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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진짜'를 찾아 떠난 그 소녀의 이름은...
한 사람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선은 어디까지일까.
아마도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세상과 이별하는 순간까지의 모든 것이 그 아이의 성격과 정서, 환경의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오죽하면 태교라는 이름으로 뱃속에 있을때부터 아이에게 미칠 영향을 신경쓰겠는가. 어쩌면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부터 부모님의(어른들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쳤으리라...
그 소녀는 몇살일까.
황금다방에서 기생을 하던 그 소녀, 정작 본인은 학교에 다녀본 적도 없으면서 마담의 아들의 숙제를 대신 해주면서 시간을 때우고, 다방의 장미언니에게 마음을 주기도 하고, 장미언니를 무시하는 장미언니의 애인에게 섬뜩하게 눈을 부라리기도 하는 그 소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름도 없는 소녀. 집 나간 엄마는 가짜라고 생각하고, 엄마를 폭행하고 자신을 때리는 아빠 역시 가짜라고 생각하는 그 공간을 뛰쳐나와 길을 걷는다. '진짜' 엄마를 찾기 위해.
소녀가 목적지도 없이 걷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진짜'를 찾아 가는 길. '진짜 엄마'를 찾는 것. 오직 그 이유 하나로 세상을 걷는 소녀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손녀처럼 거두어주고 보듬어주시던 태백식당 할머니, 하나님의 말씀으로 평화를 얻으라 가르쳐주던 교회의 그 신실한 목소리 청년, 책으로 방문을 막아버리던 폐가의 남자와 '진짜 엄마'를 같이 찾으러 다니던 길에 동행했던 각설이패의 대장과 삼촌. 그리고 친구 아닌 친구로 만났던 상호, 유미, 나리...
소녀가 만난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조금이라도 소녀에게 손 내밀었던 사람들을 보면...
소녀가 말했던 것처럼 왜 소녀에게 손내밀었던 사람은 전부 가난한 사람인가. 부자의 눈에는 소녀가 보이지 않았던가...눈에 보였지만 모른 척 외면하고, 소녀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만 남긴 사람들이 전부였던 것을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하나...
소녀가 찾는 진짜 엄마는 정말 있기나 한 걸까. 왜 소녀는 자신이 나왔던 집에 있었던 사람들을 가짜 아빠, 가짜 엄마라 생각했을까.
소녀가 집을 나오고, 진짜를 찾으러 길을 나선 이유는 여기서 시작이다. 자신의 부모가 가짜라고 생각했던 것. 그러면 왜 가짜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또 생각하게 된다. 왜...왜...
아마도 '왜?'의 질문에 정답은 하나가 아닐까. 무책임한 어른들의 행동에 대한 결과가 만들어낸 것이 분명한 소녀의 그 모습을...낳아놓고, 방치 아닌 방치를 하고, 아이에게 미칠 영향 따윈 안중에도 없이 오직 자신만의 눈으로만 보고 행동했던 어른들의 죄. 소녀가 나이가 몇인지,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언나 간나 이년 저년 아무렇게나 불리던 것도, 또래의 아이들이 알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 험하고 위험에 노출된 그대로 당연한게 받아들이면서 겪어가는 하루하루를 소녀가 눈으로 보고 배우는 것 모두가...그 모든 것이 그 소녀의 부모를 시작으로 어른들이 만들어낸 죄라고...
소녀가 스스로의 이름을 평화라고 불리던 그 순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기억에도 없을 엄마의 뱃속에서의 기억을 그리며 말 하는 그 소녀의 마음을 누가 헤아려 주고 치유해주고 보듬어 줄 것인가. 결국엔 그런 것조차 필요없게 되어버렸지만...겨우 십몇년을 살면서 세상의 끝을 동시에 보고야 말았던 소녀.
우리는 이름조차 모르고 들었어도 기억조차 못하고, 우리 옆을 그저 스치고 지나갔을 뿐일 그 소녀의 이야기가 결코 흘려들을 수 없었던 이유는, 아마 우리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이다. 이만큼의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보니, 지금 이 순간 지나간 시간을 더듬더듬 기억해보니 지금의 나의 모습을 만들어놓은 많은 것들의 영향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좋았고 싫었고 불편했고 힘들었고 어렵고 어지러웠던 순간을 만들어낸 모든 것들을...
세상이 끝장나는 순간, 가장 높은 곳에서 무너지는 세상을 지켜볼거라 말하던 그 소녀...
가슴 속에 긍정이 아닌 삐딱하고 옳지 못한 사고를 먼저 심어주게 만든 그 눈을 갖게 만들었던 것을... 누가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겨우 열몇살일뿐인 이 소녀를...
미안, 미안해.
나는 너의 가짜 부모도 아니지만, 그래도 미안해.
뱃속의 순간이 가장 사랑스럽고 평화로운 순간으로 기억하게 만든 너에게 미안해.
그저, 같은 어른이니까 그 책임도 같다고 생각해. 그래서 또 미안해.
이젠, 조금 평화로워졌을까? 니 이름처럼?...
이 책 속의 소녀는 스쳐 지나갔지만, 또 다시 내 옆을 스쳐 지나갈 그 소녀는 결코 스쳐 지나가게 그냥 두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