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죽은 밤에
아마네 료 지음, 고은하 옮김 / 모로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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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라고, 노력하면 다 된다고. 삶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뤄내려고 애쓰다 보면 간절히 바라던 어느 지점에 다다라 있을 거라고, 거기가 바로 우리 행복의 완성 지점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다. 그런 줄 알았다. 한때는 긍정의 힘을 주는 많은 말을 믿고 따랐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건, 세상의 당연한 이치니까 말이다. 특히 가진 게 없고 가난이 발목 잡는 사람에게는 딱히 노력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그러니 열심히 달리는 수밖에. 그런 믿음에도 어느 순간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말 그러면 될까? 그렇게 계속 노력하다 보면 다 이뤄질까?


열네 살 소녀 도노 네가는 친구인 가스가이 노조미를 죽인 혐의로 체포된다. 노조미가 목을 매고 있었는데, 친구를 살리려고 의자를 치우려고 했다고 한다.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네가는 거듭 자기가 노조미를 죽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미를 죽인 이유만큼은 침묵했다. 누군가를 죽였다면 살인의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데, 그 부분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네가의 말이 진실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형사 마카베와 나카타는 이 사건 해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로, 네가가 왜 친구를 죽였는지 이유를 찾으러 다닌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죽은 소녀와 범인으로 몰린 소녀의 또 다른 관계를 알게 되면서 혼란에 빠진다. 거기에 이 소녀들을 둘러싼 환경, 사회적인 책임까지 물어야 할 지경에 다다른다. 정말 네가는 노조미를 죽였을까? 형사들은 네가의 살인 동기를 찾았을까?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궁금증만 늘어갔다. 그러다가, 소설은 우리가 관심 두지 못한 사회적 보호의 사각지대와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일지 묻고 있었다.


이 소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시간이 떠올랐다. 자라면서 부유했던 적은 없다. 오히려 가난했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리는 환경이었다. 다행히 부모의 책임을 다하려는 엄마의 보호 아래 별 탈 없이 성장해 왔다. 당연한 듯 학교에 다니고 밥벌이도 하면서, 남들(?)처럼 그냥 비슷하게 살아왔다. 지금도 여유롭지는 않다. 갚아야 할 대출금도 있다. 생각해 보니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닌데, 뭐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는 모양이 크게 변한 것도 없는 듯하다. 주변의 많은 사람도 다 비슷하게 살아간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생각하던 평범한 인생이나 남들처럼 살아간다고 하는 게, 때로는 잘못된 표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요즘에 더 자주 느끼고 있다.


왜 나는 저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없는 거지?

아르바이트가 끝난 뒤 불이 꺼진 이온과 엘미로드, 이토요카도 같은 쇼핑몰들을 올려다보며 늘 생각했다. 아빠가 양육비를 줬다면. 엄마가 남자를 무서워하지 않았다면.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우리를 돌봐줬다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만약을 생각해 봤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139페이지)


살인의 이유를 찾으려던 접근은,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 드러나면서 독자의 마음을 후벼 판다. 꿈을 꾸고,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만들려고 그렇게나 애쓰던 소녀는 잔인한 현실 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그 밤, 희망은 죽었고, 소녀도 죽었다.


정말 아주 굳게 결심하고 또 믿었는데.

오늘 하루 만에 모든 게 다 끝나버렸어.

희망은 어디에도 없었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 게 다 환상이었던 거야. (320페이지)


누군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소녀들의 현실이 소설 속에서 과장하여 그려낸 배경이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이런 가난을 본 적이 없거나, 국가의 생활보호를 받으면서 사는 걸 보고 무책임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혹시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조심스럽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해도 해도 안 되는 게 있더라고, 사회적 낙인으로 더 심한 자존감 하락을 맛보기도 한다고, 혼자서 애쓴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더라고 말이다. 정말 괜찮은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하게 했던 린코 언니가 변한 것도, 빈곤을 경험한 하세베가 부모의 마음만 앞세우게 된 것도, 같이 미래를 꿈꾸던 노조미가 그런 선택을 한 것도, 자녀를 잘 키워야 하는 책임을 외면한 부모가 무기력만 앞세우는 것도.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가지 탓만 할 수는 없던 게, 현실이었다.


상대방을 알고 싶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역지사지라고 생각한다. 친구를 죽였다고 하면서도 이유를 말하지 않는 소녀의 마음에 접근하기 위한 나카타의 상상 역시, 사람 마음에 닿아보려고 노력하는 역지사지의 이해 방법이었다. 형사 마카베의 가난한 성장 배경은 소녀들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한층 더 가까이 가게 했고, 형사 나카타가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반복하는 상상의 기법은 이 소녀들의 문제에 사회와 주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나 역시 비슷한 시간을 지나왔고, 국가의 생활보호를 받는 가족도 있다. 그 안에 네가노조미와 같은 시간을 겪는 조카도 있다. 몇 달 전에 사회복지 관련 실습했던, 지역아동센터의 몇몇 아이들이 저절로 떠오르면서 더 현실에 와닿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건 소설 속 배경에서 머무는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우리가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인 거다.


