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는 언제나 그 책을 읽었다 - 영화와 책이 있는 내 영혼의 성장기
이하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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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끝의 빨간 실, 영화와 책... 『조제는 언제나 그 책을 읽었다』

 

 

같이 영화를 봐도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들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내게도 그런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토요일 수업이 일찍 끝나면 그 친구의 집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꼭 비디오 한편씩을 보고는 했었는데, 작은 TV 화면에 5~6명이 머리를 모아서 집중해서 보고 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소식이 다 끊겨서 어디서 무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렇게 모여서 같이 영화를 보는데도 꼭 의외의 장면을 잡아내는 친구가 있었던 거다. 모두가 흘러가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을 때, “방금 그 책 제목이 뭐야?”라고 묻거나, “뒤쪽 벽에 걸려있던 그림이 000이야?”라던가, “00이 지금 밟은 것이 뭐지?” 하는 식의 질문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은 ‘그런 장면이 있었나?’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기 일쑤였다. 생각해보니 그런 질문을 했던 그 친구 참 여러 가지로 특이하긴 했다.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부르던 것과는 약간 거리감 있는 사고방식을 가진 친구였다고 기억된다.

 

때로는 영화나 책에서 내가 놓친 부분을 누군가가 그렇게 얘기해줄 때, ‘아하, 그랬구나.’하는 어떤 발견의 미학을 만날 때가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해주는 영화와 책에 관한 이야기가 그랬다. 나에게는 오래전 영화와 책들이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던 부분들도 있었지만, 저마다 들려주던 한 부분으로 그 기억은 금방 재생되곤 했다. 영화에서 보여주던 재미와 감동이 영화 속에서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했던 책으로 연결이 될 때는 묘한 흥분까지 느꼈다. 저자는 영화 속에 등장했던 책들 혹은 책의 한 문장 때문에 멘토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지만, 내가 만난 영화 속의 책들은 멘토와 더불어 한번은 만나보고 싶은 위시리스트 속의 책으로 담겨지곤 했기에 미뤄둔 숙제 같은 느낌이 컸다. 어쩌면 환상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책을 읽어야만 그 영화에 대해 제대로 보고 느낀 것으로 마무리가 될 거라는 판단에서였는지도…….

 

내가 생각했을 때, 떼려야 뗄 수 없는 궁합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영화와 책일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어떤 영화를 만나기도 하고,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어떤 책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 책은 저자가 들려주는 영화, 그 영화 속의 책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나 영화의 흐름에 큰 매개체 역할을 하는 책을 대해 소개해주고 있다. 그 중에서 이 책의 제목처럼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었다. 한참 일본 영화와 문학에 빠져 있을 때, 비공식적인 경로로 봤었던 기억이 난다. ^^ 그 영화를 보고 벽장 같이 비좁은 공간에서 웅크리고 책을 읽어가던 조제를 저절로 떠올릴 수밖에 없다. 몸이 불편한 조제를 위해 할머니가 주워다 주었던 그 책들에 파묻혀 있던 조제를 잊을 수가 없다. 그 공간에서 그렇게 책을 읽는 것만이 조제에게는 구원의 줄인 것처럼 보였으니까. 물론 그 안에는 조제의 사랑이 함께 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 일본 영화나 문학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기에는 현실적인 세상을 살아가느라 바빴던 내가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던 부분도 있었지만 언젠가는 그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전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영화에서 보여줬던 프랑수와즈 사강의 책 『한 달 후 일 년 후』를 기억하게 만들었다.

