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커피 파푸아뉴기니 쿠아 마운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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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모들 창비만화도서관 7
근하 지음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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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이 관계가 가족이란 이름으로 뭉쳐 있을 때, 눈물이 아닌 웃음이 나려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나아가기 마련이니까. 응원가라도 불러주고 싶은데, 음치박치 내 능력으로는 부족하다. 그래도 이들을 보는 마음은 한없이 다정해진다. 이렇게 서로가 성장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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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관한 1831일의 보고서 문학동네 청소년 60
조우리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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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동반되는 건 원망이다. 감히 이 슬픔을 감당할 수 없어서 아픈 마음을 향할 곳이 필요하다. 너 때문에, 그때 그 이유로 같은 말들. 온전히 내 것임을 알면서도 고통의 순간을 계속 간직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시간은 흐르고 그 슬픔의 농도도 흐릿해질 만한데, 우리는 자주 그 기억을 잊고 싶어서 현실에 충실하고 싶어한다. 밥을 먹고, 학교에 가고, 일을 하고, 오늘 뉴스에 나온 일들을 이야기하며 평범한 오늘을 그리고 싶은 마음. 그런데도 잊고 싶은 기억은 종종 뛰쳐나와 온화하려고 애쓰던 일상을 흩트려 놓는다. 그리워하는 대상을 불러오고, 슬픔의 기억을 소환하며, 그 슬픔 때문에 아픈 오늘의 모습을 마주하게 한다.


소년의 오늘이 그러하다. 5년 전 719. 호텔 그랑블루 1013호에 묵었던 현수의 가족은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것 하나 모자랄 것 없는, 완벽하다고 기억하고 싶던 날이다. 오랜만의 가족 여행은 더할 나위 없었다. 혜진이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호텔의 서비스를 이용하던 부모님은 자리를 비웠고, 현수와 혜진이는 호텔 로비에서 놀고 있었다. 가끔 그랬듯이, 엄마는 현수에게 혜진이를 맡기고 아빠와의 데이트를 즐겼다. 잠깐이었다. 1시간이 될까 말까 한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혜진이가 사라졌고,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실종 아동 전단을 돌리고, 많은 제보에 대한민국 곳곳을 찾아다니던 아빠. 엄마는 슬픔에 빠져 술에 젖어버렸고, 아빠는 혜진이를 찾아다니느라 회사에서 잘렸다. 현수에게는 실종된 동생이 있는 아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학교에서도 누구 하나 말을 걸지 않는다. 현수가 모두에게 친 보이지 않는 벽을 누구라도 느꼈을 테다. 이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은 한결같이 어두웠다.


한 끼 식사마저 어려운 가정환경, 집에 들어가면 헛소리에 술에 빠진 엄마, 일용직 일에 바빠 가끔 집에 오지 않는 아빠. 슬픔은 이 가족에게 자리 잡고 떠날 줄을 모른다. 그런 환경에서 아이가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생각하면 답은 금방 나온다. 무언가 비어있는 듯한 가족 구성원 모두의 생활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저마다 슬픔을 감당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으면서도, 이 가족이 나아질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게 된다. 어떡하지? 이대로라면 누구 한 사람 오늘을 버티기 힘들어 내일이 없는 삶이 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때 현수 주변에 나타난 존재들이 슬픔을 공유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일을 그리게 한다.


