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강 - 2012 볼로냐 라가치 상 수상작 ㅣ Dear 그림책
마저리 키넌 롤링스 지음, 김영욱 옮김, 레오 딜런.다이앤 딜런 그림 / 사계절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가 내리면 ‘빗소리가 듣기 좋다.’하는 운치가 아니라, 우산을 들고 나가야 하니 귀찮거나 빗물에 신발이나 바지 끝이 젖어가는 게 싫다는 생각을 한다. 눈이 내리면 소복소복 쌓이는 그 눈이 예쁘다는 생각보다는, 쌓인 눈이 얼어서 빙판이 되어 불편하다거나 눈이 녹아내릴 때 질퍽거리는 도로가 싫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한때는 내리는 빗소리에 문학소녀가 되기도 했고,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눈밭을 구르면서 놀기도 했었는데 말이지. ^^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귀찮고 번거로운 것으로 먼저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

다행스럽게도 이 책 『비밀의 강』 속의 칼포니아의 하루에 동행하면서 그렇게 잊고 지냈던 많은 것들을 저절로 눈에 담게 되고, 칼포니아의 행동 하나하나에 부여된 그 마음이 어떤 것일지를 찾아보게 만들고 있었다. 살아가는 동안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한 그 시간들 속에서 좋은 느낌을 주는 긍정적인 시선보다, 귀찮고 싫다는 부정적인 시선을 먼저 주는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있었다. 너무 익숙하게 그래왔던 것이라 지금까지 몰랐었나 보다. 아니, 힘들다는 핑계로 무언가를 배려할만한 마음의 여유를 잘라내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만을 위해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최우선인 삶이었다. 다른 이의 마음이나 어려움을 볼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인지 칼포니아를 통해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나의 마음과 너무나도 상반된 그 순수함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존재해야 다른 것도 보이는 것 아니겠냐고 생각했었는데, 칼포니아가 보여주었던 마음을 통해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자세와 마음을 배우게 된다. 
 



플로리다의 숲속 마을, 그곳에서 칼포니아의 아빠는 물고기를 팔아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식탁에서,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 아빠의 가게도 어렵고 마을 사람들도 먹을 게 없어 힘들다는 말을 듣게 된 칼포니아는 아빠도 돕고, 어려움에 부딪힌 마을 사람들도 돕기 위해 직접 물고기를 잡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가장 먼저 마을의 가장 지혜로운 알버타 아주머니에게 커다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곳을 묻는다. 그 질문에 알버타 아주머니는 숲속의 비밀의 강에 대해 말해준다. 하지만 알버타 아주머니는 강의 위치가 아니라 비밀의 강을 찾아가는 힌트만 준다. 바로 자신의 코끝을 따라가라고. 그 코끝을 따라가다 보면 비밀의 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한 가지 힌트로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 막막하지만 일단 나서고 보니 이상하게도 길이 자꾸만 열리는 것 같다. 토끼가 나타나 시선을 돌리고 잠시 후에는 파란 어치가 나타나 또 눈길을 돌리면서 따라가다 보니 그 끝에 비밀의 강이 있었다. 아, 정말이었네. 말 그대로 고개를 돌리면서 저절로 함께 움직이는 그 코끝을 따라왔더니 비밀의 강이 있었네. 거기에다가 거짓말처럼 비밀의 강에는 정말 큰 물고기(메기)가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 우연처럼 강어귀에 메어져 있던 배도 칼포니아에게 도움이 되었다. 마치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물고기가 많이 있는 비밀의 강도 찾게 되고,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배도 준비되어 있었고, 칼포니아의 머리에서 떼어낸 종이꽃을 미끼삼아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도 있었다. 이 물고기들을 가져가서 아빠에게 도움이 되고, 마을 사람들에게까지 도움이 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에 포만감이 생긴다. 이제 모든 것이 잘 될 것만 같다.

벌들은 모두 내 친구.
꽃들은 모두 내 꽃동무.
모두가 행복한 시간은 나도 즐거운 시간.
모두 모두가 이렇게만 계속된다면
절대 끝나지 않을 테지.
(영영 끝나지 않을 테지. 영, 영.) 

여기까지만 봤을 때는 그냥 칼포니아라는 소녀의 모험담인줄로만 생각했다. 위기를 극복한 한 편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자꾸만 뭔가 다른 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칼포니아가 물고기를 잡아서 집으로 가져가는 과정에서부터였다. 칼포니아는 물고기를 많이 잡았으나 이 물고기들을 어떻게 가져가야할지가 걱정이었다. 그때 마침 보였던 실유카 이파리로 끈을 만들어 물고기의 아가미를 꿰어 묶어 생각보다 편하게 물고기들을 옮겨갈 수가 있었다. 비밀의 강을 찾아갈 때처럼 코끝을 따라 집으로 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잿빛 여우와 너구리들이 나타나 칼포니아의 코끝을 향하게 해주었고, 칼포니아는 또 한 번 숲속 동물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처음 칼포니아가 비밀의 강을 찾아갈 때, 물고기를 잡을 때, 잡은 물고기를 가지고 돌아올 때, 그리고 집으로 찾아가는 길까지 자연이라는, 숲의 친구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었다. 마치 그 자리에서 칼포니아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자연은 칼포니아에게 아낌없이 마구 내어주는 것만 같았다.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배운 것은 무언가를 받으면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Give and Take의 방식이었다.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럼 자연에게 도움을 받은 칼포니아도 그 대가를 치러야 할 텐데, 무엇으로 그 대가를 치를 수 있을까. 자연에게 도움 받은 것의 대가를 치를 만한 것은 아마도 칼포니아의 순수함이 아니었을까. 칼포니아의 순수함이 자연의 마음을 열어 비밀의 강까지 동행하게 한 것이라고. 그 순수함에 보답이라도 하듯 비밀의 강은 칼포니아에게만 보였으니까 말이다. 그 이후의 길 역시 마찬가지였다. 칼포니아의 순수함이 힘을 가지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했다. 칼포니아는 물고기를 잡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엉이와 곰, 흑표범을 만난다. 그 동물들이 나타났을 때, 나는 너무도 당연하게 칼포니아를 해칠 것이라 생각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전래동화 속의 호랑이처럼 칼포니아를 위협해서 물고기들을 다 빼앗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칼포니아가 먼저 마음을 보여주었다. 동물들이 배가 고플 것이라 생각하면서 먼저 물고기를 내어주었던 것이다. 아, 이기적인 나의 마음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지나는 길에 그냥 만날 수도 있는 일이었을 텐데, 왜 나는 동물들이 해칠 것이라고 먼저 떠올렸을까. 타인에 대한 경계와 방어가 나를 지키는 일인 것처럼 생각했다. 타인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어도 나를 먼저 챙기려는 이기심에 의심과 경계부터 하는 것이었다. 그런 것이 습관이 되어 살아왔기에 칼포니아의 행동이 예상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건 순수한 마음만이 빚어낼 수 있는 것이었는데…….

