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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존재 1 - 담박한 그림맛, 찰진 글맛 / 삶과 욕망이 어우러진 매콤한 이야기 한 사발
들개이빨 지음 / 애니북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의 웃픈 자화상.『먹는 존재1』
분명히 다르다.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는
작가와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귀찮아'하는 나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하루 세끼를 챙겨야 하는 당연함 따위, 나에게는 없다. 그냥 배고플 때
먹는다는 게 진리다. 그럼에도 공감했다. 마성의 유 양 때문이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에 따라오는 씁쓸한 을의 삶과 침이라도 뱉고 나와 버리고
싶은 과감함이 읽는 이에게 달려든다. 이렇게도 차지고 맛있게 욕을 하는 사람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고, 오늘 걱정을 내일로 미루고 먹고 누워있고
싶은 간절함이 저절로 들게 하는 데 어떻게 공감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마음속은 뒤죽박죽, 길거리에 나앉게 생긴 오늘이 불안하고, 간절하게
먹고 싶은 음식은 눈앞에서 춤을 추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 향이 강하다며 거부한 전 남친이 내가 소개해준 맛집에 나타나니 욕 나오고, 갑자기
찾아온 엄마 밥은 황홀경이고, 터무니없는 엄마의 기대는 언제쯤 사라질지 아득하고, 밥 대신 술을 넣어준 속은 못생긴 남자와의 하룻밤을 만들고,
그 못생긴 남자는 나를 들었다 놨다 하고. 에잇~ 욕 나오는 하루의 인생살이...
정말 지겨운 회식자리, 무리하게 술까지 권하는 상사에게
굴을 던지고 뱉기까지 하며 회사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유 양. 그렇다. 유 양은 후련하게 회사에서 잘렸다. 정말 잘린 건가? 회사도 사장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유 양이니, 잘린 게 아니라 스스로 나온 기회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백수다. 시간은 많지만, 통장 잔액은 줄어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먹는 것이 인생의 낙이니 룰루랄라 식탐 여행도 가능하다. 뭐든! 마음만 먹으면 가능할 것 같은 유 양이다. 클럽에서 떡으로 유혹해서
그녀의 인생에 침입한 못생긴 남자 박 병과 전 직장 동료 조예리와 조예리의 남친까지 합세하여 먹는 것에 녹아든 삶의 녹록지 않음을
풀어낸다.
유 양이 말하길, 배고픔이란 질 낮은 양아치 새끼 같다고
했다. 삼시 세끼 꼬박꼬박 찾아온다고 했다. 그 삼시 세끼에 인간 군상의 모든 게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 세끼를 챙겨야 한다는
데 의미를 두는 내가 아니니, 오직 유 양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이자면 그렇다. 당연하게 찾아오는 배고픔과 하루 세끼, 그것을 외면하지 못하고
뱃속에 뭔가를 채워야 하는 인간. 그 과정을 통해 나누고 쌓이는 인간관계와 사람들. 도심 어느 구석의 이야기까지 더해져 눈길을 끈다. 먹는 행위
하나에 이렇게 많은 의미와 시선을 붙들고 있는 것도 작가의 재주다. 허름한 식당에서 먹은 온메밀 국수를 다시 먹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은 거대
기업에 기죽지 말고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켜 맛으로 유지하길 바라는 간절함을 만든다. 다음에 어느 날, 문득 찾아가고 싶은 그런 곳으로 남아있길
바라게 된다. 나만의 맛집은, 맛있는 음식이 있기도 하지만 음식 그 이상으로 마음에 채워지는 뭔가를 알았기 때문에 맛집이 되는 거다. 식당의
외관이 허름해도, 어느 구석진 골목 끝에 자리해도 굳이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이유는 그런 거다.
