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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 부의 탄생, 부의 현재, 부의 미래
하노 벡.우르반 바허.마르코 헤으만 지음, 강영옥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경제학 수업 같은 것을 이런 책으로 진행한다면 훨씬 집중하고 재밌게 수업에 참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딱딱하고 원론적인 내용 말고, 좀 더 쉽게 설명이 되고 차근차근 하나씩 귀에 들어오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누구라도 즐겁게 들을만한 강연 느낌이다. 물론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에 알아두면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기도 하다. 거의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내용을 한꺼번에 다 소화하지는 못하겠지만, 하나하나 새겨듣다 보면 경제를 보는 시야도 넓어질 것 같다. 인플레이션이 우리 생활에 작용하는 것들, 그로 인해 우리 삶이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 인플레이션을 조종하는 듯한 배우의 일들을 알아가는 시간으로 위기를 극복할 자세를 만들어갈 수 있다.
화폐량에 비해 재화량이 지나치게 부족하면 물가는 당연히 상승할 수밖에 없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이를 양팔저울로 도식화시키면 더 이해하기 쉽다. 저울의 한쪽 접시에는 화폐가, 다른 한쪽 접시에는 재화가 담겨 있다. 화폐가 담긴 접시에 화폐를 너무 많이 올려놓으면 접시가 아래로 기울면서, 재화가 담긴 접시가 위로 올라간다. 쉽게 말해 물가가 상승한다. (187페이지)
학교 다닐 때, 경제 과목에서나 제대로 들어봤을 단어, 인플레이션. 실생활에서는 물가의 상승을 이야기할 때나 튀어나왔을 단어이기도 하다. 아기 주먹만 한 호박 하나에 2천 원이나 하더라, 하는 이야기들이 인플레이션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인플레이션'에 보다 흥미롭고 세세하게 접근한다. 독일인 저자 세 명이 같이 쏟아낸 이야기가 그 인플레이션의 시작과 역사를 말한다. 더불어 돈, 권력, 부의 미래가 어디를 어떻게 향해 가는지 풀어내면서, 그에 대응할 우리의 자세까지 언급한다.
10세기 중국 교역 상인들이 거래 수단으로 종이를 사용하기 시작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동전을 주조할 금속이 부족했고 종이는 사용하기 편리했다. 이전에는 상인들과 교역을 할 때 물건을 담보로 맡겼지만, 이제 물건의 가치를 명시한 종이만 있으면 간단하게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이 종이가 발전하여 고유한 화폐가 되었다. (43페이지)
인플레이션은 화폐와 함께 시작되었다? 2000년 전쯤에 화폐가 사용되면서 인플레이션의 역사는 같이한다. 거의 모든 시대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발생되어 부의 흐름과 세계 경제를 좌우해왔다. 그 배경에는 국가가 있었고, 부의 권력자들이 있었다. 화폐 가치를 조작한다거나, 나라의 경제 위기를 인플레이션으로 눈가림하면서 자기들만의 이익을 취했다. 그로 인해 서민들은 더욱 가난으로 몰렸고, 이런 상황은 늘 반복되어 흘러왔다. 아는 사람만 알고 쥐고 흔들 수 있는 수단이었던 거다. 물론 거기에는 나라 안팎의 위기와 전쟁 같은 일들이 발생해서 더해진 것도 있었지만, 그 배경에는 항상 그들이 있었던 거다. 특히 지폐의 사용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녹아내리기도 하는 금속 화폐 대신 종이 화폐의 등장은, 부의 탄생과도 그 흐름을 같이 한다. '돈의 역사 = 인플레이션의 역사'라고 말하는 저자는, 그 모습은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인플레이션의 발생과 과정은 같다고 한다. 화폐가 붕괴하는 시작은 국가 채무나 통치자가 책임 회피를 하려 했고, 그 해결을 위한다고 하는 게 인플레이션의 발생이고, 실제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의 생활에 다가왔다. 매번 이런 흐름은 계속 반복될 것이고,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의회는 세금을 징수할 능력이 없었고, 각 주는 국가 예산을 지원할 재정도 없었을뿐더러 그럴 용의도 없었다. 해외에서 차관을 들여오는 데에도 제약이 있었다. 남은 방법은 전쟁 자금을 충당할 수 있을 만큼의 지폐를 발행하는 것뿐이었다. 미국은 지폐 덕분에 독립할 수 있었다.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 봐도 뻔한 것이다. 매년 약 100퍼센트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105페이지)
베네수엘라의 초인플레이션 사태를 예로 들면서 그 심각성을 고발하고, 헝가리와 독일의 경제를 바꿔놓은 화폐개혁 등으로 위기 정돈 상황을 보여준다. 인플레이션은 단순하지 않기도 하고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잘 알면 그 안에서 살아남을 방법도 보이기 마련이라고 길을 열어준다. 사태의 심각성과 우리 삶에 적나라하게 와 닿는 일들을 살펴보면서 인플레이션의 장단에 휘둘리지 않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언급하면서 위기를 직면하게 하고, 그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몸에 새겨야 한다는 경고를 서슴지 않는다. 그래야 부의 권력자나 통치자들이 만들어놓은 인플레이션으로 우리가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경제 위기의 거대한 흐름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플레이션에 대비하는 것 말고는 없다는 뼈아픈 경고다.
