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애장판들.

요즘 계속 뭔가가 나오던데, 리커버, 한정판, 개정판, 특별판. 등등등.

이런 거 볼 때마다 '또 나와?'라고 말하기는 하는데, 솔직히...

안 산 거 있거나, 사고 싶었던 책이거나 하면 눈길이 가거나, 솔깃하거나 한다는 거. 습관처럼...

 

K서점에서는 이석원의 책이 스페셜 에디션으로 나왔고, (이미 읽었음. 안 사.)

은근, 정유정의 7년의 밤 특별판을 안 산 게 가끔 후회되고, (중고 알림이 뜨긴 하는데 매번 놓침. 그래서 안 사.)

이런 저런 이유로 지나간 책들이 새옷 입고 나오는데,

이번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컬렉션이당.

 

 

 

 

 

 

 

 

 

설국, 카타리나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페스트.

한 권도 안 읽었거나, 이 세 권을 모두 살 계획이 있던 독자라면 이번에 세트로 구매해도 좋겠지만,

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중 한 권이라도 읽은 독자가 많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에,

혹시 이번 특별판을 두고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 또 있지 않을까 하는...?

이 중에 끌리는 것만 살까? 아니면 세트로 다 살까? 아예 안 살까?

(근데 나는 세 권 다 안 읽었는데 한 권을 두고 고민하는 거임. ㅎㅎ)

 

이럴 거면 며칠만 빨리 내주지, 하는 원망 살짝... ㅡ.ㅡ;;;

바로 며칠 전에 카타리나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샀거든. ㅠㅠ

(그거 팔아버리고 이걸로 다시 살까? 아, 고민 되는....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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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
세사르 바예호 지음, 고혜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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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게 어려운 건 아니지만, 읽은 시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꽤 어렵다. 늘 그랬다. 무언가 알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다 알지 못한 채로 시집을 덮는 일이 다반사였다. 특히 이번 시집은 더욱 그랬다. 나에게 세사르 바예호는, 유명하지만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시인이었다. 오랜 시간 절판이었다가 다시 세상에 나온 시들, 여러 시인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시인을 만난다는 게 설레기까지 했다.

 

있는 그대로 읽었다. 문장 그대로 읽힌다. 그러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어떤 의미를 감춰둔 단어가 자리하기도 했다. 그의 생각이 엿보이는 부분에서는 각주로 설명되는 배경까지 읽어야 했다. 어느 밤을 기억하고, 어느 계절을 보낸다. 누군가의 일상 같은 인생을 이야기하고, 죽음을 언급한다.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화기애애한 형제애를 떠올리게 한다. 그에게는 죽은 형이 그립고, 시대의 배경이 아프다. 특히 인간에 대해 고민하는 그의 시어들은 고통을 느끼게도 하지만, 결국은 희망을 노래하고 싶었던가 보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렇게 오랜 시간 독자들에게 회자할 리 없겠지. 하지만 내가 느낀 그의 시들은 희망보다는 다른 게 더 많이 보이는 듯하다. 어둠, 우울, 괴로움 같은 거. 그 마음을 뭔가 더 표현하고 싶은데,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 한발 뒤로 숨기는 것 같은. 하지만 그가 진심으로 하는 말들은 희망과 반대되는 말들을 늘어놓음으로써 고통을 마주하게 하려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런 시간을 마주하면서 건너가는 고통의 순간들이 곧 희망에 닿을 거라는 기대라도 품게 하려는 걸까.

 

피할 수 없는 선을 따라

내가 멀리 아주 멀리

저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아침,

당신의 발들은 묘지를 향해 굴러가겠지.

(중략)

청동이 우는 동안

당신의 괴로운 마음속으로

한 무리 회한이 지나가겠지.

(부재(不在) 중에서)

 

존재하지 않을 어느 순간을 떠올리기라도 한 걸까. 이 세상에서 사라진 형을 기억해내려 애쓰기도 하면서 그 부재의 시간을 견디기라도 하는 걸까. 그냥 일기처럼 써 내려갔다고 생각하면 평범하게 흘러갔을 문장들이, 젊은 나이에 요절한 시인의 시라고 생각하니 문장 하나하나에서 의미를 찾게 한다. 이런 느낌이겠지, 이런 고통을 담아놨겠지, 그의 사색의 깊이가 이러하겠지, 하는 기대감이 시어에 저절로 묻어난다. 물론 누가 강요하지 않은, 읽는 독자의 느낌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어렵다면, 그냥 문장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의 시간을 상상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그러나 뜨거운 가슴에 들뜨는 존재.