사건이 일어나고, 사건 해결을 위한 형사들의 고군분투, 탐문 수사에서 드러나는 진실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추리 소설을 읽는 재미도 놓지 않는다. 단서가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사건의 숨겨졌던 장면을 추리하고 범인을 색출하기 위한 독자의 시선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흥미롭다. 그러면서 우리가 함께 봐야 할 문제, 독자에게 함께 고민해 보자고 던지는 메시지 또한 놓지 않는다. ‘나카타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고 하는데, 곧 만나고 싶은 이 시리즈의 다른 작품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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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는, 예뻐지기만 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뛰어난 패션센스는 물론이고 성격도 미치게 매력적이다. 그녀의 단 한 가지 불만은 통통한 몸매. 이 몸 때문에 그녀의 자신감은 떨어지고, 매력과 재능을 꾹꾹 누른 채로 어느 허름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본사의 온라인 담당, 남들에게 얼굴 안 드러내고 일하는 자리에 배치된 그녀다. 시켜만 주면 누구 못지않게, 남들 앞에서 그녀의 전문성을 뽐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매일 간절히 소원을 빌지만,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는 이는 없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매일 스피닝에 열중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예뻐질 수 있다는 주문을 외우면서 자전거에 올라타고 열심히 달리려고 했는데, 미친 듯이 페달을 밟다가 자전거는 부서지고 그녀의 몸뚱이는 헬스클럽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바닥에 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히고, 아픔을 느낄 사이도 없이 벌떡 일어나서 탈의실로 갔다. 아픈 것보다 창피한 게 먼저라는 건 르네도 잘 아는가 보다. 그런데 이상하다. 탈의실 거울 속의 자신이, ~~~~무 예뻐 보이는 거다. ‘세상에 이렇게 예쁘고 매력적인 여자가 있다니. 내가 아름다운 여자로 변했다니?! 드디어 소원이 이루어진 건가?’


이때부터 르네의 매력 폭발로 영화가 정말 재미있어진다. 우연히 쿠팡플레이에서 보게 되었는데, 지금 찾아보니 개봉 당시에도 관객의 후기가 좋았나 보다. 날씬하고 예쁘지 않다고 <미녀는 괴로워>의 그림자 가수처럼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가수가 노래를 잘하면 되고, 화장품 업계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능력을 뽐내는 일에 르네의 외모가 걸림돌이 되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그런데 세상이 그랬다. 그녀의 능력을 보는 게 아니라, 그녀의 외모가 첫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움이 아니어서 외면당한다. 덩달아 그녀도 주눅이 든다. 그러니 그녀는 자신의 재능에 당당해지는 게 아니라, 외모가 달라지기를 바라는 소원을 그렇게 빌어댔던 거지. 그러다 스피닝 자전거를 망가뜨릴 정도였던 그녀의 몸무게가, 그녀의 인생에 전환점을 만든다. 그녀의 눈에만 달라 보이는 외모를 선사한 거다. 같은 몸, 같은 거울을 봤는데, 이거 뭐야. ‘, 너무 예쁘잖아~!!!!!!’


자기한테 반했다고 생각한 남자를 데리고 비키니 선발대회 구경을 가자고 하는 르네. 남자가 묻는다. 혹시 비키니 선발대회에 참가하려고 그러는 거냐고. 당연한 거 아닌가요? 키 크고 날씬한 여자들이 비키니를 입고 출전할 때 르네는 입은 그대로 핫팬츠를 입고 참가하는데, 관객을 침묵하게 만들더니 바로 축제의 장으로 바꿔놓는다. 신나게 춤을 추고, 자기 몸이 가장 예쁘다는 자신감으로 그 무대를 즐긴다. 관객 호응은 최고였다. 나는 반전이 일어나서 르네가 우승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러고 나서 르네가 화장실에 간 사이, 대회 관계자가 르네의 애인에게 와서 말한다. 진짜 우승한 사람은 르네라고. 르네의 매력을 발견한 거다.

캄캄한 밤에 차 펑크 나면, 누구랑 있고 싶어요? 저 아가씨겠죠.”

애인이 기다리는 자리로 와서 르네는 말한다.

사실 내가 우승이에요. 그리고 내 미모는 내가 알아요.”

, 이 자신감 어쩔 거야. 너무 좋아 죽겠어~


다른 사람들은 르네가 미친 줄 알았다. 자신의 매력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할 정도의 당당함을 가진 여자가 눈앞에 있는데, 재킷의 단추는 터져 나와 떨어질 것만 같고, 허리 위아래로 튀어나온 살들은 감출 생각도 없이 몸에 딱 붙은 옷을 입고 당당하게 본사로 들어가는 그녀의 발걸음이라니. 본사의 안내데스크 직원 모집에 당당하게 지원하고 합격까지 한다. 그 회사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얼굴이 된 거다. 르네는 이 일을 너무 즐기고 좋아하는데, 오히려 이 회사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긴다. 입구에서 잠깐 주춤하면서, ‘여기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 왜 뷰티 회사(다른 회사도 그렇겠지만)의 안내데스크 직원은 뚱뚱하면 안 되는 거지? 일반적으로 예쁘다고 하는 얼굴이 아니면 안 되는 건가? 그 자리에 진짜 필요한 자격 조건 1순위가 외모여야만 하는 건 아닌데 말이다.


