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정가 미니약과 - 미니 약과 호정가 약과 2

평점 :
품절


와아, 앉은 자리에서 그냥 계속 먹고 있다. 약과 맛을 몰라서는 아니고, 아는 맛이 무서운 거다. 책 한 페이지 넘기고, 약과 한 알 입에 넣고, 또 한 알 입에 넣고, 이제 다시 페이지를 넘기고... 하나도 안 남았어. ㅠㅠ 가격 좀 내려줘요. 계속 먹고 싶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뇌 살인
혼다 데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명 사람은 익숙해진다.

즐거운 일에도, 괴로운 일에도, 상냥함에도, 미움에도.

남에게 상처 주는 일에도. (218페이지)


실화를 바탕으로 하면서, 2016년에 출간된 짐승의 성의 개정판이다. 출간 당시에는 궁금하면서도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새 옷을 입고 이렇게 다시 눈앞에 보이니 궁금증을 가둬둘 필요가 없었다. 이미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세뇌살인, 이 소설 안에 가득하다. 추측만으로 이 소설의 내용을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건, 어떻게 세뇌와 살인이 더해져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는지 다 알 수 없어서다. 게다가 실화라니, 아마 이 소설을 다 읽은 후, 많은 독자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이야기가 우리 삶 곳곳에서 침투하려고 숨어 있는 게, 너무 무섭다고.


처투성이 소녀 마야가 경찰에 보호 요청을 한다. 1년 넘도록 맨션 선코트마치다 403호에 감금된 채로 살았던 아이다. 경찰은 사건을 인지하고 해당 맨션으로 가서 아쓰코라는 여자를 체포한다. 경찰은 마야와 아쓰코의 진술을 바탕으로 이 사건을 재구성하는데, 두 사람 모두 진술하고 있지만 구멍이 많다. 이들의 진술이 사실인가? 어떻게 이런 관계, 살인이 가능하지? 무엇보다 이들이 말하기를, 자신을 조종하여 감금, 협박, 살인을 하게 만든 요주의 인물 요시오는 어디에 있는가. 수사가 계속되면서 하나씩 밝혀지는 비밀이 있었지만, 완벽하게 사건이 맞춰지지 않아서 더 난감했다. 그 와중에 이 살인자들의 손에 생명을 다한 이들의 원한을 누군가가 풀어주어야만 한다. 형사들은 역할을 나누어 이 사건에 몰입했다. 마야와 아쓰코의 진술을 끌어내려고 애쓰고, 이들이 살았던 선코트마치다 403호와 그 주변을 탐문하였으며, 작은 단서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이 사건의 진실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맨션 선코트마치다 403. 그곳은 짐승의 소굴이었다. 요시오와 아쓰코는 마야의 아버지를 끌어들이고 감금 폭행하기 시작한다. 돈을 끌어 와라, 이 수건 한 장을 쓰는 게 얼마이다 등등 한 사람을 완전히 조종하기 시작했다. 마야를 볼모처럼 붙잡고 아버지를 학대했다. 요시오는 이들 서로서로 폭행하고 고문시키면서, 이 학대의 순간을 즐겼다. 그러다가 마야의 아버지가 죽고, 이 책임을 또 딸에게 떠넘긴다. 돈줄이 끊어졌으니 또 다른 돈줄을 찾아야 한다. 요시오는 아쓰코와 그녀의 가족에게 눈을 돌리고, 또 온갖 협박과 폭행을 일삼았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이들을 묶어놓고 서로를 감시하고 폭행하게 했다. 생각해 봐라, 내 앞에서 내가 직접 내 가족을 폭행하고 고문하면서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까?


사건은 선코트마치다 403호와 그 주변의 작은 연립에서 동거 중인 세이코와 신고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된다.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고 있는 젊은 남녀, 어느 날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신고는 세이코의 아버지를 처음 보게 된다. 아무리 연인의 아버지라고 하지만, 계속 같이 살 수는 없다. 그것도 종일 집에 있거나 가끔 외출도 하는데, 활동하는 시간도 불규칙하고 도대체 밖에서 무엇을 하며 돌아다니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신고는 우연히 세이코의 아버지를 미행하다가 뭔가 미심쩍은 일들을 보게 되고, 이미 어떤 사실을 알게 되기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마야와 아쓰코가 빨리 진실을 다 쏟아내기를 바랐는데, 뭔가 감추면서 하나씩 꺼낼 때마다 답답했다. 그렇게 하나씩 드러나는 진실에 기함하듯 놀라기를 여러 번이다. 이게 사실이라고? 어떻게? 이 두 사람이 그 모든 것을 보고 지금 살아있다는 게 놀라기만 할 뿐이다. 계속 숨기고 있거나 아니면 조용히 도망쳐서 새 인생을 살아도 될 텐데, 굳이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꺼내고 싶은 이야기만 조금씩 꺼내는 이들의 진짜 목적이 무엇일지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하나둘, 정말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서 생각했다.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인간이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는 것을.