누군가 널 겁주려 할 때,
가장 먼저 마음을 읽어줘야 해.
그럼 절대로 더 괴롭히지 않을 테니까.
가끔씩 어떤 누군가는 “고마워.”라며 인사말도 건넬 테니까. 

 

 

한편으로는 더불어 산다는 것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칼포니아가 잡아온 물고기로 아빠는 장사를 하고, 먹을 것이 필요했던 마을 사람들은 물고기를 사서 끼니를 채운다. 이 과정에서 또 한 번 보였던 것은 마음을 담은 순수한 배려였다. 칼포니아의 아빠는 당장에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물고기를 먼저 내어주고 돈을 나중에 받는다. 배고픔을 달래고 힘을 내야 다시 일을 해서 돈을 갚을 테니까. 이런 이야기는 그냥 동화이니까, 라고도 생각했다. 지금을 살아가는 나의 눈에는 이런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을 읽다보면 내내 그 ‘순수함’이란 단어를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나만의 이익이 아닌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계속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칼포니아는 순수한 마음으로 비밀의 강을 찾으러 떠난다. 물고기를 잡아서 팔고 많은 돈을 벌어서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욕심이 아니라, 물고기를 팔아야 하는 아빠의 장사를 돕고자 했던 것뿐이었다. 그때 그 순간에 마을에 닥친 경제적인 어려움을 넘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칼포니아는 물고기를 잡고 싶었던 것이니까. 그건 모두에게 닥친 위기를 같이 건너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듯했다. 아이가 그때의 어려움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테니까. 이 이야기가 써진 시간적 배경이 1930년대의 미국의 대공황 시기였다고 하니, 그 위기는 어느 한 사람에게만 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같이 건너가고자 한다면 그 길을 걷는 걸음이 많이 무겁지 않을 것이기도 하겠지. 언젠가부터 우리 입에서 항상 나오는 ‘경제위기’라는 말을 여기에 적용시켜보고 싶기도 하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이 위기도 어느 한사람에게만 다가온 것은 아닐 것이기에 칼포니아의 순수한 마음과 나눔이 자꾸만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도 그렇게 건너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와 바람을 자꾸만 담고 싶어서…….

 

 

 

칼포니아가 비밀의 강을 찾아가던 여정은 한 사람의 인생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누구나가 살면서 한번쯤은 난관에 부딪힐 수 있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그 이후 삶의 모습을 그려주겠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비밀의 강에 대해 말해주는 알버타 아주머니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만나고 싶은 멘토처럼 보였다. 우리가 어떤 길로 갈지 헤맬 때, 그 길이 옳은 길인지 누군가에게 한번쯤 묻고 싶을 때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알버타 아주머니는 칼포니아에게 비밀의 강의 정확한 위치를 말해주지 않았다. 코끝이 가리키는 대로만 따라가라고 했다. 그 코끝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어도 그 믿음대로 따라가면 비밀의 강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믿음을 주고 있었다. 이는 곧, 자신의 선택에 따라 믿음으로 같이 가면 그 어떤 결과를 만나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용기를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최선을 다한 후에 만나는 결과물은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인생의 경험으로 보인다. 다시 한 번 비밀의 강을 찾고자 했을 때 알버타 아주머니는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해주신다. 실재하지 않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비밀의 강이라고. 가만히 눈을 감고 만나고자 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힌트를 여기서도 주고 있었다. ^^ 이런 장면들은, 앞으로도 칼포니아가 그 어떤 위기 앞에서 자신이 생각한 믿음대로 향할 것임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 안에 우리가 있었다. 일단 부딪혀 보는 것, 믿고 나아가 보는 것, 주저앉지 말고 일어서서 걷다 보면 우리에게도, 우리만의 비밀의 강이 나타나주지 않을까? 간절히 바라고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가고자 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곳에서 낚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용기와 희망이 아닐까 기대해 보게 된다. 비밀의 강은 꿈속에서나 만날 법한 신기함으로 먼저 다가오는 이름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내 안에서 늘 같이 하는 것만 같다고. 칼포니아에 대입되어 비밀의 강을 찾아가는 그 하루의 여정을 우리가 함께 했으니, 이제 그 비밀의 강은 세상 속에서 부딪히면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남겨진 하나의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그 경험은 우리가 자라나면서 만나는 많은 장애물들을 건너게 해줄 바탕이 되지 않을까. 정말 간절한 순간에 조우하고 싶은 이름이 되었다. 비밀의 강...

비밀의 강은 내 마음속에 있네.
언제든 갈 수 있는 그 강.
알버타 아주머니의 말은 모두 맞았지.
하늘에는 황금빛 물결이 너울너울.
강에는 옥빛 물살이 출렁출렁.
강, 강, 비밀 속에 감춰진 내가 사랑하는 강. 

