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린다 작가정신 시그림책
함민복 지음, 한성옥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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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가 한 권의 책에 그대로 담겼다. 이 책은 오직 그 시 한 편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른 데로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시 구절 그대로를 그림으로 옮겨놓아, 그림으로 읽는 시라고 말해도 좋겠다. 가을밤, 누군가의 낭랑한 목소리로 들으며 봐도 좋을 조합이다. 특히 시 구절이 뭔가 함축적인 내용을 가득 머금고 있어서 해석하려고 머리카락 쥐어뜯는 어려움을 품지 않은 듯한 느낌이, 이 시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한다. 얼핏 우리네 인생의 한 줄기 흐름을 그대로 담아낸 것 같아서 더 애틋한 분위기마저 풍긴다. 계절 때문인지, 아니면 개인사 안팎으로 들려오는 아픈 소식들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때 만난 이 시가 때로는 더 서늘하고 시리게 다가온다. 괜한 마음에 울컥해지기도 하면서...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참죽나무를 가지치기할 때 전해지는 떨림이 있다고 한다. 그 떨림을 지켜보는 시선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아슬아슬하게 그 중심을 잡고 있는 듯한, 흔들리지 않고 버티려고 애쓰는 듯한, 그대로 중심 잡고 서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듯한 느낌. 때가 되면 잘라내기도 하고,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는 게 우리네 인생사의 한 부분일 텐데, 매번 그걸 지켜보기는 쉽지 않으리라. 그런데도 버티고 견디며 살아내는 게 우리의 의무이자 운명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빈자리를 채워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흔들리지 않으려고 흔들리면서 잘라내어진, 비워진 자리를 흔들리면서 채우려 애쓰는 것만 같다. 그림으로 그리자면 구멍 뚫린 자리에 흔들리는 나뭇잎 색깔로 칠하는 것 같은. 붓을 들고 칠할 수 없었으니 바람에 흔들리면서 눈앞에서 가득 채운 느낌으로 끌어주려는 것도 같다. 그 빈자리가 보이지 않게, 애써 흔들리고 있지만, 더 흔들리지 않기 위해 그렇게라도 흔들리면서 뿌리 내리듯 중심 내리려는 몸부림처럼. 마치 우리 사는 일이 그렇지 않으냐는 듯 동의를 구하며, 삶을 그렇게 붙잡고 있어야만 하는 시간이 계속 이어진다고. 매번 절박한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그렇게 붙잡고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듯이 삶을 표현한다. 때로는 바람이 불어 흔들고, 때로는 비가 내려 흠뻑 적시면서 괴롭혀도,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일에 절망해도, 그렇게 또 살아가야 하는 게 인생이라면 이런 흔들림 정도야 건너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 것처럼. 그러니 또 한번 살아내어 보자는 다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어쩌다가, 시인은 참죽나무의 생에 우리의 생을 덧입혀 보았을까. 흔들리는 가지에서 뿌리까지 어떻게 시선을 내렸을까. 아마도 사는 동안 지켜낸 자기의 시간을 돌아보는 순간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커다란 나뭇가지 아래의 그늘도, 힘들다면서 한숨을 내쉬는 일도, 크고 작게 휘청거리며 흔들리는 일도 모두,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 스며드는 시간이었다고.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게 우리 인생이라면, 흔들리고 잘라내고 다시 채우면서 뿌리를 더 굵게 만드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처럼,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것만 같다. 마치 '인생이란 건 좀 흔들려야 제맛'이라는 것처럼. (사실은 흔들리지 않고 사는 것을 바라는 게 우리의 진심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상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일까. 얇은 외투를 꺼낸 게 며칠 전인데 이제 다시 두툼한 겉옷을 꺼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인생이 그렇다고 말하는 시의 구절 때문일까. 누군가의 읊조림이나 일기장의 몇 문장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읽어가고 있는데, 괜한 마음에 순간 울컥해지고는 했다. 첫 페이지를 열면서 보이는 서늘함과 어두컴컴함 때문이었는지, 시의 구절을 그대로 옮겨놓은 한 장의 그림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계절에 떠올리는 사람 사는 모양의 긴 흐름이 너무 추워 보였다. 매번 흔들려야만 지탱할 수 있는 게 인생이라면 거부하고 싶기도 하건만, 야속하게도 그렇게 흔들리면서 버티는 게 우리 삶의 표본처럼, 당연한 받아들임처럼 보여서 속이 상했다. 그러지 말라고 거부한다고 해서 안 그렇게 되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 시인도 그렇게 말했겠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는' 몸부림처럼, 마치 그것 말고 더 이상의 최선은 없는 것처럼.