2002년에 일본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저자가 재구성했다고 한다. 3대에 걸친 일가족 일곱 명이 희생된 연쇄살인 사건. 딸이 부모를 죽이고,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누나가 동생도 죽이는, 그 시체를 해체하여 처리했다는 끔찍한 이야기가 믿어지는가? 그 가운데에 이 가족을 이간질하고 협박하고 조종과 살인까지 저지르게 한 인물이 마쓰나가 후토시라는 남자였단다. 이 소설에서 그렇게 찾아내고 싶었던 요시오이다. 한 소녀의 신고로 이 학대 사건이 드러났고, 너무도 잔인한 진실에 일본 정부가 대중에 알려질 것을 우려해 보도 제한 조치까지 내렸다고 한다. 저자가 이 사건을 접하고, 이 사건이 인간의 어두운 면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고 생각하여 이 사건과 관련된 많은 자료를 모으고 써 내려간 작품이다.


어디선가 봤던 독자의 후기 한 줄이 생각난다. 토할 것 같다고. 나 역시 그랬다. 처음에는 문장을 잘못 읽은 줄 알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아니었다. 시체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이보다 더 잔혹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하게, 마치 오랫동안 해 왔던 일 처리하듯 시체 처리하는 장면을 보고 토하지 않고 페이지를 넘긴 게 다행일 정도였다. 차마 문장 그대로 옮겨오기 힘들었으니, 살면서 이보다 더 고통스럽게 읽은 소설이 있을까 싶다.


혹시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른다. 왜 당해? 나라면 바로 도망쳐 나올 텐데, 더 힘들어지기 전에 경찰에 신고할 텐데 하면서,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거로 믿을 수도 있다. 나도 그랬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이유도 모른 채로 당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고? 아니었다. 읽을수록 더 진해지는 건, 만약 나라도 이 지옥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세상과 먼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거짓말로 사기 치는 사람, 가까이에서 사람 마음에 들어오려고 애쓰면서 자기 이익 계산하는 사람, 자기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떠넘기고, 그렇게 생겨나는 누군가의 고통쯤은 가뿐히 무시하는 사람. 찾아보면 너무 많다. 나는 당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건, 어느 틈에 내 마음에 들어와 나를 휘젓고 있을지 알 수 없어서다.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말에 휘둘려 어떤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인간이 그렇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외치고 싶지만, 인간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는 모순을 끌어안고 사는 게 우리 현실이었다.


읽는 동안 요시오라는 악마를 계속 찾아다녔다. 그의 끝을 어떻게 보여줄지 궁금하면서, 그가 저지른 일에 합당한 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자취를 매의 눈으로 살폈다. 그래서 요시오는 붙잡혔을까? 그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기나 할까? 추리소설답게 저자는 또 다른 반전을 마지막에 숨겨두고, 독자에게 그동안의 사건을 복기하게 한다. 앞에서 들었던 진술을 다시 찾아보고, 어느 부분에서 틈이 있었는지 확인하여, 이 사건의 시작과 끝을 정리하게 한다. 처음부터 마야와 아쓰코의 진술을 토대로 진행되는 이야기에서 이들을 세뇌한 요시오를 파헤치면서 따라가다 보면, 요시오에게 세뇌당한 이들이 보이는 행동을 파헤치는 과정까지 함께 진행된다. 인간의 본성을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인간의 잔인함에 더 궁금한 게 많아졌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을 세뇌하여 조종하던 요시오보다 요시오에게 세뇌당했던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게 더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속이 울렁거린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생길 때마다 멘탈 관리 잘하라고 들었던 말이 계속 생각난다. 이래서 정신 똑바로 붙잡고 있어야 하는 건가 싶은 마음이다.


#세뇌살인 #혼다테쓰야 #북로드 #소설 #일본소설 #실화 #기타큐슈일가족감금살인사건

##문학 #가스라이팅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4-09-09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중간쯤까지 읽다가 포기할까 싶어 다른 분들 리뷰 보러 알라딘 들어왔어요 ㅠㅠ

구단씨 2024-09-10 21:46   좋아요 0 | URL
하아... 진짜 포기하고 싶었어요.
이보다 더 심한 일이 세상에 너무 많다는 걸 아는데, 이 작품 읽기가 힘들었던 게 장면의 묘사였어요.
너무 적나라하게, 비위가 약하면 바로 덮을 수밖에 없는 문장들이 너무 괴로웠네요....
 
