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는 언제나 그 책을 읽었다 - 영화와 책이 있는 내 영혼의 성장기
이하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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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끝의 빨간 실, 영화와 책... 『조제는 언제나 그 책을 읽었다』

 

 

같이 영화를 봐도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들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내게도 그런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토요일 수업이 일찍 끝나면 그 친구의 집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꼭 비디오 한편씩을 보고는 했었는데, 작은 TV 화면에 5~6명이 머리를 모아서 집중해서 보고 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소식이 다 끊겨서 어디서 무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렇게 모여서 같이 영화를 보는데도 꼭 의외의 장면을 잡아내는 친구가 있었던 거다. 모두가 흘러가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을 때, “방금 그 책 제목이 뭐야?”라고 묻거나, “뒤쪽 벽에 걸려있던 그림이 000이야?”라던가, “00이 지금 밟은 것이 뭐지?” 하는 식의 질문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은 ‘그런 장면이 있었나?’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기 일쑤였다. 생각해보니 그런 질문을 했던 그 친구 참 여러 가지로 특이하긴 했다.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부르던 것과는 약간 거리감 있는 사고방식을 가진 친구였다고 기억된다.

 

때로는 영화나 책에서 내가 놓친 부분을 누군가가 그렇게 얘기해줄 때, ‘아하, 그랬구나.’하는 어떤 발견의 미학을 만날 때가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해주는 영화와 책에 관한 이야기가 그랬다. 나에게는 오래전 영화와 책들이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던 부분들도 있었지만, 저마다 들려주던 한 부분으로 그 기억은 금방 재생되곤 했다. 영화에서 보여주던 재미와 감동이 영화 속에서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했던 책으로 연결이 될 때는 묘한 흥분까지 느꼈다. 저자는 영화 속에 등장했던 책들 혹은 책의 한 문장 때문에 멘토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지만, 내가 만난 영화 속의 책들은 멘토와 더불어 한번은 만나보고 싶은 위시리스트 속의 책으로 담겨지곤 했기에 미뤄둔 숙제 같은 느낌이 컸다. 어쩌면 환상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책을 읽어야만 그 영화에 대해 제대로 보고 느낀 것으로 마무리가 될 거라는 판단에서였는지도…….

 

내가 생각했을 때, 떼려야 뗄 수 없는 궁합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영화와 책일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어떤 영화를 만나기도 하고,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어떤 책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 책은 저자가 들려주는 영화, 그 영화 속의 책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나 영화의 흐름에 큰 매개체 역할을 하는 책을 대해 소개해주고 있다. 그 중에서 이 책의 제목처럼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었다. 한참 일본 영화와 문학에 빠져 있을 때, 비공식적인 경로로 봤었던 기억이 난다. ^^ 그 영화를 보고 벽장 같이 비좁은 공간에서 웅크리고 책을 읽어가던 조제를 저절로 떠올릴 수밖에 없다. 몸이 불편한 조제를 위해 할머니가 주워다 주었던 그 책들에 파묻혀 있던 조제를 잊을 수가 없다. 그 공간에서 그렇게 책을 읽는 것만이 조제에게는 구원의 줄인 것처럼 보였으니까. 물론 그 안에는 조제의 사랑이 함께 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 일본 영화나 문학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기에는 현실적인 세상을 살아가느라 바빴던 내가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던 부분도 있었지만 언젠가는 그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전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영화에서 보여줬던 프랑수와즈 사강의 책 『한 달 후 일 년 후』를 기억하게 만들었다.

