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비실
이미예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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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뭘 좀 배워보려고 다니던 평생교육원의 수업에서 강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떤 일도 쉽지는 않겠지만, 하다 보면 이 일이 재미있기도 할 거다. 일은 그렇게 배우고 적응하면서 할 수 있지만, 사람 때문에 힘든 건 자기가 가르쳐 줄 수 없으니 그것도 현명하게 잘 해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이라는 그 유명한 말을 그 강사에게서 또 듣게 되는 그 순간,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수강생은 없었다. 다른 수강생들도 이미 사회생활 오래 해 오던 사람들이었고, 나 역시 그 수업을 받기 이틀 전까지 일하다가 간 거였는데, 어떤 또라이 때문에 나를 포함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보니 또 무섭기도 하다.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또라이였던 적은 없었을까?


누가 가장 싫습니까?


공용 얼음 틀에 콜라 얼음, 커피 얼음 얼려놓는 사람.

20여 개의 텀블러 보유, 공용 싱크대에 안 씻은 텀블러를 늘어놓는 자칭 환경 운동가.

정수기 옆에 사용한 종이컵을 버리지 않고 쌓아두는 사람.

인기 많은 커피믹스를 잔뜩 집어다 자기 자리에 모아두는 사람.

공용 전자레인지의 코드를 뽑고 무선 헤드셋을 충전하는 사람.

탕비실에서 중얼중얼 혼잣말하는 사람.

공용 냉장고에 케이크 박스를 몇 개씩 꽉꽉 넣어두고 집에 가져가지 않는 사람.

공용 싱크대에서 아침마다 벼락같은 소리를 내면서 가글하는 사람.


이들과 함께 탕비실을 쓴다고 상상해보십시오.

누가 가장 싫습니까?” (7~8페이지)


첫 페이지 첫 줄에서부터 갑자기 등장하는 질문에 당황했다. 누가 가장 싫으냐고 묻는 걸 보니, 다 싫은 데 그중에 누가 더 싫은지 골라보라는 질문이 유쾌할 리 없다. 그런데도 질문에 집중하면서 굳이 한 사람을 찾아내려고 내 눈이 바빴다. 글쎄, 듣고 보면 누구 하나 싫어하지 않을 수 없게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어디에서나 해도 되는 행동이 아니었다. 공용 공간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걸까?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은데, 마치 무시하듯 탕비실을 개인 공간처럼, 타인과 공유하는 곳이 아니라는 듯 뻔뻔하게 행동하는 이들의 특성을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아직도 이들 중 가장 싫은 사람을 찾아내지 못했다. 한 사람만 고를 수 없게,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다. 이 인물들이 이 소설 속에 다 있다.


합숙 리얼리티 쇼 탕비실에 섭외된 인물들의 특징이다. 이 리얼리티 쇼에 섭외된 이들은, 함께 탕비실을 쓰기 싫은 사람으로,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뽑은(?) 탕비실 빌런들이었다. TV 쇼에 섭외된 것을 즐거워해야 하는데, 섭외된 배경이 이러하니 난감할 뿐이다. 매일 얼굴 보고 마주한 이들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확인한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배신감에 치가 떨린다. 평소에 동료들에게 베풀고 싶었던 친절과 배려가, 오히려 그들에게는 불편했다는 걸 이렇게 확인하게 된다. 쇼의 출연자들은 실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얼음은 동료들의 인터뷰에 화가 났다. 그가 탕비실 냉장고의 얼음 틀에 콜라, 커피를 얼려놓은 이유는 동료들에게 베푼 호의였다. 그런데 그 호의가 오싹한 소름으로 전달되었다는 걸 알고 나니, 회사로 돌아가 동료들을 어떻게 봐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런 감정도 잠시, 그들이 왜 자기를 탕비실의 빌런으로 뽑았는지 확인하려면 이 쇼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이유를 알아내야 했다. 이제부터는 쇼의 출연자들과 싸우는 전쟁이었다.