오렌지와 빵칼
청예 지음 / 허블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절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 시작된 이 바람은, 다른 사람에게 거절을 못 해서 속 끓이던 게 쌓이고 쌓여 시작된 거다. 지금은 다를까? 그때보다 나아지긴 했으나 내 성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여전히 바람에 남아있다. 나는 지금도 바란다. 거절 잘하는, 아니 거절해도 되는 상황에 미안함을 떠올리지 않고 거절을 말을 서슴없이 뱉고 싶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아마도 자기 검열, 자기 통제, 타인을 배려한다는 도덕적인 나를 만들어가려고 그런 건 아닐까. , 이유가 한 가지는 아닐 테다. 중요한 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자기 통제 속에서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미치거나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고 말 거라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한 번에 모든 걸 되돌릴 수도 없지 않은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거절도 잘 하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뭔가에 이끌리듯 타인의 불행이나 악한 장면에 웃음이 나기도 하는 사람이 되는 거 말이다.


오영아. 27세의 유치원 교사. 유치원에 새로 온 아이의 폭력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읽으면서 아이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의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도는, 화를 내는 지점도 납득이 안 되는 이 아이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아이의 하원까지 도와야 했다. 그녀는 아이를 엄마가 운영하는 빵집에 인계하고 나서도 하고 나서도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다. 아이의 하원을 시켜주는 건 자기 업무가 아니라고, 이렇게 계속해 줄 수는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비싸기만 한 그 빵집의 빵까지 사서 나온다. 한없이 착하고 너그러운, 업무가 아닌데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개인적인 하원까지 해주는 교사로 그녀의 이미지를 만든다.


그녀의 친구는 또 어떤가. 지구를 살리는 많은 일에 동참해야 한다고, 지구 저편에서 굶어 죽는 아이들에게 후원금을 보내야 한다고, 나쁜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자기가 하는 말과 행동의 옳음을 당연하게 인정해 줘야 등 정말 피곤한 존재이다. 그녀는 친구에게조차 부정적인 말을, 거절의 말을 하지 못한다. 속으로는 많은 생각을 하지만, 정작 친구에게 꺼내는 말은 모두 긍정의 대답이다. 네 말이 맞지, 네가 옳아, 그렇지, 등등. 하아. 이렇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진짜 궁금하다.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끝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말해 뭐해. 화병이 나서 쌓이고 쌓이다가 죽었겠지. 그런데도 우리는 오영아가 보여준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가는 순간을 종종 발견한다. 그러면 안 되는 상황에 자주 놓이고, 자기 마음 표현 다 하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우선하다 보니 참게 된다. 이 정도쯤이야 하는 마음인 걸까. 어느 순간에나 있는 자기 검열의 순간을 적응한 걸까. 타인과 살아가는 세상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당연함일까. 그녀의 애인도 그녀에게 요구하는 건 친구와 다를 바 없었다.


어느 날, 그녀는 자기 일상에서 웃음이 사라진 걸 알아차린다. 주변을 살피며 억지로 웃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과하던 그녀는 그렇게 된 이유를 찾다가, 상담 센터를 찾는다. 그녀가 당연한 것처럼 여기던 일상의 습관을 바꿔줄 곳. 뇌 시술을 하는 곳으로, 그녀는 정서 조절시술을 받는다. 그동안 참아왔던 자기 통제의 선을 끊을 방법이었다. 이 방법이 적용되는 기간은 4주다. 그러니 뭔가 잘못되었어도 4주 후면 원래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하니, 일탈 같은 변화를 겪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변했을까? 변했다. 그동안의 오영아는 떠오르지 않을 만큼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억눌린 욕망이 그녀의 입으로 튀어나왔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의 싸움을 방관했다. 친구가 하는 말에 자기 생각을 서슴없이 꺼내며 지적했다. 이런 행동은 평소 오영아가 보이기 싫었던, 주변 사람을 잃기 싫어서 선택한 방식과 완전히 달랐다. 파괴적인 장면들에 웃음이 났고, 속으로 욕했다. 자기 생각이 맞는다고 피력하고, 그동안 억눌렀던 모든 감정이 그녀의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그녀의 모습에 뭔가 잘못된 것을 느끼고 상담 센터를 찾아가 이유를 물었으나, 시술의 효력이 끝나는 때만 기다리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대로 계속 살아가야 한다고?


