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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짝사랑의 타이밍
YUN짱 / 조은세상(북두) / 2017년 11월
평점 :
이상하다 정말. 유치하기 그지없는 설정인데, 그래서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인데, 중반 이후로 넘어갈수록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대개, 그런 흐름으로 가지 않나? 한쪽의 일방적인 짝사랑이 '앓이'를 하다가 그만두려고 하는데 상대방이 알게 되어 자연스럽게 연애가 시작된다거나, 혹은 그 짝사랑이 알고 보니 서로 말 못 하는 쌍방통행이었다던가... 이제껏 만나왔던, 짝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 대부분이 그러했다. 그러니 이 소설도 당연하게, 짝사랑을 감춰온 여자의 마음이 그 상대에게 가 닿아서, 처음의 등장인물 두 명이 그대로 주인공이 되어 해피엔딩을 이룰 거로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나는 너무 익숙한 선입견으로 이 소설을 대했던가 보다. 내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이 소설이 희한하게도, 흥미롭더라는. ^^
차희연은 최민규를 짝사랑했다. 오랫동안 친구였고, 부모님끼리도 친구인 관계. 아마 태어나기 전부터 친구로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서로 볼 거 못 볼 거 다 알고 자라는 사이였는데, 어느 순간 희연의 눈에 민규는 남자로 보였다. 한 번도 여자를 안 만난 적이 없는 민규의 화려한 연애사가 어느 순간부터 거슬리기 시작했다. 민규에게 들어오는 선물들로 배를 채우던 희연이었는데, 이제 그런 것들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말 못 할 질투와 표현하지 못한 마음으로 점점 민규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런데 민규 이놈은 그런 희연의 마음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희연이 끝까지 친구로 남아 있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희연의 짝사랑을 모른 척한다. 심지어 희연의 친구와 사귀기까지 하면서 희연의 반응을 살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가장 알 수 없던 게 민규의 마음이었다. 어떤 마음이면 희연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나 싶어서 주리라도 틀고 싶었으나, 또 민규는 민규 나름의 연애관이 있을 터이니 내가 훈수를 둘 수는 없어서 참았다. (뭐, 안 참으면 어쩔 건데?)
그러다가 희연은 우연히 알게 된 박승현을 애인 대행으로 꾸준히 이용한다. 승현 역시 희연과 비슷한 이유로 희연을 애인 대행으로 맞이한다. 이루어지지 못하는 마음을 아는, 누군가를 향한 짝사랑 동지로 뭉친 희연과 승현은 그들 나름의 원칙을 지켜가면서 서로가 필요한 순간에 도움이 되는 연기를 하는 거였다.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흐름이 뻔하게 흘러갈 거로 여기게 된 이유다. 가짜 애인을 하는 사람의 등장으로 원래의 짝사랑 상대가 마음이 흔들리고, 결국은 처음 마음 준 사람에게로 가는 방식. 그런데 이 소설 의외다. 민규라는 인물은 사이코에 가깝게 집착남이 되어버렸고, 승현은 가짜 애인이 아니라 어느 순간 희연에게 스며드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다. 이 순간, 희연과 승현은 쌍방이 되고, 민규는 못된 후회남이 된 것. 게다가 민규의 한심함과 구질구질함은 동정은커녕 잡아다가 감옥에라도 넣고 싶을 정도의 한심한 짓이었으니... 도대체 희연은 민규의 무엇을 보고 좋아했을까 혀를 차고 싶을 정도였다. 하긴, 또 사람을 알아도 끝이 없다는 것을 여기서 또 확인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지.
흔히 말하는 그 타이밍의 중요성과 운명을 갈림을 이 소설에서도 어김없이 확인할 수 있다. 혼자만의 짝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 혹은 끝나는 순간.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먹은 순간, 혹은 거절하는 순간. 이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고 상대의 마음도 얻어야겠다고 자각하면서 직진하는 순간까지. 어쩌면 우리 인생에 등장하는 그 많은 타이밍은 꼭 사랑에서만 작용하는 법칙은 아니다. 늘 그랬다. 어떤 일을 선택하거나, 누구를 만나거나 하는 일들에는 그 타이밍이 중요한 순간이 많았다. 살면서 늘 겪는, 언제나 찾아오는 선택의 순간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고, 얻는 게 있으면 버려야 할 것도 있기 마련인 게 인생이라서. 그래서 매번 그 타이밍을 잘 잡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게 사람 마음이라면 더 중요한 것 같다.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닐 테니, 움직이는 게 마음이라서 그 거리가 더 생기기 전에 잡아야 하고, 멀어지는 순간 접어야 하니까. 그런 의미로 보면 승현은 자기 마음 확인한 순간 고백하고 다가가는 것으로 그 타이밍을 잡았다. 민규는 이기적인 계산으로 누군가의 진심을 받아들일 타이밍을 놓쳤다. 그리고 희연은 누군가를 마음에 담고, 내보내고, 다시 마음에 들여놓는 일의 타이밍을 잘 맞췄다. 그녀 인생에 이보다 더한 시험이 있었을까 싶은 순간을 지나고 있다. 희연의 말처럼, 엇나간 타이밍은 힘이 없다. 새롭게 시작하는 사랑 앞에서 지나간 타이밍은 의미가 없다.
유치하게만 흘러갈 것 같던 소설이, 인생의 큰 지침을 알려주고 끝을 맺었다. 타이밍은 짝사랑에서뿐만 아니라, 삶 전체에서 작용하는 법칙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