굳이 탕비실이라는 공간이 아니어도, 이와 비슷하게 공용으로 사용하는 공간에서 알게 모르게 일어나는 갈등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호불호가 나뉘기 마련이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뒤돌아서면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다른 곳에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야지. 그렇다고 이런 판단이 옳기만 한 걸까. 회사에서 보내는 많은 시간 중에 탕비실에 머무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공용 공간이면서 사적인 공간도 될 수 있기에, 숨 막히는 업무 중에 잠시 쉬어가는 곳이 될 것 같은데, 이곳에서 불과 몇 분씩 마주치는 사람과 어느 정도로 소통할 수 있을까. 그저 잠깐이다. 냉장고에 케이크를 몇 개씩 넣어두니 내가 보관해 두고 싶은 음식 하나 넣을 공간이 없어서 미워지고, 맑은 얼음이 필요한데 왜 굳이 콜라나 커피를 얼려놓아서 남는 얼음 틀이 없게 하는 건지, 다른 사람도 있는데 혼잣말인 듯 아닌 듯 왜 자꾸 중얼거리면서 거슬리게 하는지, 다 같이 먹으라고 놓아둔 것을 왜 자기 몫인 것처럼 잔뜩 집어 가고 있는지 모를 사람들. 이들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고 불만을 품지만, 정작 우리는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아갈 만큼 가깝지도 않고 시간이 여유롭지도 않다. 그래서 타인이 불편해할 행동을 하는 나를 이해시키며 살아가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전쟁 같은 이 쇼에서 이기고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은, 게임의 규칙을 어기며 힌트를 얻는다. 힌트라고 하는 건, 출연자의 동료들이 등장하는 인터뷰였는데, 말이 인터뷰지 뒷담화에 가깝다. 거기에서 주인공 얼음은 충격을 받는다. 내가 배려하고 호의를 베풀려던 행동이, 상대에게는 불편하고 소름 돋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다. 동료들에게 그의 행동은 호의가 아니라 섬뜩한 공포가 될 수도 있었다. 그걸 왜 몰랐을까. 서로 그 상황과 문제에 관해 얘기할 시간도 없었다. 그러니 주인공은 주인공대로 계속 해 왔던 호의를 베풀고, 동료들은 주인공의 행동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굳이 말을 꺼내지 않으면서 자기들끼리 불쾌함을 토로하는 정도로 관계를 이어갔다. 그런데 말이다. 이게 주인공이나 동료들이나 어느 한쪽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게, 서로 얼굴 붉히면서 해야 하는 얘기를 쉽게 꺼낼 수 있었을까? 내 취향을 어떻게 알았는지도 모르게 이미 불쾌한 감정이 생겼는데, 좋은 말로 이유를 물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탕비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조심스럽게 의견을 전달할 수는 있었을 것도 같다. 그냥 얼음을 얼릴 수 있게 얼음 틀을 남겨두세요. 다른 사람도 보관할 공간이 필요하니 케이크를 계속 쌓아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이 마실 커피믹스를 남겨주세요. 등등.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적어서 냉장고에 붙여두었다면, 이 공용 공간에서 누군가가 느끼는 불편함을 알게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그렇게까지 했는데 씨알도 안 먹히는 인간이라면 그냥 탕비실의 빌런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겠지만.


일반 회사에서 탕비실의 빌런이라고 찍힌 사람들이 출연자였지만, 그 출연자 안에는 탕비실의 빌런이 아닌 인물이 숨어 있다. 이 쇼에서는 그 술래를 찾아야, 우승하고 상금을 획득할 수 있다. 술래가 누굴까 하면서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다. 이 게임의 술래를 추적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힌트로 얻게 되는 각 출연자의 뒷담화는 의외이기도 했고 씁쓸하기도 했다.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진짜 서로를 모를 수도 있다는 게, 서로를 알아가겠다는 의지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시간에 쫓겨 굳이 타인의 마음까지 다 알면서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건 아니었는지 고민이 되더라. ‘살면서 싫어하는 사람을 더 알아보려고 한 적이 없다는 주인공의 말처럼, 굳이 싫어하는 사람까지 더 알아가면서 살아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싫어하는 사람을 더 알아가야 할 필요가 없었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를 알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아서 싫어하게 되었던 걸까.



#탕비실 #이미예 #도서출판한끼 #소설 #한국소설 #한국문학

##책추천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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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7-12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후 생각만 해도 홧병이........