 

이런 식이다, 이 책은. 그 영화를 떠올리면 그 책이 저절로 생각나게 하는 것. 누군가의 욕심에 잔인함을 보게 만들었던 영화 <매치포인트>와 책 『죄와 벌』을 기억해야 했고,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두 개의 인격을 보여주었던 영화 <프라이멀 피어>와 책 『주홍 글씨』를 잊지 않게 했다. 오랜 시간동안 간절히 바라던 것을 이루어낸 영화 <쇼생크 탈출>은 책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다시 만나게 해주었으며, 그 안에 등장하던 책 때문에 울컥 눈물이 솟게 했던 영화 <아들>에서는 책 『데미안』에 대해 다른 느낌을 들려주기도 했다. 두 얼굴의 남녀가 온·오프라인에서 보여주었던 편견에 웃음 짓게 했던 영화 <유브 갓 메일>은 내가 로맨스의 고전이라 여기고 있는 책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를 그립게 한다. 운명처럼 다시 만나는 순간 사랑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내내 빌게 만들었던 영화 <세렌디피티>는 그 운명의 연결 고리인 책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메모하게 했다.

 

그렇게 23편의 영화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이 책은, ‘책’이라는 것 자체를 흥미롭게 살펴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건 저자가 책과 함께 소개해주었던 영화의 영향이 크다. 영화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의 재미는 기본이고, 그 이야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그 책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때로는 어떤 사건의 복선으로 자리하면서 더 눈여겨보게 만들고, 주인공과 배경의 시대적 분위기를 파악하게 해주기도 했다. 영화에 대한 이해와 책으로 연결되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현실에 대한 이해와 책 그 너머에 있는 상상이 불러올 수 있는 판타지까지 가능하게 했던 역할이 아니었을까. 물론 영화에서 보여주는, 영화 속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역할은 눈에 보이는 딱 거기에서 멈출지 모르지만, 이미 관객이자 독자인 우리는 그 영화와 책을 접하고 나면 그 이상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지 않겠나. ^^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난 후의 이야기를 그리기도 하고, 탈출한 후에 다시 만난 앤디와 레이의 미래를 열렬히 응원하기도 하면서, 도쿄타워의 그 야경을 보면서 무모한 사랑을 그리기도 하는…….

 

어쩌면 책은 영화 속의 그저 하나의 소품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자의 눈을 통해서 만난 영화 속 한권의 책은 소품 그 이상의 이야기다. 주인공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했고, 주인공이 만나길 바라는 미래를 대신 말해주기도 했다. 주인공의 삶에 멘토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한권의 책으로 머물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여러 가지 이유로 책을 읽고 있는 이유.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 일수도 있고, 어떤 시험대를 통과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무료한 일상의 활력소 일수도 있지만, 그 모든 이유의 공통점은 자신에 다가올 어떤 느낌을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게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담고 있기도 했고, 한 편의 영화의 흐름을 좌우하기도 했다는 것을 저자의 이야기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한 권의 책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기에 관객들에게는 더욱 눈에 담게 되는 책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 음악을 귀에 담았다면, 영화 속의 책들은 저절로 눈에 담게 될 것이다. 영화의 흐름에 빠져 혹시 놓치고 있던 부분이 없었는지, 그 책이 영화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의 어느 한 페이지를 펼쳐 기억을 더듬어 봐도 좋겠다. 그때 그 영화, 혹은 그때 그 책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에게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해질 테니. 나 역시도 지금 이 책을 통해서, 아직 만나지 못한 영화와 아직 읽지 못한 책의 리스트를 다시금 채워가고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 ‘영화’를 다시 만날 때 그 ‘책’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이 책에서 들려주었던 영화와 책.

<세렌디피티>,『콜레라 시대의 사랑』 / <친니친니>,『두 도시 이야기』 / <디 아워스>,『댈러웨이 부인』 / <컨스피러시>,『호밀밭의 파수꾼』 / <유브 갓 메일>,『오만과 편견』 / <콜드 마운틴>,『폭풍의 언덕』 / <생활의 발견>,『스콧 니어링 자서전』 / <키다리 아저씨>,『뉴욕 3부작』 / <시티 오브 엔젤>,『해마다 날짜가 바뀌는 축제』 / <이퀼리브리엄>,『갈대밭에 부는 바람』 / <장미의 이름>,『시학』 / <프라이멀 피어>, 『주홍글씨』 / <쇼생크 탈출>,『몽테크리스토 백작』 / <오래된 정원>,『살아남은 자의 슬픔』 / <스피어>,『해저 2만 리』 / <아들>,『데미안』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한 달 후 일 년 후』 / <어느 멋진 순간>,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매치 포인트>,『죄와 벌』 / <도쿄 타워>,『사랑의 종말』 / <레이크 하우스>,『설득』 / <카포티>,『월든』 / <마들렌>,『달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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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9 0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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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1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녕하세요. 과학도서 출판그룹 사이언스북스입니다. :)


