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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의 방
김그래 지음 / 유유히 / 2024년 7월
평점 :
저자의 엄마가 50대의 나이에 혼자 베트남으로 떠났다는 말이 왜 이렇게 부러운지 모르겠다. 물론 저자 엄마의 베트남 생활이 호사스러운 휴가처럼 떠난 게 아니었기에, 낯선 땅에서 잘 통하지도 않는 말로 소통하면서 생계를 위해 또 달릴 것을 알기에 마냥 부러워할 일이 아닌데도, 부러웠다. 적어도 저자의 엄마는, 자기 두 다리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누군가의 아무개가 아니라, 엄마 이름 세 글자로 사는 인생을 찾게 된 거잖아.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익숙했던 생활에서 전혀 다른 환경으로 던져진 것처럼 보였지만, 저자의 엄마는 그동안 알던 엄마가 아니었다. 가슴 속에 품어왔던 간절한 삶이, 자기만의 방을 가진 자의 힘이 느껴졌다.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건, 작가만이 아니었다.
8남매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돈을 벌었고, 이른 나이에 자기 가족을 이루면서 삶은 더 치열해졌다. 자기 가족이 생긴 만큼 책임감도 더 커졌다. 한평생을 치열하게, 부지런하게 살아온 저자의 엄마가 베트남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되는 건 아니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또 열심히 부지런하게 살아갈 테니까. 다만,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떠밀려 간 게 아닐까 하는 미안함이 앞섰다. 돈 때문에 간 거였다. 더 벌어야 했고, 더 나이 들기 전에 벌어야 했다. 엄마만의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에 응원도 보냈다. 남은 가족은 괜찮다고, 엄마의 시작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엄마 자신만 걱정하는 삶을 바랐다. 오롯이 혼자인 시간, 자기만의 방에서 누려보라고.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걱정으로 시작했던 엄마의 베트남 생활이 5년이 넘어간다. 엄마는 잘 적응했고, 그곳 사람들과 잘 지냈다. 한국에서도 인정받았던 엄마의 일솜씨는 어딜 가지도 않았다. 엄마를 걱정했던 건 기우였다. 엄마는 자기가 짊어지고 있던 많은 역할에서 벗어나, 엄마만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멋있어 보였다. 그 나이에 열심히 자기 삶을 일구며 사는 사람. 낯선 땅이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처럼 편하게 여겨지는 일상을 사는 사람. 저자가 걱정했던 게 무색할 만큼 저자의 엄마는 잘 적응하고, 즐기면서 살고 있었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오겠지만, 지금 그 삶이 엄마에게 잘 맞는 옷처럼 보여서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저절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동안 저자가 알던 엄마가 전부는 아니었음을, 엄마가 속해 있던 환경이 만든 슬픔을 지우고 바라보니 엄마가 다시 보인다는 것을. 혼자여서 힘든 일들보다 혼자서 누리는 행복에 기뻐하는 엄마의 표정만을 눈에 담는다. 엄마와 딸, 가족으로 엮이고 서로의 인생에 또 연결 고리를 만들면서 살아가던 것이 당연해 보였는데, 이제는 서로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며 살아갈 필요도 있다는 걸 알았다. 엄마의 삶과 저자의 삶. 가족으로 살아왔기에 못 보던 것들을 이렇게 확인하면서, 가족이면서 서로 다른 존재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저자 엄마의 삶을 나도 응원한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자식들 결혼해서 다 나가면, 자기 혼자 발 뻗고 자면서 속 시원하게 살겠다고. 엄마에게 오랫동안 들어왔던 말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뜨끔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자식들 키우고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는 역할이 아주 고단했을 것이다. 단칸방에서 여덟 식구가 나란히 놓아둔 젓가락처럼 잠들기도 했다. 사는 집의 주방 한쪽을 개조해서 통닭을 튀기기도 했다. 시장에 가게 한 칸 임대해서 밥을 팔기도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우리를 먹이고 키우고 가르쳤다. 아무리 각자 벌어서 결혼한다고 해도, 엄마는 자기의 최선을 다해 부모의 역할도 해야 했다. 여동생이 결혼하면서 엄마의 모든 경제활동은 멈췄다. 고단하다고 했다. 돈은 없지만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으니,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 가게를 정리한 돈으로 엄마는 여동생의 결혼 준비를 도왔다. 일을 안 하면 좀 편할까 싶었는데, 아버지가 환자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엄마는 또 몇 년을 그렇게 고생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는 여행도 다니면서 자식들 집에도 찾아다니고 그러면서 살 줄 알았는데, 이제는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다. 엄마만의 방은커녕, 엄마만의 시간도 없이 살아온 날들이 보상받을 기회가, 없었다.
어느 순간 엄마와 나의 자리가 바뀌어 있었다. 앞에서 나를 이끌고 다녔던 엄마는 이제 나의 옆에서, 뒤에서 조용히 나를 따른다. 누군가의 보호자, 누군가의 대리인, 누군가의 의지가 되어버린, 요즘 나의 생활이 그렇다. 특히 결혼하고 따로 살면서 더 또렷이 보인다. 내가 알던 엄마와 다른 모습을 보게 되면서 적잖이 당황하곤 한다. 엄마는 늘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슈퍼맨처럼 보였는데, 그런 엄마가 지금은 자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기 몸이 자기 말을 듣지 않는 날들을 보내면서,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는 것처럼 여행 계획을 세웠다가도 멈추기를 여러 번이다. 집 근처 10분 거리 마트에 가는 것도 무서워한다. 불편한 다리로 갔다가 집에 돌아오지 못할까 봐. 겁이 많아졌다고, 많은 게 무섭다고 말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지켜야 할 것도 많고, 포기해야 할 것도 많아지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단단해졌을 것 같은데, 이제 자기 자신만 지키면 되는데 그것도 어려워졌다. 당당하고 힘이 셌던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이런 엄마를 지켜보고 있는 내가, 저자 엄마의 도전과 용기가 부럽지 않을 수가 없잖아...
세상 많은 엄마가, 엄마, 딸, 아내 등 많은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겠지만, 놓치지 않고 살아가야 할 이름 하나. 그것을 지키려는 다짐을 저자가 들려주고 있다. 아무개라는 자기 이름, 자기 시간, 자기만의 방을 갖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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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가슴 속 말들이 끝도 없이 밀고 나온다. 다시 밀어 넣어야 하는데, 계속 튀어나오려고 해서,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