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트 Axt 2015.7.8 - 창간호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엮음 / 은행나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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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소설가들이 살 길을 찾아 능동적으로 길을 모색하여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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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수업 (양장)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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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사람에게 격려와 효과적인 지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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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3
이디스 워튼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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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심의 밑바닥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술술 넘어가는 추리소설을 읽어서인지 <순수의 시대>는 속도가 더뎠다. 책장이 허공에 부채꼴을 그리며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짧디짧은 순간마다 여러 생각이 밀려왔다. 읽기를 멈춰도 머릿속은 온통 책 속이었다. 톱밥처럼 켜켜이 쌓이는 의미들을 세세히 살피려고 초점 없는 눈이 먼 곳으로 자주 향했다.

이디스 워튼은 이야기를 빈틈 없을 만큼 꽉 짜서 독자인 내 방식대로 상상할 여지를 주지 않으나, 그녀가 자신을 속이지 말고 생각해보라며 던지는 당당한 목소리는 이 책을 읽는 큰 재미다. 이디스 워튼이 만든 이야기는 꽤 현대적이라는 감탄을 자아내는데 90여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이 소설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아이디어나 인물들의 관계가 여전히 인간에게 중요하고 진부한 주제가 아니기에 그렇다. <순수의 시대>는 세월을 통과하는 책을 읽는 기쁨과 함께 인간성 혹은 인간의 속성이란 문학의 오랜 주제를 다시 펼쳐놓고 새겨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순수한 의도라는 말은 꽤 웃기다. 내가 순수하다는데 당신들이 무슨 말이 많느냐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허세 역시 널렸다. 이디스 워튼은 인간의 겉모습 말고 그 너머에 뱀처럼 또아리를 튼 사악한 의도를 볼 줄 아는 작가이다. <순수의 시대>는 복잡다단한 동기를 밝히기에 적당한 소재인 상류층 사람들을 조명한 작품인데 1862년 뉴욕에서 태어나 1937년 사망한 작가가 자신이 살고 경험한 사회를 잔인하다 싶을 만큼 예리하게 포착했다.


가끔씩은 거의 그럴 뻔하기도 했지만, 그가 자기 허영심의 밑바닥을 잘 살펴보았다면, 한때 그를 사로잡았던 매력적인 어느 유부녀만큼 자기 아내가 …(14)


여기서 는 뉴랜드 아처, 결혼을 앞둔 젊은 남자이다. 뉴랜드 아처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이 문장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예언처럼 조롱한다.

콜롬부스가 발견한 신세계로 이주한 유럽인들은 상인계층이 주류였기에 이들이 자신들을 귀족운운하는 건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미국의 초창기 상류사회는 한 둘의 귀족 가문에 매달려 이들과 혈연을 맺으며 자신들을 귀족인양 행세하며 만족했다. 이디스 워튼은 유럽의 진짜 귀족보다 더 예법과 형식에 연연하며 순수한 의도, 순수한 동기, 순수한 사랑을 자신들 삶의 근거인양 믿는 이들에게 불을 환히 밝힌다. 작가는 이 허영의 불꽃을 약혼녀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는 남자를 중심으로 비춘다.

  사교계에서 일등 신붓감으로 인정받는 메이와 결혼을 앞둔 뉴랜드도 사회가 원하는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주류 관념에 동의하는 사람이다. 다만 그는 자기 맨 눈으로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고자 하는 열정을 때때로 느낀다. 은밀하게 솟는 이 감정을 가까운 지인들 중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기에 간직하고만 사는 인물이다. 가족들은 파티와 드레스, 초대손님 명단 같은 것들을 진심이나 솔직한 태도보다 높이 떠받들며 자신들의 ‘순수’를 믿는 사람들이다. 뉴랜드는 내면에 불꽃을 일으킬 기회를 얻지 못 하다가 유럽에서 온 메이의 사촌 엘렌을 만나면서 변화를 경험한다.

 엘렌은 오직 개인인 자신으로 존재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독립적인 여성. 이런 엘렌은 집단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요구 받는 상류층 사회에서 낯설고 불편한 존재이다. 엘렌이 상류사회 공동체의 일원인 메이의 결혼을 불안하게 만들자 사회의 일원들은 집단으로 뭉쳐서 엘렌을 유럽으로 쫓아내버린다. 이들은 균열과 모험, 낯선 것을 혐오한다.

 뉴랜드 역시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할 줄 아는 여성 엘렌이 사랑을 느낄 만큼 남들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생각대로 판단하려고 하는 듯 보이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사회의 순수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가 원하는 테두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 한다. 그가 순수라고 믿었던 자신, 자신의 일생의 바닥에 굳건하게 버티고 있던 것은 진실을 진실로 보지 못 하고 눈을 가려버리는 허영이었다.

  이 소설은 어쩌면 뉴랜드 아처라는 남자의 허영심의 밑바닥을 밝혀준 이야기 일 수 있다. 한 사람의 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전 우주의 속까지 알 수 있잖은가. 오랜 과거의 인물이나 지금도 여전히 뉴랜드 아처는 존재하고 그것이 이 소설의 생명력이다. 미래에도 여전히 존재 할 뉴랜드 아처는 인간의 속성을 보여주기에 시대와 유행을 뛰어넘을 등장인물이다.  