 

 

경의선 책거리 낭독회 행사로 먼저 소식을 접했던 시그림책이다. 직접 가보지 못해서 그 낭독회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접했지만, 가을밤과 너무 잘 어울리는 시간이었을 듯하다. 시인 함민복과 우리나라 1세대 그림책 작가 한성옥의 콜라보가 이 계절에 만나는 시를 더 아름답게 만든다. 작가정신 시그림책 시리즈의 시작으로 손색없는 작품이다. 시의 구절과 지금 이 계절과 시인과 그림이 너무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시를 어렵지 않게, 즐겁고 재밌게 만나는 또 하나의 길을 열어주는 듯하다. '시그림책 시리즈'의 좋은 시 한 편과 시를 품은 그림으로 만나게 될 또 다른 시를 기다린다.

 

 

 

흔들린다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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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 기억
안채윤 지음 / 자화상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언젠가부터 누구를 향한 마음에 본전을 생각하곤 했다. 내가 너를 이만큼 좋아하니 너도 나를 이만큼 좋아해야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계산.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유치한 계산인데, 아마도 상처받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보다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더 깊고 큰 법이기에, 그 상처의 주인공이 내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다짐 같은 것. 그렇게 이기적이고 나를 먼저 챙기는 마음을 품고 있는데도, 안채윤의 『서촌의 기억』을 읽는 동안에는 그런 본전 생각을 안 하게 된다.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마음, 그게 짝사랑인데도 한없이 절절한 마음을 혼자서 앓고만 있던 순간을 보고 있노라면, 일방적으로 보내는 마음이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겠다.

 

태인은 서촌의 어느 골목길 끝에 자리한 흉흉한 건물을 매입하고 공사를 시작한다. 그도 왜 그 집을 구매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갑자기 마음이 끌렸다고 할 수밖에 할 말이 없다. 친구와 함께 가구 공방을 차릴 장소로 선택한 곳이다. 오래된 그 집을 수리해서 사무실 겸 공방으로 만들기 위해 공사를 시작하는데,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한 편지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집의 외양간 밑에서 방공호 같은 작은 공간을 발견했고, 그 공간 안의 나무 상자에서 나온 오래된 물건들을 본다. 낡은 담요, 이백 통이 넘는 오래된 편지들. 중단되었던 공사는 계속되고, 태인은 그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1950년에 써진, 일 년 동안 계속된 한 남자의 애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였다. 차마 부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쓰는 걸 멈출 수도 없는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살아있는지 확인하러 친구가 직접 와야 할 만큼 외출도 안 하는 남자 태인은 그 편지로 인해 뭔가가 꿈틀거린다. 이백 통이 넘는 편지와 빛바랜 사진 두 장, 그나마 사진 한 장은 가장 궁금한 얼굴이 잘려나가기까지 해서 잘 알아볼 수가 없다. 궁금했다. 무엇인지 모를 호기심에 심장이 뒤기 시작했다. 그래서 직접 나섰다. 편지의 주인공, 혹은 그 편지와 관련한 인물을 알려줄 단서를 찾아서. 태인은 그렇게 한발 한발, 누가 등 떠밀지 않았는데 그가 직접 대문을 열고 나갔다.

 

1950년의 흔적을 발견하다.

 

1950년 1월 1일 일요일 저녁. 당신에게 쓰는 편지.

이 편지가 언제쯤 당신의 손에 쥐여지게 될는지 기약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 편지를 쓰는 연유는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이 하루가 다르게 강물 불어나듯 넘쳐나 내가 어찌할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봄, 오후 늦게 내리던 소낙비를 피해 나의 벗들과 들어간 그 간판 없는 전집에서 당신을 처음 본 것이 이 연모의 시작이었습니다. (28페이지)

 

편지는 1950년 1월 1일부터 시작한다. 서촌의 한 막걸리 집에서 본 여인에게 마음을 뺏긴 문학도 구자윤.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친구들에게 먼저 막걸리 마시러 가자고 말할 정도로, 그 술집의 여인을 보고 싶어 한다. 그녀는 그를 모르지만, 그는 그녀의 행동과 표정을 놓치지 않고 보면서 마음을 키워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책 한 권을 가슴에 품고 길을 걷는 그녀를 본다. 그때야 비로소 그는 그녀가 숨긴 열정을 읽는다. 그녀가 일하는 시간, 그녀가 일하는 공간이 현재의 그녀에게 어떤 시간을 살게 하는 건지 알게 된다. 그렇게 그녀에 관해 하나씩 알아갈수록 구자윤이 그녀를 향한 마음은 주체할 수가 없다. 그래서 편지를 쓴다. 그 마음 온전히 전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편지에 꾹꾹 눌러 담는다. 그러던 중에 발발한 전쟁으로 그는, 더는 그녀를 볼 수 없게 된다.