한편으로는 시원했다. 그동안 살아왔던 방식이 그녀를 좋은 사람, 착한 사람으로 포장해 주었는지는 몰라도, 그녀의 안에서 꿈틀대던 반박의 감정들은 이제야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가 느끼는 것도 그녀와 비슷한 해방감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현실의 우리는 여전히, 지금도 자기 검열을 하면서 살아가고 말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내 주변의 몇몇은 기아에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후원한다. 한 달에 커피 서너 잔만 안 마셔도 가능한 일이라고, 나에게도 이 후원에 동참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별로 내키지 않아서 따로 답변하지 않았는데, 이 후원을 하지 않으면 나는 나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나는 계속 내가 마시던 커피를 마시고 싶고, 만약에 커피를 안 마신다면 그 돈으로 내가 필요한 것을 더 챙기고 싶은데? 결과로만 보면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여전히 후원 활동도 하지 않고 있으며, 계속 마시던 커피도 마시고 있다. 그런데, 그때 이후로 나는 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무심코 커피 한 잔씩 마실 때마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싶은 마음도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정의가 상대방의 정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뱉은 말에,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을 눌러 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오영아처럼 묵은 감정을 어느 순간에 폭발하듯 쏟아낼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여러 관계를 맺고 유지하면서 때로는 나에게 필요한 상황에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기에, 관계를 해치는 태도는 지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또 다른 방에서 쌓이고 있는 것들을 돌보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된다. 소설 속 오영아가 보여준 모습이 그랬다. 그녀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고 고마운 관계들 속에서 지켜야 하는 선을 만들고 살아가던 그녀가, 어느 방 하나에 쌓아둔 감정이 쏟아져 문이 열렸을 때 보인 행동에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그래도 한 번은 그녀가 받은 전두엽 시술을 받고, 내가 억눌렀던 나로 살아가는 시간을 맛보고 싶기도 하다. 소화제 마시고 체한 게 다 내려가는 듯한 개운함이 있지 않을까. 어차피 4주 후에는 원래의 나로 돌아온다고 하니, 4주의 시간 동안 경험했던 것을 근거로 새롭게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설정이 좀 과장되어 보일 수도 있지만, 읽다 보니 푹 빠져든다. 뭐야 이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였어? 매 순간 양보하고 절제하며 자기 통제를 하듯 살아가는 게 꼭 당연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였네. 적당히 선을 지키며 살아가도 되는데, 왜 자꾸 모범을 보이고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착각이 심어졌던 걸까. 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버티려다 보니 저절로 쌓인 내공이었던 건가. 어쨌든 오영아가 시술 후에 보인 모습들에 속이 시원해진 건 사실이다. 그녀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더라도 조금 변한 태도로 살아가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 건, 그녀가 친구에게 쏟아내던 말들 중에 있다. 나는 너를 존중할 수 있다. 단 네가 나를 존중할 때만.”(124페이지) 그랬다. 이 말 한마디면 살아가는 동안 맺는 관계의 기준, 내가 보여야 할 태도,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선이 만들어질 것 같다. 나를 존중하는 이들에게만 양보와 배려를 보여주면 된다. 그걸 알아가는 데 어떤 방법이 필요하다면, 오영아가 받은 시술도 한번 생각해 볼 만하다.


소설의 끝부분에 다다르면, 반전도 있다. 읽다 보니 어느 순간 ?’하는 느낌이 오는데, 오영아가 시술의 효과를 보여주는 최고점이 아닐까 싶다. 먹을 때는 고통스럽고 불편하지만 다 쏟아내고 보니 아무것도 남지 않은 후련함을 주는 게, 꼭 대장내시경 약 먹은 것 같다. 안 그래도 요즘 화장실 가는 게 불편해졌는데, 생각난 김에 대장 청소 한번 해야겠다.


#오렌지와빵칼 #청예 #허블 #소설 #한국소설 #반전소설 ##책추천

#뚫어뻥도이것보다시원하게뚫리지는않을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21. 저녁 7시경, 중고 거래 티켓 구매 사기를 당했다. 웬만해서는 지류로 직거래만 했는데, 이때는 뭔가 씐 것처럼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 판매자가 기존 다른 거래를 한 흔적과 구매자 후기까지 있어서 안심했다. 혹시나 싶어 더치트에 계좌 확인까지 하고 입금했는데, 입금하고 나니 갑자기 싸한 느낌. 왜 이런 느낌은 꼭 돈을 보내고 난 후에 드는 건지...