사이언스북스에서 갑산한의원 이상곤 원장의 신간,

왕의 한의학』이 출간되었습니다.

신동아, CBS, 프레시안에서 큰 인기를 끈 '왕의 한의학'의 정수를 한데 모은 도서로

조선 왕의 몸과 질병 속에서 조선 역사의 비밀을 풀어내는 도서입니다.

의학과 건강 특히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왕의 한의학』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


선 왕의 질병 속에서 역사의 비밀을 읽는다!

조선 왕들의 몸을 진단하고 현대인들의 마음을 처방한다



최근 조선 시대를 무대로 한 사극 붐이 뜨겁다. 여름에는 극장가에서 이순신의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이 1500만 관객을 돌파했고, 가을과 겨울에는 텔레비전에서 사도세자의 비극을 다룬 「비밀의 문」, 광해군의 왕위 계승 이야기를 다룬 「왕의 얼굴」 등이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출판계에서도 조선 시대는 스토리텔링의 보고로 각광을 받고 있다. 만화 『조선왕조실록』 시리즈가 100만 부를 돌파하고 정치사에서부터 민중사, 그리고 미시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조선 역사 관련 서적들이 빈번하게 출간되며 출판 불황 속에서도 조선 시대사 관련 출판 시장은 나름의 성장세를 유지해 가고 있다. 이것은 1990년대 초⋅중반 『조선왕조실록』의 국역 완료 이후 그 범위와 깊이를 확대해 가고 있는 조선 시대 연구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의 기록 문화 유산인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조선 왕들의 모습은 다채롭다. 『조선왕조실록』을 만든 사관들은 태조부터 순종까지 27대 조선 왕들의 삶과 정치적 행위 등 모든 것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당시의 정치⋅경제⋅사회적 상황에 휘둘리고, 왕권과 신권의 우열 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따지는 민심의 향배에 불안해했던 조선 왕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록에는 조선 왕의 공식적인 삶에 대해서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내밀한 사생활, 그들의 숨기고 싶었던 육체적, 정신적 아픔까지도 기록하고 있다.

조선 왕은 천명(天命)을 대리하는 초월자인 동시에 현실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절대 권력자였다. 그리고 자기만의 사생활과 육체를 가진 하나의 인간이었다. 따라서 때에 따라 공식적 삶이 주는 스트레스는 왕의 삶과 건강을 망치기도 했고, 반대로 왕의 건강과 질병은 정치사를 뒤바꾸기도 했다. 최근 『조선왕조실록』 우리말 완역 이후 『승정원일기』 등에 대한 번역과 전산화 작업이 진척되면서 왕의 육체를 둘러싼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다. 이번에 (주)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의 『왕의 한의학: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는 바로 이런 학문적, 콘텐츠 산업적 연장선상에서 출간된 책이다.

전작 『낮은 한의학: 알기 쉽게 다가오는 한의학의 지혜』를 통해 대중의 눈높이에서, 현대인의 건강 수요에 맞춰 한의학의 오래된 역사와 지혜를 소개한 바 있는 이상곤 원장은 이번 책 『왕의 한의학: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에서 조선 한의학의 지식과 기술의 정수가 응집되어 있었을 조선 왕실의 의료와 의학, 그리고 그 발전 과정을 소개한다. 이상곤 원장은 왕들의 질병 및 치료 기록이 비로소 분명해지는 태종, 세종 때부터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 때까지 실록 및 아직 번역되지 않은 영역이 더 많은 『승정원일기』와 『약방일기』 등의 왕실 의료 관련 기록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해독해 가며 조선 왕실의 의학, 즉 ‘왕의 한의학’의 비밀을 파헤쳐 간다.