 

태인이 66년 전 구자윤의 편지를 한 통씩 읽어갈 때마다 드러나는 그 시간의 진실이 애절하다. 한 여자를 향한 마음을 담은, 차마 전해지지 못한 편지는 그 마음을 더 애타게 한다. 전쟁만 아니었다면 그는 그녀에게 직접 마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 짝사랑의 끓는 마음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자윤의 편지였다. 그녀를 살짝이라도 보고 싶어서 자꾸 그 술집을 찾고, 우연히 알게 된 그녀의 이름에 설레 잠 못 이루고, 그녀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내일을 기다리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가는 그의 마음은 하루하루 이어가는 편지의 양과 비례한다.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쩌면 끝내 전해지지 못할 것을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그때 적어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을 풀어놓아야만 했으니, 지금 같다면 온라인 어디에 말하거나 혼자만의 일기장에 적어두거나 했을지도 모른다. 시인을 꿈꾸던 남자였으니 그 마음의 표현이 오죽했으랴. 옛날식 말투가 손발이 오그라들게 하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면 그런 편지글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어떤 말투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편지에 담긴 마음이 어떤 건지 우리가 공감할 수 있다는 게 이 소설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렇게라도 꺼내놓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을 거라는 예측 가능한 진심이기도 하다. 그렇게 계속 적다 보면 언젠가는 전할 기회가 올지도 모르지, 그렇게 전하고 나서 마음을 나눌지도 모르지,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는... 하지만 운명은 참 얄궂다. 구자윤에게 그렇게 중요한 시기였는데, 감성 폭발하여 절절한 연애편지로 시를 쓰는 연습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 때에 전쟁이 일어나다니. 살아남기 위해 몸을 숨기며 갇혀(?) 지낸 그 순간이 그에게는 더할 수 없는 습작의 시간이 되기도 했지만, 그녀를 다시 만나지 못한 그 아픈 마음을 달랠 수는 없었을 듯하다. 아, 이 남자의 순정은 이렇게 끝나고 말 것인가.

 

이제 마지막 종이입니다. 나에게 남은 종이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수중에 돈도 없고 상점도 열지 않으니 아마도 이 편지가 당신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낙마저 없어지면 난 이제 어떻게 하루를 버텨내야 하나, 눈앞이 아찔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봐야겠지요. 그동안 참아오고 버텨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나마 날 여기까지 살 게 한 건 두말할 여지없이 당신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온 정성을 다해 사모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도 당신 덕분에 알게 되었으며 당신 덕분에 가슴 뛰었던 나의 젊은 날들을 사랑해 마지않습니다. (293~294페이지)

 

설정은 달달하다. 21세기에 발견된 1950년도의 편지라니. 내용을 몰라도 이런 분위기를 미리 알고 나니 설레기부터 한다.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현재의 사람이 과거의 흔적을 굳이 찾아 나서게 하는 마음에 저절로 이끌린다. 그 호기심이 불러낸 어떤 감정을 읽기도 전에 공감할 것만 같다. 태인이 구자윤의 편지를 단서로 찾아가는 과거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니까 말이다. 현재 태인의 발자취와 과거 구자윤의 편지가 교차하듯 보이는데, 그게 더 호기심을 부른다. 그는 그녀를 만났을까? 못 만났을까? 이십 대 초반의 그들은 어떤 세월을 보냈을까? 만약 그들이 현재까지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어떤 사건을 추적하듯 태인의 여정에 동행하다 보니, 어느새 소설은 끝이 났다. 구자윤은 매번 편지의 끝에 '당신을 사모하는 구 자 윤'이라 적었다. 언제 부쳐질지 모를 편지에 자기 이름 넣는 것을 빼먹지 않았다. 당신을 '사모한다'는 마음도 잊지 않고 적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로 통화 연결음이 들리는,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바로 전송되는 문자, 자판 몇 번 두드리며 발송하는 이메일. 점점 악필이 되어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익숙한 지금 만나는, 이런 아날로그적인 이야기가 생소하면서도 정겹다. 어린 시절에 적어보던, 누가 볼 새라 잠금장치를 걸어두었던 일기장, 몇 번인가 적었다가 찢어서 버렸던 마음들, 아닌 척하면서 몰래 훔쳐보던 누군가를, 생각만 해도 얼굴이 빨갛게 물들고야 마는 순간들을 기억에서 꺼내본다.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그때는 왜 그렇게 세상 전부인 것처럼 여기고는 했는지... 그런 마음에 더해진 시대 상황이 구자윤의 사랑을 더 진하게 만든다. 우리 기억 속 '언젠가'의 감정과 전쟁이 부른 안타까운 이별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감성, 추억을 부른다. 살면서 세상에 부대끼며 잊고 지냈던, 누구에게나 한번은 있었을 감정을 이렇게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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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0-25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영화 <파이란>이 떠올랐습니다. 참 좋았는데요 그 영화.