그저 하는 일이라곤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음습한 포유동물, 빗질할 줄 아는

존재라고

공평하고 냉정하게 생각해볼 때…

(중략)

인간이 때로 생각에 잠겨

울고 싶어 하며, 자신을 하나의 물건처럼

쉽사리 내팽개치고,

훌륭한 목수도 되고, 땀 흘리고, 죽이고,

그러고도 노래하고, 밥 먹고, 단추 채운다는 것을

어렵잖게 이해한다고 할 때…

(중략)

내가 사랑함을 알고,

사랑하기에 미워하는데도,

인간은 내게 무관심하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할 때…

 

인간의 모든 서류를 살펴볼 때,

아주 조그맣게 태어났음을 증명하는 서류까지

안경을 써가며 볼 때…

 

손짓을 하자 내게

온다.

나는 감동에 겨워 그를 얼싸안는다.

어쩌겠는가? 그저 감동, 감동에 겨울 뿐…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중에서)

 

122편의 시가 수록된 이번 시선집은 세사르 바예호를 만나고 싶었던 독자의 목마름을 충분히 해소해주는 듯하다. 이 시집에 수록된 모든 시를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의 일기를 읽는 느낌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그가 세계문학에 남긴 궤적이 대단하고, 중남미 시단의 거장이라고 해도, 아직은 우리에게 낯선 시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마주함으로써 또 한 명의 시인에게 다가가려는 시도가 그와 만남에 신중하게 한다. 그가 바라보는 인간, 고통에 관한 시선을 같이 보는 시간이 나쁘지 않다. 아직은 내가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도 있기에 충분한 공감을 이룰 수는 없지만, 시 한편 한편에서 보이는 그의 고백 같은 진심은, 그가 세상을 보는 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예상하지 못했던 『스페인이여! 나에게서 이 잔을 거두어다오』 부분에서는 그가 스페인 내전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그대로 담겼다. 스페인의 시련이라고 말하며 아파했다. 특히 전쟁 속에 던져진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전쟁이든 가장 아프게 보이는 건 아이들일 테니까 말이다.

 

얘들아,

전사들의 아이들아, 그동안에라도

목소리를 낮추렴. 스페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동물의 왕국, 꽃, 연, 인간 사이에서

힘을 쪼개고 있단다.

목소리를 낮추렴. 스페인은

커다란 시련을 겪고 있단다. 어찌할 바도

모르는데, 손에 있는

해골들은 말을 한다, 말을 해.

저 머리 땋은 해골,

저 살아 있는 해골.

(「스페인이여! 나에게서 이 잔을 거두어다오」 중에서)

 

시인의 삶과 닮았다는,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비극적인 시각이 그의 시어를 더 집중해서 읽게 한다. 그는 형제 많은 집의 막내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가족을 떠나 살았으며, 도망자로 살기도 했다고 한다. 평생의 가난이 불러온 고통과 병 앞에서 그가 표현한 내면의 말들은 그대로 들려온다. 희망에 대해 말하겠다면서 아프다고 그대로 드러낸다. 아픈 원인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그 원인이 아니라고, 어느 것도 원인이 아닌 것 또한 없다면서, 고통의 원인을 또렷하게 한 가지로 말하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시로 마음을 이야기하고, 시로 전쟁의 참상까지 토로하는 일. 세사르 바예호의 시를 만나는 즐거움을 그대로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의 시가 보는 범위가 넓고, 하는 말의 깊이가 다양하다. 결국은 인간 내면의 소리를 내려고 애쓰는 게, 그가 시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말의 모든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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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9-25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시 읽었으니 시에 대해 써 보자! 하고 시작했는데, 끝내고 읽어보면 항상 뭔가 읽은 시랑 완전히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더라구요.... 그럼 걍 냅둡니다. 에라이, 모르겠다, 이러면서 ㅎㅎㅎ

자꾸 그래서 아직도 시를 모르나봐요.....

구단씨 2017-09-26 10:49   좋아요 0 | URL
아... ㅠㅠ
당분간, 시는 그냥 읽는 것에서 만족하는 걸로...

stella.K 2017-09-29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구단님,
덕분에 공연 잘 보고 왔습니다.
평소 보고 싶었던 공연이었는데 이렇게 구단님을 통해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이 은혜를 뭘로 갚아야 할지...ㅠ

암튼 고마웠습니다.
행복한 추석되십시오.^^

2017-09-30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작은 사이즈. 휴대하기 편한 크기. 저렴한 가격.