당근 채팅으로 구매 물품을 보내달라고, 몇 시까지 보내줄 거냐고 물었지만 판매자는 채팅 확인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렇겠지. 먹튀를 확신하고, 마지막 채팅을 보냈다. 저녁 8시 반까지 물품을 보내던지, 답변을 하라고. 그 이후로는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고. 그러고 나서, 판매자의 답변을 기다리면서 경찰에 신고할 내용을 작성했다. 8시 반까지 아무런 답변도 없고 물품을 보내주거나 환불에 관한 얘기가 없다면 바로 신고하려고. 역시나 판매자는 채팅 확인도 안 하고, 답변도 당연히 없었다. 바로 ECRM(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에 신고를 했고, 중고 거래 앱에 신고하고, 더치트에도 해당 계좌와 판매자 이름(그 이름이 진짜인지도 모르겠지만)도 등록했다. 그 후 바로 판매자에게 마지막 채팅을 보냈다. ECRM에 신고한 내용을 캡쳐하여 첨부하고, 내일 아침 바로 경찰서로 가겠다는 한 마디를 남겼다.


그리고 이쪽 관련 일을 하는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금 당근 사기를 당했다고, ECRM 신고를 했고, 당근에도 신고를 했고, 내일 아침에 바로 경찰서로 가서 정식 접수할 건데, 그 이후로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다. 동생 말로는, 담당 형사가 배정되면 수사가 진행되고, 당근 사기꾼은 거의 다 잡힌다고, 금방 잡힌다고 했다. 알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고, 이 사건을 잊고 있었는데...


그날 밤 10시 쯤, 옆지기가 내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느낌에 그 놈일 것 같았는데, 잠깐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옆지기 모르게 이 사건을 해결하고 싶었으나, 다 틀렸다) 판매자는 자기가 퇴근할 때 사고가 있었고, 그래서 채팅을 이제야 봤으며, 지금 병원에서 처리가 늦어져서,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사기꾼이 병원에 있다는 말은 100% 거짓말이다. 예전에 엄마 집 공사하다가 튄 사기꾼도 병원 핑계 대면서 잠수 탔다) 그러면서 자기가 내일 아침 9시 전까지 환불 해주겠다면서, 계좌번호를 남겨달란다. 내가 구매한 물품을 주면 되는데, 왜 내일 아침까지 시간을 정하느냐, 그리고 환불해줄 거면 지금 입금하라고 했더니, 또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그럼 내일 당신이 입금할 상황이 되면 연락해라, 그때 계좌를 주겠다고 말했더니, 알았다면서 끊더라. 판매자가 돈을 입금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구매한 물품이 아니라 다짜고짜 환불 얘기를 하니, 그냥 이 놈은 사기꾼이.


822. 다음 날 아침, 나는 9시가 되기 전에 경찰서 민원실 앞에 있었다. (경찰서 민원실은 진짜 9시 땡! 해야 문을 열더라) 그때까지도 판매자에게 연락은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또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시간을 늦추며 기다려 달라고 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850분쯤 판매자에게 문자가 왔다. 병원에서 어쩌고 저쩌고, 늦어도 오후 6시까지 입금하겠다면서 계좌를 알려 달라고 하더라. 읽고 씹었다. 그렇게 9시가 되었고, 민원실을 거쳐 수사팀으로 갔다.


담당 부서 형사들이 회의 중이라 조금 기다려 달라고 하기에 기다리면서, 나를 응대했던 다른 형사님에게 이 사건을 얘기하고 몇 가지 물었다. 어쨌든 담당자가 와야 내가 어제 온라인으로 신고 접수한 게 정식으로 사건 접수가 되어 진행되겠기에, 그 전에 다른 것을 좀 물어봤는데, 그분이 판매자에게 연락을 해 보니 전화를 안 받더라. 그러다가 그분이 문자로 현재 상황을 알리는 내용을 보냈더니, 판매자가 문자를 확인하고 그분께 전화를 했어. ㅎㅎ 나에게 댔던 핑계를 그분께 똑같이 하는데, 그 분 통화하는 내용이, 어쨌든 피해자가 지금 경찰서 수사팀 자기 앞에 있으며, 지금 전액 환불이 아니면 대화하지 않겠다고 한다고, 이대로 사건 접수할 테니 당신은 해당 경찰서에 연락이 가면 나가서 조사를 받으라는 내용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주 단칼에...)