암튼, 르네는 이 회사의 신제품 출시가 실패로 돌아가기 전에 그녀의 생생한 의견으로 위기를 극복하게 하는데, 이 모습은 우리가 진짜 봐야 할 매력이 무엇인지 증명하는 시간으로 만든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그 자리에 필요한 인재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건 외모가 아니라는 것, 세상의 눈이 아니라 자기 눈으로 자기의 진짜 매력을 찾아가는 것을 보여준다.


르네 덕분에 실컷 웃고 나서 도서관에 갔다가, 너무 더워서 좀 쉬었다 가려고 들어간 어린이 자료실에서 읽게 된 책이다. 무슨 어린이책이 이렇게 두꺼운 걸까 싶어서 궁금했는데, 내용은 글자가 많이 없으니 부담 없이 읽어도 된다. 작가 재럿 러너의 실제 경험담으로 그려진 뚱뚱한 기분을 읽는데, 이 책 속에 또 다른 르네가 있었다. 뚱뚱한 외모를 가진, 예쁘거나 잘생기지 않은 주인공들의 애환을 들으면서 진짜 우리가 보는 외모는 어떤 기준이어야 하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주인공 윌은 뚱뚱하다. 그 외모에 어떤 불만도 없었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맛있게 먹으면 되는 일상에, 평소 같이 다니는 친구들도 윌의 외모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윌은 닉에게 너 뚱뚱해!”라는 말을 듣는다. 많은 학생이 있던 복도에서, 큰 소리로 자기를 뚱뚱하다고 말하면서 닉은 사라졌다. 순간 정적이 흐르고, 윌은 잠깐 숨을 쉬고 싶어서 화장실로 숨어든다.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까. 수치심? 자기 몸이 이렇게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던가? 어디선가 윌의 몸을 두고 괴물이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괴물이야, 괴물이야.


와아, 살아가면서 전혀 인식하지 않았던 것이, 이제는 윌의 모든 것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굶어야지, 하지만 배가 너무 고픈데? 안 돼, , 이러면 안 돼, 넌 괴물이야, 먹으면 안 돼. 뚱뚱한 자기 몸을 미워하기 시작한 윌. 자기 옆의 친구들을 봐도 말랐고, 길쭉하고, 입은 티셔츠가 헐렁하고. 갑자기 자기 몸을 보니 여기저기 튀어나온 살들, 뚱뚱한 몸이 전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굶는다. 무조건 굶는다. 도시락을 싸갔는데, 절반도 먹지 않았다. 마치 원래 이렇게 먹었던 것처럼 말이다. 집에서는 엄마가 드시는 현미밥을 먹었다. 피자도 입에 대지 않았다. 엄마가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날씬한 엄마가 먹는 밥을 자기도 먹다 보면 날씬해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윌이다. 먹는 횟수를 줄이고, 양을 줄이고, 그러다 점점 의식을 잃는다.


전혀 남의 몸을 의식하지 않고 살던 윌이, 자기가 뚱뚱하다는 말을 들은 후로 다른 사람의 몸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에 덩달아 우울해졌다. 내 몸이 그렇다. 늘 그렇듯, 지금 인생 최대의 몸무게를 찍고 있다. 후회하느냐고? , 후회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맛있는 음식 찾아서 먹을 때는 너무 행복한데, 이걸 마냥 후회만 한다고 하기에는 행복하기도 하고 뭐 그런 건데, , 이 마음이 정리가 안 되네. 암튼 나는 지금 20kg 정도 감량해야 예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고,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체중 감량을 하기는 해야 한다. 하지만 세상에 맛있는 건 너무 많고, 먹은 만큼 운동해야 하는데 운동은 하기 싫으니 체중은 계속 불어날 것이고. 내가 맛있게 먹고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여러 가지로 체중 감량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긴 한다. 하지만 내가 잠깐 잊고 있던 게 있다. 윌처럼 남의 마른 몸을 의식하면서 비교했던 게 아니라, 나 스스로 자존감이 떨어지는 이유가 외모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뭘 입어도 예뻐 보이지 않는다. 피팅 모델이 입은 게 너무 예뻐서 샀더니 큰 사이즈는 그 예쁜 모습이 없다. , 이래서 말라야 하는구나. 근데 내가 정말 예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연예인은 개그맨 이수지인데, 그녀가 너무 예뻐서 일부러 검색해서 기사를 찾아보고 싶을 정도인데, 그녀가 또 마른 건 아니잖아? 근데 왜 이렇게 예쁜 거지? 윌도 뚱뚱하다. 하지만 자기 외모가 괴물 같다고 여기게 된 후로 홀로 고립된다. 그동안 같이 잘 지내던 친구들도 자기가 뚱뚱하니까 싫어할 거로 생각하면서 멀리한다. 뚱뚱한 몸을 가리려고 더 크고 헐렁한 옷을 입는다. 윌이 좋아하는 줄스를 쳐다보지도 못한다. 그렇게 윌은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점심시간에도 식당을 벗어나 혼자만의 장소를 찾는다. 그때 전학생 마커스가 보드를 타고 나타나서 윌에게 말을 건다. 친구랑 얘기해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이상하게 마커스를 보고서는 뭔가가 윌의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너무 편해 보였고, 보드를 타는 모습이 너무 당당해 보였다. , 이거였나? 편안함과 당당함? 이렇게 자존감이 채워지는 건가?


