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집짓기 - 마흔 넘은 딸과 예순 넘은 엄마의 난생처음 인문학적 집짓기
한귀은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작아도, 누추해도 자신의 존재를 기댈 수 있는 곳이 진정 집이다. (216페이지)

 

막연하게 엄마와 집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엄마는 땅 밟고 살아야 한다면서 마당 있는 집을 원하고(사람은 흙을 밟으며 살아야 건강하다고 했다.), 구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보조 주방을 원하고(김장 때 불편하다고 바닥에 물을 버릴 수 있는 구조의 주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 울타리 안에서 약간의 채소를 길러 먹을 수 있는 텃밭을 원한다. 마트에 가면 금방 사서 올 고추장 된장도 굳이 담가 먹어야 한다면서 장독 놓을 공간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도 좁은 마당 한 귀퉁이에 엄마가 어설프게 만들어놓은 작은 밭이 있고 장독대가 있다. 정말 손바닥만 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작은 공간이다. 시기에 따라 기분에 따라 상추나 시금치, 파, 열무, 부추, 고추, 토마토 같은 것을 심는다. 어느 정도 자라 수확(?)할 때가 되면 딱 한 끼 식사할 수 있는 채소가 나온다. ^^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일 년 동안의 큰 농사지어서 엄청나게 수확한 사람의 표정을 보는 듯하다. 집 앞의 시장에 가면 아무 때나 사서 먹을 수 있는 것을 굳이 본인의 손으로 길러 먹는 맛을 열변한다. 나는 그런 말을 흘려듣고 말지만,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아서 그냥 웃는다. 엄마와 나는 집에 대한 개념이나 바라는 양상이 정반대일 정도로 다르지만, 굳이 토 달지 않는다. 집이라는 것이 겉모양이나 구조, 쓰임새 등등 많은 것이 다 다르겠지만, 본인이 좋으면 그만이다. 그건 집과 사람, 그 두 가지가 함께 한 시간에 대한 기억이 각자에게 다르게 새겨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를 한귀은의 『엄마와 집짓기』를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되고 있다.

 

『엄마와 집짓기』 제목에서 풍기는 내용 그대로다. 저자가 집을 짓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물론 거기에는 당연하게 엄마가 함께한다. 30여 년을 살아온 동네와 집을 뒤로하고 새로운 터전에 새집을 짓는다. 엄마와 아빠가 노후를 함께 할 집, 성장해서 따로 나가 사는 자녀들이 부모가 그리워 찾아올 집, 가족들에게 평안과 행복을 만들어줄 집. 그런 집을 짓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기초공사부터 여러 가지를 직접 보고 선택하고 관리해야 하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만들어진 물건 하나 사듯이 뚝딱 지어지는 게 아니어서, 건축주(저자와 어머니)가 원하는 방향으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 관리·감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서, 처음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안타까움마저 안고 가야 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정말이지 처음 집을 짓는 사람들에게 같은 초보의 입장에서 이미 경험한 시행착오를 그대로 들려주는 지침서 같기도 하다. 혹여나 집을 짓고자 하는 미래의 초보 건축주가 이 책을 본다면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듯하다. 동시에, 이 책은 집짓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저자와 엄마가 집을 짓기로 마음먹으면서 시작된 어려운 과정을 담은 초보 건축주에 관한 이야기 같지만, 그 이상의 것을 말하고 있다. 집짓기 과정을 통해 시작된 시간 여행이자 저자와 엄마, 가족이 함께해온 시간만큼 함께 해온 아픔과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러면서 집(집짓기)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쓰게 한다. 집이 인생(사람)과 같고 시간과 같다는 것을 말한다.

 

집짓기를 통해서 엄마(나)의 마음을 알게 된다.

마흔이 넘은 딸과 예순이 넘은 엄마. 서로가 함께해온 40여 년의 시간 동안 터놓고 말하지 못했던 시간이 집 짓는 시간 동안 여러 가지 과정을 지켜보면서 살며시 고개를 든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한다. 그동안 알아채지 못한 욕망이면서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서로가 바라는, 좋아하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다. 이런 집이면 좋겠다, 이런 공간이면 좋겠다, 싶은 바람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진정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의 삶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얼마만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지 고민하게 한다. 나는 지금, 내가 바라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싶은 내면의 물음을 끊임없이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생에서 자꾸 채워 넣으려 하는 것보다 비워야 할 것들에 관해 얘기한다. 집짓기 과정의 시작인 설계에서부터 그 비움의 마음이 보인다. 이것저것 필요한 공간이라 생각해서 그려 넣고 설계한 집의 구조가 오히려 삭제되어 시작된다. 같은 크기의 면적에서 꼭 필요한 공간을 만드는 것, 자신이 기거할 그 장소에서 가장 바라는 것 우선으로 그려지고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게 기본일 텐데, 그동안 내가 바라본 삶을 떠올려 보면 가장 최소한이 아니라 가장 보편적인 것, 사람들의 눈을 따라가는 것이 우선시 되어온 것들이 많았다. 저자 엄마의 집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집과 사람이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닥을 만드는 기초공사부터, 골조를 세우고 살을 입혀 기둥과 면을 만들고 숨을 트이게 할 창을 내고, 제법 집 모양을 갖추었을 때 이어지는 내부공사나 인테리어를 보고 있자면 사람도 집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날 스무 살의 사람 한 명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천천히 자라고 성장해가면서 만들어지는 스무 살, 서른 살의 인생이 만들어지는 것이 집을 통해 보인다. 사람의 손길을 타고 온기를 받아 애정이 불어넣어 졌을 때, 집은 편안하고 아늑하고 소중한 공간으로 자리한다. 사람과 다를 게 없다.

