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한 미식가 - 나를 돌보고 남을 살리는 초식마녀 식탁 에세이
초식마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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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먹을까?”

점심과 저녁 사이에 밥을 먹고 나니 정작 저녁을 먹어야 하는 때가 되자 애매했다. 밥을 먹자니 차리기가 귀찮고, 식사를 배달시키자니 굳이 배달로 밥을 또 먹어야 하나 싶은 마음. 만만한(?) 게 치킨인 걸까. 선뜻 입 밖으로 나오는 메뉴가 치킨이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왔음에도 굳이 신경 쓰지 않고 먹어왔던 닭이, 치킨으로 생명을 다하기까지의 시간을 이 책에서 다시 듣고 보니, 치킨이 다르게 보인다. 치킨은 닭튀김이라기보다 덩치만 큰 병아리 튀김입니다. 품종개량이 되지 않은 병아리는 성체가 되기까지 5개월이 걸립니다. 생명 공학 기술의 발전은 성장에 필요한 5개월을 단 5주로 줄였습니다. 한국에서만 매월 9,000만 명()이 넘는 닭, 아니 병아리가 생후 2개월에 접어들면 고기로 죽습니다. ‘치느님으로 칭송받고 11닭이 기본인 양 불호 없는 식재료로 전시됩니다.”(28페이지)


충분히 들어왔던 많은 사람의 비건한 삶이 나와 닿지 않아서,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조금 막막했다. 그러면서도 미식을 즐기는 비건의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막상 만나본 이 책은 간단하면서도 비건한 미식이 가능한 초간단 레시피를 알려주기도 했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살게 되는 저자의 평범한 일상과 생각을 담은 에세이이기도 했다. 어느 장르로 구분하지 않아도 충분히 빠져들면서 읽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가진 선입견을 많이 무너뜨려 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살이 막 찌기 시작했고, 말로는 다이어트를 외치지만 운동도 식사조절도 하기 싫은 욕심은 다이어트와 점점 멀어졌다. 충분히 먹으면서 살을 뺄 수 있다는 여러 가지 방법을 보면서 든 생각은, 귀찮다는 거였다. 저렇게 만들어 먹으려면 이런저런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너무 번거롭게만 보였다. 그래서 건강하게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저자가 행하는 비건한 식탁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간단하게 먹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데, 굳이 비건을 해야만 하는지 모르겠어서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처음에 소개했던 치킨으로 나오는 닭의 수명부터, 동물성 재료로 만들어지는 많은 음식을 보면서 마음이 조금은 달라졌다. 꼭 이렇게만 먹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음식을 먹는다는 건, 단순히 입으로 넣어서 허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었다. 저자에게 부엌은 요리하는 공간이자, 일상의 빈자리를 채우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혼하고 이사하고, 새로운 공간에 새 생활을 열면서 마음을 달래는 일이었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방법의 하나가 요리였고, 비건한 식탁이었다. 그런 저자에게도 주변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에는 음식이 있었다. 특히 2장에서 반성하면서 읽게 되었던 부분이 있는데, 월드컵 경기가 있던 날 치킨집은 불이 나는데, 치맥 대신 바삭하게 익힌 김치전과 맥주를 먹었다는 장면에서 많이 생각했다. 그러네, 국가대표 스포츠 경기가 있는 날 왜 치킨이 필수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꼭 그날 치킨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국가대표를 응원하는데 치킨이 아니어도 되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테두리가 바삭하게 익어서 마치 튀김처럼 찢어지는 김치전을 갑자기 먹고 싶다.


생후 6개월의 돼지가, 겨우 계절 두 개를 넘기고 도살장으로 끌려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동네의 어느 고깃집에서는 그 6개월 동안 키워진 돼지가 가장 맛있고, 그 맛있는 돼지가 준비된 가게라는 문구도 본 적이 있다. 그걸 보고서도 고개만 끄덕였다. 맛있는 돼지갈비를 먹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 하나로 그 집을 자주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저자가 소개하는 동물성 식재료의 운명을 하나씩 듣고 있다 보면, 정말 이렇게 먹는 습관이 틀린 게 아닌 건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는 거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비건으로 살아갈 자신은 없다. 가끔은 치킨도 먹으면서 살고 싶은데, 감자보다 짧게 살다가 치킨이 된다는 닭, 계절 두 개를 견디고 식탁에 오른다는 돼지 이야기에 생각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의 경험과 이 책에 담긴 레시피를 보고 다다른 지점은, 완벽한 비건보다 비건의 삶을 인정하는 것과 비건 지향인으로 지내보는 것도 좋겠다는 소심한 다짐으로 무거운 고민을 줄여보고자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독자가 나와 비슷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은 건, 저자의 레시피가 하나도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번거롭지도 않고, 냉장고에서 쉽게 발견하는 재료로, 100퍼센트가 아니어도 그 음식의 맛을 내면서 먹을 방법이 있었던 거다. 남은 채소들로 소스를 만드는 장면에서는 무릎을 쳤다. 괜히 남은 채소들 상해가는 거 보다가 버리기도 여러 번인데, 쓰고 남은 채소를 굳이 남겨두지 말고 이렇게 소스로 만들어서 다른 음식에 함께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한 음식으로 건강한 일상을 보내는 게,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같다. 살이 찌고, 몸은 무거워지고, 그래서인지 피곤함이 더 찾아오고 병원에 갈 일도 많아지고 있다는 걸 느끼는 중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만족할 만한 비건 생활로,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싶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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