단순히 뚱뚱하다는 한마디로 시작한 자기혐오는 점점 커졌다. 윌의 뚱뚱한 몸뿐만이 아니라, 자기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모든 것에서 자존감이 하락하고 시도조차 하기 전에 좌절을 먼저 느끼곤 한다. 해보고 실패하는 게 아니라, 안 될 거라는 지레짐작으로 시작하지도 않는 일이 빈번해진다. 그저 매일 아침 일어나서 오늘의 나로 살아가는 거라고, 최대한 내가 되려고 노력하는 게 좋다고, 그러면 더 많이 내가 된다는 거라는 마커스의 말은, 아직 성장하는 어린이인 윌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었다. 매번 남들과 비교하면서 나는 왜 이럴까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한번 시험에 떨어졌으니까 이젠 안 될 거라고 좌절할 때마다, 이 뚱뚱한 몸을 남들이 싫어할 거라고 생각할 때마다, 내가 부족해 보여서 자꾸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다시 듣고 싶은 말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오늘의 나이겠지만, 내일의 나는 다른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은가. 다른모습은 점점 더 나아지는 내가 될 테고.


내가 뚱뚱해진 내 몸에 우울해지는 것처럼, 조카아이도 공부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절망하곤 한다. 퇴직 후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옆지기도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엄마는 아픈 몸에 점점 더 자신감을 잃어가고, 나 역시 지금도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누구도 항상 그 상태에서 만족하지 못하기도 하고, 오늘의 안정감을 불안해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르네가 다시 거울 앞에서 처음 자기의 뚱뚱한 몸을 보고 절망의 소리를 질렀던 것처럼, 자기 눈에만 보이는 변화를 애인이 알아채고 멀리할까 봐 약속도 취소해 버리고 숨어버린 것처럼, 그냥 자기 눈에만 보이는 부정의 시선을 떠올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것. 그게 나의 장점, 나의 매력을 더 확실하게 알아가는 일이다. , 진짜 르네의 그 말이 귓가에서 뱅뱅 돈다, 돌아. “내 미모는 내가 알아요.” 이거 얼마나 멋지고 자신감 있는 말인 거냐고.


내가 해야 하는 건, 내가 나를 보면서 생각하고 느끼는 걸 계속 바꿔가는 것뿐이다.” (뚱뚱한 기분, 359페이지)



영화 <아이 필 프리티>는 정말 강추한다. 르네의 매력에 허우적거리면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할 것임.

<뚱뚱한 기분>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내 마음이 하락하려고 할 때 펼쳐보면 좋겠지만, 특히 아이들이 자신감과 자존감 회복이 필요하다고 여길 때 만나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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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8-16 1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 필 프리티>는 조만간 봐야겠네요 ㅎㅎ
리뷰 읽으면서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빅 브러더>가 생각났습니다.
그것도 비만을 다루는 작품인데, 되게 좋았었거든요.

저 역시 제 상태를 잘 알기 때문에(?) 적당히 망가지는 연출을 종종 써먹습니다 ㅋㅋㅋ
누구나 외모 컴플렉스가 있겠지만 역으로 그 점을 활용하기 나름이라고도 생각 해요.
나이들수록 좋은 게 철판 깔기가 쉬워져서, 정신승리 하기가 수월해지더라고요 ㅋㅋㅋ

구단씨 2024-08-18 12:01   좋아요 3 | URL
오, 빅 브러더. 이 작품도 목록에 올려두고 찾아봅니다. 소개 감사해요. ^^
아이 필 프리티는 웃음이 많이 나게 하는 영화더라고요.
기분 전환도 되었고, 주인공의 활약에 이미 뻔히(?) 아는 메시지도 잘 전달되고요.

물감님 말씀처럼 나이 들면서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마인드가 좀 생기기도 했어요.
멘탈이 좀 단단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

hnine 2024-08-16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I feel pretty 영화 저도 재미있게 봤어요. 이혜성 kbs 전 아나운서가 추천하는걸 듣고 보게 되었지요. 예쁘고, 뚱뚱하고, 이런 것들의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인 판단일때 훨씬 영향력이 큰 것 같아요.

구단씨 2024-08-18 12:04   좋아요 2 | URL
아, 그랬구나. 저는 이번에 우연히 보고 완전 빠져서 봤어요.
우울해지려고 했던 찰나에 이 영화가 진짜 약이 되었어요.
제 친구 중에 르네 같은 친구가 있거든요. 외모가 좀 탄탄(?)한데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편하게 해주고, 대화가 통하고, 주어진 일에 열심히 하는 모습 자체가 매력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그 친구 보면서 좋은 영향 많이 받고 있어요. 우리가 느끼는 매력은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그 어떤 것이라는 걸요.
 