 

나이를 먹어가는 모습인 건지, 집짓기의 험난한 과정을 함께 하면서 공통으로 경험하는 모습 때문인 건지 그 시간은 종종 과거를 불러오는 역할을 했다. ‘이런 집을 지어야겠다.’,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 싶은 바람을 불러올 때 과거도 동시에 불려 오게 된다. 과거에 이루지 못했던 것들이 지금 이 순간 바라는 것이 되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전 한때 소망하던 일은 지금 이루어야 하는 바람으로 남아있다. 그 시간에 이루지 못한 것은 상처가 되고, 그 상처는 누군가와 함께 남겨진 경우가 많다. 저자와 엄마 사이, 그 굴곡진 시간이 차마 드러나지 못했던 때를 지금 이렇게 화해의 순간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는 아픔이었고 눈물이었을 일들을 웃음으로 꺼내는 시간이 올 수도 있다는 것. 지금까지 살아오지 못했다면, 지금 엄마와 집짓기를 함께하는 시간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이렇게라도 꺼내어보는 것, 이렇게 한번 풀어내는 것이 얼마나 큰 치유가 되는지 알 것도 같다. 집짓기는 저자와 엄마에게, 이 책을 읽을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남겨진 숙제 같은, 그 화해와 치유의 계기가 된 것이다.

 

집짓기를 통해 사람과 삶을 알아간다는 것, 새롭다면 새로울 수 있는 시선이었다. 그 주체가 엄마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라는 대상을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가 생긴 셈이다. 집이, 집이 아니라 삶이라는 이름으로 써질 수 있다는 것도 신비롭다. 화려하고 웅장하고 누구나가 부러워하는 집의 외양이 아니라 소박한 집 한 채가 한 사람과 같음을 알게 한다. 그 안에서 살아갈 누군가의 삶이 그대로 보이는 자서전 같은 공간이 집이라고, 앞으로 써 갈 일기 같은 공간이 집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상처투성이의 이해 못 할 시간에 대해 기억이 재구성될 수도 있는, 어느 날 불쑥 찾아올 불안을 잠재울 수도 있는, 내 마음 쉬이 뉘일 수 있는 안심의 장소가, 바로 집이 되지 아닐까.

 

집에 관한, 집짓기에 관한 이야기지만 집을 짓는 구체적인 과정이나 비용 같은 부분에 대해 세세한 내용을 말하고 있지는 않는다. 그 집과 함께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면서,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삶의 의미 있는 시선에 관한 이야기다.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행복에 관한 이야기다. 집을 잘 짓고, 평범하고 소박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시간을 꿈꾸는 이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들려오는 책이다.

 

책 속에 집 짓는 과정이나 다 지은 후의 여러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었지만 유독 내 눈에 들어온 사진이다. 선명하게 나오지 않아서 더 마음에 들기도 한다. 저자 엄마의 집은 담이 없고 대문이 없다. 그래서 집까지 가는 그 트인 길에서부터 집안에서 켜놓은 불빛이 그대로 보인다. 엄마와 집짓기라는 제목이 그대로 다가오는 사진이 아닐까 싶다. 온종일 밖에서 꽁꽁 얼어붙은 몸을 쉬고 싶게 만드는 불빛이다. 저렇게 환히 비추는 불빛만 봐도 엄마가 빨리 들어오라고 말하는 듯하다. 빨리 들어와서 방금 끓여놓은 뜨거운 찌개에 밥 먹으라고. 여전히 나는 빌라나 아파트 같은 관리가 편한 집을 원하지만, 저기서 비추는 저 불빛만큼은 그대로 가져오고 싶어진다. 저 불빛 하나 때문에 원하는 집에 대한 굳은 의지가 살짝 흔들리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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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하늘사랑해 2014-09-18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완전 제 스타일이네요,,ㅎㅎ
안그래도 저두 집 짓는책 관렪서 하나 사고싶어서 기웃기웃 하고 있거든요
언젠가 멀지 않은 훗날에 저도 전원주택을 지어서 살고싶어서요
미리미리 공부해두어야할거같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구단씨 2014-09-18 14:07   좋아요 0 | URL
집 짓는 전문성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다른 책을 골라보셔야 할 것 같아요. ^^
이 책은 에세이에 가까운, 편하게 읽기 좋은 마음 나눔이었어요.
그런데 초보자의 마음으로 다가서기에는 괜찮을 것도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