 

이런 식이다, 이 책은. 그 영화를 떠올리면 그 책이 저절로 생각나게 하는 것. 누군가의 욕심에 잔인함을 보게 만들었던 영화 <매치포인트>와 책 『죄와 벌』을 기억해야 했고,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두 개의 인격을 보여주었던 영화 <프라이멀 피어>와 책 『주홍 글씨』를 잊지 않게 했다. 오랜 시간동안 간절히 바라던 것을 이루어낸 영화 <쇼생크 탈출>은 책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다시 만나게 해주었으며, 그 안에 등장하던 책 때문에 울컥 눈물이 솟게 했던 영화 <아들>에서는 책 『데미안』에 대해 다른 느낌을 들려주기도 했다. 두 얼굴의 남녀가 온·오프라인에서 보여주었던 편견에 웃음 짓게 했던 영화 <유브 갓 메일>은 내가 로맨스의 고전이라 여기고 있는 책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를 그립게 한다. 운명처럼 다시 만나는 순간 사랑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내내 빌게 만들었던 영화 <세렌디피티>는 그 운명의 연결 고리인 책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메모하게 했다.

 

그렇게 23편의 영화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이 책은, ‘책’이라는 것 자체를 흥미롭게 살펴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건 저자가 책과 함께 소개해주었던 영화의 영향이 크다. 영화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의 재미는 기본이고, 그 이야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그 책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때로는 어떤 사건의 복선으로 자리하면서 더 눈여겨보게 만들고, 주인공과 배경의 시대적 분위기를 파악하게 해주기도 했다. 영화에 대한 이해와 책으로 연결되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현실에 대한 이해와 책 그 너머에 있는 상상이 불러올 수 있는 판타지까지 가능하게 했던 역할이 아니었을까. 물론 영화에서 보여주는, 영화 속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역할은 눈에 보이는 딱 거기에서 멈출지 모르지만, 이미 관객이자 독자인 우리는 그 영화와 책을 접하고 나면 그 이상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지 않겠나. ^^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난 후의 이야기를 그리기도 하고, 탈출한 후에 다시 만난 앤디와 레이의 미래를 열렬히 응원하기도 하면서, 도쿄타워의 그 야경을 보면서 무모한 사랑을 그리기도 하는…….

 

어쩌면 책은 영화 속의 그저 하나의 소품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자의 눈을 통해서 만난 영화 속 한권의 책은 소품 그 이상의 이야기다. 주인공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했고, 주인공이 만나길 바라는 미래를 대신 말해주기도 했다. 주인공의 삶에 멘토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한권의 책으로 머물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여러 가지 이유로 책을 읽고 있는 이유.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 일수도 있고, 어떤 시험대를 통과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무료한 일상의 활력소 일수도 있지만, 그 모든 이유의 공통점은 자신에 다가올 어떤 느낌을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게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담고 있기도 했고, 한 편의 영화의 흐름을 좌우하기도 했다는 것을 저자의 이야기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한 권의 책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기에 관객들에게는 더욱 눈에 담게 되는 책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 음악을 귀에 담았다면, 영화 속의 책들은 저절로 눈에 담게 될 것이다. 영화의 흐름에 빠져 혹시 놓치고 있던 부분이 없었는지, 그 책이 영화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의 어느 한 페이지를 펼쳐 기억을 더듬어 봐도 좋겠다. 그때 그 영화, 혹은 그때 그 책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에게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해질 테니. 나 역시도 지금 이 책을 통해서, 아직 만나지 못한 영화와 아직 읽지 못한 책의 리스트를 다시금 채워가고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 ‘영화’를 다시 만날 때 그 ‘책’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이 책에서 들려주었던 영화와 책.