TV 프로그램 서프라이즈 얘기만 주야장천 하는 센터의 선생님. 갑자기 다가와 자기 비밀을 털어놓는 같은 반 친구. 누가 버렸는지 모를 유기견까지. 그동안 현수가 봤던,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여겼던 사람들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이들의 등장은 현수를 슬픔에서 건져 올린다. 가끔 이들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알고 나니 그들만의 빈자리를 견디고 있는 거였다. 사랑하는 아이를 잃고, 가족과 물리적인 거리를 느끼는 이들의 슬픔은 현수의 고통을 알아본다. 거기에, 이상하게 우연처럼 겹치는 숫자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5, 7, 19, 1013. 이 숫자들은 잊고 싶던 슬픔의 근원을 불러온다. 사라진 혜진이, 찾지 못하고 슬픔 속만 헤매며 각자의 고통을 견디고 있던 가족들, 어떤 방식으로든 오늘을 건너가고 싶었겠지만, 쉽지 않았다. 그때 현수 곁에 다가온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건, 슬픔과 슬픔이 만나 얼마나 대단해질 수 있는지 증명하는 거였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내게 다가온 슬픔을 어떻게 걷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만 했지, 누군가 나의 슬픔을 그대로 이해해주고 같이 견뎌줄 거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언제나 각자의 삶이 바쁜 사람들이다. 설령 시간이 여유롭다고 해도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온전히 빠져들 수도 없다. 그런데 이 삭막한 세상에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난다. 예상하지 못했던, 제대로 설명할 수 없던 슬픔이 덮쳐왔던 것처럼, 이 슬픔을 공감하며 견디게 해주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다가오기도 한다는 것. 어느 날 혜진이를 봤다고 말하는 어릴 적 친구의 등장처럼, 이제 이 가족은 혜진이를 잃은 슬픔을 정돈해야 할 때가 아니었나 싶다. 혜진이가 사라진 건 사실이고, 이들이 겪는 슬픔도 한없이 깊겠지만, 이대로 슬픔에 파묻혀 있을 수만은 없는 게 인생이니까. 슬픔과 슬픔이 손을 맞잡으니, 서로의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사라진 아이를 잘 보내주는 일, 떠난 아이의 영혼을 붙잡지 않고 현실에 적응하는 일, 간절한 만남을 한 번쯤은 시도해보는 일. 소설 속 누군가의 말처럼, 이제 소수처럼 단단해질 이들의 오늘이 기대된다. 때로는 이런 희망을 품어도 되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듯...


이상하게도, 어떤 슬픔도 우리를 지나가지 않은 적이 없는 듯하다. 지독한 슬픔 속에서도 배가 고프고, 맛있는 냄새를 맡는 코가 제 역할을 한다. 이럴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도 슬픔에 죽을 것 같은데, 내 몸은 평범한 일상 속에 머물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러면서 조금씩 견딜만해 진다고, 누구도 아닌 자신만으로 방식으로. 다행이다. 한없이 불행이 나를 잠식할 것 같아도, 일상을 지속함으로써 슬픔을 견디며 나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여서 말이다.


#얼토당토않고불가해한슬픔에관한1831일의보고서 #조우리 #문학동네 #소설 #청소년소설

#문학 #한국문학 #슬픔을건너는방법 ##책추천 #소수의마법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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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올라오는 애서가들의 책장 사진을 본다. 한쪽 벽면을 다 채우고도 모자라 사방팔방 책장이 자리하고 있는 이도 있더라. 책장에 꽂은 책뿐만 아니라, 좁은(?) 집에서 자리를 못 잡고 바닥에 누워있는 책들, 책장에 이중으로 꽂혀 있거나, 그것도 모자라 방 천장과 책장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서 빈틈을 꽉 채운 책들이 가득하기도 했다. 맙소사! 처음에는 부러웠다. 그들이 그렇게 간직하고 있어야만 하는 책의 무게와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나에게 주어지지 못한 물리적 공간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하지만 그림의 떡이다. 어차피 내가 갖추지 못할 공간이라면 어쩔 수 없다. 내 옆에서 이중 삼중으로 바닥에서부터 쌓여 있는 책들을 내보내는 수밖에. 한 번씩 책을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그동안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애서가는 아니었구나. 그냥 책을 읽는 게 좋아서, 읽는 그 순간을 만족하면 되는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그래서 지금은 책이 얼마나 있느냐고? 글쎄, 세어보진 않았지만, 500권쯤 되려나? 그중에서도 중고로 판매하려고 올려놓은 책이 100권이 넘는다. 소장한 책 300권쯤에서 1년 사이에 불어나서 그 정도다. 항상 결심한다. 책은 그저 읽는 게 좋은 것으로, 가진 책은 300권 이하로 만들기. . 이게 쉽지 않다는 건 우리가 모두 아는 일. ㅠㅠ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을 읽으면서 애서가의 기준을 만났다. 저자의 마법에 맡기고 싶은 책이 있는 정도라면 분명 애서가일 테다. 저자의 직업은 망가진 책을 되살리는 일이다. 완벽한 복원이 아니라, 그의 상호처럼 책을 수선한다. 찢어지고 떨어져 나가고, 곰팡이가 잠식한 책들. 그 정도로 망가졌으면 그냥 버려도 될 거로 생각했지만, 그들에게는 그 책을 계속 갖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시간, 기억, 감정이 담긴 책들이었다. 버린다고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망가진 책을 계속 보고 있어야 하는 게 마음 아플 정도였다. 계속 간직해야 할 그 책을 지금보다는 낫게, 제법 온전한 모습으로 소장하고 싶은데 어떻게 수술해야 하나 고민할 때 저자의 두 손이 마법을 부렸다. 약간의 흉터는 남아 있을지언정, 거의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켰다. 때로는 처음과는 전혀 다른 옷을 입혀 새로운 느낌으로 재회하게 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해? 보면 볼수록 부러워죽겠다. 간직하고 싶은 책을 의뢰하는 사람들도, 그 책들을 정성으로 수선하며 회복시켜 퇴원하게 하는 저자도. 마음이 닮았고, 닿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만약 이 책을 읽고 계신 분들이 나에게 책 수선을 의뢰한다면 어떤 책을 맡기실지 궁금하다. 어린 시절 즐겨 보았던 동화책?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기 위한 책? 부모님의 유품? 수집용 책?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254페이지)