잠시 후, 해당 사건 담당해주는 부서의 형사들이 왔고, 나는 ECRM 접수한 내용을 정식으로 접수했으며, (지장을 겁나게 찍었다. 내가 등록한 자료들이 많더라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분께 물었다, 담당 형사 배정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느냐고. 그분 말씀으로는 빨라야 1~2주라고 하더라. 온라인에서 찾아봤을 때 어떤 피해자는 담당 형사 배정까지 4달이 걸리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그런가 보다 하다가, (동생 말로는 더 자세한 얘기도 들었지만, 이건 나만 듣고 있어야 할 듯하다) 그분께 말했다. 동생이 이쪽 관련 일을 하는데, 당근 사기꾼은 거의 다 잡는다고, 금방 잡는다고 하더라, 그런데 사건 담당자 배정까지 1~2주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걸리는 듯하다고. 그랬더니 그분, 잠깐 나를 쳐다보더니 경찰서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하더라. 그 말 듣고 그냥 웃으면서 나왔다.


그날 오후 4시쯤, 판매자가 입금을 했다. ? 전화도 오고 문자도 왔지만 답변하지 않았다.


823. 오전에 경찰서 담당 형사에게 전화가 왔다. (오잉? 담당자 배정까지 빨라야 1~2주라고 했는데, 사건 접수하고 바로 다음 날 담당자가 전화를 한다고?) 그래서 어제 판매자가 돈을 입금했다고 했더니, 나에게 진정 취하서를 문자로 전송하라고 하더라.


사실 그 돈을 잃은 게 속이 쓰렸지만, 차라리 그놈이 돈을 안 주기를 바랐다. 비싼 수업료 냈다고 생각하고, 그 놈을 벌 주고 싶었다. 사건이 종결되고 그 놈을 민사로 접수하여 괴롭혀주고 싶었다. 혹시라도 사건이 조사 진행되는 중에 돈을 돌려준다면 받아야 하겠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돈을 주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사건이 제대로 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그 놈이 환불해 주었기에, 이제 이 사건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이게 끝. 무슨 법이 이런가 싶은 마음만 남았다.


그 후, 중고 거래 앱은 그대로 그 놈이 이용 정지 상태로 있고, 더치트에는 내가 등록한 그 놈의 정보를 비공개 해놨다. (더치트는 피해 금액을 돌려받으면, 사기꾼 등록해 놓은 내용을 비공개로 하거나 삭제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지 않으면 후에 사기꾼이 민사 사건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고.)


사기를 당하고, 신고 접수하고, 환불 받고, 사건이 제대로 조사도 시작되기 전에 끝나버리고. 이 모든 게 불과 하루 반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번 일로 몇 가지 검색을 해보니, 많은 사람이 번거롭다고, 금액이 적다고, 또 다른 많은 이유로 신고를 안 하고 속만 끓이고 있더라. 어차피 속 끓일 거, 신고는 하고 속 끓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나쁜 사람들이 또 어디서 얼마나 나쁜 일을 저지르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 마음을 비참하게 하고 있을지 모르잖아. 나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돈도 잃고 멘붕이 오고 많이 힘들었는데, 그중 가장 힘들었던 건 이렇게 사기를 당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자괴감이었다. 내가 이렇게 왜 그랬을까 싶은 우울감에 정신줄을 놓았다가, 마음을 다잡고 경찰에 신고할 내용을 정리했다.


지난번에 옆자리 동료가 보이스피싱 당할 뻔한 걸 겨우 말리면서 큰 돈 잃을 뻔한 걸 피해갔는데, 내가 사기 당하고 보니 이거 순식간이다. 요즘 라디오 듣다 보니 광고 나오던데. 보이스피싱 범죄, 아직 내 순서가 오지 않았을 뿐이라고. 나쁜 놈들은, 피해자의 마음이 약하고 급할 때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이 기회를 놓지 않고 파고드는 것 같다. 조심, 또 조심하자.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hecodeb 2024-08-27 22: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중고나라 절판책 구매로 5만원 사기당했는데 나중에 잡혔다고 연락왔는데 돈은 못돌려받았죠. 노숙자라던가요;; 수십건을 했다네요.참 나..

구단씨 2024-08-28 21:09   좋아요 2 | URL
그 사람은 아마도 이 한 건 추가가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된 사람이겠죠?
왜 이런 짓을 습관처럼 하는지 모르겠어요. 에효.