2017-10-26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없이 가깝고 먼 사이. 대개 이런 사이는 가족이란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 주변에서 지켜본바, 대개 엄마와 딸 사이가 그렇다. 모녀처럼, 친구처럼 마음을 나눌 수 있고 길이를 잴 수 없을 만큼 가까워질 수 있는 사이. 반면, 그 거리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질 수 있는 불안을 아는 사이.

 

처음 제부가 집에 인사를 왔을 때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언니(나)는 어머님이랑 정말 친한가 봐.' 단 몇 시간 만에 분위기 파악을 끝낸 제부 말처럼, 엄마와 나는 친구처럼 마치 세상에서 서로 의지할 단둘만 남은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고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사람에 대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시선으로 먼저 상대를 평가하는 마음을 가진 때였다. 믿을 사람 없다고, 일단은 의심하고 보자는 눈으로 살아갈 때였다. 사람을 그런 눈으로 바라볼 때였으니, 유일하게 내가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는 사람이 엄마라고 여겼다. 언제까지나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한, 언제까지나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기도 했고...

 

누가 누구를 소개하며 '착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걸, 나는 믿지 않는다. 착한 사람의 기준은 너무 주관적이어서 나에게 잘하면 착하고 좋은 사람이고, 나와 싸우거나 여러 가지로 어긋난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닌 거다. 철수는 영희에게 착한 사람일지 몰라도, 철수는 나에게 착한 사람이 아닐 수 있던 거다. 그런데도, 나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너무 착해서 바보처럼 누군가한테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거다. 내가 인연 맺고 사는 모든 상대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안다. 모두에게 그럴 수 없었을 테고, 의도하지 않았어도 나는 상대에게 착한 사람이 아닌 채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에게도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평생. 엄마에게 잘하지 못해서 나 자신을 죄인처럼 여길지라도, 나는 엄마에게 좋은 인간이 되고 싶은 거다. '그래도 내 딸이 나를 이해해주는구나,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하는 공감을 가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충분히 좋은 사람으로 남을 거로 생각했다. 이제껏 그래왔다고 믿었다. 엄마와 나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같이 견뎌온 동지애로 살아왔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우리'가, 더는 '우리'가 아닌 것만 같다. 폭발하듯 두 여자가 울며불며 터졌다. 발단은 다른 사람의 오지랖 때문이었지만, 언제고 터질 일이 이때다 하고 터져버린 거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을 거다. 대책 없는 인생에 아픈 기억에, 어떤 기억으로 내일을 살아야 행복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서로의 감정이 한껏 예민해지고 고조되었을 때. 엄마와 나는 그런 순간을 맞이했고, 더는 참을 수 없는 가슴 속 말들을 터트렸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모든 게 나의 잘못임을 안다. 이번 일로 누군가에게 사과도 해야 했다. 나에게 상처받은 그분은 괜찮다고, 잘 아는 사이이니 그 맘을 왜 모르겠느냐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지만, 나는 그분께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터트리며 어른으로 대하지 못한 것까지 사과해야 했다. 이상했다. 오히려 사과는 쉬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마음의 씻어지지 못한 감정이 그 사과를 온전하게 만들지는 못한 듯하다. 다음 주에 찾아뵙겠다고 말하면 약속을 잡았지만, 그것도 안다. 엄마와 내가 이번 일로 더는 동지애가 쌓아질 수 없는 것처럼, 그분과 나도 존중하고 감사하는 사이로 더는 묶일 수 없을 것 같다. 사람에게 미안해지는 건 한순간인데, 그 미안함은 참 오래도 갈 것 같다.

 

엄마와 나는, 서로가 등 돌리면 바로 외로워질 사이가 되어버린 거다. 다른 딸들은 결혼해서 나가 살아도, 한번 보러 오려면 몇 시간씩 걸리는 곳에 살아도 별말씀 없던 엄마가, 내 결혼에 관해 얘기할 때면 늘 이런 말을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와 볼 수 있는, 그런 지척에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그랬던 우리였는데...

