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게 안아줘
김선민(하니로) 지음 / 청어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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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충분하다... 『따뜻하게 안아줘』

 

3년 정도 같이 살아줄 남자가 필요했다. 엄마에게 남은 시한부 인생이 조금 더 밝고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남자를 찾았다. 빨리 결혼할 수 있는 사람, 이왕이면 엄마에게 다정하게 대해줄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리는 결혼을 준비했다. 근데 뭐, 그게 쉽나. 마음처럼 그런 상대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다 싶은 남자는 마리의 구역에서 바람이 났고, 마리는 다음 남자를 찾아 나섰다. 그때 마리의 앞에 맞선 상대로 나타난 남자는 기승언. 어렸을 적 같은 동네에서 오가다 얼굴 보면 인사하는 정도였고, 동창인 정언의 형이었다. 그런 그가 왜 맞선남으로 자기 앞에 앉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말했다. 엄마를 위해 결혼을 해야 한다고, 그냥 한 번 만나볼 사람이 아니라 결혼할 사람이 필요한 거라고. 그에 승언은 답할 수 없다며 거절했고, 마리는 다른 사람을 찾기 위해 맞선 자리에 또 나간다. 거기서 다시 승언을 만난다. 이번에는 승언도 어느 정도 결심을 하고 나왔다. 같은 자리, 두 번째 만남. 상대의 요구를 알아듣고 나온 자리이니, 그냥 한 번 맞선보다는 생각은 아닐 터. 그의 제안은 하나였다. 어차피 결혼을 목적으로 만난 사이, 이제 연애를 하자고.

 

김선민의 글을 좋아한다. 모든 작품을 다 읽은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취향 맞고 분위기 좋아서 좀 심심한 글이었어도 다른 작품 보이면 읽어볼 수 있는 마음이 드는 호감. 그런 작가의 19금 소설이라니. 그 전에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접한 김선민의 19금 소설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그래서 더 궁금했던 듯하다. 말랑하면서도 담백하고, 큰 악역 없이도 지루하지 않게 읽었던 기존의 글에서 더해진 19금의 조화는 어떨까 하고. ^^

 

처음에는 맞선이란 소재에 결혼과 연애가 바뀐 이야기일 거로 생각했는데, 결혼 전에 이미 마음을 풀어놓은 상태로 연애하는 두 사람을 보니 괜히 실실 웃음이 쪼개진다. 거칠 것 없어 보이는 마리가 품고 있는 약한 면을 보면서, 누구나 앓이 하나쯤 갖고 산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엄마를 무시하고 괴롭히는 할머니를 인간적으로, 어른으로 존경할 수 없었다. 강해지고 싶었던 건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였고, 그렇게 지키고 싶은 사람이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 시한부라니. 더 사랑해도 부족할 시간에 남겨진 시간이 얼마 없다니 뭐라도 해야 했다. 잘 사는 모습, 행복한 모습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게 결혼이다. 좋은 사람 만나서 이렇게 잘살고 있다, 태어난 아기들의 예쁘고 싱그러운 모습 보면서 엄마도 기운을 냈으면 좋겠다, 싶은 바람으로 살아가던 즈음 승언을 만났다. 그를 만난 게 얼마나 다행인 건지, 심성이 반듯한, 좋은 사람에게 좋은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한번 선택한 일에 최선을 다하고 진심으로 대할 줄 아는 사람. 내 사람의 마음을 당연하게 우선하는 사람인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한 거 아냐?

 

승언의 매력을 참 예쁘게 그려놨는데, 특히 태도 분명하게 보이며 거절을 잘하는 이 남자가 너무 맘에 든다. 나는 말을 직선적으로 하는 사람이 좀 부담스러울 때가 많은데, 그에 반해 어떤 일을 앞에 두고 분명한 결정-그게 거절이라 할지라도-을 하는 사람이 좋다. 상대가 상처받을까 봐 지지부진하게 끄는 한 마디는, 결국 어장관리밖에 안 된다. 그의 곁에서 후배랍시고, 같은 아픔을 가진 동지라고 해도, 그 선을 넘는 경우를 받아들일 수 없던 그가 뱉은 한 마디, "짐 싸서 나가라"고 했을 때는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아, 거절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군더더기 없이 간단명료하게, 한 마디로, 내가 아닌 마음을 강요당하지 않게, 더는 오해의 여지 없이. 아닌 걸 알았을 때 분명하게 말하는 법을 이 남자에게 사사하고 싶을 정도였다. 상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 없이, 어떤 상황에서 거절하기 미안해서 우물쭈물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니 결과가 좋은 적이 없었다. 결국은 그 미안함이 또 다른 상황, 오해, 상처를 남기던 걸 보면, 미안함에 단호하지 못했던 건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었던 거다. 이렇게 또 하나를 배운다. 내 것을 지켜야 할 때는 그것만 볼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명하게 선을 그을 것, 옳다고 여기는 일, 내 마음을 전하고 싶은 일에는 온 힘을 다하면 될 것.

 

거기에 당찬 마리의 성격도 매력적이다. 거칠기만 할 것 같은 그녀가 마음을 전하는 상대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부드러워지는 모습이 선해 보인다. 어떤 조건으로 사람을 선택해야만 했던 그녀의 의도가 불순해 보이지만은 않는 게 그런 것 같다. 그 진심이 통했으니 승언 같은 남자 만나서 보듬고 안아주는 포근함을 알게 되는 거고. 따뜻함이란 이런 거구나, 싶은 거 제대로 배웠을 그녀의 마음을 열어보고 싶다. 얼마나 따뜻해졌는지 그 온도 한 번 재보게 말이야.

 

세상이, 사람이, 마음이 따뜻해지는 건 순식간인 듯하다. 어느 순간 통해버리고야 마는 진심이 부리는 힘이 대단하다는 것도 증명하는 것 같고. 착하게 살아서 그런가 보다. 착하게 사는 게 바보처럼 보이기 쉬운 세상에서, 착하게 살다 보니 인간미 넘치는 남자 만나서 제대로 따뜻함을 알아가며 사는 이야기가 이렇게 훈훈할 수가 없다. 등장인물 대부분 선해서 그런가, 이런 결과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걸 보면...

 

큰 거부감 없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인데, 너무 술술 풀려가는 이야기에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겠다. 큰 사건이나 별다른 기복 없이 흐르면 또 심심함 느낄 독자가 있을지도 몰라서... 중반부터 두 사람의 스킨십이 제대로 드러나는데, 개인적인 생각은 그 씬의 절반을 줄이고 다른 에피소드로 극의 긴장감을 더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앞뒤 맥락 없이 등장하는 씬은 아니었지만, 그것보다는 두 사람 사이에 뭔가 더 단단하게 쌓이는 일들이 등장했으면 싶었다는 개인적인 바람 같은 거. ^^ 사람이 좀 웃긴 게, 누군가를 눈에 담는 순간, 상대가 궁금해지는 순간 이미 마음을 돌리기에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이대로 직행하는 게 진심일까 싶은 의심과 검열이 생긴다는 거다. 아니라고 한마디 보태면서 주춤거리고 싶은, 그렇게 해야 마음이 안심된다 싶은 거. 그래서 처음에 아니라고 말했던 승언의 태도가 2주 만에 변한 모습이, 그 후로 계속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마음 드러내는 게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는데, 그건 그냥 그런대로, 그의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더는 문제가 아닌 게 된다. 그래서 단호박 같은 승언의 진심이 더 빛나 보였던 시간.

 

크게 취향 타지는 않을 듯하다. 무난하게, 적당하게 잘 읽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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