꼬마요정 2024-08-28 09: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속이 많이 상하셨겠어요ㅠㅠ 저는 15년 전에 외장하드 사기 사건으로 경찰서에 간 적 있어요. 정확히는 남자친구가 사기 당한 건데 그 때 본인이 시간이 안 나서 제가 호기롭게 내가 갈게 하고 갔더랬죠. 어차피 그 때 제 계좌로 돈을 준 거라서 제가 가도 되고, 경찰서 구경도 하고 싶었거든요. 동생이랑 같이 갔는데, 훈남 형사님이 이야기를 듣더니 그 놈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어요. 그 놈 받아요. 주민번호까지 형사님께 불러주더라구요.(저보다 한 살 어리더군요) 그리고 여차저차 신고 접수가 되었으니 돈 안 돌려주면 저 서울 어디 경찰서에 가서 조사 받아야 된다 이러니까 그 놈이 막 징징거리더군요. 형사님이 전화 끊고 사건은 접수 되었고 돈은 돌려줄 것 같은데 기다려 보라면서 그 놈 전적이 있다면서 일단 돌아가 있으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날 저녁에 돈이 들어왔어요. 저는 다음 날인가 동사무소 가서 그 놈 관할 경찰서로 취하서를 팩스로 보냈죠.

한 번은 남편이 데스크탑을 켰는데 화면이 파랗게 되고 작동이 안 되더니 쪽지가 왔대요. 니 컴퓨터 자료를 돌려받고 싶으면 문화상품권을.... 하아.... 안 줘 이랬더니 진짜 다 지운다 그러더래요. 그래서 필요한 거 없다 이랬더니 진짜 지우고 사라졌대요ㅠㅠ 강제 포맷 당한거죠. 그 안에 저희 집 냥이들 사진 다 있었는데...ㅠㅠㅠㅠㅠ 경찰서 갔더니 형사님이 돈을 안 줘서 그 놈을 못 잡는대요. 그래서 남편이 아, 제가 문화상품권을 줬어야 했나요? 하니까 또 그건 아니죠.. 그러고... 결국 못 잡았습니다. 나쁜 놈!!!!!!!

말씀처럼 제가 사기를 당한 게 아니었음에도 경찰서에 앉아 있으니 뭔가 제가 멍청한 것 같고 제가 잘못한 건가 이런 생각이 들긴 하더라구요. 진짜 사기 당하신 분들 마음 고생 심하시겠더라구요. 사기꾼이 잘못한 건데 왜 피해자 마음이 그런건지... 조심 또 조심해야 그나마 덜 당하겠죠ㅠㅠ 고생 하셨어요 구단씨 님.

구단씨 2024-08-28 21:14   좋아요 3 | URL
세상에 나쁜 사람이 너무 많아요. ㅠㅠ
그리고 신고 접수된 후에 그놈이 돈을 돌려주었으니,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받은 거고, 나쁜 짓을 신고한 거는 신고한 그대로 처리해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왜 취하를 하라는 건지... 그러니까 이 나쁜 사람들이 나쁜 짓을 더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돈 돌려 달라고 신고하면 돌려주고, 그냥 포기하면 먹튀 하고. 에잇~

봄날의 언어 2024-08-28 21: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악이 부지런한 만큼, 똑같이 성실하고 집요해야 ‘겨우‘ 본전이네요. 저로서는 엄두가 안나는데 배우고 갑니다. 고생하셨어요.

구단씨 2024-09-02 21:26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그런 게 억울해서 병이 날 것 같아요.
가만히 있으면 또 어딘가에서 사기 치고 다닐 것 같아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2인조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름이 가기 전에 읽어보고 싶어서, 손에 땀이 차는 것도 이겨내며 페이지를 넘겼다. 정해연이라는 이름으로 일단은 읽어 봐도 좋을 목록에 있었고, 블랙 코미디가 가미되었다고 하니 마냥 진지하게만 읽지 않아도 될 듯하여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늘 그랬듯이 페이지는 술술 넘어가고, 두 주인공의 허무맹랑한 한탕 계획에 처음부터 어이가 없는 것도 재미있다. 또 언제나 그렇듯이, 인간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도 잘 전달된다. 거기에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고쳐서 쓴다는 말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살아가야겠다는 교훈까지 얻었다.


사기꾼 김형래와 도둑 나형조는 교도소 같은 방에서 만난다. 처음 만났을 때의 힘겨루기는 의미 없었고, 이 둘은 출소 후에 밖에서 만나 한탕을 하자고 계획한다. 서로의 다른 생각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김형래는 대도(?) 나형조를 믿고 따라야겠다고, 나형조는 큰 사기를 치고 들어왔다는 김형래를 의지하기로 했다. 출소하는 날, 나형조는 대포차를 앞세워 김형래를 마중 나왔고, 둘은 그 순간 대업을 이루는 행동을 시작한다.