 

 


어떤 방향에서 봐도 들려오는 메시지가 있어서 그 다양함에 가슴속이 풍성해졌다. 연령 구분이 없이 읽을 수 있는 특별한 그림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읽어가는 과정에서, 다 읽은 후에도 두근두근 쉬지도 않고 가슴이 설렌다고 해야 할까. 자연과 인간이 같이 살아가면서 나누어야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보게 했다. 거기에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은 살아있는 표정과 이야기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숨을 쉬고 있는 듯 보였던 자연의 모습들, 나무들과 이파리들 하나하나에 그려진 표정들은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의 말을 할 수 없기에 내 멋대로 생각하고 해석했던 것들을 이 책의 그림들이 풀어내는 표현으로 듣고 있었다. 그렇게 자연과 칼포니아가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은, 욕심이 아닌 나눔과 배려가 만들어낸 최고의 교류로 완성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나 혼자가 아닌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시 보게도 만들었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내 안에서 찾아내어 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항상 순수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순수함이 바탕이 되어 만들어내는 무궁무진한 기적들을 이 책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자연이 내어주는 것들로 모면한 위기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마음이 풀어내는 온기들, 내 안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비밀의 강의 힘까지. 이 책은, 더 넓고 많은 세상을 경험하면서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칼포니아가 들려주었던 한 편의 아름다운 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개정판
이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게 있어서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숙제처럼 무언가를 다시 해야 할 때나 꼭 필요한 어떤 부분을 찾아내야 할 때 같은 특별한 목적을 두지 않는 한,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펼쳐들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나의 성격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몇 번씩이나 손길이 가는 책이 있다. 바로 이 책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출간된 지 딱 10년,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나고 같이 흘러왔던 시간과 거의 비슷하다. 처음 도서관 서가에 꽂혀있던 이 책을 만났을 때는 로맨스소설인줄도 모르고 만났다. 읽다보니 점점 빠져든다. 말랑말랑한 감정 하나만을 주고 있던 게 아니었다.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었다. 로맨스소설이되 로맨스소설만은 아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저절로 그 공감의 둘레 안으로 파고들어가게 했다. 몇 번을 도서관에서 이용하다가 결국은 구매하고야 말았다. 이 책은 나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야만 했던 운명인 것처럼 그렇게, 나와 같은 공간에서 그 긴 시간동안 이 책으로 울고 웃고, 위로 받고 보듬어주고, 공감과 이해를 같이 경험해왔다. 이 책의 어디쯤 펼치면 어떤 내용이 있는지 알 수 있어서 맞춤형으로 처방전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이쯤이면, 나의 모든 희로애락을 같이 해온 이 책에게 ‘절친’이라고 이름 붙여줘도 되지 않을까? ^^ 그리고 몇 년 동안 들어왔어도 질리지 않을 이 말이 어느 순간 이 책과 동의어가 되어가기도 했다.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서른 한 살의 라디오 작가 공진솔과 서른세 살의 라디오 피디 이건의 사랑이야기다. 프로그램 이름마저도 구수한 <노래 실은 꽃마차>에서 같이 호흡을 맞추게 되면서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다. 그런데 이 남자 건PD, 시집까지 냈던 시인의 경력을 가지고 있단다. 그래서 소심한 진솔은 더 긴장한다. 글 좀 쓴다고 해서 혹시나 작가를 괴롭게 할까 싶어 마음의 경계를 세우지만, 시간과 마음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같이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자연스럽게 마음이 다가갈수록 서로를 더 알게 되고 동료 그 이상의 감정이 싹튼다. 그러면서 또 한 번 겪게 되는 사랑이란 풍랑을 두 사람은 어떻게 건너갈지가 궁금해 내 마음도 동행한다.

라디오라는 단어가 주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여전할 수 없었던 걸까. 한때는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것이 엽서나 편지가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워드프로그램으로 타이핑한 것이 아닌 손으로 악필일지라도 손으로 꾹꾹 눌러서 쓰는 그 힘에 온 마음을 담아 적었더랬다. 마치 그 순간 그렇게 적어 보내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마음을 그곳에 담아내야만 했었다. 그리고 운이 좋아 전파를 타고 나에게로 다시 날아오면 무언가를 털어내는 듯했다. 가슴 속 이야기들을 날려 보내고 듣고 싶은 음악 한곡과 함께, 그렇게 또 한 번 마음이 가벼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가던 때가 있었는데. 어떻게 틀리지 않고 쓸까 하는 마음과 적어가는 동안 한 번 더 내뱉는 말들이 주는 개운함과 우표를 붙이고 날아가는 시간, 다시 또 돌고 돌아 나에게 들려오던 시간들이 지금은 사라진 듯하다. 문자 한통에 실시간으로 소개되는, 누군가의 사연이나 이야기가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만나는 이 책은 그래서 조금 더 느리게 흐를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하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 역시나 그렇게 느리고 단단하게 흐를 수도 있다는 듯이……. 그런 방식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깊어져가는 모습을 건과 진솔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두근거렸던 시작과 서툴게 차단했던 마음과 그래도 사랑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음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 감정들이 풀어내는 것은 온기였다고,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고.