이 더위에는 시보다 푹 빠져 읽을 추리소설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 그래서 추리소설 몇 권 옆에 쌓아두고 있었는데, 안 읽힌다. 시간이 없어서 못 읽었다는 핑계를 댈 수 없게 시간이 생겼는데, 너무 더워서 숨쉬기 힘들어서 못 읽었다고 또 다른 핑계를 대고 있다. 거기에, 마음이 너무 바쁘다.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해서 답답하고, 생각이 많아지니 또 머리가 아프다. 처리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적어두고, 정리된 것들의 목록을 지워나가고 있다. 그래도 아직 한참의 목록이 남아 있다. 시간을 쪼개고 동선을 정하며 순서를 정하는 방식으로, 노트 한 페이지가 가득 찼다. 이번 주가 아니면 또 몇 달이 미뤄질 것 같아서 더위에 졸리기까지 하는 몸을 움직이려니 힘이 든다. 그러니 추리소설이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시를 읽을 것도 아니었는데, 오늘은 정말 내 마음 차분히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김경민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다. 시를 몰라도 저자가 들려주는 시 이야기는 종종 들어왔기에, 이번 책을 펼쳐 들면서 단 한 가지를 생각했다. 과하고 넘치게 내게 무언가 주려는 게 아니라, 그저 이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생각이 안 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하나. 저자가 전하는 이별과 상실의 시간에 시가 어떤 상처 치유제가 되었는지 듣고 있자면, 시의 구절에서 장면을 만들게 된다. 이런 상황 이런 마음, 누군가의 감정을 들으면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그려본다. 이렇게 사랑하고 이별했구나, 이 상처는 또 어떻게 치유되고 있는지 상상한다. 어쩌면 너무 잘 알 것 같은 마음. ^^ 나는 몰랐던 방식의 상처 회복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지나가는 일이라고 말하면 너무 매정하게 들리려나? 그저 인생에서 한번 지나가는 과정으로 여기고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토닥임을 전하고 싶어진다.



찔레 문정희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 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아주 슬펐겠다. 사랑하는 동안 우는 날이 많았었다니, 그런 사랑을 어떻게 유지하고 있었을까 잠깐 걱정했다. 그 슬픔마저 놓기 싫어서 사랑한다고 붙잡고 있었으려나. 말을 잃어가면서도 붙잡고 있던 그 마음은 슬픔이 아니라, 아닌 걸 알면서도 놓을 수 없다는 간절함이었으려나. 어느 시절을 떠올려 보니, 끝이 좋았던 이별은 없었다. 상대에 대한 감정이 소멸하고,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게 보이고, 내가 주는 것과 받아야 할 것을 계산하느라 바빴던 날들이 채워지면서, 헤어지는 게 낫겠다는 답을 얻곤 했다. 헤어짐의 이유가 한 가지만은 아니었기에 한 마디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내가 배려하고 양보했던 것들이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점점 생기더라.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도 하고 많이 어렸다는 생각도 드는데, 오늘도 옆지기와 싸운 이유를 생각하면 나는 여전히 유치하고 이 나이에도 어리기만 한 건가 싶다. 아직도 마음이 한참 자라야만 하는 건가.


이 더위에 만나는 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나이에 겪을 많은 이별은, 이성과 사랑이 끝난 후의 감정은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 소원해진 관계의 정리로 만남이 끊어지는 일이 더 많았다. 최근에 세 명의 죽음에 관해 생각했다. 아프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너무도 갑작스러웠던 죽음,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의 부고장,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을 기다리는 이의 죽음을 떠올렸다. 이렇게 또 죽음으로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이 뭔지, 한마디로 정리하기도 어려웠다. 내가 준비하는 이별이 죽음만은 아니겠지만, 그때마다 겪게 될 슬픔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걱정스럽다. 아는 방법 모르는 방법 다 동원해도 쉽지 않을 일이다. 상실과 상처의 극복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많겠지만, 시 한 편의 필요성을 저자가 말한다. 세상 모든 일에는 반드시 끝이 있고, 어쩌면 매일 이별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의 인생이라면, 위로와 상처의 극복에 자존감 회복까지 생각해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눈물을 그치게 할 수는 없지만,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게 시라는 것을 믿게 하는 책이다. 적어도 오늘 내가 느낀 우울함,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 해결되지 않을 일을 가득 담은 머릿속을 잠시나마 털어낼 수는 있었으니까.



문자메시지 이문재


, 백만 원 부쳤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야.