재개발로 벼락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간 두 사람. 동네를 염탐하던 중 한 노인과 접촉 사고가 나고, 노인을 사고 처리를 요구하는 대신에 다른 것을 원한다. 7년 전에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아들과 손녀를 만나게 해달라고. 무엇 때문인지 아들이 갑자기 집을 나갔고, 그 후로 아버지를 다시 보지 않겠다면서 소식을 끊었다고 한다. 김형래와 나형조는 노인에게 착수금을 받고, 노인의 아들과 손녀를 데리고 왔을 때 잔금까지 받기로 하면서 이 일을 시작한다.


이 두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갔었다는 이력에서, 둘 다 접근 불가한 범죄자인 줄 알았다. 얼마나 크게 사기를 쳤기에, 어떤 도둑질을 했기에 수감되기에 이르렀던 건지 궁금해질 즈음, 두 사람이 노인의 아들을 찾는 과정에서 보이는 잔머리는 뭔가 계획이 있어 보였다. 동시에 뭔가 어리바리하면서 서로의 경력(?)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을 때는 여기 덤앤더머가 또 있구나 싶었다. 어쨌든, 이 일을 마무리해야 노인에게 나머지 돈을 받을 수 있으니, 최선을 다해 노인의 아들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정말, 노인의 아들을 찾는다.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하여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성장한 것도 모자라서, 이혼 후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으러 갔던 아들은 또 한 번 아버지에게 절망한 나머지 그 길로 어린 딸을 데리고 나와 버린 게 이 부자 사이의 역사다. 그런 아버지가 찾는다고 하니 선뜻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하는 아들이 어디 있겠는가. 노인은 이들과 수시로 연락하면서 아들을 찾았는지 물었고, 하루라도 빨리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오라면서 소리치곤 했다. ‘, 이 아버지가 정신을 차렸구나. 과거의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애타게 아들을 찾는 마음이 급해졌구나. 얼마나 그리웠을까. 이제라도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 갚으면서 살면 되겠구나.’ ,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 대부분 나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 소설은 평범한 드라마가 아니었으니, 추리소설다운 반전이 있다. 아들 찾아달라고 의뢰했던 노인 박청만은 그 성정을 버리지 못하고 그 나이까지 늙어버린 인간이었고,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던 아들 박수철은 그가 바라던 게 따로 있었다. 안다. 읽으면서 저절로 알 수 있다. 우리는 각자 원하는 것을 이루며 살아가고 싶어 하는 인간이니까. 각자의 사정에 절실히 필요한 것들이 있다. 그걸 찾아내고 얻으려고 발버둥 치면서 살아가다 보니, 이 소설의 결말 같은 장면도 마주하게 된다. 누굴 탓하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업보 같은 결말이었으니. 그 과정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김형래나 나형조가 착한 사람으로 보일 정도였다. 이들은 그저 소박(?)하게 한탕하고 집으로 돌아가 새 인생 꾸리려는 마음이라도 있지 않았나. 근데 역시, 어떻게 해도 안 되는 인간이 있긴 있나 보다.


보고 또 봐도, 박청만 캐릭터가 진짜 압권이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을 거라는 의심이 저절로 들었고, 사람 쉽게 안 변한다는 말을 증명하는 인물이었으며, 사기꾼 김형래가 스승 삼아야 하는 거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이들이 잔금을 받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다가, 뭔가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결국은...


완벽하게 한탕 해주기를 바랐던 두 사람은 독자의 기대에 한 번씩 바람 빠지게 했고, 그게 오히려 이 소설을 더 편하고 재밌게 읽게 하는 요소인 듯하다.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목이 뻣뻣해지게 긴장만 하고 읽을 필요는 없지 않나. 이들의 행보를 따라가며 저절로 빠져 읽게 되는 가독성도 좋고, 뒤늦게 화해하고 잘 살아가길 바라는 한 가족의 미래를 그리기도 하면서, 인간의 밑바닥을 보는 기분에 씁쓸해지는, 여러 감정을 한꺼번에 느끼게 된다. 그래도 교훈은 역시, 인간 쉽게 안 변한다는 진리, 사람 고쳐서 쓰기 어렵다는 가르침, 누구나 자기 욕망을 어느 정도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근데 정말 궁금하긴 하다. 인간은 원래 이런 건가.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밌을 것 같다.



#2인조 #정해연 #엘릭시르 #문학동네 #소설 #추리소설 #한국소설 #장르소설

##책추천 #여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