<세렌디피티>,『콜레라 시대의 사랑』 / <친니친니>,『두 도시 이야기』 / <디 아워스>,『댈러웨이 부인』 / <컨스피러시>,『호밀밭의 파수꾼』 / <유브 갓 메일>,『오만과 편견』 / <콜드 마운틴>,『폭풍의 언덕』 / <생활의 발견>,『스콧 니어링 자서전』 / <키다리 아저씨>,『뉴욕 3부작』 / <시티 오브 엔젤>,『해마다 날짜가 바뀌는 축제』 / <이퀼리브리엄>,『갈대밭에 부는 바람』 / <장미의 이름>,『시학』 / <프라이멀 피어>, 『주홍글씨』 / <쇼생크 탈출>,『몽테크리스토 백작』 / <오래된 정원>,『살아남은 자의 슬픔』 / <스피어>,『해저 2만 리』 / <아들>,『데미안』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한 달 후 일 년 후』 / <어느 멋진 순간>,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매치 포인트>,『죄와 벌』 / <도쿄 타워>,『사랑의 종말』 / <레이크 하우스>,『설득』 / <카포티>,『월든』 / <마들렌>,『달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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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9 0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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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1 16: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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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존재 1 - 담박한 그림맛, 찰진 글맛 / 삶과 욕망이 어우러진 매콤한 이야기 한 사발
들개이빨 지음 / 애니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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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웃픈 자화상.『먹는 존재1』

 

 

분명히 다르다.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는 작가와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귀찮아'하는 나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하루 세끼를 챙겨야 하는 당연함 따위, 나에게는 없다. 그냥 배고플 때 먹는다는 게 진리다. 그럼에도 공감했다. 마성의 유 양 때문이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에 따라오는 씁쓸한 을의 삶과 침이라도 뱉고 나와 버리고 싶은 과감함이 읽는 이에게 달려든다. 이렇게도 차지고 맛있게 욕을 하는 사람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고, 오늘 걱정을 내일로 미루고 먹고 누워있고 싶은 간절함이 저절로 들게 하는 데 어떻게 공감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마음속은 뒤죽박죽, 길거리에 나앉게 생긴 오늘이 불안하고, 간절하게 먹고 싶은 음식은 눈앞에서 춤을 추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 향이 강하다며 거부한 전 남친이 내가 소개해준 맛집에 나타나니 욕 나오고, 갑자기 찾아온 엄마 밥은 황홀경이고, 터무니없는 엄마의 기대는 언제쯤 사라질지 아득하고, 밥 대신 술을 넣어준 속은 못생긴 남자와의 하룻밤을 만들고, 그 못생긴 남자는 나를 들었다 놨다 하고. 에잇~ 욕 나오는 하루의 인생살이...

 

정말 지겨운 회식자리, 무리하게 술까지 권하는 상사에게 굴을 던지고 뱉기까지 하며 회사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유 양. 그렇다. 유 양은 후련하게 회사에서 잘렸다. 정말 잘린 건가? 회사도 사장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유 양이니, 잘린 게 아니라 스스로 나온 기회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백수다. 시간은 많지만, 통장 잔액은 줄어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먹는 것이 인생의 낙이니 룰루랄라 식탐 여행도 가능하다. 뭐든! 마음만 먹으면 가능할 것 같은 유 양이다. 클럽에서 떡으로 유혹해서 그녀의 인생에 침입한 못생긴 남자 박 병과 전 직장 동료 조예리와 조예리의 남친까지 합세하여 먹는 것에 녹아든 삶의 녹록지 않음을 풀어낸다.

 

유 양이 말하길, 배고픔이란 질 낮은 양아치 새끼 같다고 했다. 삼시 세끼 꼬박꼬박 찾아온다고 했다. 그 삼시 세끼에 인간 군상의 모든 게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 세끼를 챙겨야 한다는 데 의미를 두는 내가 아니니, 오직 유 양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이자면 그렇다. 당연하게 찾아오는 배고픔과 하루 세끼, 그것을 외면하지 못하고 뱃속에 뭔가를 채워야 하는 인간. 그 과정을 통해 나누고 쌓이는 인간관계와 사람들. 도심 어느 구석의 이야기까지 더해져 눈길을 끈다. 먹는 행위 하나에 이렇게 많은 의미와 시선을 붙들고 있는 것도 작가의 재주다. 허름한 식당에서 먹은 온메밀 국수를 다시 먹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은 거대 기업에 기죽지 말고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켜 맛으로 유지하길 바라는 간절함을 만든다. 다음에 어느 날, 문득 찾아가고 싶은 그런 곳으로 남아있길 바라게 된다. 나만의 맛집은, 맛있는 음식이 있기도 하지만 음식 그 이상으로 마음에 채워지는 뭔가를 알았기 때문에 맛집이 되는 거다. 식당의 외관이 허름해도, 어느 구석진 골목 끝에 자리해도 굳이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이유는 그런 거다.

