제를 카드로 해결했기 때문에 현금영수증이란 단어는 떠올릴 필요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 몇 년동안 알라딘에서 구매하면서 카드 외 다른 결제수단을 종종 이용하게 되었다.

알라딘 상품권, 네이버책쿠폰, 문화상품권, 도서상품권, 알라딘 적립금, 등등...

그렇게 사용하면서 결제 과정에서 현금영수증 신청하는 항목이 안 보이더라.

(이건 알라딘 주문시 결제과정에서 현금영수증 신청하는 항목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못 봤던 거다.

10년 넘게 수도없이 주문해왔으면서도 못봤다는 게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지만, 사실이다.

이렇게 멘붕이 깊어지고 있다. ㅡ.ㅡ;;;)

 

 

암튼,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알라딘은 환전하면 따로 상품권으로 표시되는 게 아니고 알라딘 적립금으로 한꺼번에 표시되기 때문에

적립금으로 결제해서 현금영수증 발행이 안되나보다, 그래서 내가 주문할 때 적립금으로 결제하면 현금영수증 발행하는 항목이 자동으로 안 보이게 되었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질문도 자주 넣으면서 왜 이런 것은 궁금해 하면서도 한번도 문의해볼 생각을 안 했을까...)

 

 

어제, 바로 그 현금영수증 발행 때문에 멘붕이 왔다.

알라딘 이용한지 10년이 넘었건만, 이걸 나만 몰랐나 싶어서 상당한 시간 좌절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어제 책을 주문하다가 보니 이상한 문구가 눈에 보인다.

어제 책 주문하면서 알라딘 상품권, 문화상품권, 알라딘 적립금, 쿠폰,

이렇게 4종류의 결제수단을 이용했다.

그런데 '현금영수증은 결제완료 후 '증빙서류 신청하기에서 신청'하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건 뭐지?

원래 있었던 문구였나?

낯선 문구에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기억해뒀다가 결제 완료 후에 '증빙서류 신청하기'를 클릭해봤다.

 

 

럴수럴수 이럴수... ㅠㅠ

거기서도 현금영수증을 발행 받을 수 있는 거였다. (아, 정말... ㅠㅠ 한참을 더 울어야 해...)

 

근데, 이런 거... 이런 경험...

나만 한 건 아니지??? ㅠㅠ

 

혹시나 나처럼 몰라서...

알라딘 결제과정에서 현금영수증 발행받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면,

이제라도 발급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의 바보 같은 경험을 공유해본다. (아자아자!!)

 

결제 완료 후, 아직 배송 시작 전 단계에서 신청할 경우에는

주문배송 페이지에서 '증빙서류 신청조회' 클릭하면 된다.

 

배송이 완료된 경우라면 주문배송 페이지에서 '거래명세서'를  클릭하면 된다.

 

그러면 새로운 팝업창이 뜨면서 거래명세서가 나온다.

그럼 맨 위쪽 첫번째 항목 현금영수증 클릭하면 현금영수증 발행 페이지로 전환된다.

총 주문 금액에서 현금영수증 발행될 수 있는 금액이 새로 확인되고

그 밑에서 형금영수증 발행받을 휴대폰 번호나 형금영수증 카드번호를 입력하면 끝.

 

주의할 점은, 상품 출고 후 2일~3개월 이내의 것만 신청할 수가 있다는 것.

그러니까 주문 완료 후에는 잊지 말고 꼭! 현금영수증 발행 받아야 한다는 진리. ^^

 

그리고 내가 지난 주문건, 어제 한꺼번에 다 신청하면서 확인해 보니

주문금액과 현금영수증 발행되는 금액이 다를 때가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경우 적립금(마일리지에서 전환된 적립금, 이벤트성 발급된 적립금, 등등)으로 결제된 경우이거나

쿠폰 사용 금액이 빠진 듯하다.

 

 

혹시라도 나처럼 모르고 지나간 경우라도 3개월 이내의 것은 발행받을 수 있으니,

꼭 확인해보시고 소득공제에 보탬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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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09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렇게혜윰 2014-06-10 0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몰랐어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발급받았네요. 근데 3개월은 아닌지 두 건만ㅠㅠ 담부턴 제때 챙겨야겠어요!!!

구단씨 2014-06-11 00:01   좋아요 0 | URL
아핫~!
저만 몰랐던 건 아니었군요. ^^ (다행 다행...)

2014-06-26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6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