가장 먼저는 책을 수선한다는 접근이었다. 옷이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핏이 살지 않아서 수선하곤 하는 일반적인 생각이 책에 미친다는 게 놀라웠다. 아니, 오히려 책을 대하는 마음이 근본적인 관심까지 다가가게 하는 건 아닐까. 책을 수선하기 위해서는 그 책을 만드는 종이까지 잘 알아야 한다. 종이의 질감, 형태처럼 그 습성을 알아서 어떤 파손에 어떤 방법으로 구원해야 하는지 배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책이 망가졌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책을 구성하는 종이의 상처가 시작인 거다. 종이가 찢어지고, 색이 바래고, 때가 타고, 종이에 인쇄된 그림이 변형되는 일이 모두 책에 난 상처다. 그것을 하나하나 살피고 어떻게 고쳐야 할지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집도한다. 호흡을 한번 가다듬고, 온 정신을 집중해서 작은 틈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고치다가 망한 책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도 없으니까. 죽은 환자를 살리는 의사는 없지 않은가. 오직 단 한 번의 시도로 모든 것을 마무리해야 한다.


의뢰를 받은 한 권의 책을 수선하는데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모든 걸 손으로 해내야 하니, 어떻게 망가졌는지 일일이 확인하면서 한 장씩 회복하는 일이 간단하지 않았을 거라고 저자의 글로 알게 됐다. 어렴풋이 그럴 거로 생각하긴 했는데, 이 정도의 정성과 애정이 담겨야 할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돈으로 주고 살 수 없는 게 의뢰인이 들고 오는 책에 스며들어 있었으니, 수선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으리라. 할머니가 곱게 써 내려간 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30년이 넘고 심하게 곰팡이가 핀 앨범을 아내에게 깜짝 선물하고 싶다고, 어릴 적 아이가 애착하며 읽던 책을 계속 소장하게 해주고 싶다고, 대대로 물려주게 될 것 같은 낡은 성경책을 튼튼하게 만들고 싶다고, 이제는 보기 어려운 종이로 된 백과사전을 회생시켜달라는 것까지. 사연과 책이 너무도 다양했다. 어디 책뿐인가. 모양이 다 다른 액자의 뒤판을 고쳐달라는 의뢰는 의외였다. 테두리가 뜬 종이 책갈피를 고치고 싶다는 사람, 애정하는 연예인의 굿즈가 상해서 속상했던 이도 있었다. 그래, 이것도 책이니까. 종이로 만들어진 것이니까.


의뢰인들 대부분이 ‘~ 이런 건 의뢰해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물어오며 그 책과 사연을 들려주었다. , 정말이지, 들으면 들을수록 저자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저자가 아니면 이 슬픔을 해결해줄 사람이 없었을 테니까. 의뢰인 모두에게 그 책을 꼭 간직해야만 하는, 망가져서 아픈 마음을 회복시켜야 할 이유가 있던 거다. 저자 역시 의뢰를 받고, 오랜 시간을 들여 수선하고, 의뢰인에게 되돌려 줄 때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잘 고쳐진 책을 받고 한없이 기뻐하는 그 얼굴을 보며 같이 기뻐하는 마음이 드는 것. 작업하면서도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있었을 듯하다. 마치 자기 책인 것처럼, 잘 고쳐서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책의 구석구석을 손보고 있었겠지? 내 책도 아닌데, 내가 고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마음을 잘 알 것 같아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뭉클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떤 기억은 이렇게 책에 담긴 채로 간직하게 된다. 저자는 그렇게 기억된 순간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다. 더 잘 기억할 수 있게 저자의 손길이 돕는다. 새것이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서.