 

한편, 분식의 맛은 길거리표가 최고다. MSG 범벅이라 하여도 그 맛을 잃으면 안 된다. 먹는 것에 그다지 관심 없는 나도 이건 쌍엄지 추켜들고 외치고 싶다. 떡볶이는 역시 길거리표다. 새빨간 국물에 퐁당 담가있는 떡과 어묵.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조합이 있다. 김밥, 순대, 튀김은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다. '김떡순' 가족은 흩어지면 안 된다. 아, 어쩌면 좋아. 이 시간에 떡볶이가 먹고 싶어 죽겠다. ㅠㅠ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예쁜 옷을 입고 어딘가로 나가고 싶은 날, 봄나물의 향기가 콧속 깊이 스며들어 진하게 남겨진 날, 변하고 발전하는 빙수 대신 오리지널 빙수가 당기는 날. 그렇게 하나씩 파고드는 음식의 의미가 있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서, 괜히 기분이 멜랑콜리 해져 향으로 취해버리는 음식, 아무것도 아닌 아주머니들의 호호호 웃음소리에 같이 웃게 되는 봄나물 같은... 왜 그렇게 먹는 것을 외치는지 이런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니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냥 어느 날의 한 장면, 어떤 장소의 이미지일 뿐인데 늘 먹는 것이 함께한다. 그걸 빼놓고 생각하자니 뭔가 허전하기도 하다. 아, 그래서였구나. 내가 지낸 오늘 하루를 떠올려보니 먹는다는 행위가, 음식이 빠질 수가 없구나. 나 오늘, 방울토마토 10알과 컵라면 하나 먹었다...

 

먹는 것을 향한 원초적 욕망에 목숨 걸듯 몰입하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먹는 행위 안에 간절함이 있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이다. 살기 위해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비굴해지는 시간도 견뎌야 하는 게 세상 속 피라미드에서 가장 밑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그게 정말 살아가는 모습일까? 내가 진정 바라는 삶일까? 유 양은 그런 삶을 탈출한다. 안다. 고민 없이 그냥 저지르는 것처럼 보이는 유 양이지만, 현실 속 우리의 마음은 유 양이면서도 그렇게 저지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유 양의 과감함에 공감하며 속을 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의 아우성을 대신 소리쳐 주고 있는 것 같아서. 쌍욕의 개운함과 구석에서 빛을 못 보고 있는 숨소리를 들춰내고 있다. 그녀의 쌍욕과 거침없는 과감함에 설레는 이유다. ^^

 