아주 어렸을 적에, 삼십대가 된 어른의 모습은 사랑이 아니라 삶에 익숙해지는 게 먼저 그려지고는 했었다. 몇 살에는 무엇을 하고, 몇 살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이미 정해진 매뉴얼대로 진행되고 있는 삶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그렇게 정해진 것은 없다고 생각되더라. 그런 순간들 속에서 진솔과 건을 만났다. 서른이 넘은 사람들, 사랑도 해보고 이별도 해본, 가슴에 크고 작은 상처 하나쯤은 안고 살아왔던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듣고 싶어진다. 평범한 이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나도 같이 녹아드는 건 그래서 자연스럽다. 한번쯤 사랑에 실패해봤던 이들이 조심조심, 그러나 진심을 다해 또 다른 사랑에 다가가는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었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마음이 사랑인 걸까 거듭 확인하고 싶어지고, 사랑이라 표현하고 다가가도 될는지 조심스럽고, 이 사랑이 무사히 앞으로 갈 수 있을지 염려스럽고……. 그러면서도 계속 가고 싶은 이유, 사랑이란 것에 대한 긍정적인 이유를 버리지 못해서인 건 아닐까, 라고.
어쩌면 이리, 쉬운 일이 하나도 없을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잊는 것도 죄다 어렵다. 만만한 일이 뭘까, 세상에서. 마음속에서 메아리가 윙윙 울리고 있었다. (352페이지)

이 책의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주변의 사람들은 건이 나쁜 남자라고 했다. 가만히 있는 진솔을 흔들어 마음을 고백하게 만들더니, 정작 고백을 듣고서는 그 마음을 자신의 마음대로 정의해버렸다. “지나가는 바람일지도 몰라요.”라고. 진솔의 많은 부분을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여놓고 순간 진심을 말해버린 자신의 마음을 바보 같이 수습해버렸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그런데 정말, 이런 건이 나쁜 남자일까? 몇 번을 읽었어도 나는 잘 모르겠다. 온전하게 진솔에게 가기 위해 망설이던 것도, 자신의 마음을 인정했을 때 따라올 기다림도, 그가 주었던 아픔들에 대해서 그가 치유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남자였다. 그래서 누군가가 건을 나쁜 남자라 말할 때 속으로 웅얼웅얼 하고 싶은 말을 참고는 했다. ‘진짜 나쁜 남자를 못 봤구먼.’하고 말이지. ^^ 나라고 나쁜 남자를 알아봤자 얼마나 알고 있겠는가. 다만 이 남자, 건이 진심을 말하고 다가가는 모습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이해해주고 싶은 아량이 발동한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더 현실감이 느껴지게 했던 것 같다.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어서, 일상에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 시행착오를 하는 게 사람이라서 인정하고 싶은 남자라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하나하나에 우리의 모습이 많이 담겨 있어서 더 애틋한 소설이다. 바람 따라 떠도는 자유를 느끼고 싶은 선우, 그런 선우에게 자신을 봐달라고 애쓰는 연인 애리, 자신의 진짜 사랑이 이 사람인지 저 사람인지 찾지 못해 우왕좌왕 고민했던 가람, 사랑으로 받은 상처에 다시 오는 사랑이 주춤거렸던 진솔과 건. 그리고 인생이란 무엇인지 한 마디로 정의해주신 이필관 옹까지.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 이들이 취하는 행동,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는 메시지들이었다. 언제 어느 때 다시 만나도 그때그때의 마음에 스며들어 치유해주는 힐링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이 책을 다시 찾은 이유도 거기에 있을 테지. 마음이 두 동강 났을 때, 나를 다독여주고 싶을 때, 봄의 시작에 찾아온 지금의 꽃샘추위를 혼내주고 싶게 따스함 전해 받고 싶을 때.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이 책을 만나야 할 이유가 되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로, 더 이상 이 책을 로맨스소설이라 부르면 안 될 것 같다. 단맛 쓴맛, 살아가는 매 순간의 모든 맛을 경험하게 해주는 인생소설이라 명명하면 어울리려나. ^^ 여전히 사서함 110호의 <노래 실은 꽃마차>의 사연도 계속되고 있을 것만 같다. 아직도 진솔과 건이 거기에 있을 테니까...

2013개정판에 부록처럼 수록된 단편 「비 오는 날은 입구가 열린다」의 제목은 이 책을 읽은 사람이면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을 것이다. ^^ 그래서 내용도 연상이 되기도 하는데, 이 단편은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다른 내용이다. 오래된 골동품을 파는 가게의 남자와 파꽃을 그리는 여자가 남포등이 켜지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안에 두 사람의 추억과 함께 한 이야기가 겹쳐져 하나로 이어진다. 내용이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도록~ ^^



Dear Diary

잘 자요. 좋은 꿈꾸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 책 『아주 사적인 독서』를 만나고 내가 다시 한 번 경험한 감정은 ‘지독하게도 고전을 읽지 않았구나.’ 하는 것이었다. 매번 책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었고, 책을 구매할 때마다 고전을 구매하면서도 읽는 속도가 마음을 따라와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점점 더 고전과 나의 책읽기에 대한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만나면서 다시 한 번 그 감정을 경험했다. 아, 이번 기회에 또 한 번 그 고전읽기에 도전해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받은 듯하다. ^^


이 책에서 소개된 책들이 총 7편. 그 중에 내가 읽어본 것이 아주 오래 전,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에 『주홍 글자』뿐이었다. 그마저도 사실 지금은 내용조차고 기억이 잘 안 난다. 아, 너무 오래되었구나. 그리고 또 한 가지 상기되는 말은, 아무리 유명한 고전이라도, 이미 어린 시절에 읽었던 것이라도 어른이 된 후에 읽으면 그 느낌이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뭐가 다를까? 아... (또 한 번 아쉬움의 한숨 소리) 어른이 되어 읽지를 않았으니 그 다른 점을 비교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 『아주 사적인 독서』가 더 반가운 일이다. 말 그대로 아주 사적인, 타인이나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 만날 수 있는 책들의 소개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책, 나를 위한 메시지를 찾을 수 있는 책, 그래서 나의 만족을 더할 수 있는 책을 만나야 한다는 의미. 그래서 나는 『아주 사적인 독서』 속에 소개된 7편의 책을 가장 먼저 만나고자 한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
고백하건데, ‘노골적인 성 묘사와 비속어로 인해 많은 논란과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는 문구에서 먼저 꽂혔다고 말하고 싶다. ^^ 잘 몰랐던 이야기에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주제에 이야기 자체로 푹 빠져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먼저 제목을 눈에 담았었다. 저자 로렌스가 외설이나 의미 없는 성적 탐닉을 거부했던 사람이었다는데 굳이 이런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이 책에서 그가 전하는 의미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자극적인 호기심만을 만족시켜줄 게 아닌 그 안에 내포된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주인공 멜러즈를 통해서 보이고 있다는 작가의 의도, 직접 읽어보고 찾아내야만 할 것 같아서 선택해본다. 그 다음에 내가 할 일은 나의 삶에 적용시키는 일이리라.