한편, 분식의 맛은 길거리표가 최고다. MSG 범벅이라
하여도 그 맛을 잃으면 안 된다. 먹는 것에 그다지 관심 없는 나도 이건 쌍엄지 추켜들고 외치고 싶다. 떡볶이는 역시 길거리표다. 새빨간 국물에
퐁당 담가있는 떡과 어묵.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조합이 있다. 김밥, 순대, 튀김은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다. '김떡순' 가족은 흩어지면 안 된다. 아, 어쩌면 좋아. 이 시간에 떡볶이가 먹고 싶어 죽겠다. ㅠㅠ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예쁜 옷을 입고 어딘가로 나가고 싶은
날, 봄나물의 향기가 콧속 깊이 스며들어 진하게 남겨진 날, 변하고 발전하는 빙수 대신 오리지널 빙수가 당기는 날. 그렇게 하나씩 파고드는
음식의 의미가 있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서, 괜히 기분이 멜랑콜리 해져 향으로 취해버리는 음식, 아무것도 아닌 아주머니들의 호호호 웃음소리에
같이 웃게 되는 봄나물 같은... 왜 그렇게 먹는 것을 외치는지 이런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니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냥 어느 날의 한 장면, 어떤
장소의 이미지일 뿐인데 늘 먹는 것이 함께한다. 그걸 빼놓고 생각하자니 뭔가 허전하기도 하다. 아, 그래서였구나. 내가 지낸 오늘 하루를
떠올려보니 먹는다는 행위가, 음식이 빠질 수가 없구나. 나 오늘, 방울토마토 10알과 컵라면 하나 먹었다...
먹는 것을 향한 원초적 욕망에 목숨 걸듯 몰입하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먹는 행위 안에 간절함이 있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이다. 살기 위해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비굴해지는 시간도 견뎌야 하는 게 세상 속 피라미드에서 가장 밑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그게 정말
살아가는 모습일까? 내가 진정 바라는 삶일까? 유 양은 그런 삶을 탈출한다. 안다. 고민 없이 그냥 저지르는 것처럼 보이는 유 양이지만, 현실
속 우리의 마음은 유 양이면서도 그렇게 저지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유 양의 과감함에 공감하며 속을 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의 아우성을 대신 소리쳐 주고 있는 것 같아서. 쌍욕의 개운함과 구석에서 빛을 못 보고 있는 숨소리를 들춰내고 있다.
그녀의 쌍욕과 거침없는 과감함에 설레는 이유다. ^^
먹는 것에 대한 욕망과 견딜 수 없었던 사회 구조에서
탈출하고자 했던 유 양의 몸부림은 처절하다. 탈출이 아닌 백수로 전락했다는 게 보통 사람의 시선일 테니까 말이다. 다시 들어간 회사에서마저
잘린다. 그로 인해 그녀가 꿈꾸는, 창작에 대한 욕망이 더욱 불타오르는 시간을 만든다는 게 반전이다. 땅에서 넘어진 사람은 그 땅을 짚어야만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하니, 그녀도 이제 다시 꿈꾸며 일어설 일만 남았다. 그 와중에, 옥탑방에서 줄어드는 통장 잔액을 우울해하면서도 맛집
투어를 시작해버리는 그녀의 욕망을 막을 수는 없다. 그녀답다. 아마 그 크기를 잴 수 없는 식욕만큼이나 그녀의 꿈 욕망도 무한할 것만 같다.
더러운 성깔밖에 남은 것 없는 여자가 결국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해야만 하는 마음을 그린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꿈꾸고 싶은 것을 꾸는 일.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판타지 같지만, 결국 누군가는 해낼지 모른다. 그 누군가는 유 양일 수도 있고,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는 순간, 그건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 된다. 그렇게 세상에 부딪히며 꿈을 현실로 만들어버리는 것. 유 양이 끝나지 않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식욕으로만 따지자면, 여전히 나는 그 식욕을 자랑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상당히 날씬한 사람으로 오해하고는 하던데, 그렇지 않다. 먹는 것에 큰 관심이 없을 뿐이다. 그런데도 유 양이 보이는 그
음식에 대한 욕망이 낯설거나 거북하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언급하는 음식들은 특별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동네에서, 집에서 흔하게
보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대부분이다. 혼자 혹은 여럿이서 먹어온 음식이다. 익숙하면서 모르는 맛이 아니기에 더욱 그 간절함에 공감할 수
있었다. 특별한 나만의 음식이 아닌 누구나 알 수 있는, 즐길 수 있는 맛. 그런 맛들이 '내'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래서 이건 유 양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다. 오늘도 먹기 위해 몸부림치고 살아가기 위해 버둥거리는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계속되는, 아주 웃~픈 다음 편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