나쁜 데 써도 돼.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



혼자 남는 일은 무섭고 힘들겠지만, 저자는 누군가와 나누는 온기가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 채워질 한 구절을 선물하면서 일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힘을 전한다. 50편의 시와 그 시를 읽으며 전하고 싶은 말로 가득 채웠다. 그 시의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시를 잘 몰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읽게 한다.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고, 깊이와 격을 갖춘 작품들로 마음을 나눈다. 200편의 시가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는 말처럼,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를 고르는 일에 공을 들였다는 거겠지. 저자의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오기에, 이 책을 읽는 동안 기뻤다. 차분해지기도 하고, 한참 멍때리며 생각하기도 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면, 하나씩 다시 생각하다 보니 차근차근 순서가 정해지기도 했다. 한 박자 쉬고, 할 발짝 뒤로 물러서서 생각해 보는 일이 어려운 건 아닌데, 마음이 급하니 보지 못하고 지나가기에 바빴다. 그래서 놓친 것들, 무리하게 마음먹은 것들을 다시 보게 된다. 이제 하나씩 다시 정리하다 보면 그때 보이는 것들을 더 깊게 들여다보려고 한다.


뜨거운 날씨에 기분까지 바닥을 치니 괜한 우울감이 하늘을 찔렀다. 굳이 오늘이 아니라 언제 읽어도 상관없을 책이었는데, 오늘 펼쳐 들 수밖에 없었다. 집 근처에 입소문이 좋은 음식점이 있었다. 점심 장사만 하는 곳이라, 옆지기와 함께 오늘 꼭 먹기로 해서 집을 나섰다. 집 근처라 별생각 없이 입은 그대로, 슬리퍼 끌고, 부스스한 머리 질끈 묶은 차림새로 식당에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가고 얼마 후 사람들이 밀려 들어왔고, 그 많은 손님 중에 이상하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살짝 고개를 돌려서 보니 학교 다니는 4년 동안 친하게 지냈던 동기(동기였지만, 나보다 두 살 많은)였다. 근처에서 가게를 하는지 직원들과 함께 와서 점심을 먹는 듯했다. 달라진 외모에 얼굴은 한참을 봐야 했지만, 좀 특이했던 목소리를 내 귀가 바로 기억했다. 아는 척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고 해야 하나. 그동안의 근황을 물을 사이인가 잠깐 생각하다가, 서둘러서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집으로 오면서 계속 생각이 났다. 나는 왜 그 사람과 인사를 나누지 못했을까. 집 근처라고 너무 편한 차림인 게 부끄러워서? 지금 나의 상황이 보잘것없어서? 그때나 지금이나 매사에 당당한 그 사람의 태도 때문에? 뭐지? 복잡한 마음이 오후 내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결국, 벼르고 벼르다가 먹은 음식이 체하고 말았기에 소화제가 필요했다. 저자가 들려주는 문장들이 천천히 내 위장을 타고 내려가는 중이다. 다행이다.



발견 8 황선하


2층은 너무 낮고, 4층과 5층은 너무 높고, 3층이 투신 자살 하기에는 꼭 알맞은 높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런데, 놀이터에서 마냥 즐겁게 놀고 있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그지없이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곤 생각을 달리했습니다.

2층은 너무 가깝고, 4층과 5층은 너무 멀고, 3층이 세상 구경하기에는 꼭 알맞은 거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을 바꾸는 일,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아마도 그것 같다...











#내가사랑한것들은모두나를울게한다 #김경민 #포르체 ##한국시

##책추천 #위로와공감 #그럼에도삶은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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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y
강진아 지음 / 북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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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많은 감정을 갖고 사는 딸은 비단 화자인 뿐만은 아니다. 나 역시 엄마에게 빚진 마음으로, 자식이니까 당연히 잘 해야 하는 것에 더해 죄책감과 미안함까지 더해진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정마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세상 모든 엄마와 딸이 하나로 정해진 관계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화자가 보여준 엄마를 향한 감정은 단 하나다. 엄마의 눈빛 하나로 모든 상황이 정리된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묻고 싶은 게 있어도, 엄마의 고단함의 원인이 자신이라고 믿고, 엄마보다 불쌍한 인생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여기며 살았다.


의 엄마는 자식을 고통 속에 던져 넣으면서도 자신이 힘들었다는 토로만 반복한다. 애가 징징거리니까 일하는 데 방해된다는 이유로,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묶어 놓고 일하면서, 자식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라 엄마 자신이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 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식의 두 손을 묶어놓고, 엄마가 일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게 했을까 싶지만, 자신의 상황이 힘들었던 것과 자식을 그렇게 대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은 공존하는 거 아니었나? 그런 엄마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듯 성장해 온 는 엄마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불법도 저지르게 되지만, 그것마저 피해를 당한 이들에게 미안함을 표현하지 않는다. 보면서 참 강심장이구나 했는데, 이게 다 엄마에게 강하게 훈련(?)받으며 성장한 덕분인가 싶기도 하더라. 어쨌든, 좀 특이한 모녀관계인가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이야기는 살인 사건이 등장하면서 좀 더 묘하게 변한다.