 

***


『왕의 한의학』 서평단 모집 상세 내용


하나, 『왕의 한의학』 서평단 모집 포스팅을 개인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 간단하고 성실하게 적어서 스크랩 링크와 함께 댓글로 올려주시면 응모가 완료됩니다.

둘, 응모 기간 2014년 12월 18일(목)부터 12월 25일(목)까지 입니다.

셋, 추첨인원 10명입니다. (최종 응모자 수에 따라 추첨인원이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넷, 서평단 발표일 2014년 12월 26일 금요일입니다.

다섯, 서평기간2015년 1월 1일(목)부터 1월 15일(목)까지 15일간입니다.

서평단에 선정되신 분은 12월 25일까지 개인정보를 비밀댓글로 적어야합니다.

12월 25일 이후까지 확인이 안되면 선정이 자동취소됩니다.

마지막, 첨된 서평단 분들은 서평기간인 15일간 알라딘 개인 계정으로 서평을 작성한 후, 『왕의 한의학』 서평단 발표 포스팅 알라딘 개인 블로그 및 그 외 블로그나 외부 채널 등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셔야 최종 서평이 완료됩니다.


 

※ 해당 기간 안에 서평 및 서평완료 댓글을 작성하지 않을 시,

다음 서평단 모집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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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표지가 예뻐서 눈에 담았다.

 

 

글자가 빽빽하게 들어 찬 소설인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책은,

글과 그림이 함께 했을 때 더 빛을 발하는, 딱 그 느낌인 듯하다.

 

사랑에 빠진 그 순간의 열정은

사랑이 끝난 후의 그 상실감과 늘 함께인 듯하다.

 

젊은 남녀의 사랑과 권태, 재회를 가볍지만 감각적으로 그려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동화 같은 소설을 기대하지만,

막상 그 안을 들여다 보면 깊어질 것만 같다.

 

그 사랑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줄 것 같아서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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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존재 1 - 담박한 그림맛, 찰진 글맛 / 삶과 욕망이 어우러진 매콤한 이야기 한 사발
들개이빨 지음 / 애니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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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웃픈 자화상.『먹는 존재1』

 

 

분명히 다르다.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는 작가와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귀찮아'하는 나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하루 세끼를 챙겨야 하는 당연함 따위, 나에게는 없다. 그냥 배고플 때 먹는다는 게 진리다. 그럼에도 공감했다. 마성의 유 양 때문이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에 따라오는 씁쓸한 을의 삶과 침이라도 뱉고 나와 버리고 싶은 과감함이 읽는 이에게 달려든다. 이렇게도 차지고 맛있게 욕을 하는 사람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고, 오늘 걱정을 내일로 미루고 먹고 누워있고 싶은 간절함이 저절로 들게 하는 데 어떻게 공감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마음속은 뒤죽박죽, 길거리에 나앉게 생긴 오늘이 불안하고, 간절하게 먹고 싶은 음식은 눈앞에서 춤을 추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 향이 강하다며 거부한 전 남친이 내가 소개해준 맛집에 나타나니 욕 나오고, 갑자기 찾아온 엄마 밥은 황홀경이고, 터무니없는 엄마의 기대는 언제쯤 사라질지 아득하고, 밥 대신 술을 넣어준 속은 못생긴 남자와의 하룻밤을 만들고, 그 못생긴 남자는 나를 들었다 놨다 하고. 에잇~ 욕 나오는 하루의 인생살이...