저는 그거 있어요.
제자리에서 양치질 하면서 화장실 가는 사람을 정말 싫어합니다.
양치를 아에 안하는 사람보다 더 싫어요.....

stella.K 2024-07-12 17:48   좋아요 1 | URL
거 예전에 무슨 드라마에 나왔던 장면이었던 것 같은데...
한 자리에서 두 가지 일을 해결하니 능률적...? ㅋㅋ

그런데 물감님은 그런 사람을 어찌 아시나요? 화장실 사용은 1인1체제인데...
너무 짖궂나요? 제가 궁금한 건 못 참아서리...ㅠㅋ

물감 2024-07-12 16:48   좋아요 1 | URL
그런 사람이 누굴 말하시는 거에요? 양치 안하는 사람?

stella.K 2024-07-12 16:55   좋아요 1 | URL
헉, 제자리에서 양치질 하면서 화장실 가는 사람이라고 쓰셔서
그 두 가지일을...? 그랬던 건데 뭔가 혼선이 있나 봅니다.

stella.K 2024-07-12 17:33   좋아요 1 | URL
아, 그러니까 자기 책상에서 양치질하다 화장실 가서
나머지 일처리를 하는..! 이제 이해했네요.
미안합니다. 제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봅니다.
화장실 간다는 표현이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서 오버했네요.
저는 아직 그런 사람은 못 봐서요. 싱크대 개수대에서 양치질하는 사람은 봤지만.
둘 다 혐오스럽긴 하죠.

이거 남의 서재에서 뭐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유, 민망해라. 어쩐담...ㅠ

물감 2024-07-12 17:40   좋아요 2 | URL
정확히는 양치질을 하면서 복도를 누비는 걸 말해요. 화장실 붐벼서 시간 아낀다고 그러는 거 같은데 참 보기 그렇습니다... 저는 자주 봤거등요 😅

구단씨 2024-07-12 19:14   좋아요 2 | URL
물감님. 그런 사람, 저인 것 같아요. ㅠㅠ
제가 밖에서는 안 그러는데, 집에서는 양치하면서 온 집안을 활보하고 다녀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옆지기가 아무 말도 안 해서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진짜 별로였을 것 같아요. 반성하고 있어요...
오늘부터는 꼬옥~ 양치는 화장실 안에서 다 하고 나오는 걸로 할게요. ^^

stella.K 2024-07-12 19:51   좋아요 1 | URL
헉, 오늘 제가 여러가지로 실수를 저지르는가 봅니다.
이번엔 구단님께 걸리네요. 제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사람 저마다 사정이 있고 습관이라는게 있는데. ㅠ 미안합니다. 제 말 신경 쓰지 마세요. 잊어주시면 더 고맙고요. 😢 좋은 주말 보내세요.

stella.K 2024-07-12 1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긴 하죠. 뒤통수가 가려운 적. 혹시 내가하는...?
그런 적이 있을까 봐 참긴하는데 제가 또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이라 어느 날 폭발하기도 하죠.
그래서 꼰대란 소리 듣기도 하고.
빌런이 따로 있는 건 아닐 것 같은데...
암튼 이 소설 흥미롭네요. 나중에 함 봐야겠어요.^^

구단씨 2024-07-12 19:15   좋아요 2 | URL
이 책 소개 페이지에서 빌런이라고 표현했기에, 저도 따라서 써봤습니다만,
보통은 서로 다른 방식에서 시작되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
 



이 아파트의 다른 집을 본 적이 있다.

아무래도 넓은 편이 아니다 보니, 집 안 곳곳에 수납 공간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앞뒤로 발코니가 있는데, 공간을 아주 꽉꽉 채워서 사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수납장을 비치해 두고 이런 저런 것을 다 넣어두어야 했겠지.

안 할 수가 없다. 신축 아파트처럼 팬트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공간이라,

머리 써 가며 자기만의 수납법을 발휘할 수밖에.


나도 처음에는 앞쪽 발코니에 수납을 해볼까 하다가,

이것 저것 하나씩 쌓아두다 보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답답할 것만 같더라.

수납 공간이 아무리 부족해도 마음의 안정을 포기할 수 없어서, 

절대로 앞쪽 발코니에는 빨래 건조대 외에는 아무 것도 두지 않았다.

아직은...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다가, 천둥과 번개로 효과음도 넣어주다가, 다시 약한 비가 내리다가, 난리다.

은행 일을 며칠 동안 미뤄두기만 하다가, 더는 미룰 수 없어서 나가려는데,

내리는 비가 괜히 아까워(?) 보이는 거다.

창을 열었더니 바로 발코니로 들어오는 빗물.