모범생이 되고 싶었으나 실패한 는 모범생 연기를 하며 지낸다. 엄마는 시장의 형제축산에서 일하고, ‘는 사장님의 딸 변민희와 같은 반이 된다. 어느 날 미화부장의 빨간색 mymy가 도난당하고, ‘는 변민희가 미화부장의 책상 서랍에 mymy를 돌려놓는 것을 본다. , 범인이 변민희였구나. 그날 이후로 실종된 변민희의 수색 작업은 난항을 겪지만, ‘는 이날의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제 변민희 실종 사건은 살인사건인지 실종 사건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면서 15년이 흐른 후, 갑자기 변민희의 시체가 발견된다.


변민희가 실종되었을 때부터 몇몇 사람이 용의자로 지목되고 헛소문에 시달리면서 인생이 피폐해지지만, ‘는 그러한 장면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로 살아간다. 그날의 일을 굳이 떠올릴 이유도 없었다. 학교에 다니고 취직하고, 밥벌이에 정신없던 와중에 엄마의 억지스러운 비위도 맞추며 살아가야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사건이 일어났던 그날의 상황을 맞닥뜨린다.


그래서 변민희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았냐고? 이 소설 읽다 보니, 갑자기 일어난 살인사건이 흥미롭고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추리소설처럼 느껴질 것도 같은데, 사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는 게 중요하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갈등하는 것 같으면서도 같은 편으로 살아가는 이 모녀의 모습에 집중하며 읽게 된다. ‘는 엄마를 미워하는 듯하면서도 걱정하고, 엄마 때문에 불법도 저지른다. 엄마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느라 정작 자신이 원하는 건 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엄마 역시 딸 하나 잘 키우겠다고 발버둥 치면서 살았다. 이게 사기인지 도움인지 판단할 생각도 없이 뛰어들고 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삶이 되었다. 그때마다 딸에게 요구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딸에게 징징거렸다. 이거 뭔가 바뀐 것 같다. 그 옛날, 일하는 데 방해된다고 징징거리던 딸의 손을 묶어놓았던 엄마였는데, 이제는 딸이 엄마의 징징거림을 듣고 있다. 그리고 오래전, 어느 날의 일을 각자의 방식으로 처리하려고 한다. 이 모녀가 말이다.


아무리 뒤져도 묻은 자리를 찾을 수가 있어야지. 그때 묻는 게 아니었어. 귀찮아도 갈았어야 했는데.”(233페이지)


어떤 잔인함은 너무 평온하게 표현되어 더 공포스럽다. 각자의 형편은 각자가 헤쳐 나가야 할 일이다. 오늘의 세상이 그렇다. 누군가의 도움은 고맙기도 하지만, 그 도움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 누구는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 할 세상과 사람을 책임져가면서 살아갔을 뿐이다. 그러한 삶의 과정이 전쟁 같아서,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한 모습이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모든 행동이 이해될 수 있나? 그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이, 그저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던 일이었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이들의 모습에, 그저 무서웠다. 그렇게 하자고 서로 약속했던 것도 아닌데,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게 각자의 몫을 해내면서 한 사람의 죽음을 묻어버리는 일이 이렇게 쉬웠나 싶었다. 그 일로 누군가는 꿈에서 멀어지고 자식을 잃고 살아가는 고통에 빠졌는데,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치 원래 없던 일이었다는 것처럼.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앞으로도 그들은 이 세상에서, 어떤 상황에서든 피해자라고 외치면서 살아갈 것만 같다. 누가 일부러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터득한 생존 방식이 이런 거라니, 좀 끔찍하긴 하다. 그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지고 있으니, 더 섬뜩할 뿐이다.


#mymy #강진아 #북다 #문학 #한국문학 #소설 #한국소설 #추리소설 #미스터리

#엄마와딸 #가족 ##책추천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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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의 방
김그래 지음 / 유유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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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엄마가 50대의 나이에 혼자 베트남으로 떠났다는 말이 왜 이렇게 부러운지 모르겠다. 물론 저자 엄마의 베트남 생활이 호사스러운 휴가처럼 떠난 게 아니었기에, 낯선 땅에서 잘 통하지도 않는 말로 소통하면서 생계를 위해 또 달릴 것을 알기에 마냥 부러워할 일이 아닌데도, 부러웠다. 적어도 저자의 엄마는, 자기 두 다리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누군가의 아무개가 아니라, 엄마 이름 세 글자로 사는 인생을 찾게 된 거잖아.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익숙했던 생활에서 전혀 다른 환경으로 던져진 것처럼 보였지만, 저자의 엄마는 그동안 알던 엄마가 아니었다. 가슴 속에 품어왔던 간절한 삶이, 자기만의 방을 가진 자의 힘이 느껴졌다.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건, 작가만이 아니었다.