 

정말 지겨운 회식자리, 무리하게 술까지 권하는 상사에게 굴을 던지고 뱉기까지 하며 회사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유 양. 그렇다. 유 양은 후련하게 회사에서 잘렸다. 정말 잘린 건가? 회사도 사장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유 양이니, 잘린 게 아니라 스스로 나온 기회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백수다. 시간은 많지만, 통장 잔액은 줄어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먹는 것이 인생의 낙이니 룰루랄라 식탐 여행도 가능하다. 뭐든! 마음만 먹으면 가능할 것 같은 유 양이다. 클럽에서 떡으로 유혹해서 그녀의 인생에 침입한 못생긴 남자 박 병과 전 직장 동료 조예리와 조예리의 남친까지 합세하여 먹는 것에 녹아든 삶의 녹록지 않음을 풀어낸다.

 

유 양이 말하길, 배고픔이란 질 낮은 양아치 새끼 같다고 했다. 삼시 세끼 꼬박꼬박 찾아온다고 했다. 그 삼시 세끼에 인간 군상의 모든 게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 세끼를 챙겨야 한다는 데 의미를 두는 내가 아니니, 오직 유 양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이자면 그렇다. 당연하게 찾아오는 배고픔과 하루 세끼, 그것을 외면하지 못하고 뱃속에 뭔가를 채워야 하는 인간. 그 과정을 통해 나누고 쌓이는 인간관계와 사람들. 도심 어느 구석의 이야기까지 더해져 눈길을 끈다. 먹는 행위 하나에 이렇게 많은 의미와 시선을 붙들고 있는 것도 작가의 재주다. 허름한 식당에서 먹은 온메밀 국수를 다시 먹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은 거대 기업에 기죽지 말고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켜 맛으로 유지하길 바라는 간절함을 만든다. 다음에 어느 날, 문득 찾아가고 싶은 그런 곳으로 남아있길 바라게 된다. 나만의 맛집은, 맛있는 음식이 있기도 하지만 음식 그 이상으로 마음에 채워지는 뭔가를 알았기 때문에 맛집이 되는 거다. 식당의 외관이 허름해도, 어느 구석진 골목 끝에 자리해도 굳이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이유는 그런 거다.

 

한편, 분식의 맛은 길거리표가 최고다. MSG 범벅이라 하여도 그 맛을 잃으면 안 된다. 먹는 것에 그다지 관심 없는 나도 이건 쌍엄지 추켜들고 외치고 싶다. 떡볶이는 역시 길거리표다. 새빨간 국물에 퐁당 담가있는 떡과 어묵.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조합이 있다. 김밥, 순대, 튀김은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다. '김떡순' 가족은 흩어지면 안 된다. 아, 어쩌면 좋아. 이 시간에 떡볶이가 먹고 싶어 죽겠다. ㅠㅠ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예쁜 옷을 입고 어딘가로 나가고 싶은 날, 봄나물의 향기가 콧속 깊이 스며들어 진하게 남겨진 날, 변하고 발전하는 빙수 대신 오리지널 빙수가 당기는 날. 그렇게 하나씩 파고드는 음식의 의미가 있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서, 괜히 기분이 멜랑콜리 해져 향으로 취해버리는 음식, 아무것도 아닌 아주머니들의 호호호 웃음소리에 같이 웃게 되는 봄나물 같은... 왜 그렇게 먹는 것을 외치는지 이런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니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냥 어느 날의 한 장면, 어떤 장소의 이미지일 뿐인데 늘 먹는 것이 함께한다. 그걸 빼놓고 생각하자니 뭔가 허전하기도 하다. 아, 그래서였구나. 내가 지낸 오늘 하루를 떠올려보니 먹는다는 행위가, 음식이 빠질 수가 없구나. 나 오늘, 방울토마토 10알과 컵라면 하나 먹었다...