찢어진 종이를 붙이고, 무너진 책등을 바르게 세우고, 사라진 조각을 채우면서 책이 잃어버렸던 기억을 회복시켜 주고, 새로운 커버나 지지대, 혹은 케이스를 만들어주며 책에게 새로운 시간을 약속하다 보면 사람의 인생처럼 책에도 한 권 한 권 각자만의 책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사연들과 파손된 책과 주인의 추억, 그 책이 지나온 시간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165페이지)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항상 같은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까? 점점 책을 읽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 책마저 전자책이 대신하고 있다. 책이 아니어도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건 너무 많다. 그런데도 종이책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고, 미래의 어느 날에도 책장을 넘기고 있을 것만 같다. 그 오랜 세월을 견디려면 종이책도 튼튼해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사람의 손길이 닿는 종이의 수명은 어떻게 보관하고 돌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너무 많이 읽어서 책의 귀퉁이가 닳았거나, 잘못 보관해서 틀어졌거나, 약한 접착으로 낱장이 되어버렸거나. 책이 훼손되는 이유도 너무 많지만, 망가져 가는 책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저자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 닳고 찢어지고 분리되는 걸 보면서 아플 독자의 마음도 같이 치료한다.


어떤 기록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퍼져서 같은 감동을 만들기도 한다. 저자에게 의뢰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그들의 사연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다른 경험으로 같은 감동을 알게 하는 게 사람의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가끔 엄마가 벽의 달력을 찢어서 뒷면에다가 방송에서 나오는 요리의 레시피를 흘려 적는 걸 볼 때마다, 저걸 언제 한번 다 정리해서 노트로 만들어야 하는데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엄마만이 낼 수 있는 손맛을 기록해두고 싶기도 했다. 마음만 그렇지 여전히 나는 그 마음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지만, 저자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게으름을 조금은 다그치고 싶어진다. 읽으면서 자꾸만 소박한 내 책장을 둘러보게 된다. 이 책 중에서 나는 어떤 책을 간직하고 싶은지, 혹시라도 사라지면 가슴 아파질 책이 있는지, 잘 보관했다가 누구에게 주고 싶은 책은 있을지...


의뢰인의 이야기 사이 사이에 책 수선가인 저자 이야기가 채워져 있다. 원래 순수미술과 그래픽을 전공하던 저자는 미국 유학하였을 때 이 분야를 처음 접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책 수선 일을 하며 좀 더 깊게 이 분야를 체험했다. 학교 지하의 책 보존 연구실에서 보낸 3년여의 세월이 오늘 저자가 이 일을 더 의미 있게 하는 발판이 되었으리라. 가장 기본적으로 하는 칼질, 풀질, 종이의 특성을 이해하면서, 도서관의 많은 책을 차곡차곡 수선해오면서 쌓은 경험이 이 작업의 섬세함까지 갖추니 더할 나위 없어 보였다. 기초부터 탄탄하게 다져온 이의 능력이겠지. 듣다 보면 책 수선이라는 게 간단하지 않았고, 그 범위가 넓었다. 종이에서부터 종이를 바탕으로 파생한 많은 것이 저자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어쩌면 이 책 수선의 진짜 감동은 내가 직접 의뢰하고 고쳐진 책을 돌려받는 순간을 경험하지 않으면 다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 책에 담긴 많은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책에 시간과 추억과 감동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나는 책 수선은 책이 진화하는 방법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원본의 외형과 아주 똑같지는 않을 수 있지만, 비록 원본에는 없던 다른 구조가 덧붙을 수도 있지만, 파손된 부분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어서 다가올 앞으로의 시간들을 잘 견뎌낼 수 있게, 그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만드는 일. 그런 의미에서 나는 책은 수선을 통해 진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271페이지)