먹는 것에 대한 욕망과 견딜 수 없었던 사회 구조에서 탈출하고자 했던 유 양의 몸부림은 처절하다. 탈출이 아닌 백수로 전락했다는 게 보통 사람의 시선일 테니까 말이다. 다시 들어간 회사에서마저 잘린다. 그로 인해 그녀가 꿈꾸는, 창작에 대한 욕망이 더욱 불타오르는 시간을 만든다는 게 반전이다. 땅에서 넘어진 사람은 그 땅을 짚어야만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하니, 그녀도 이제 다시 꿈꾸며 일어설 일만 남았다. 그 와중에, 옥탑방에서 줄어드는 통장 잔액을 우울해하면서도 맛집 투어를 시작해버리는 그녀의 욕망을 막을 수는 없다. 그녀답다. 아마 그 크기를 잴 수 없는 식욕만큼이나 그녀의 꿈 욕망도 무한할 것만 같다. 더러운 성깔밖에 남은 것 없는 여자가 결국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해야만 하는 마음을 그린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꿈꾸고 싶은 것을 꾸는 일.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판타지 같지만, 결국 누군가는 해낼지 모른다. 그 누군가는 유 양일 수도 있고,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는 순간, 그건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 된다. 그렇게 세상에 부딪히며 꿈을 현실로 만들어버리는 것. 유 양이 끝나지 않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식욕으로만 따지자면, 여전히 나는 그 식욕을 자랑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상당히 날씬한 사람으로 오해하고는 하던데, 그렇지 않다. 먹는 것에 큰 관심이 없을 뿐이다. 그런데도 유 양이 보이는 그 음식에 대한 욕망이 낯설거나 거북하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언급하는 음식들은 특별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동네에서, 집에서 흔하게 보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대부분이다. 혼자 혹은 여럿이서 먹어온 음식이다. 익숙하면서 모르는 맛이 아니기에 더욱 그 간절함에 공감할 수 있었다. 특별한 나만의 음식이 아닌 누구나 알 수 있는, 즐길 수 있는 맛. 그런 맛들이 '내'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래서 이건 유 양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다. 오늘도 먹기 위해 몸부림치고 살아가기 위해 버둥거리는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계속되는, 아주 웃~픈 다음 편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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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s, Let us
이유진 지음 / 이가서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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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스 렛 어스』 편지, 음악 그리고 우리...

 

 

나는 아침형 인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는 잠을 자고... 가능하면 자정을 넘기지 않고 잠이 들 수 있는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했으니, 그런 패턴으로 도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흐름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분명 아침에는 일어나는데, 밤에는 잠드는 시간이 들쑥날쑥. 때로는 잠깐 자고 일어나고 다시 또 잠깐 자고 일어나는 초저녁부터의 조각잠. 그러다 심해지면 병처럼 찾아오는 불면증, 폭식하듯 잠을 자기도 하고, 하룻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고. 가능하면 처방 받은 수면제를 먹지 않고 순전히 내 의지로 건너가고 싶은 시간들이었다. 때로는 그런 방법이 통하기도 하고 통하지 않기도 하고. 결론은 잠이 오면 잠을 자고, 잠이 오지 않으면 잠들지 않는 것. 그것 밖에는 없다. 그럼 문제는 잠들지 못하는 시간들에 관한 것...

 

그래서 이들의 금요일, 새벽 3시, 음악과 편지로 풀어내는 그리움에 동참하려 한다.

모두가 잠이 드는 밤이라는 시간에 잠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음악과 편지와 함께 찾아오는 이들이었다. 그 묘한 매력 속에서 허우적대는 나(독자)도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보내는 이가 의도하지 않아도 전파 타고 날아와 가슴에 저절로 박히는 순간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밤중-새벽이라도-의 라디오가 주는 그 매력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오늘의 시간은 자정을 넘어 새벽을 향해 가고, 곧 동이 터 아침이 되려고 하는 시간에도 분명 누군가는 듣고 있을 것만 같다. 수줍게 문자를 찍어 신청곡을 보내면서, “나 지금, 여기서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어요.” 라고 신호를 보낸다. 라디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 음악이 지금 듣고 싶어요.” 라고 말하면서 답을 하기도 한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서로가 다른 공간에서, 누군가는 말하고 누군가는 듣고 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고요해지는 그 시간에도 누군가는 듣고 있을 그 목소리, 그 이야기들, 그 음악들은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그래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까지 하고 싶어질 만큼의 간절함이다.

 

"밤에 글을 쓰고, 밤에 음악을 하는 건, 유난히 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차마 낮에는 할 수 없었던 그 말들을, 그 마음을 혼자 있는 밤에만 슬쩍 꺼내보는 것 아닐까요? 그 마음만큼, 그 시간만큼...... 쌓여있는 편지들을 보내주세요."

 

금요일의 새벽 3시 라디오부스 안, Letters 코너가 시작된다. 누군가가 쓰는 편지를 읽어주고 그가 선곡한 음악이 함께 한다. 그 편지와 음악으로 가슴이 설레고 떨릴, 혹은 아련할 누군가를 위해서... 음악을 만드는 그 남자 해수는 폭이 넓은 치마를 입고 가던 그녀를 그곳에서 다시 만난다. “난, 안 돼.” 라고 말하면서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하는 말을 듣는다. ‘괜찮을 거야...’