 

먹는 것을 향한 원초적 욕망에 목숨 걸듯 몰입하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먹는 행위 안에 간절함이 있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이다. 살기 위해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비굴해지는 시간도 견뎌야 하는 게 세상 속 피라미드에서 가장 밑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그게 정말 살아가는 모습일까? 내가 진정 바라는 삶일까? 유 양은 그런 삶을 탈출한다. 안다. 고민 없이 그냥 저지르는 것처럼 보이는 유 양이지만, 현실 속 우리의 마음은 유 양이면서도 그렇게 저지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유 양의 과감함에 공감하며 속을 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의 아우성을 대신 소리쳐 주고 있는 것 같아서. 쌍욕의 개운함과 구석에서 빛을 못 보고 있는 숨소리를 들춰내고 있다. 그녀의 쌍욕과 거침없는 과감함에 설레는 이유다. ^^

 

먹는 것에 대한 욕망과 견딜 수 없었던 사회 구조에서 탈출하고자 했던 유 양의 몸부림은 처절하다. 탈출이 아닌 백수로 전락했다는 게 보통 사람의 시선일 테니까 말이다. 다시 들어간 회사에서마저 잘린다. 그로 인해 그녀가 꿈꾸는, 창작에 대한 욕망이 더욱 불타오르는 시간을 만든다는 게 반전이다. 땅에서 넘어진 사람은 그 땅을 짚어야만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하니, 그녀도 이제 다시 꿈꾸며 일어설 일만 남았다. 그 와중에, 옥탑방에서 줄어드는 통장 잔액을 우울해하면서도 맛집 투어를 시작해버리는 그녀의 욕망을 막을 수는 없다. 그녀답다. 아마 그 크기를 잴 수 없는 식욕만큼이나 그녀의 꿈 욕망도 무한할 것만 같다. 더러운 성깔밖에 남은 것 없는 여자가 결국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해야만 하는 마음을 그린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꿈꾸고 싶은 것을 꾸는 일.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판타지 같지만, 결국 누군가는 해낼지 모른다. 그 누군가는 유 양일 수도 있고,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는 순간, 그건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 된다. 그렇게 세상에 부딪히며 꿈을 현실로 만들어버리는 것. 유 양이 끝나지 않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식욕으로만 따지자면, 여전히 나는 그 식욕을 자랑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상당히 날씬한 사람으로 오해하고는 하던데, 그렇지 않다. 먹는 것에 큰 관심이 없을 뿐이다. 그런데도 유 양이 보이는 그 음식에 대한 욕망이 낯설거나 거북하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언급하는 음식들은 특별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동네에서, 집에서 흔하게 보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대부분이다. 혼자 혹은 여럿이서 먹어온 음식이다. 익숙하면서 모르는 맛이 아니기에 더욱 그 간절함에 공감할 수 있었다. 특별한 나만의 음식이 아닌 누구나 알 수 있는, 즐길 수 있는 맛. 그런 맛들이 '내'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래서 이건 유 양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다. 오늘도 먹기 위해 몸부림치고 살아가기 위해 버둥거리는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계속되는, 아주 웃~픈 다음 편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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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s, Let us
이유진 지음 / 이가서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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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스 렛 어스』 편지, 음악 그리고 우리...

 

 

나는 아침형 인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는 잠을 자고... 가능하면 자정을 넘기지 않고 잠이 들 수 있는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했으니, 그런 패턴으로 도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흐름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분명 아침에는 일어나는데, 밤에는 잠드는 시간이 들쑥날쑥. 때로는 잠깐 자고 일어나고 다시 또 잠깐 자고 일어나는 초저녁부터의 조각잠. 그러다 심해지면 병처럼 찾아오는 불면증, 폭식하듯 잠을 자기도 하고, 하룻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고. 가능하면 처방 받은 수면제를 먹지 않고 순전히 내 의지로 건너가고 싶은 시간들이었다. 때로는 그런 방법이 통하기도 하고 통하지 않기도 하고. 결론은 잠이 오면 잠을 자고, 잠이 오지 않으면 잠들지 않는 것. 그것 밖에는 없다. 그럼 문제는 잠들지 못하는 시간들에 관한 것...