다 읽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죽어도 놓지 못할 한 권의 책을, 이 많은 책을 꼭 소장해야 하는 이유도 찾지 못했다. 여전히 책을 사고 읽고, 되팔거나 기증하며 책장에서 내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책을 아끼고 사랑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저자를 찾은 의뢰인들이 쓸어주고 만져주고 고쳐주면서 아끼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그저 읽는 그 순간이 더 애틋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나에게는 왜 이런 감동을 주는 책이 없을까 아쉽고 서운했다. 나는 다른 이들에 비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구나 싶어서 부끄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간직하고 싶은 책이 없다고, 쉽게 책을 사고 내보내고 한다고 해서 책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므로, 지금 이 정도의 마음도 썩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혹시 모르지, 언젠가 심하게 훼손된 책을 들고 저자를 찾아갈지도. 이 책을 보고 있으면 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고 말하면서 간절한 회복을 의뢰하며 어떤 시간을 부르고 있을지도. 수술이 잘 된 책을 바라보며 흐뭇해할 내 표정을 상상하는 일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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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8-10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구단씨 2022-08-18 00:0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책으로 담아낼 수 있는 좋은 이야기가 많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

이하라 2022-08-11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구단씨님^^
편안하고 기쁜 시간 되세요.

구단씨 2022-08-18 00:07   좋아요 0 | URL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 책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좋았어요. ^^

thkang1001 2022-08-11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구단씨 2022-08-18 00: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일주일의 절반이 가고 있네요.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기를. ^^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보통날의 그림책 1
마리야 이바시키나 지음, 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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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다양한 감정과 많은 언어가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인간의 마음이, 어떤 상황을 표현하고 싶은 단어가 묘할 때가 있다. 이 마음을 정확히 표현하고 싶은데 적절하지 않은 단어로 채우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딱 맞는 단어를 찾아낼 자신도 없어서 얼버무리기 일쑤였던 순간들. 한국인으로 한국말을 사용하는 내가 지금 이상의 표현을 하고 살아갈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나는 모자란 표현으로 내 감정을 말하고 있겠지. 그래서 이런 책을 만나면 신기하다. 막 가슴이 뛰면서도 차분해진다. 세상에 이런 말들이 실제로 있구나 싶어서 말이다.


세상 모든 언어에는 복잡한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들이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우연처럼 내가 하고 싶은 말에 딱 맞는 단어를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단어들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고, 또 이렇게 찾아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게 대부분일 것 같은데, 작가는 어떻게 이런 단어들을 수집해서 모아 놓을 수 있던 건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마냥 신기하다. 그 신기함을 살짝 뒤로 밀어놓고 보면, 우리에게는 이런 단어가 필요했는지도 모르지. 그 어떤 순간에도 잘 표현할 수 있는 만족감까지 들 것 같다.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앞으로 만나게 될 어떤 특별한 순간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줄지도. 어느 나라의 말이라도,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우리는 느끼는 감정 그대로 말하고 있다는 거니까.



히라이스(hiraeth : 영국)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 이 단어를 보니까 자꾸 생각난다. 그 마음은 분명 그리움인데, 그리움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순간. 그 그리움은 그곳일 수도 있고, ‘그때일 수도 있다. 오래전 추억이 남은 장소를 찾고 싶거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자꾸 생각나거나 할 때. 최근에 이 생각을 참 자주 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건지, 아니면 여러 가지 상황을 머릿속에 담고 있느라 자꾸만 과거의 어떤 것을 떠올리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면 좋을 게 없다고 여기면서도, 한 번씩 이렇게 떠올리는 순간이 좋다는 거. 알 수가 없네.


메리지아레(meriggiare : 이탈리아) 뜨거운 더위를 피해 그늘에서 쉬기. 이런 마음을 표현하는 한 단어가 있다고? 풀어놓은 말처럼 하는 거 말고, 한 단어로 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더 놀랍다. 그늘이 더 간절해지는 요즘 계절 때문인지 몰라도, 한창 바쁘다가 잠시 숨 돌릴 틈이 생겼을 때 쉬기 좋은 타이밍. 그늘이란 뜨거운 햇살이 만든 더위를 피하는 장소에 있기 마련이지 않은가. 한여름의 낮 동안 너무 그리운 장소다. 당분간 자주 외칠 것 같다. ‘메리지아레!’


카푸네(cafune : 포르투갈)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빗어 내리는 일. , 너무 낭만적이다. 손가락빗으로 머리를 빗어 내리는 일이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일까. 이 단어의 뜻을 듣는 순간, 문장 그대로의 장면을 자꾸만 상상하게 된다. 굉장히 가깝고, 사랑스럽고, 포근함을 주는 상대에게만 가능한 일이니까. 엄마가 마냥 사랑스러운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듯이, 눈앞의 상대가 그런 사랑을 충분히 받아내면서 편안해할 수 있는 관계일 테니. 카푸네. 이 단어 너무 아름답다.