 

<주홍 글자>
약 160여 년 전의 미국, 엄격한 청교도적 사회에서 파장을 일으켰던 작품이라 했다.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어긴 한 여자, 헤스터가 가슴에 주홍글자 A를 달고 사는 벌을 받는 상황이 그려진다. 내용을 몰라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에 읽었을 때는 내가 찾지 못했던 그 무엇을 찾아보고자 한다. 헤스터와 그 간통의 상대인 딤스데일 목사, 헤스터의 전 남편인 칠링워스, 이 세 사람이 각각 표현하고 전달하고 있는 이야기의 내면을 보고 싶다. 상황 그 자체보다는 사람의 심리를 더 많이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기대감이 생긴다. 살아가면서 사람의 내면에 자리한 그 심리가 작용하는 힘을 더욱 많이 보게 되는데, 마치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만 같은 궁금증에 꼭 한번은 다시 만나고픈 책이다.


 

<마담 보바리>
오래 전에 소개글에서 봤던 줄거리는 단순했다. 남편에게 만족을 못했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어울린다는 것인데, 그렇게 단순하면 또 고전이 아닐 것만 같다. ^^ 지인이 말하기를, 이 작품은 알 듯 모를 듯 발견하는 그 심리묘사가 볼만하다고 했다. 거기에 여자이자 어른으로 사는 우리를 대입시키라고 했다. 생각과 다른 결혼생활이나 일상이나 만들어내는 것은, 단순한 듯 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감정들과 현실을 같이 볼 수 있다고 했다. 못 만난 고전들이 많아서 그런지 사뭇 다른 느낌들을 만나는 재미가 상당할 것 같아서, 그 안에 우리의 욕망이 있다고 하니, 더욱 찾아봐야 할 의무가 생기는 듯하다. ^^



 

<돈키호테>
그냥 좀, 웃긴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허무맹랑한 모험담이 아닐까 싶었다. 본의 아니게 영웅담이 만들어지고, 다시 그 영웅담을 확인하러 가는 여정이라니... 웃기지 않은가? 사는 게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작품이 많이 생각나고는 했었다. 현실은 자꾸 변하고, 그 변화하는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내가 있다. 많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가 읽고 싶은 고전의 목록을 물을 때마다 함께 했던 작품이다. 이번 기회에 다시 상기하게 되어 반갑다.



 

<햄릿>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라 내용만 알고 있었다. 고전이 주는 착각을 이 작품 역시나 주고 있었다. 읽지 않았으나 읽었다고 여겨지는 착각. 그러한 착각을 지우고자 몇 해 전에 만난 책이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아, 활자로 느끼는 그 섬세함과 감동이라니. 이래서 유명한 고전은 원작으로 먼저 읽어야겠구나 생각했다. 같이 소개된 앞의 책들이 여자의 사랑과 인생에 대한 것을 더 보고 싶은 목적이었다면, 「햄릿」은 그 모든 것을 아우른 인간에 대해 더 보게 할 것 같다. 남자, 특히 아버지의 힘과 여자들의 억눌림, 그리고 도덕에 관하여 볼 수 있다고 하니 그 유명세를 뒤로 하고 오직 하나의 작품으로만 대하고자 생각해 보게 된다. 결국 직접 읽는 이가 느껴야 할 것들만 보면 되므로...

 

<파우스트>
이 책의 제목을 떠올림과 동시에 드는 생각은 늘 이런 것이었다. ‘어려울 것이다...’ 싶은 마음. 사실 이 책을 만난 이들 대부분에게 쉽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한권의 책을 놓고 쉽다 어렵다 얘기하는 것이 어불성설일 수 있으나, 그래도 책을 만나기 전의 부담은 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에 그런 투정도 해본다. 괴테가 24세부터 쓰기 시작해 82세에 완성했다는 부분만 봐도 이 책의 분위기가 그려지기도 한다. 긴 시간동안 써 온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 읽고 나서 느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과 부담이 동시에 오기 때문이다. 내가 만나서 나만의 느낌을 갖는 것을 그 이후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신과 대등한 위치에 서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이라니, 이 얼마나 솔깃한 이야기인가 하는 호기심에 나도 파고들고 싶어진다.


 

돈 주앙... <석상 손님>
이런 작품이 있었나? 무지하게 들리겠지만 『아주 사적인 독서』에서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알았다. 이런 멋진 제목과 함께 할 내용이 무엇일지 궁금해 죽겠어서 찾아보니 돈 주앙의 프랑스식 이야기라고 하는 부분을 찾아냈다. 그동안 알아왔던 돈 주앙의 이야기와 다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주 사적인 독서』 안에서 더 자세하고 재미있는 부분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가장 먼저는 내가 직접 만나는 이 책에 대한 것일 테다. 내가 먼저 확인하고 나서 그 후의 이야기들을 모아서 들어보리라 생각한다.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곧 만날 영화를 위해 미리 만나고 싶은 고전 안나 카레니나. 웅장하면서도 보편적인 느낌에 부담 없이 만나보고 싶은 고전이다. 무엇보다 행복하지 못한 가정에 대한 이유를 만나보고 싶었다. 그게 인생의 많은 부분에 작용되는 시작이 아닐까 싶다.