 

그래서 이들의 금요일, 새벽 3시, 음악과 편지로 풀어내는 그리움에 동참하려 한다.

모두가 잠이 드는 밤이라는 시간에 잠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음악과 편지와 함께 찾아오는 이들이었다. 그 묘한 매력 속에서 허우적대는 나(독자)도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보내는 이가 의도하지 않아도 전파 타고 날아와 가슴에 저절로 박히는 순간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밤중-새벽이라도-의 라디오가 주는 그 매력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오늘의 시간은 자정을 넘어 새벽을 향해 가고, 곧 동이 터 아침이 되려고 하는 시간에도 분명 누군가는 듣고 있을 것만 같다. 수줍게 문자를 찍어 신청곡을 보내면서, “나 지금, 여기서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어요.” 라고 신호를 보낸다. 라디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 음악이 지금 듣고 싶어요.” 라고 말하면서 답을 하기도 한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서로가 다른 공간에서, 누군가는 말하고 누군가는 듣고 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고요해지는 그 시간에도 누군가는 듣고 있을 그 목소리, 그 이야기들, 그 음악들은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그래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까지 하고 싶어질 만큼의 간절함이다.

 

"밤에 글을 쓰고, 밤에 음악을 하는 건, 유난히 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차마 낮에는 할 수 없었던 그 말들을, 그 마음을 혼자 있는 밤에만 슬쩍 꺼내보는 것 아닐까요? 그 마음만큼, 그 시간만큼...... 쌓여있는 편지들을 보내주세요."

 

금요일의 새벽 3시 라디오부스 안, Letters 코너가 시작된다. 누군가가 쓰는 편지를 읽어주고 그가 선곡한 음악이 함께 한다. 그 편지와 음악으로 가슴이 설레고 떨릴, 혹은 아련할 누군가를 위해서... 음악을 만드는 그 남자 해수는 폭이 넓은 치마를 입고 가던 그녀를 그곳에서 다시 만난다. “난, 안 돼.” 라고 말하면서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하는 말을 듣는다. ‘괜찮을 거야...’

한 시간의 사랑을 위해서 연필로 편지를 쓰는 그 여자, 현진. 시작 시간과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시간이 정해져있는 영화라고 해도 괜찮다 생각했다. "싫어." 라고 말하는 그 남자가 그래서 좋다. 자신의 차가운 손을 따뜻한 손으로 감싸줄 줄 아는 그 남자가, 자신과의 만남을 바람이라고 말하면서도 좋단다. 좋으면 된 거지.

 

“해수씨도, 그런 사람 있어요? 생각 안하려고 하는데, 자꾸 생각나서 에이, 그냥 생각하자 하는 사람.”

“있어요. 있는 것 같아.”

 

지금은 서로를 바라보는 상대방의 그, 혹은 그녀가 있음에도 그들에게 나쁜 사람이 되고자 한다. 현진은 해수의 그녀에게 나쁜 사람이 되고, 해수는 현진의 그에게 나쁜 사람이 된다. 잠깐은, 아주 잠깐은 괜찮을 거라고 서로에게 위로를 하면서. 현진의 차가운 손과 발은 따뜻해지고, 해수의 건조함은 사랑을 배우고, 그러면 될 것 같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서로에게 이별까지 배달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그거면 된 거다. 그래도 괜찮을 거다...

 

서로가 마주보던 시간을 바람이라 불렀으니, 세상의 눈으로 보면 불륜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해수에게는 2년 된 애인이 있고, 현진에게는 결혼하자 말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온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서로에게 '싫다'고, '넌 안 된'다고 하면서도 흘러가는 마음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불안하지만, 그 불안까지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라면 어떨까. 그러면서도 계속되는 그들의 금요일 새벽 3시는, 그래도 사랑일 테다. 한 사람은 편지를 쓰고 다른 한 사람은 그 편지를 읽는다. 그 마음이 어떨까 상상을 해봐도 그들만큼 잘 알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느 가수의 노래 제목처럼, 사랑 그 놈, 참...