라곰(lagom : 스웨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필요한 만큼. 우리 말로 하면 적당히정도가 될까. 근데 사실 적당히와 비슷한 듯 아닌 듯하다. ‘적당히는 사람마다 다르게 측량되는, 정확하지 않은 기준 같은데, ‘라곰은 그 적당히를 정확한 수치로 말해놓은 것만 같다. 김수미가 요만치라고 말할 때, 책으로 나온 김수미의 레시피에는 계량된 수치가 적혀 있는 걸 보면 같은 우리말에도 두 개의 언어가 있는 느낌이다. ^^ 물질적이든 감정이든, 딱 필요한 만큼만 두고 사용하면서, 표현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표현하기 쉬운 말인 것 같으면서도, 감정적으로는 어려운 말 같기도 하다. 딱 필요한 그 만큼을 우리는 어떻게 정확히 계산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듯하다.


슈투름프라이(Sturmfrei : 독일)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 없이 집에 혼자 남아,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 정말 좋아하는 포지션이다. 집에 혼자 있으면 우울해진다거나 심심하지 않으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나는 안 그래. 그냥 좋아.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집에 혼자 있는 게 좋고, 여기저기 책 쌓아두고 뒹굴뒹굴하면서 펼쳐보는 것도 좋고, 그렇게 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드는 것도 괜찮은데. 언젠가부터 집에 있어도 이렇게 뒹굴뒹굴하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가끔 주말의 늦잠을 즐기기도 하지만, 몇 날 며칠 이런 느슨함을 즐길 수 있을 때가 없었네. 한 단어로 자유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구체적인 자유를 이런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니, 너무 딱 맞는 듯하다. 소박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쉽게 완성할 수 없는 자유가 아닐는지.



누구나 한번은 경험했을 그 순간,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느낄 때가 있을 테다. 모국어로도 표현하기 모호한 감정을 정확히 나타내는 외국어가 있다고 했을 때 뭘까 싶었는데, 단순하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딱 표현하는 게 이 단어들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세계 17개국의 71개의 단어를 담은 이 책은 다른 언어권에서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나 상황을 정확히 나타낸다. 모호해서 부유하던 감정의 이름을 여기에서 찾는다. 아름답게 들리지만 낯설기도 한 단어들이 주는 건 공감이었다. , 그 마음 나도 알아. 아마도 이런 감정의 공유가 아닐까? 그 말이 나올 듯 말 듯 간질간질할 때, 옆에서 딱 꼬집어서 그 마음을 대신 말해주면 맞다 맞아하면서 그 사람의 어깨를 마구 치면서 반가워할 때. 딱 그거였다, 잃어버린 말을 찾아준 느낌. 입에서 맴돌면서 정확히 모르겠는데, 그 단어를 찾고 싶어서 사전을 뒤적이다, 딱 그 페이지를 펼쳤을 때 같은...



단어로 세계 여행을 한 기분이다. 좋은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황홀감 타라브(이집트), 잃어버린 기회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토아슈르트파니크(독일), 함께 식사를 마친 뒤에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고 빈 접시를 앞에 둔 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소브레메사(스페인)’ 같은 말들이 사람 사이를 연결한다. 작가는 2021년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에 이 책을 펴냈다고 한다. 많은 것이 고립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닿지 못하던 시간에 이 책으로, 단어로, 감정으로 서로에게 가 닿기를 바랐던 건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연결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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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2-07-22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런 책이 다 있네요. 라곰 이라는 스웨덴 단어는 들어본 적 있고 (카페 이름이었던 것으로 기억), 스페인어 ‘소브레메사‘는 아마도 sobremesa 는 sobre 가 ‘위에‘, mesa가 ‘테이블‘이라는 뜻이라는 걸 떠올리니 이해가 되네요.
제일 마음에 드는건 독일어의 저 단어요. sturmfrei ^^
그림도 예쁘고, 구매욕 당기는 책입니다.

구단씨 2022-07-23 01:48   좋아요 0 | URL
단어가 참 예쁘죠? ^^
하나하나 보면서 참 신기했어요.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이런 뜻의 단어가 세계의 어느 언어에 있었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