『아주 사적인 독서』 이 한권의 책으로 다른 책, 특히나 그게 고전이라는 점에서 계속 마음에 담게 된다. 만나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정해놓은 목록 그대로를 곧 만나게 되길 바라면서 한권씩 만나는 기대감을 키워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카페에서 책 읽기 - 뚜루와 함께 고고씽~ 베스트컬렉션 39 ㅣ 카페에서 책 읽기 1
뚜루 지음 / 나무발전소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의 이름은 독자! 그럼 독자인 당신은 어디에서 책을 읽는가?!
사소한 물음일 수 있지만, 은근한 호기심에 궁금하기도 해서 굳이 대답을 듣고 싶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 외출할 때는 가방에 작은 책 한권 들고 나가서 자투리 시간에 몇 페이지씩 넘겨본다거나 커피점 같은 곳에서 시간을 보낼 여유가 주어진다면 또 앉은자리에서 몇 페이지씩 넘겨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책을 읽는 시간의 대부분은 방바닥에서 뒹굴 거리면서이다. 그래서 자세불량으로 정형외과 진료를 받은 적도 있다. 목뼈가 비뚤어졌다나? 바른 자세로 앉아서 책과의 적정거리를 두고 내려다봐야 하는데, 나는 그런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한마디로 안 좋은 것을 총집합해놓은 자세로 책을 대한다. 책에 대한 예의 없음이라고 말하기는 뭐한, 그냥 망가진 내 몸뚱이에게 미안할 뿐. 흑…….

그래서인지 제일 좋아하는 카페의 제일 좋아하는 자리에서 책읽기를 한다는 저자의 책읽기를 듣는 즐거움은 색달랐다. 미리 말하지만, 제목이 ‘카페에서 책 읽기’라고 하여 저자처럼 카페에서 책을 읽으라는 말은 아니다. 그저 우리(독자) 모두가 사랑하는 책을 읽는 장소를 저자의 스타일로 표현한 것이다. 저자는 카페라는 장소에서 책 읽기를 즐기는 것뿐이므로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책이야기다. 저자가 읽은 책에 대한 느낌을 카툰으로 표현했다는 것만 다를 뿐 우리가 읽는 책, 우리가 쓰는 리뷰와 의미는 같다고 생각하고 싶다. 사실 나도 손재주가 있으면 정말 다양하게 표현하고 싶단 말이다. 저주받은, 재능 없는 손이 안타까울 때가 많아서 슬프지만 어쩌랴.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다른 용도로의 발전을 꾀하여 즐거움을 찾는 수밖에. 하지만 늘 아쉬움은 남는다. 활자로 미처 다 표현해내지 못한 것은 그림 하나로 다 담아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재주는 늘 갈망하게 되니까. 또 한 번 흑……. (부러우면 지는 건데, 그래도 부러워. ㅠㅠ)

부러운 건 부러운 거고, 일단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무엇보다도 미흡한 글발 때문에 카툰 서평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그 미흡함이 저자의 특색 있는 리뷰로 거듭났으니까 말이다. (아, 진짜 부러울 수밖에.) 누가 봐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독자의 자세와, 카툰이라는 성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더 솔직하게 표현되는 듯한 리뷰의 느낌과, 내가 미처 리뷰에 다 담아내지 못했던 고백 같은 중얼거림까지.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매력들로 책이야기를 꽉꽉 채워냈다. 적어도 이 책만큼은 저자의 스타일대로 카페에서 읽어주면 더 맛깔 날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긴다. 꼭 그렇게, 그 장소에서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자신의 부족함과 일상 같은 습관이 만들어낸 북 카툰이라는 리뷰의 형식은 어떤 식으로 보든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저자가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표현 하는 부분에서 내가 느낀 것은, 뭔가 있어 보이려 포장을 한다거나 알지 못하는 것을 굳이 아는 척 한다거나 해서 거슬리게 보이는 리뷰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저자가 리뷰를 표현하는 방식은 편하고 유쾌하게, 책 이야기는 진지하게, 느낌은 솔직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저자의 리뷰가 좋다. 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이 나에게 더없이 맞춤형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저자가 이 책에서 뒷부분에 만화의 리뷰를 실어준 것을 빼면 모든 리뷰가 소설책에 대한 것이다. 장편 단편, 장르 구분 없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 너무 반가웠다. 내가 읽은 책, 알고 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 아직 못 읽었어도 가지고 있는 책이기에 더 빨리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조급함을 주는 것까지도 좋았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 따위는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좋다.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니까. 어떤 장소에서 어떤 모습으로든 자신이 좋아하고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 된다. 그거면 충분하다.