 

엄마와 같은 밥상에 마주하지 않았다. 며칠을 그렇게 지냈다. 물론 밖에 나가서도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3일을 굶었다. 어디까지 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갈 데까지 가봐야 이 불편함이 끝이 나겠지. 그래도 자식이라고, 엄마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늦은 저녁까지 들어오지 않는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한 건 엄마였다. 늦었는데 왜 안 들어오느냐며, 저녁 차려놨으니 빨리 들어와서 먹으라고...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바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한참을 울다 보니 눈이 빨갛고 얼굴이 너무 부어서 정돈할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그렇게 들어오고서도 나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비어버린 위장이 배고픔의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더 흘러버린 오늘. 거의 일주일 만에 엄마와 같은 밥상에 마주했다. 엄마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없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했던 일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서로가 어색하게 말을 섞고 있지만, 우리는 안다. 예전과 같지 않음을. 동지에서 동거인으로 이름을 바꿔 불러도 이상할 게 없는 사이가 되었음을.

 

엄마와 딸.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지만, 한번 틀어지면 화해가 어려운 가장 먼 사이가 된다는 걸 증명하는 관계다. 적어도 내가 보고 겪은 엄마와 딸은 그렇다. 가장 밀접하고, 아끼고, 친해서 유지되던 관계가 한 번의 어긋남으로 친하기 전의 사이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방송이나 책에서 보던 여러 사례가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바로 여기,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일이었던 거다. 다만, 그동안 내가 겪지 않았고, 겪을 겨를이 없었던 것뿐이다. 나는 그럴 일 없을 거라고 근거 없이 자신했던 마음은 어디서 나온 걸까.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장 많이 가진 서로인,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사이였던 것을.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이다가 몇 권을 꺼내 들었다. 그중에서도 고리타분하다고 여기던 신달자의 책을 가장 먼저 펼쳤다. 작가의 말처럼, 엄마 역시 딸의 행복을 바라며 했던 많은 행동, 말이었을 거다. 그걸 몰라서가 아니라, 그걸 이해하기 위해 뭐라고 읽어야 했다. 평소에 열 마디를 하는 우리였다면, 지금은 한마디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게 지금의 우리다. 선뜻 어떤 말도 꺼내지 않는다. 실없는 말 한마디조차도. TV 뉴스를 보면서 같이 욕하던 일도, 영화 예고편을 보고 같이 보러 가자고 말하는 것도, 같이 목욕탕에 가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일도, 가끔 낮술을 같이 즐기는 것도. 그동안 우리가 같이하던 그 어떤 것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면, 이 순간의 아픔을 건너가지 못한다면, 나는 영영 엄마와 같이할 수 있는 게 없을 것만 같다. 엄마와, 엄마에게 말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 말하는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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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4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24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10-24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마 자식이 뭔지..

늦었는데 왜 안 들어오느냐며, 저녁 차려놨으니 빨리 들어와서 먹으라고..
말하는건 항상 엄마 ㅠㅠ

2017-10-26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은 출간 때부터 보관함에 담아둔 작품이다.

물론, 역시나, 담아두기만 했다. 읽지 못했다는 결론은 똑같다.

그 책을 구매하면 내가 당장 읽을 수 있을까?

똑같은 고민을 몇 년을 했으나....

답은, '아니오' 였다.

내가 나를 좀 아는데, 못 읽었을 거라는 걸...

늘 생각나는 책이고, 해마다 도서관에서 무슨 연중행사처럼 대출해오곤 하는데,

매번 읽지 못하고 반납한 횟수만 해도 여러 번이다.

그러니, 이 책의 중고 알림을 신청해놓고도 한번도 구매하지 못했지... ㅠㅠ

 

그런데, 좀만 기다려주지.

그래도 언젠가는, 언젠가는(응?) 내가 읽을지도 모르잖아. ㅠㅠ

 

전작도 못 읽었는데 새 책이 나오면 어떡하라고...

<볼티모어의 서> 역시 기다리는 독자가 많은가 보다.

여기 저기서 계속 이 책을 말하고 있어...

 

전작 못 읽었는데, 이 책 살까말까 또 귀가 팔랑거린다.

전작은 두 권이어서 빨리 못 읽은 거 아닐까?

이번에는 한권짜리니까 내 손에 들어오면 바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응? 아니라고? 안 읽을 거라고? 혹시 모르니까 일단 주문하라고? 응? )

아, 심각한 결정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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