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말이디… 제 나이 서른을 넘으면, 고쳐서 쓸 수가 없는 거이다. 고쳐디디 않아요.”

진솔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보태서 써야 한다. 내래, 저 사람을 보태서 쓴다… 이렇게 생각하라우. 저눔이 못 갖고 있는 부분을 내래 보태줘서리 쓴다… 이렇게 말이디.”

“…네.”

어쩐지 눈물이 핑 돌아 그녀는 눈을 깜빡거렸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노인은 진솔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보태서 쓴다는 게 가능할까? 그렇게 보태서 쓰기까지 어느 정도의 인내와 시간이 필요한 걸까? 좋아하는 소설 속 구절을 항상 마음에 담고 살아보려고 하는데, 사실 잘 안 된다. 애인이든 친구든 동료든, 어떤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가족 관계에서도 어려워서 관계를 끊기도 하는 일이 새삼스럽지 않다. 매번 불편하고 힘든 그 관계를 정리하고, 또 다른 인연을 시작하고 또 정리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시간에서 항상 줄다리기하는 기분이다. 처음부터 이 사람을 보태서 쓴다고 생각하면 만날 수나 있을까? 만나다 보니 도저히 안 되겠어서 헤어지기도 하겠지. 정말 이필관 옹의 말처럼 보태서라도 쓰고 싶은 애정이 남아 있을 때 계속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거겠지. 다만,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머릿속의 수많은 갈등이 끝나지 않는다는 게 힘들다는 거다. 그러면 관계의 정리 여부를 선택을 하는 시기는 또 언제가 되어야만 한다는 말인가.

 

시간이 필요한 일이 있다. 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고 느끼게 되지만, 그 순간에는 잘 알지 못하고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미처 다 배우지 못한 관계의 한 부분이 그러했다. 어떤 일에 익숙해지고 누군가와 친해지는 일. 혹은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어도 체하지 않게, 불편하지 않게 소화할 수 있는 관계가 되는 일들. 목이 늘어진 티셔츠에 무릎 나온 추리닝을 입고 마주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의 편안함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가능할까 계속 생각했다. 같은 집에 태어나서 같이 자라고 사는 가족이어야만 가능한 일일까? 아니면, 그저 오직 한 가지, 시간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도 가능한 관계라고 생각해도 좋을까? 상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일을 앞에 두고 매번 이런 게 어려웠다. 편해지기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측정해야 하는지를.

 

누군가를 알아가고, 그렇게 알아가는 과정에서 민낯을 드러내고, 어떤 힘듦과 괴로움으로 속이 상하는지 말하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 정석이다. 누구나 다 알듯이, 겪어보니 그렇더라. 이런 방식은 한 번도 어긋나지 않았고, 그대로 진행되었을 때에만 결과로 보여주었다. ‘이 정도면 우리 친하지 않아?’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으로 알게 된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너와 친해지기 위해 내가 이런 노력을 계속해왔구나, 하는 확인과 안도 같은 감정까지도. 그래서인지, 나이를 계속 먹어갈수록 누군가와 친해지는 게 힘들었다. 처세술처럼, 어느 순간을 통과하기 위해 가면 하나를 쓰고 사는 날이 많았다. 상대방(들)과 굳이 친해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다시 안 볼 사이가 될지도 모르고, 계속 보게 된다고 해도 또 그 순간을 넘어갈 대응을 보이면 되는 거였다. 어른들을 만나도, 또래를 만나도, 언젠가부터 그랬다. 적당한 예의로 상대방을 무시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며 상대방과 연관된 어떤 일을 하기만 하면 되곤 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지난 주말에 집안일 때문에 어떤 분을 만나게 됐다. 잠깐 인사만 하고 나오면 충분할 자리였는데 어쩌다 보니 그분과 차를 한 잔 마시게 됐고, 별거 아닌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할 자리가 아니었는데, 인사하고 뒤돌아서서 나오면 되는 자리였는데, 어쩌다가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한 속내를 털어놓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불편한 자리였고, 불편한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혹시 보게 된다면 불편할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혹시 눈물이 나오더라도 꾹 참아야 할 자리에서 나는 추하게 눈물을 보이고 말았는데, 그분은 나에게 울지 말라는 말도 안 했다. 그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다가, 괜히 울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나보다 인생 더 살아온 사람이니 분명 더 많이 쌓아온 게 있을 터였다. 그분 역시 세상 쉽게 살아오지는 않았겠지. 어떤 관계로 정의할 수 없는 사이였는데, 상담자와 내담자로 만난 기분이었다. 그게 끝이었으면 좋았을까. 정의하기 모호한 관계가 되었고, 불편한 것을 아닌 척하며 한 번 더 만날 일이 생겼다. 싸우자는 자세로 나갔는데, 오히려 미안한 일을 더 보태고 와버렸다. 원하지도 않은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들은 여전했고, 그들은 자기들의 오지랖이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할 것처럼 기뻐했다. 그게 다른 사람들을 오해하고 싸우고 화나게 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결국은 그들의 오지랖을 내가 정리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걱정에 머리를 싸매고 두통을 이고 사는 날들이다. 남들이 펼쳐놓은 이 문제를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게 화가 나고,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만 쌓이고, 가능하면 누구라도 상처를 덜 받게(아주 상처를 받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하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요즘의 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인생 뭐가 이렇게 어렵냐 싶은 투정을 부리고 싶은데, 또 누구에게 투정 부리면서 민폐를 끼치고 싶지도 않은 이 모순적인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남들이 펴놓은 장기판 위에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장기 말이 된 것만 같아서 너무 아프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스스로 다독이고 위로하며 건너갈 수 있을까 하던 중에 보게 된 이웃님의 리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한 문장 때문에, 완전하게는 아니어도 마음을 추스르게 된다.

 

 

 

 

 

 

 

 

 

우리는 딱 장편소설은 아니야. 그가 찾고 있는 비유에 거의 다가간 것 같다. 우리는 딱 단편소설은 아니야, 그러고 보니 그의 인생이 그 말과 가장 가까운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단편집이야. (섬에 있는 서점, 301페이지)

 

우리는 단편집이야. 우리는 단편집이야.. 우리는 단편집이야... 그러네. 살아오는 순간순간들의 단편이 모여서 단편집으로 만들어지는 게 우리 인생이었네. 기다란 장편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말이 안 될 건 없겠지만, 우리가 단편집이라는 저 문장을 보자마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위로를 받은 것만 같았다. 내가 지금 어렵다고 징징거리고, 왜 남이 만들어놓은 힘든 일의 정리를 책임져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화를 내는 일도, 짧은 단편처럼 금방 읽고 덮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해졌다. 이 순간을 넘어가는 일도 인생의 한 부분이겠거니, 그 마무리가 더 고통스러운 일로 변할지 몰라도 단편 하나의 마지막 페이지이겠거니, 하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만 같은...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워질 일들이 인생이겠구나 싶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과 이렇게라도 인생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거라면, 받아들여야지 별수 있나. 가끔은 슬프고, 아프고, 힘들겠지만, 이 순간이 단편소설이 되어 넘어갈 거로 생각하면 참지 못할 게 뭐가 있나 싶은, 보살 같은 마음으로 지금은 건너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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