쏜살문고 시리즈는 여러 가지로 선택이 쉬운 도서다.

장바구니에 여러 권 담겨 있는데,

그 중에 <외투>를 가장 먼저 구입했다.

읽고 싶은 이야기가 딱 골라서 담겨 있는 책이더라는...

지난 주에 이 책이 도착했는데...

흐음...

책의 작은 사이즈만큼이나, 글씨도 작아. ㅠㅠ 글씨가 이렇게 작을 줄 몰랐어.

뭐, 남들이 보기에 보통 크기인 것 같은데,

시력이 안 좋아서 그런지 이제는 작은 글씨가 너무 밉다...

같은 책이라면 이왕이면 열린책들 도서를 피하고 싶은 것도 그런 이유...

 

 

근데 또 슬쩍 가방에 넣었다.

휴대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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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9-25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쭈욱 진열해놓으면 뿌듯해지는 희한한 시리즈입니다. 몇권을 겹쳐서 한 손에 쥐면 든든하기도 하고요.

말해놓고 보니 살짝 변태같긴 하지만....

구단씨 2017-09-25 20:10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ㅎㅎ
목록에 넣어둔 건 많은데 구입한 건 <외투>뿐이라서요.
몇 권 더 구입하고 쭉 진열해놓고 살펴보겠습니다.
그 뿌듯함 저도 한 번 맛보고 싶습니다요. ^^
 
[eBook] 심장을 바치다 심장을 바치다 1
찬연 / 동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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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런 집착이 있을까? 사실 나는, 로맨스소설 읽으면서 보이는 집착을 그다지 즐겨하지는 않는다. 내 기준에서 억지스러운 느낌도 강하게 있기도 하고, 그러한 집착이 보이는 광기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걸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예전에 내가 읽은 집착을 강하게 보이는 로맨스소설 몇 권은 그랬다. 그래서인지 강한 소재는 잘 읽게 되지 않았다. 이번에 만난 <심장을 바치다> 역시 그런 느낌이 강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했다. 맥락도 없이 등장하는 집착에, 마치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건 성관계밖에 없다는 듯이, 그게 모든 일의 해결과 마무리를 끌고 올 거로 예상했다. 읽어가다 보니 좀 후회가 되기도 한다. 읽기도 전에 내가 오해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세아가 유현을 자극하는 방법이었다. 억지로 못된 말을 하고, 그가 싫어하는 행동으로 화를 돋우는 일을 자처했다. 마음 속 말들은 그게 아니었는데,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모두 억지스러운 것들이었다. 유현이 듣고 화를 내기에 충분한 말들. 유현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는 세아를 아낀다. 세아의 재능(그림)을 사랑한다. 그녀에게 나는 물감 냄새가 머리를 아프게 하지만, 그것마저 그녀의 일부였으니 싫어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못되게 구는 건 세아나 유현이나 똑같다. 그런데 여기서 좀 다른 점은, 두 사람 각자 과거가 작용하는 현재의 모습이다. 세아는 고아다. 입양과 파양을 거듭 경험하면서 외로움에 싸여있다. 누군가에게 버려진다는 게 세상의 공포였다. 유현이 자기에게 접근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유현에게 버려질 날을 기다리는 게 싫다. 처음부터 악다구니 써가며 단 한 방울의 정도 그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리라 다짐한다. 유현은 세아를 본 순간 돌아가신 친엄마를 떠올린다. 닮았다. 분위기도, 외모도, 표정도. 세아에게 엄마를 봤다. 그가 상처 입은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느끼게 하는 여자였다. 그러니 그가 필요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세아를 이용하면 된다. 그것뿐이다. 엄마를 닮은 그녀가 그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올 필요는 없다.