앞쪽 발코니에 유일하게 존재하고 있던 알로에 화분을 열어둔 창 쪽으로 옮겨 두었더니, 

비를 맞고 더 푸릇해진 것 같다.

뭔가 키우는 걸 잘 못 해서 화분도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알로에는 관상용이 아니라 상처 치료용으로, 엄마 집에서 하나 가져다 두었다.

상처와 염증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몸소 경험한 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존중 받는 화분 하나.

수돗물 보다는 빗물이 더 영양이 있다고 들었는데, 장마 기간에 빗물 포식하기를.




...읽는 중...

#탕비실 #샤워 #엄마만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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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한 미식가 - 나를 돌보고 남을 살리는 초식마녀 식탁 에세이
초식마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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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먹을까?”

점심과 저녁 사이에 밥을 먹고 나니 정작 저녁을 먹어야 하는 때가 되자 애매했다. 밥을 먹자니 차리기가 귀찮고, 식사를 배달시키자니 굳이 배달로 밥을 또 먹어야 하나 싶은 마음. 만만한(?) 게 치킨인 걸까. 선뜻 입 밖으로 나오는 메뉴가 치킨이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왔음에도 굳이 신경 쓰지 않고 먹어왔던 닭이, 치킨으로 생명을 다하기까지의 시간을 이 책에서 다시 듣고 보니, 치킨이 다르게 보인다. 치킨은 닭튀김이라기보다 덩치만 큰 병아리 튀김입니다. 품종개량이 되지 않은 병아리는 성체가 되기까지 5개월이 걸립니다. 생명 공학 기술의 발전은 성장에 필요한 5개월을 단 5주로 줄였습니다. 한국에서만 매월 9,000만 명()이 넘는 닭, 아니 병아리가 생후 2개월에 접어들면 고기로 죽습니다. ‘치느님으로 칭송받고 11닭이 기본인 양 불호 없는 식재료로 전시됩니다.”(28페이지)


충분히 들어왔던 많은 사람의 비건한 삶이 나와 닿지 않아서,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조금 막막했다. 그러면서도 미식을 즐기는 비건의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막상 만나본 이 책은 간단하면서도 비건한 미식이 가능한 초간단 레시피를 알려주기도 했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살게 되는 저자의 평범한 일상과 생각을 담은 에세이이기도 했다. 어느 장르로 구분하지 않아도 충분히 빠져들면서 읽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가진 선입견을 많이 무너뜨려 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살이 막 찌기 시작했고, 말로는 다이어트를 외치지만 운동도 식사조절도 하기 싫은 욕심은 다이어트와 점점 멀어졌다. 충분히 먹으면서 살을 뺄 수 있다는 여러 가지 방법을 보면서 든 생각은, 귀찮다는 거였다. 저렇게 만들어 먹으려면 이런저런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너무 번거롭게만 보였다. 그래서 건강하게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저자가 행하는 비건한 식탁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간단하게 먹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데, 굳이 비건을 해야만 하는지 모르겠어서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처음에 소개했던 치킨으로 나오는 닭의 수명부터, 동물성 재료로 만들어지는 많은 음식을 보면서 마음이 조금은 달라졌다. 꼭 이렇게만 먹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음식을 먹는다는 건, 단순히 입으로 넣어서 허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었다. 저자에게 부엌은 요리하는 공간이자, 일상의 빈자리를 채우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혼하고 이사하고, 새로운 공간에 새 생활을 열면서 마음을 달래는 일이었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방법의 하나가 요리였고, 비건한 식탁이었다. 그런 저자에게도 주변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에는 음식이 있었다. 특히 2장에서 반성하면서 읽게 되었던 부분이 있는데, 월드컵 경기가 있던 날 치킨집은 불이 나는데, 치맥 대신 바삭하게 익힌 김치전과 맥주를 먹었다는 장면에서 많이 생각했다. 그러네, 국가대표 스포츠 경기가 있는 날 왜 치킨이 필수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꼭 그날 치킨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국가대표를 응원하는데 치킨이 아니어도 되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테두리가 바삭하게 익어서 마치 튀김처럼 찢어지는 김치전을 갑자기 먹고 싶다.


