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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소설집
김경욱 지음 / 창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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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보면, 너무나도 평범한 독자인 나는 가끔 ‘나쁜 작가’ 라고 작가를 부르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건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이건 아니라고’ 투정이라도 부리면서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이야기를 들려준다거나, 흔히 열린 결말이라고 하는 마무리를 선사하는 작가는 나쁜 작가라 부르고 싶어진다. 단편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로 만난 작가 김경욱 역시도 그런 의미로 보자면 나쁜 작가다. 도저히 ‘이건 사실이 아니야.’ 라고 따질 수도 없는 회색빛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뻔뻔하다. 읽고 난 후의 어떤 답답함에 대해 답을 주지도 않는다. 그저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세상의 속물적인 이야기(그건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 이야기를 읽고 있는 독자들의 표정을 어디선가 숨어서 살펴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하게 만든다. ‘네가 한번 그 답을 말해봐.’라고 묻기라도 하는 듯이.

이 책에 담긴 총 9편의 단편들 모두 우울하고 건조하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의 희망 같은 것은 없다. 미래도 없는 것 같고,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일은 내일이 와봐야 안다. 그리고 오늘을 살았던 것처럼 또 반복적으로 내일이 살아지겠지. 그래서 우울해진다. 기댈 것도 바랄 것도, 한줄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이.
같은 반 남자아이들에게 성폭행 당한 손녀에 대한 응징을 하려는 할아버지(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강의 이쪽저쪽으로 나뉜 삶에서 아무리 노를 저어도 건널 수 없는 강의 한 가운데에 표류하는 듯한 취업 사수생(러닝 맨), 1%를 향해가는 삶을 살고자 발버둥 치면서도 정작 그 1%에 속한 이들에게 질투와 부러움을 느끼는 최대리(99%), 결국은 이기지 못한 이의 뼈를 갈아 마셔야만 했던 비운의 복서(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 아무 연관도 없는 이들 같지만 무의미한 삶을 사는 것 같은 것은 너무 닮은 이들을 건조하게 바라보는 형사의 시선(하인리히의 심장), 통속적인 연애소설이라고 비하하고 싶지만 인기 있고, 베일에 가려져 있기에 더 잘 팔리는 소설을 쓰는 작가를 취재하는 사진 기자(연애의 여왕), 아무리 구르고 굴러 뛰는 것보다 빨리 달리는 것 같지만 늘 제자리의 가난이 찌든 삶을 3대가 모여 사는 그 집의 청년(태양이 뜨지 않는 나라), 그날 그렇게 그 사건과 시간을 겪으면서야 드디어 마음의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을 가져온 여자(혁명기념일), 어쩌면 우스운 이야기일지 모를 일로 어긋난 삶을 살아온 부자(父子)(아버지의 부엌).

이들 9편의 단편들이 가진 공통점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첫 번째로 수록된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의 노인이 보여준 것처럼 신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신의 뜻대로 용서를 행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신이 보여주는 그 ‘착함’이 가진 진정성이 뭔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노인은 당장에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손녀를 성폭행한 가해자들과 타협할 수도 있었다. 돈을 받고, 먹고 사는 일을 해결을 하고, 덧난 상처가 아물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이 말하는 용서를 선택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에는 노인만의 방식의 용서를 선택한다. 신이 말하는 ‘착한’ 용서가 아니라 노인이 선택한 ‘진짜’의 방식으로 말이다.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 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을지도 모른다. 정말 간절해지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외치는 대상이 되기도 하니까. 요즘처럼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들다고 외쳐대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하지만, 우리는 신의 그 모든 뜻대로 방식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 우리는 신이 아니고 또한 절대적으로 착할 수만 있는 존재도 아니기 때문이다. 신을 믿는 척, 신이 바라는 대로 하는 척 하다가 저절로 가슴에 묻을 이름 모를 그것에 대한 ‘용서’는 또 누가 해줄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필요하다.
벼랑 끝에 몰린 순간에 보여지는 모습들이 진짜 모습일 것이다. 신이 내린 용서가 아닌 자기가 만든 용서, 결국은 파헤쳐 끌어내리겠다는 욕심과 질투, 강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고자 하는 발버둥, 책임지고 싶지는 않지만 미련 역시도 끊어내지 못하는 감정들. 인간이 가진 모습들은 그런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신께서 그 모든 것을 총괄하여 같은 방식으로 보듬을 수가 있겠느냔 말이다.

이야기들이 들려주는 그대로다. 그냥 나열이었다. 그 누구의 진심을 파헤쳐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리고 굳이 애써서 억지스럽게 그 속을 열어보이고자 하지도 않았다. 그저 들려주었을 뿐이다. 이런 삶 저런 삶, 자기 안의 소리들이 말하는 대로 행했던 이런 용서 저런 용서. 종교가 없는 내가 이 책의 등장인물들의 삶을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신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내 안에서 내가 만든, 나의 생각에 따른 맞춤형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읽는 이로 하여금 교묘하게 그 안에 빠져들게 만들고, 또한 저절로 빠져나오게 만들고, 다시 읽게 만든다. 그게 작가가 가진 매력일 수도 있겠고, 그의 펜 끝에서 나오는 힘일지도 모르겠다. 들려주면서 동시에 함께 하게 만든다. 그 다음 이야기는 알아서 써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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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1-18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내숭구단님. 글 잘 읽었습니다 :)
정말이지 사람들은 저마다의 '맞춤형 신'이 마음 속에 있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가 복수를 할 때 그것을 아버지의 뜻이라고 되뇌이는데, 그건 또 다른 사람의 맞춤형 신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일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김경욱의 단편 소설은 처음 읽었는데, 깔끔하게 잘 쓰여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직 심히 애정이 가는 정도는 아니지만 ^^;;

구단씨 2011-11-18 15:09   좋아요 0 | URL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교회에 다니시지만...) 그래서인지 아니면 평소에 호감이 없었던 부분들 때문인지 받아들이기 힘들 신의 '용서'였어요.
저 역시도 김경욱의 책을 처음 읽었습니다. 다른 작품들 가지고 있는데 한번 읽어볼까 합니다. 호감 가는 작가분이 되셨어요, 저에게...
댓글 감사합니다.

알리샤 2011-11-20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숭구단님, 질문인데요. 제일 위에 작품이미지와 평점, 장바구니 - 이걸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 저도 신간평가단인데, 이미지 넣기만 되고 다른 것들을 넣으려니 잘 모르겠어서 여쭤봅니다~~

구단씨 2011-11-21 15:49   좋아요 0 | URL
^^
저건 제가 이미지를 넣는 게 아니구요. 리뷰 등록하면 자동으로 생성되는 겁니다. ^^
이미지도 따로 넣는게 아닙니다. 해당 도서의 마이리뷰 등록하면 책 이미지와 같이 말씀하신 것들이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