인플레이션의 시작부터 다양한 접근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들려주어야 할 내용이 많다는 듯 저자가 언급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중요하게 다가온다. 대부분이 몰랐던 사실이었으며, 우리가 알게 모르게 고통받아온 경제 문제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었다는 듯 새로운 접근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저자가 말하는 내용 모두를 옮길 수 없다는 게 아쉬우면서도 결국은 이 책은 지침서 삼아 금융 위기의 시대에 살아남는 법을 듣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국, 이 책의 핵심은 인플레이션의 역사와 증상들, 보이는 이면의 어두운 사실들, 결국 부를 거머쥔 이들이 이끌어오다시피 한 세계 경제의 흐름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데 있다.
첫째, 인플레이션은 소리 없이 일어난다. 인플레이션만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화폐의 가치와 부채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둘째, 인플레이션은 의외의 결의안이나 장관의 공식 선언도 없이 익명으로 진행되는 행사다. 책임자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정부는 쉽게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239페이지)
저자는 인플레이션은 모두에게,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일이라고, 빗겨간다는 건 불가능하고,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 그럼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대비해야 인플레이션을 통과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확실한 건 없다. 다만, 그 불확실 안에서 좀 더 안전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뿐이다. 무작정 덤비는 게 아니라 전략과 준비로 한 걸음 내디뎌야 한다는 것.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어떤 경우에도 대비할 수 있는 순발력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인플레이션이 가지는 구조적 위험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애초부터 피해갈 수 없으니, 대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이 책의 후반부에 언급되는 저자가 제시한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네 가지 시나리오'는 투자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대응 방법일 수 있다. 투자하고자 하는 곳의 모든 것을 알아낸다는 자세로 파악해야 한다. 투자하기 전의 포트폴리오 구성은 필수다.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등 다양한 투자 종목의 구성뿐만 아니라 배분까지 확실하게 연구한 결과물이 필요하다. (특히 포트폴리오 작성법이 더 세분화하여 설명되어 있다) 투자의 실수를 경험 삼아 실패의 재발을 방지한다. 군중심리에 휩쓸려 따라 하는 것, 우연을 맹신하는 것, 쓸데없는 집착들, 다시 가치 있기를 바라면서 처분을 미루는 것, 객관성이 없는 희망, 과도한 낙관주의는 피해야 할 것들이라는 경고를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화폐의 형태, 모습, 발행자가 누구인지는 상관없다. 화폐는 우리 인류가 발견한 가장 천재적인 아이디어다. 화폐는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52페이지)
다른 매체에서도 들었지만 이 책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앞으로의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한다. (뭐, 언제는 그렇게 투명하게 보인 경제 전망이었겠느냐마는...) 지나간 역사에서의 인플레이션에 대책 없이 당해온 것은 서민들뿐이다. 투자로 고수익을 얻겠다는 얄팍한 수를 생각하지 말고, 알지 못해서 당해온 희생을 더는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에 뭔가 크게 바뀔 효과를 얻는 게 아니라, 적어도 내 책임이 아닌 일로 마이너스의 경제를 안는 삶을 만나서는 안 될 것이기에 말이다. 피부로 닿지 않는다고 해서 인플레이션이 사라진 건 아니다. 더 현명하고 (그나마) 안정적인 돈 관리를 위해, 누군가 휘두르는 경제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한번은 만나 봐도 좋을 경제 지침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