이 책이 더 공감을 하게 만드는 이유는 책 중간 중간에 담긴 저자의 책에 대한 생각이다. 그중 한 부분을 말해보자면,
<용서받지 못할 책> (107페이지를 살짝 보시라~)
1. 개념 없는 분권 - 600페이지 될까 말까 한 책을 부득불 갈라서 분권하는 것에 분노합니다. 차라리 손에 묵직하게 잡히는 단권이 좋다고요!
2. 넌 어느 쪽 그림 설명이니? - 이미지와 설명이 따로 놀아 연결이 안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독서 흐름에 상당한 장해를 받는답니다.
3. 넌 미주일 수밖에 없었던 거니? - 31페이지 주석을 보기 위해 916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결국, 보충 설명 부분은 과감히 포기해버렸어요.
4. 표지, 너 습자지로 만들었지? - 읽을 때마다 표지가 줄줄 흘러내리는 걸 매번 끌어올려야 하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럼 표지를 벗겨내고 보라고요?
5. 넌 왜 무려 양장이니? - 페이지 수 200쪽도 안 되는 얇은 책을 굳이 양장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요? 앙증맞은 문고본은 정녕 만들 수 없었던 건가요? 무조건 양장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닌데 말입니다.
6. 넌 왜 두꺼운 양장이면서 책갈피 끈도 없니? - 근래에 읽은 만화책 때문에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는데, 두꺼운 만화책에 페이지 수도 없고, 세상에 책갈피 끈도 없는 거예요. 만화책이라도 속독이 불가능한 저는 당황스러웠어요.
7. 광활한 여백의 미 - 책의 성격상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책도 있지만, 지나친 여백으로 페이지 수만 잡아먹는 책은 용서할 수 없어요.
특히 1,3,4,5,7번 항목을 격하게 공감한다. 이해 안 되는 분권과 백여 페이지 분량을 양장본으로 만났을 때의 분노, 여백으로 인하여 책의 페이지 수만 늘어난 것 같은 상황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뒤끝을 불러온다. 주석이 페이지 하단에 없으면 주석 확인하는 것은 과감히 포기(뒤쪽 페이지까지 왔다갔다 너무 힘들어.)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은데 그저 책을 만드시는 분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도 좀 헤아려 달라고........

저자(뚜루)의 북 카툰 중에서 베스트 39편을 모아서 나온 책이다. 그냥 서평집이라고 하면 서운하고, 개인의 독서일기라고 하기에는 막 훔쳐보고 싶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를 할 때면 아끼는 책에 밑줄까지 쫙쫙 그어주고 싶어지게 만든다. 연재할 때마다 다 챙겨보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제는 따로 구독하고 싶을 만큼 저자의 리뷰를 기다리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이 더 반가웠던 것은 언급해주는 책들 중에서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이 참으로 많았다는 점~ 하지만 소장하고 있을 뿐이지 읽지 않은 책이 더 많았다는 점~ 그래서 마음이 바쁘다. 빨리 책장으로 달려가 그 목록을 다 꺼내어 옆에 쌓아두고 싶어서 말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구를 떠날 그날까지 책과 함께 하고 싶다.’는 저자의 말에 어떻게 공감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안 그래? 구뤠~~!!

거의 한 달 사이에 서평집 세권을 만났다. 두 권은 소장하려고 내 품에 데려왔고, 한 권은 도서관에서 본 책인데 아직까지 구매여부를 망설이고 있다. 곧 이 책도 내 품에 데려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권 모두 분위기가 다 달라서 골라먹는 재미가 있었다. 한권은 좀 진지하고 깊은 맛이 나고, 한권은 심플하지만 다양하고 많은 책을 소개해주고 있었고, 나머지 한권이 바로 이 책이다. 그렇게 각각 다른 세권의 서평집을 만나면서 또 하나 발견한 것은 역시나 서평집을 대할 때 드는 공통된 느낌이다. 그 책에서 소개해주는 책들이,
- 내가 읽은 책이면 무지 반갑고. ㅎㅎ
- 내가 읽지 않은 책이면 리스트가 배불러지고. ^-----^
- 내가 읽지는 않았으나 소장하고 있는 책이면 괜히 낚은 고기 같고. >.<
나만 이런가? ^^ 가끔씩 부작용을 동반한다고 하여도, 다른 이의 리뷰(서평집이라고 하여도)를 만나는 일은 멈출 수가 없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데이지 2013-02-20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뚜루님 서평을 종종 찾아보곤했는데. 이렇게 책으로 낸지는 몰랐네요.
구단씨님이 올려주신 글에서 '용서받지 못할책'들 정말 격하게 공감해요. 특히 전 1번이 싫더라고요.
적당한 분권은 손목보호에 도움이 되지만, 개념없는 분권들은 정말......

구단씨 2013-02-20 11:50   좋아요 0 | URL
어린왕자의 별님 반갑습니다. ^^

이 책 속에서 소개해주시는 책에 대한 사소한(?) 저자의 느낌들이 참 공감이 많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만난 책이기도 합니다... ^^
 
연애 연습
진소라 지음 / 로크미디어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보는 햇살은 반갑고, 바람은 너무 차가워서 칼 같고, 회오리바람처럼 휘날리는 눈을 보고 있자니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시간 같았다. 오늘은, 그랬다.

‘이건 아니다’ 싶은 순간에 칼같이 잘라내는 여자에게 남자는 연애를 해보자고 말한다. 때때로 우리의 인생에 출몰해서 ‘준비’라는 시간을 갖게 하는 많은 일들처럼 연애도 그렇게 하면 된다고 떡밥(?)을 던지고, 여자는 이미 반해버린 남자에게 아닌 척 연습인 척 다가가 본다. ‘아니면 늘 그래왔듯이 잘라내면 그만이니까.’라고 우습게 본 탓에 여자의 연애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 연애가 되고, ‘진짜’ 인생이 된다. 물론 그건 남자에게도 마찬가지. 이 와중에 서로가 겪게 되는 진심의 순간들과 오해의 시간들이 당연한 수순처럼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이들의 이야기에서 그리 중요하게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중요한 건, 이런 시간을 통해서 여자에게 보이던 자기 자신이란 인물이었다.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기의 이기심 때문에 무얼 놓치면서 달려왔는지, 자기가 가로막았던 ‘연애’가 무엇이었는지를 남자를 통해서, 남자와의 연애를 통해서 보게 된다.