8남매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돈을 벌었고, 이른 나이에 자기 가족을 이루면서 삶은 더 치열해졌다. 자기 가족이 생긴 만큼 책임감도 더 커졌다. 한평생을 치열하게, 부지런하게 살아온 저자의 엄마가 베트남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되는 건 아니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또 열심히 부지런하게 살아갈 테니까. 다만,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떠밀려 간 게 아닐까 하는 미안함이 앞섰다. 돈 때문에 간 거였다. 더 벌어야 했고, 더 나이 들기 전에 벌어야 했다. 엄마만의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에 응원도 보냈다. 남은 가족은 괜찮다고, 엄마의 시작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엄마 자신만 걱정하는 삶을 바랐다. 오롯이 혼자인 시간, 자기만의 방에서 누려보라고.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걱정으로 시작했던 엄마의 베트남 생활이 5년이 넘어간다. 엄마는 잘 적응했고, 그곳 사람들과 잘 지냈다. 한국에서도 인정받았던 엄마의 일솜씨는 어딜 가지도 않았다. 엄마를 걱정했던 건 기우였다. 엄마는 자기가 짊어지고 있던 많은 역할에서 벗어나, 엄마만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멋있어 보였다. 그 나이에 열심히 자기 삶을 일구며 사는 사람. 낯선 땅이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처럼 편하게 여겨지는 일상을 사는 사람. 저자가 걱정했던 게 무색할 만큼 저자의 엄마는 잘 적응하고, 즐기면서 살고 있었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오겠지만, 지금 그 삶이 엄마에게 잘 맞는 옷처럼 보여서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저절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동안 저자가 알던 엄마가 전부는 아니었음을, 엄마가 속해 있던 환경이 만든 슬픔을 지우고 바라보니 엄마가 다시 보인다는 것을. 혼자여서 힘든 일들보다 혼자서 누리는 행복에 기뻐하는 엄마의 표정만을 눈에 담는다. 엄마와 딸, 가족으로 엮이고 서로의 인생에 또 연결 고리를 만들면서 살아가던 것이 당연해 보였는데, 이제는 서로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며 살아갈 필요도 있다는 걸 알았다. 엄마의 삶과 저자의 삶. 가족으로 살아왔기에 못 보던 것들을 이렇게 확인하면서, 가족이면서 서로 다른 존재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저자 엄마의 삶을 나도 응원한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자식들 결혼해서 다 나가면, 자기 혼자 발 뻗고 자면서 속 시원하게 살겠다고. 엄마에게 오랫동안 들어왔던 말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뜨끔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자식들 키우고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는 역할이 아주 고단했을 것이다. 단칸방에서 여덟 식구가 나란히 놓아둔 젓가락처럼 잠들기도 했다. 사는 집의 주방 한쪽을 개조해서 통닭을 튀기기도 했다. 시장에 가게 한 칸 임대해서 밥을 팔기도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우리를 먹이고 키우고 가르쳤다. 아무리 각자 벌어서 결혼한다고 해도, 엄마는 자기의 최선을 다해 부모의 역할도 해야 했다. 여동생이 결혼하면서 엄마의 모든 경제활동은 멈췄다. 고단하다고 했다. 돈은 없지만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으니,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 가게를 정리한 돈으로 엄마는 여동생의 결혼 준비를 도왔다. 일을 안 하면 좀 편할까 싶었는데, 아버지가 환자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엄마는 또 몇 년을 그렇게 고생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는 여행도 다니면서 자식들 집에도 찾아다니고 그러면서 살 줄 알았는데, 이제는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다. 엄마만의 방은커녕, 엄마만의 시간도 없이 살아온 날들이 보상받을 기회가, 없었다.



어느 순간 엄마와 나의 자리가 바뀌어 있었다. 앞에서 나를 이끌고 다녔던 엄마는 이제 나의 옆에서, 뒤에서 조용히 나를 따른다. 누군가의 보호자, 누군가의 대리인, 누군가의 의지가 되어버린, 요즘 나의 생활이 그렇다. 특히 결혼하고 따로 살면서 더 또렷이 보인다. 내가 알던 엄마와 다른 모습을 보게 되면서 적잖이 당황하곤 한다. 엄마는 늘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슈퍼맨처럼 보였는데, 그런 엄마가 지금은 자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기 몸이 자기 말을 듣지 않는 날들을 보내면서,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는 것처럼 여행 계획을 세웠다가도 멈추기를 여러 번이다. 집 근처 10분 거리 마트에 가는 것도 무서워한다. 불편한 다리로 갔다가 집에 돌아오지 못할까 봐. 겁이 많아졌다고, 많은 게 무섭다고 말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지켜야 할 것도 많고, 포기해야 할 것도 많아지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단단해졌을 것 같은데, 이제 자기 자신만 지키면 되는데 그것도 어려워졌다. 당당하고 힘이 셌던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이런 엄마를 지켜보고 있는 내가, 저자 엄마의 도전과 용기가 부럽지 않을 수가 없잖아...


세상 많은 엄마가, 엄마, , 아내 등 많은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겠지만, 놓치지 않고 살아가야 할 이름 하나. 그것을 지키려는 다짐을 저자가 들려주고 있다. 아무개라는 자기 이름, 자기 시간, 자기만의 방을 갖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해진다.


#엄마만의방 #김그래 #유유히 #알라딘북펀드 #우리엄마 #엄마의인생

#에세이 #그림에세이 ##책추천



주절주절, 가슴 속 말들이 끝도 없이 밀고 나온다. 다시 밀어 넣어야 하는데, 계속 튀어나오려고 해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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