한 시간의 사랑을 위해서 연필로 편지를 쓰는 그 여자, 현진. 시작 시간과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시간이 정해져있는 영화라고 해도 괜찮다 생각했다. "싫어." 라고 말하는 그 남자가 그래서 좋다. 자신의 차가운 손을 따뜻한 손으로 감싸줄 줄 아는 그 남자가, 자신과의 만남을 바람이라고 말하면서도 좋단다. 좋으면 된 거지.

 

“해수씨도, 그런 사람 있어요? 생각 안하려고 하는데, 자꾸 생각나서 에이, 그냥 생각하자 하는 사람.”

“있어요. 있는 것 같아.”

 

지금은 서로를 바라보는 상대방의 그, 혹은 그녀가 있음에도 그들에게 나쁜 사람이 되고자 한다. 현진은 해수의 그녀에게 나쁜 사람이 되고, 해수는 현진의 그에게 나쁜 사람이 된다. 잠깐은, 아주 잠깐은 괜찮을 거라고 서로에게 위로를 하면서. 현진의 차가운 손과 발은 따뜻해지고, 해수의 건조함은 사랑을 배우고, 그러면 될 것 같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서로에게 이별까지 배달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그거면 된 거다. 그래도 괜찮을 거다...

 

서로가 마주보던 시간을 바람이라 불렀으니, 세상의 눈으로 보면 불륜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해수에게는 2년 된 애인이 있고, 현진에게는 결혼하자 말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온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서로에게 '싫다'고, '넌 안 된'다고 하면서도 흘러가는 마음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불안하지만, 그 불안까지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라면 어떨까. 그러면서도 계속되는 그들의 금요일 새벽 3시는, 그래도 사랑일 테다. 한 사람은 편지를 쓰고 다른 한 사람은 그 편지를 읽는다. 그 마음이 어떨까 상상을 해봐도 그들만큼 잘 알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느 가수의 노래 제목처럼, 사랑 그 놈, 참...

 

누군가 나에게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나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이기도 하고,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한두 명은 아니었으니까. 세상사에 치여 가면서 가끔은 꼼수도 부리고, 잔머리도 쓰고, 편리한 것들을 찾아다니기도 하지만 이런 면에서는 디지털기기의 편리함보다는 주파수를 맞추어야만 들리는 라디오처럼 아날로그적인 게 좋다. 눈앞에 보이는 현란한 영상이 아닌, 오직 소리로만 들리고 느낄 수 있는 그 감정들은 무어라 설명할 수도 없다. 그저 그게, 라디오의 지독한 매력이라고 할 수밖에. 현진과 해수의 이야기가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었을 텐데 나에게 이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그래서일 테지. 라디오가 주는 감성과, 표현하지 못할 마음을 담은 사람들의 마음과, 누군가가 쓴 편지라는 구실로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여서 그런 거라고... 안되는데 하면서도 가끔은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나가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보여주는 듯했다. 기침처럼 숨기지도 못하고, 드러난 마음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어서 알아차리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것. 그래서 현진과 해수가 어설프게나마 드러내는 마음, 다시 주워 담아야만 하는 마음이 안타까운 거다. 