뭐 결론은 늘 그렇듯 해피엔딩인데, 그렇게 마무리까지 끌어가는 과정과 읽는 이에게 던져주는 느낌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읽는 내내 생각했다. 좋지 않은 갖은 별명으로 남들에게 보이는 이미지가 곧 자신이 되어버린 여자 반소은, 이 여자와의 연애를 위해서 한발 양보했지만 역시 그도 자신의 이기심을 먼저 챙겼던 남자 오세준. 반소은의 옆에서 구미호 같은 반소은이 되어가게 만들었던 박볶음, 이십년 지기가 사실은 많은 것들을 누르고 살아왔다는 증거 아닌 증거로 반전을 일으켰던 반소은의 친구 신이. 그리고 내가 그동안 읽은 진소라의 작품에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가족이란 캐릭터의 구성들. 아마도 그건 ‘이해불가’ 머리띠를 두르고서야만 볼 수 있는 묘사들이었다. 우습게도 그런 이해불가는 우리의 일상에 너무나도 가까이 있는 모습들이어서 더더욱 부정할 수 없는 모습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그런 캐릭터들 안에서 또 다른 진심들을 꺼내는 모습들이 불러올 감정들과 우리가 살아가는 자세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예를 들면 이런 구절이 그런 감정을 스멀스멀 피어오르게 한다.
무언가 망친 기분이 들 때, 그걸 빨리 잊으려면 남의 탓을 하면 된다. (83페이지)
우리가 잘(?) 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남의 탓이 아닐까? (이렇게 말하고도 웃음이 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남의 탓을 하기도 하는 찌질한 인간이라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넘기고 싶은 순간들, 잊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을 때, 내 잘못인 것 알고 쿨하게 인정하게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남의 탓으로 돌리면 조금 더 빨리 그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아니라고?!) 주로 그런 경우는 자신이 잘못 했을 때 떠올리기 쉬운데, 이들이 말하고 있던 것은 ‘연애’라는 카테고리 안에서의 일들을 주제로 그렇게 해석한다. 그게 연애여서이기도 하고, 조금 더 넓게는 인간관계로 보아서도 마찬가지고. 반소은이 간만 보다가 버리는 것도, 연실이란 별명이 붙은 것도(연애를 싫어한다고 해서 연실이), 박볶음과의 계속되는 싸움에서도. 모든 것에서 웅덩이 하나를 건너갈 구실이 되는 것이다, 남의 탓은. 그런데 그 남의 탓이 다시 ‘나의 탓’이라고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는 순간은 온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해도, 우리가 만나고 싶지 않아도, 우리의 의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라도.

반소은이 오세준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변해가는 과정, 다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볼만하다. 남자는 그래도 연애는 할 만한 것이라고, 그 연애가 비록 실패할지라도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 끝에 상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상처를 상쇄시킬 만한 기쁨이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여자는 그에 반박할 만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 상처를 갖기 싫어서 연애를 안 하는 수도 있다는 듯이, 뜨뜻미지근한 게 살아가는데 편리하다는 듯이 그렇게. 살아가는 게 전쟁인 것처럼 연애도 싸워서 이겨야할 것들 중의 하나라고 여자는 생각했던 것일까. 그게 서른을 바라보는, 이십대가 아닌 삼십대가 가져야 할 연애의 자세일까. 분명한 것은 스물의 연애와 서른의 연애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름’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 것인지 이 여자 반소은이 이 책을 통해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미지근한 게 좋아서는 아니겠죠. 뜨거워질 용기가 없고 차가워질 각오는 안 되어 있으니 이렇게 가는 거죠.” (182페이지)
언젠가부터 우리는 몸을 사리고, 상처가 두려워 손을 내밀지 않고, 내 자존심을 보호해야 하고, 어느 정도 나를 감싸줄 수 있는 중간의 자리에서의 삶을 ‘안정’이란 이름으로 지켜가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받아본 사람에게 다시 상처를 겁내하지 말라는 것은 교만한 오지랖이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함을 선택해야만 했던 시간들을 인생에서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다. 내가 반소은에게 보았던 것은 그녀가 가족을 보면서 키웠을 차가움, 연애인 듯 아닌 듯 흘러간 시간들에게서 배운 처세술 같은 것이었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미지근함 같은 것. 그런데 그게 연애에서도 같은 흐름으로 보이니, 인생이란 우주에서 연애라는 지구는 참 작은 것 같으면서도 가끔은 전부일지도…….

그런 그녀가 연습 혹은 계약이란 이름으로 했던 세준과의 연애는 뜨거워질 용기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지근함이나 차가워짐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열정이 식을 때도, 얼음이 녹을 때도 있는 것이 인생이자 연애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 역시나 사람에 따라 다르게 흡수될 터이니 ‘그런 것이다.’하고 단정 지어 말하지는 않겠다. 책 속의 구절처럼 ‘어떤 일이든 알아야 할 시기를 지나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연습 연애라니, 계약 연애라니. 제목과 이런 저런(내가 읽기 전에 생각했던) 것들이 안타까웠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이야기였다. 반소은의 인생과 연애에 오세준이라는 적군의 침투는 스스로 걸어 들어온 인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인질의 처리문제는 오직 반소은이라는 아군의 마음이다. 행복한 인질로 만들어주었을지 괴로운 포로수용소로 느끼게 해주었을지…….

식상한 소재에서 내가 건져내고 싶은 것은 나에게만 주는 어떤 ‘느낌’이었다. 가슴이 따끔따끔하게 만들어주는 상황들과 툭툭 심장이 떨어질 것만 같은 어떤 문장들 앞에서 이 책의 매력을 발견한 것 같다고. 주인공 한 사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게 하는 것도, 그런 배경들이 같이 가져오는 가슴 울림-슬프다는 울림이 아님-은 이들이 만들어낸 해피엔딩이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도 인정할 수 있게 했다. 얼굴이 찢어질 것 같은 이 추위도, 지금 흐르고 있는 이 겨울의 모습이니까. 무언가를 억지로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닌 인정하는 것, 조금씩이지만 변해가고 배려하는 것, 그게 이들이 만들어낸 해피엔딩이자 행복의 협정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