 

누군가 나에게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나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이기도 하고,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한두 명은 아니었으니까. 세상사에 치여 가면서 가끔은 꼼수도 부리고, 잔머리도 쓰고, 편리한 것들을 찾아다니기도 하지만 이런 면에서는 디지털기기의 편리함보다는 주파수를 맞추어야만 들리는 라디오처럼 아날로그적인 게 좋다. 눈앞에 보이는 현란한 영상이 아닌, 오직 소리로만 들리고 느낄 수 있는 그 감정들은 무어라 설명할 수도 없다. 그저 그게, 라디오의 지독한 매력이라고 할 수밖에. 현진과 해수의 이야기가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었을 텐데 나에게 이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그래서일 테지. 라디오가 주는 감성과, 표현하지 못할 마음을 담은 사람들의 마음과, 누군가가 쓴 편지라는 구실로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여서 그런 거라고... 안되는데 하면서도 가끔은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나가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보여주는 듯했다. 기침처럼 숨기지도 못하고, 드러난 마음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어서 알아차리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것. 그래서 현진과 해수가 어설프게나마 드러내는 마음, 다시 주워 담아야만 하는 마음이 안타까운 거다. 

 

프롤로그를 잘 읽고 넘어가야 두 사람의 이야기가 연결되어지는 책이다. 서로의 진실을 다 드러내지 못해서 오해 아닌 오해를 갖기도 했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두 사람의 마음과 태도, 드러내는 행동들이었으니까. 차마 이름을 부를 수 없어서 어깨를 살짝 찔러 부르고, 미안하다는 말을 꺼낼 수 없어서 주저하다 타이밍을 놓치고, ‘사랑합니다.’ 한 마디에 무너져 내리는 것들. 저절로 불면의 밤을 가져오게 하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면 그게 아닌 게 되어버린다. 현진이 아픈 몸으로 순간 목 놓아 울어버린 마음을 알 것도 같다. 표현하지 못해서 아팠던 거다. 감정을 말할 수 없어서 울음으로 드러낸 거다. 결국은 내민 손을 누군가가 잡아주어야만 멈출 수 있는 눈물이었던 거다. 그렇게 눈물은 멈추었고, 불편한 사랑을 택했던 이들에게 찾아올 것이 그 무엇이라 해도 괜찮았을 거다. 누군가가 만들어줄 새벽 3시는,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시간으로 바뀌었을 테니...

 

누군가의 마음을 읽어주고, 눈빛만으로 알아주는 오피디가, 나는 정겹다. 좋다. 그런 사람 옆에 한명쯤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새벽 3시의 방송이 쓸쓸한 사람들만 듣는 방송 같아서, 꼭 들을 사람만 들어주는 방송 같아서 멋지다는 사람. 그중에서도 현진을 아주 잘 읽어내는 사람이라서 좋다. 편안했다.

“자기가 정말로 착하거나 후덕하면 내가 이런 말 안하지. 실제로는 딱 잘라 좋아하는 사람 몇 명만 곁에 두고 살면서. 아무한테나 잘해주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무관심하고 제 취향대로 살그머니 챙겨.”

오피디가 현진에게 이런 말을 했을 때, 나는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오피디가 어디 숨어서 날 보고 있나?’ 라고 생각할 만큼 현진이란 캐릭터의 묘사가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이 책 속의 현진은 나를 많이, 닮았다. 아무한테나 잘해주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무관심하고, 제 취향대로 살그머니 챙겨... 그렇게 사는 사람 괜찮을까, 싶었는데 오피디의 저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을 것만 같아서...

 

새벽 3시. 자정을 넘어섰지만 아직은 밤, 잠들어 있어야 할 시간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눈을 뜨고 동이 터오는 순간을 기다릴 수도 있는 시간. ‘사랑하오...’ 라는, 희미하지만 듣고야 말았던 그 고백으로 이들이 다시 열어갈 시간이 이어지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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