 

프롤로그를 잘 읽고 넘어가야 두 사람의 이야기가 연결되어지는 책이다. 서로의 진실을 다 드러내지 못해서 오해 아닌 오해를 갖기도 했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두 사람의 마음과 태도, 드러내는 행동들이었으니까. 차마 이름을 부를 수 없어서 어깨를 살짝 찔러 부르고, 미안하다는 말을 꺼낼 수 없어서 주저하다 타이밍을 놓치고, ‘사랑합니다.’ 한 마디에 무너져 내리는 것들. 저절로 불면의 밤을 가져오게 하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면 그게 아닌 게 되어버린다. 현진이 아픈 몸으로 순간 목 놓아 울어버린 마음을 알 것도 같다. 표현하지 못해서 아팠던 거다. 감정을 말할 수 없어서 울음으로 드러낸 거다. 결국은 내민 손을 누군가가 잡아주어야만 멈출 수 있는 눈물이었던 거다. 그렇게 눈물은 멈추었고, 불편한 사랑을 택했던 이들에게 찾아올 것이 그 무엇이라 해도 괜찮았을 거다. 누군가가 만들어줄 새벽 3시는,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시간으로 바뀌었을 테니...

 

누군가의 마음을 읽어주고, 눈빛만으로 알아주는 오피디가, 나는 정겹다. 좋다. 그런 사람 옆에 한명쯤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새벽 3시의 방송이 쓸쓸한 사람들만 듣는 방송 같아서, 꼭 들을 사람만 들어주는 방송 같아서 멋지다는 사람. 그중에서도 현진을 아주 잘 읽어내는 사람이라서 좋다. 편안했다.

“자기가 정말로 착하거나 후덕하면 내가 이런 말 안하지. 실제로는 딱 잘라 좋아하는 사람 몇 명만 곁에 두고 살면서. 아무한테나 잘해주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무관심하고 제 취향대로 살그머니 챙겨.”

오피디가 현진에게 이런 말을 했을 때, 나는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오피디가 어디 숨어서 날 보고 있나?’ 라고 생각할 만큼 현진이란 캐릭터의 묘사가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이 책 속의 현진은 나를 많이, 닮았다. 아무한테나 잘해주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무관심하고, 제 취향대로 살그머니 챙겨... 그렇게 사는 사람 괜찮을까, 싶었는데 오피디의 저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을 것만 같아서...

 

새벽 3시. 자정을 넘어섰지만 아직은 밤, 잠들어 있어야 할 시간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눈을 뜨고 동이 터오는 순간을 기다릴 수도 있는 시간. ‘사랑하오...’ 라는, 희미하지만 듣고야 말았던 그 고백으로 이들이 다시 열어갈 시간이 이어지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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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아버지 차순봉(유동근)은 자식들을 상대로 불효자 청구 소송을 했다. 자식들에게 성인이 된 후에 들어간 돈을 계산해서 청구한 거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야 말 그대로 미성년이니 부모가 자식을 부양해야 할 의무라고 계산에서 뺐나 보다. 암튼 삼 남매에게 청구된 금액은 컸다. 그런 소송을 받아들인 판사도 의아해 하면서 이 소송을 지켜보기로 한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자식을 상대로 왜 이런 소송을 하게 되었는지 사연을 알고 있기에 무시할 수 없었던 듯하다. 그러면서 차 씨 삼 남매에게 강조한다. 이 소송은 판결이 아니라 조정으로만 진행하겠다고, 그러니 아버지와 합의를 하라고 조정 자리에 나온 삼 남매에게 말한다. 그럼 아버지가 원한 합의 조건은 뭔가. 결혼 안 한 첫째 강심(김현주)에게는 석 달 동안 열 번의 선을 보라고 한다. 둘째 강재(윤박)에게는 석 달 동안 집에 들어와 살라고 한다. 셋째 달봉(박형식)에게는 석 달 동안 매달 백만 원의 용돈을 달라고 한다. 그리고 삼 남매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아버지가 원한 합의 조건을 수락한다. 이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이 소송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정말 삼 남매는 아버지의 요구사항을 얌전히 이행할 것인가, 석 달 후 이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진다. 드라마다. 내가 궁금해하지 않아도 이들은 성장하고 변화하며, 이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될 것이다. 물론 아버지 차순봉의 건강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난 주말에 동생이 다녀갔다. 저녁을 먹으며 이 드라마를 함께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생이 툭 말을 던진다. 실제로 부모가 자식들에게 위자료 청구 소송을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이 있더라고 말했다. 동생은 파출소에 근무하는데, 파출소로 서류 떼러, 혹은 뭔가 확인하러 오는 사람이 종종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며칠 전에 실제로 이런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어떤 아버지가 교도소에서 출소해서 나왔는데, 본인이 먹고 살길이 없으니 자식들에게 위자료 청구 소송을 했단다. 그에 소송을 당한 자식이 파출소로 서류를 떼러 왔는데, 그 서류가 뭔고 하니, 그동안 아버지가 쳤던 사고 뒷수습한 증거라고 했다. 그 아버지는 평생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매일 술 먹고 들어와 행패 부리고, 때려 부수고, 폭행하고... 교도소에 있기 전부터도 오랫동안 자식들과 연락 없이 지냈단다. 그런데 이제 와, 실컷 죄를 저지르고 처벌받고 세상에 나와 먹고 살길이 없으니, 가족마저 외면하니 자식들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한 거란다. 자식들은 이에 억울해서 반박할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이런 서류도 떼러 온다고 했다. 그 아버지가 사고 쳐서 신고 된 내용, 어떤 내용으로 잡혀왔고 자식들은 그에 어떤 식으로 얼마를 합의하거나 뒷수습을 했는지 증거를 찾으러 온 거다. 그러니까 자식들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가족을, 자식을 돌 본 기억이 없는 거다. 평생 아버지가 한 일이라고는 사고 쳐서 경찰서 드나들고 자신들은 그거 뒤처리한 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는 거다. 한두 번도 아니고 빈번했다고 했다.