생후 6개월의 돼지가, 겨우 계절 두 개를 넘기고 도살장으로 끌려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동네의 어느 고깃집에서는 그 6개월 동안 키워진 돼지가 가장 맛있고, 그 맛있는 돼지가 준비된 가게라는 문구도 본 적이 있다. 그걸 보고서도 고개만 끄덕였다. 맛있는 돼지갈비를 먹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 하나로 그 집을 자주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저자가 소개하는 동물성 식재료의 운명을 하나씩 듣고 있다 보면, 정말 이렇게 먹는 습관이 틀린 게 아닌 건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는 거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비건으로 살아갈 자신은 없다. 가끔은 치킨도 먹으면서 살고 싶은데, 감자보다 짧게 살다가 치킨이 된다는 닭, 계절 두 개를 견디고 식탁에 오른다는 돼지 이야기에 생각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의 경험과 이 책에 담긴 레시피를 보고 다다른 지점은, 완벽한 비건보다 비건의 삶을 인정하는 것과 비건 지향인으로 지내보는 것도 좋겠다는 소심한 다짐으로 무거운 고민을 줄여보고자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독자가 나와 비슷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은 건, 저자의 레시피가 하나도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번거롭지도 않고, 냉장고에서 쉽게 발견하는 재료로, 100퍼센트가 아니어도 그 음식의 맛을 내면서 먹을 방법이 있었던 거다. 남은 채소들로 소스를 만드는 장면에서는 무릎을 쳤다. 괜히 남은 채소들 상해가는 거 보다가 버리기도 여러 번인데, 쓰고 남은 채소를 굳이 남겨두지 말고 이렇게 소스로 만들어서 다른 음식에 함께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한 음식으로 건강한 일상을 보내는 게,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같다. 살이 찌고, 몸은 무거워지고, 그래서인지 피곤함이 더 찾아오고 병원에 갈 일도 많아지고 있다는 걸 느끼는 중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만족할 만한 비건 생활로,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싶은 바람이다.


#한겨레 #비건한미식가 #초식마녀 #하니포터8#하니포터 #한겨레출판

#책추천 #책리뷰 #문학 #에세이 #비건레시피 #건강한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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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알라딘 25주년이라네.

해마다 반복되는 추임새, 벌써~~~

하긴 상반기에도 '벌써 3월이네' 그랬고, 지금도 '벌써 7월이네' 그러고 있다.

에휴...


갈수록 책을 안 읽긴 하나 보다. 알라딘 기록 보니 언젠가부터 그래프가 급 하향세.

주식 샀는데 이런 그래프라면 엄청 좌절했겠네.



다른 알라디너분들에 비하면 천백만원의 책값은 뭐 책값도 아니겠지만,

그리고 수험서나 교재는 포함 안 되는 집계라고 하는데, 그래도 많이 사긴 했다. 

중고로 많이 팔기도 했네. 

틈틈이 금을 사두었으면 지금 더 기분이 좋았겠지만... @@


#25주년당신의기록 #당신의기록영수증



어쨌든, 항상 읽고 싶고, 항상 사고 싶은 게 책이려니...

완독이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이 책들 펼쳐 봄.


#어떤동사의실종 #한승태 #mymy강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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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릴리언트 블루 (Brilliant Blue)
함지성 지음 / 잔(도서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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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만남은 여행의 즐거웠던 시간을 기억하듯 그곳에 남겨두고 오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굳이 기대하지 않아도 좋을, 여행이 끝나면 현재의 생활로 가져와서 감정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계산(?)은 더 짙어졌고, 오늘을 살아내느라 바쁜 인생은 이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얘기하곤 했는데... 이 소설을 읽다 보니 잠깐, 아주 잠깐 한 번쯤은 그냥 여행 자체로 생각하면서 떠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니까, 여행지에서의 만남을 꿈꾸지도 않지만, 혹시 여행지에서의 만남이 있더라도 거기 놔두고 와야만 하는 결론을 미리 내지 않아도 되는 일 아니었느냐고 말이다.


수키는 남프랑스에서 결혼하는 친구의 초대를 받았다. 이 친구들은 몇 년 전 보라카이에서 만난 친구들이고, 이들의 초대로 남프랑스에서 지내던 시간도 있었다. 그때, 리버를 만났다. 파란 눈의 중심에 노란빛이 섞인 그와의 시간은 사랑이 되었고, 그와 함께 뉴욕으로 돌아온 그녀는 이 사랑이 영원할 거로 믿었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던 중 선뜻 선택하지 못할 문제에 이르렀고, 그렇게 헤어졌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흐르고...