 

두 사람은 무슨 관계일까. 세아는 그림을 그리고, 유현은 세아의 그림을 가지기로 한다. 세아의 생활을 유지시켜주는 게 그림의 대가이고.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를 이어가던 중, 세아는 변한다. 그녀를 둘러싼 외로움을 표현한다. 유현에게 더는 현재의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는 걸 느낀다. 그가 주는 마음을 보는 순간, 일방적으로 누가 누구를 보살피며(구체적으로는 돈으로 생활을 영위하게 해주는) 이어가는 지금이 싫다. 그와 어떤 관계로 이어가지 못할 지라도 현재의 모습으로 남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묻는다. 자기가 그린 그림 값이 어떻게 계산되어야 하는지를. 그녀가 가진 것이라고는 그림 그리는 재주밖에 없으니, 그 그림으로 그의 욕망을 채워주고 있으니, 이제 그녀에게 가진 것을 전제로 새로운 계산법이 필요했던 거다. 아, 그 순간. 이 여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읽게 된다. 이 남자가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고 그녀를 봤으면 하고 기도하게 된다. 집착으로, 구속하듯 묶어놓는 게 아니라, 좀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는 두 사람이 되기를 말이다. 실제로 조금씩 변하는 모습으로 소설은 결말을 맞는다. 세아는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들로 삶에 웃음을 불어넣는다. 유현은 여전히 세아를 구속하지만, 그 구속의 모습이 피식거리게 할 만큼 힘을 잃었다는 게 안타깝지만, 뭐, 어때. 그렇게 좋아지는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면 해피엔딩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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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결혼, 그리고 결혼
유리화 지음 / 마롱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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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그랬다. 서로에게 관심 없던 두 사람이었으니, 뭐 시작이랄 것도 없는 인연이었겠지. 두 할아버지의 다그침이 없었다면 그들의 결혼은 인생 계획에 없던 일이었을 터. 인예는 지금 결혼이 아니라 일이 우선이었다. 이제 막 시작된 사회생활에 충실하고 싶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편찮으시다. 마치 인예의 결혼만이 할아버지의 치료약이 되는 것 같은 분위기. 어차피 해야 할 결혼이라면, 할아버지의 평온이 인예의 결혼이라면, 이 남자와 결혼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철진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가 꿈꾸는 증손주까지는 몰라도, 당장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다면, 아주 모르는 사람도 아닌 인예와의 결혼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은근 인예를 향한 눈빛도 감지한 터라 자기 아내가 된 인예를 보는 건 즐거운 일이 될 것도 같고. 응?

 

'선결혼 후연애' 혹은 '계약결혼' 키워드에 충실한 소설이다. 지금 만난 낯선 여자와 남자가 엮어가는 관계가 아니라, 비록 기억은 희미하지만 오래전 인연이 있던 사람들이다. 두 할아버지를 기점으로 한쪽은 손녀, 한쪽은 손자가 만들어낸 인연. 진짜 부부가 아니라 부부 행세를 위한 계약이었지만,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은 한 공간에서 보내는 이들이 어떻게 마음이 통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낮에는 회사에서, 밤에는 집에서, 그렇게 한 공간에서 숨을 쉬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드는 과정을 그렸다. 칼 같은 성격에 내 사람과 아닌 사람의 구분이 명확한 철진, 유한 성격이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며 누군가의 마음을 거절할 줄도 아는 여자 인예. 다른 것 같지만 은근 비슷한 면을 보이는 두 사람의 성격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특히 철진에게 향한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 집착과 스토킹이었던 미란과 자기 마음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도 아니면서 마치 자기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던 정민을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는 너무 닮았다. 어떤 사건 이후의 처리를 하는 방식마저 시원하게 비슷했다. 병적인 집착을 용서하는 게 아니라, 가만히 앉아서 희망고문을 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인간적인 배려와 기본이 무엇인지 전달하려는 모습은 통쾌했다.

 

상사와 부하직원이면서 남편과 아내라는 비밀을 감춘 채로 하루를 보내는 두 사람의 긴장감은 볼만하다.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커밍아웃하게 만드는 조연들의 활약(?)도 흥미롭다. 특히 미란 씨. 내 것이 아닌데도 내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그 집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에휴, 안타깝구만. 정민 씨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지 않은 채로 마치 자기와의 인연이 정해진 것처럼 행동하는 거, 별로다. 솔직히 이건 현실에서도 종종 보곤 하는데, 옆에서 그러고 있으면 저절로 상대의 마음이 넘어올 거라는 계산은 별로다.

 

읽는 게 나쁘지는 않은 소설이나 한 가지 거북스러웠던 단어. '내 아내'라는 말. 철진이 인예와 대화하면서, 혹은 혼잣말 하면서, 문장의 끝에 붙이는 그 '내 아내'라는 말이 니글거려서 혼났다. 꼭 그렇게 불러야만 했니? 영화나 드라마 속의 온갖 느끼한 장면들이 계속 생각나서, 읽는 동안 몰입감 최고로 방해하던 요인이었다.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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