 

 

 

 

 

 

 

 

 

 

동생이 들려준 말에 조금 놀랐다. 그런 마음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그걸 실행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이런 소송을 하기도 하는 구나, 싶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저 밥을 먹는데 좀 답답했다. 남의 가정사 내가 다 알 수는 없다. 아버지가 술 먹고 행패부리고 폭행하고 했다고 해도, 자식들이 그 뒷수습 하느라 지쳤다고 해도, 그 이하의, 그 이상의 일들을 내가 다 알 수 없으니 함부로 판단할 수도 없다. 그저, 드라마 속의 이런 일도 실제 일어나고 있구나 하면서 끄덕이는 수밖에.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다른 것들 다 차치하고서라도, 부모가 부모 노릇을 해야 부모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거다. 부모 자식 간에도 기브 앤 테이크가 존재한다. 단순히 돈을 말하는 게 아니고, 부모가 부모의 자리에서 자식을 어떻게 키웠느냐 하는 자세의 문제다. 저기 파출소에 서류 떼러 왔다는 가족의 문제를 듣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아마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자식 대접을 못 받은 것에 속상하지 않을까. 자식으로 아버지에게 당연히 받아야 할 애정과 보살핌을 못 받아서 아버지를 돌볼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래도 부모인데...’ 라는 말을 누군가는 여기서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정말, 그게 속상할 것 같다. 젊은 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실컷 술 먹고 손이 가는 대로 폭력을 행사하고 죄를 저질렀으니 처벌을 받는 건 당연한데, 자신이 자식들에게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에서 지우고 낳아놨다는 것 한가지만으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하는 것으로만 보이는 게 안타깝고 속상하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이 존재한다는 게 더없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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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모 2014-12-07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자료라는게 부모 자식간에 성립할수도 있군요 부모님의 사랑을 너무 당연시한건 아닌가 반성하게 되네요

구단씨 2014-12-09 11:22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

세실 2014-12-08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벌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전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해줄때 생색을 많이 냅니다. 공을 알아야 나중에 당당하게 요구하죠! ㅋ

구단씨 2014-12-09 11:21   좋아요 0 | URL
부모가 당연하게 돌보고 생색내도 됩니다.
부모가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우는지 아이들도 알아야죠. ^^
 
각설하고, - 김민정 산문
김민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살아가는 오늘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다.
개운하고 실감나는 이야기의 맛을 그대로 볼 수 있었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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