친구의 결혼식에서 그를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나만 하는 건 아니지? 수키가 그와 연인이기에 앞서 그는 결혼 당사자의 친구였으니, 당연히 초대받을 수 있는 일이니까. 그래서 의외의 망설임을 겪어야 했다.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고 싶은데, 그와 만남이 어색할까 잠깐 주춤거렸다. 단순히 그의 얼굴을 다시 보는 게 어색해서만은 아니다. 그와 헤어진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순간순간 그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은 튀어나왔다. 어느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 때문에, 어느 음악 바 앞에서, 어떤 음식을 두고도. 그녀의 옆에 다른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줄곧 그녀의 온전한 사랑을 갈구하고 있음에도 리버의 잔상은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친구의 결혼식에 왔으니, 즐거우면서도 불안한 이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두근거리면서, 떨리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다시 봐도 어떻게 할 거라는 생각도 계획도 없는데, 보고도 싶고 안 보고도 싶고. 모든 상황과 순간에서 갈팡질팡하게 되는 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


혼자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을 때면 항상 데리러 와 내 것과 똑같은 차를 시키던 그 사람이. 잔이 거의 비워질 때 즈음에 맞춰 책을 덮으면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 내 등을 감싸던 그 사람이.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가기 전이면 꼭 허드슨 강 쪽 부두까지 손을 잡고 걷고 싶어 하던 그 사림이. 이제는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그 사람 따위, 전혀 가볍지 않지만 나는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다. (43페이지)


벽에 박힌 못을 뽑아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처럼, 이 자리에 없는 건 한 사람뿐이다. 서로의 생각이 일치하지 못해서 헤어졌지만, 그렇게 헤어졌다고 슬프거나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인간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이 아픔을 그대로 표현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이만큼 보고 싶고 힘든데 마치 아닌 것처럼,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말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저자는 이렇게 아닌 척하는 게 아니라, 수키라는 인물을 통해 너무 솔직하게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일상에 집중하고 해야 할 공부를 하고 지냈지만, 어느 순간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의 흔적을 가감 없이 들려줬다. 그런 마음 모른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 같아서, 나도 모르게 수키의 감정을 담은 문장을 따라가고 있었다. 오래 전의 어떤 감정, 어려서 그랬다고 변명하기에는 후회가 가득했던 순간들, 조금 양보하지 못해서 감정적으로 대했던 날들을 지금도 기억해 낼 수 있을 정도니까.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쯤 경험했을 그 순간을 소설로 다시 만나니. 웃음도 나지만 아련하기도 하다. 사실 이런 감정을 느끼고 살기에는 오늘이 너무 바쁘지 않은가. 전쟁통에서도 사랑을 한다고 하지만, 나이를 먹고 살아가는 일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우선에 두지 못하게 하는, 어떤 눈치를 챙길 때도 있다. 그래서일까, 스물 전후의 시간을 보내는 수키의 일상에서 돌아가지 못할 시간의 설렘에 두근거렸다. 뭐든 열심히 하면서 실수도 하니까, 그래도 된다는 너그러움을 먼저 보이게 된다. 한 사람의 일기장을 보는 기분으로 읽게 되는데, 그 중심에 로맨스가 있다. 그래서? 친구의 결혼식에 갔어? 리버가 거기에 왔어, 안 왔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그를 다시 만났는지, 만났다면 두 사람은 어떻게 됐는지, 지나간 시간을 묻어두고 각자의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그녀의 오랜 그리움에 대한 답을 얻었는지. 뉴욕, 보라카이, 남프랑스 등 이국적인 배경이 이 소설을 더 특별한 느낌으로 전달하면서, 괜히 수다쟁이가 되면서 읽게 되는, 오랜만의 가슴 떨림이, 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배가 되게 한다.


한 가지 궁금증만 보고 이 소설을 대했다. 처음 소개 글에서 언급된 헤어진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에, 두 사람이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하는 결말만 파헤치고 싶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재회 여부를 확인하기까지 서술되는 한 사람의 일상과 그 나이에 해야 할 일들에 집중해서 살아가는 날들, 이국적인 풍경을 들려주는 재미에 빠져있다 보면, 어느새 결말에 도착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색다른 장소를 문장으로 여행하는 기분, 잊고 지냈던 두근거림을 마주하며 잠깐 설렜던 즐거움이 가득했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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