  <순수의 시대>는 여러 방법으로 읽을 수 있다. 등장인물에 주목하자면 순응자와 모험가로 대비해서 독해할 수 있다. 절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으며 질서 안에서 만족하는 메이와 그녀의 주변 인물들은 순응자에 속한다. 반대편에 엘렌이 있다. 그녀는 모험가이며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사람들의 수군거림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새로운 세계와 질서를 경험하는 일에 엘렌은 관대하다. 이 두 세계에서 서성이는 회의적인 인물이 뉴랜드이고 이것과 저곳을 두리번거리는 뉴랜드야말로 가장 다수의 사람들을 대표하는 이 일 것이다.

  또한 통속적인 로맨스로도 읽힌다. 오래전에 M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애인>하고 줄거리가 비슷하다. 뉴랜드가 약혼한 양가집 규수는 현모양처인 이응경이고, 대화가 통하고 함께 있으면 살아있는 기쁨을 느끼게 하는 여자는 황신혜, 방황하는 남자는 유동근에 맞춰봐도 어색하지 않다. 고전인 <순수의 시대> 속 등장인물들은 현대에도 친근하다. 

 

  사회와 개인, 여성의 독립,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조종하는 조종자 등 여러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은 흔치 않다. 이디스 워튼은 분명히 독자가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그녀가 원하는 식으로 책을 이해하도록 내용을 배치했는데 그녀의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면서도 작품을 읽을 수 있는 여러 관점을 제공하는 뛰어난 작가이다. 헨리 제임스에 필적한다고 불린 이디스 워튼은 이 작품으로 플리처 상을 받았는데 수상이유가 좀 이상해서 작가 자신도 의아하게 여겼다고 한다. ‘방황했으나 순수를 지킨 한 남자의 일생을 담은 이야기라고 심사위원들은 이해했단다. 어쩌면 이디스 워튼이 작품으로 말한 순수의 시대는 이디스 워튼이 살았던 당대에도 여전했고 심사위원들(아마 다들 남자였을 것이다)은 이 작품을 순수로 감춘 허영심이 아니라 순수를 끝까지 지킨 남자를 추앙하는 이야기로 읽고 싶어했을 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그게 아니라고 해도 상을 주었다니, 어쩌면 이 소설의 끝은 수상소식과 수상이유까지 포함해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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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톰 라비 지음, 김영선 옮김, 현태준 그림 / 돌베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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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랑소와 트뤼포의 영화 <화씨451>에서 사람들은 각자가 한 권의 책이다. 책이 금지된 미래, 책을 불태우기 위해 나타나는 방화수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보존해야 하는 책을 전부 암기해버린 사람들. 이제 그 누구도 책을 빼앗아갈 수 없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죄와 벌을 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멍청하지? 미래세계에 도래할 문명에 대한 고민, 문자의 의미 뭐 이런 것들에 대해 고뇌해도 시원치 않으련만 고작 생각한다는 게 나는 어떤 책이 될까라니그렇다고 해서 내가 톰 라비와 같은 책중독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으려 하는 나조차 저자 톰 라비의 이런 과도한 책 사랑은 해롭다.’라고 생각하면서 걱정스럽게 고개를 저을 만큼 <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은 중독의 독성 수치가 높고 과하다. 대상이 마약, 도박, 스토킹이 아닌 책이라 하더라도무엇에 홀딱 빠진 사람들은 대체로 위험하니까. 무엇과 비교해서 위험하냐에 대해 따져보자면 아마도 아름답고 절제하는 생활, 사회에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태도와 타인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는 생활인의 품격을 고루 갖춘 사람들? 그들에게 책중독자는 이상하고 괴이하며 한편으론 우습기도 한 존재들로 비춰질 공산이 크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 책을 읽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 심지어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은 얼마나 명랑한가. 외로움, 타인이라는 지옥, 낯선 세상에 대한 공포. 그들은 그것들을 보았거나 눈치챘을지라도 책이 아닌 다른 사물들로 허기를 채울 수 있다.(그들은 선택이 가능하다!) 연애도 하고 술을 마시고 당구와 내기, 멋진 옷을 사거나 춤을 추고 화장을 하고 노래를 부른다. 햇살처럼 화사한 그들은 외부와 고립된 채 혼자 우두커니 의자에 앉아 점점이 박힌 까만 글자들을 손으로 짚어가면서 반나절을 보내는 이들이 하는 독서라는 행위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거나 하더라도 나는 저러지 않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속마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사람들은 사회에서 독서를 존중하고 권장한다. 다독가를 부러워하며 그들의 비법을 듣고자 모여서 경청하나 그건 우리가 받은 교육 때문에 갖추는 예의일 뿐. 사람이 얼마나 모자라면 일어나서 행동하지 않고 책이나 읽고 앉아 있을까라고 음흉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라비가 제시하는 책중독의 유형들에 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화장실을 차지할 만큼 책을 쌓아두지도 못 했고, 호랑이가 손에 쥔 책을 주면 안 잡아먹는다고 하면 책을 내줘버릴 테다.  책에 밑줄도 좍좍 긋고 잊지 않아야 할 구절이면 망설이지 않고 책장 모서리를 접어버린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책을 읽는다고 오래 전에 깨달은 뒤로 필요하면 책 앞 뒤에 덧붙은 색지를 북 찢어서 메모지로 쓰기도 했었다. 책을 고이 모시는 책중독자들에게 나는 끔찍한 폭행을 저지르는 파괴자일 지도 모른다. 이 책의 곳곳에 내가 책중독자인지 확인하는 테스트를 하면서 열에 여덟 번 책중독자로 밝혀지기는 하였으나 나보다 책을 더 우선으로 여기진 않는다. 뭐 다른 것들, 사람이나 음식보다 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 나는 친구나 가족보다, 여행이나 맛있는 음식보다 책읽기가 더 즐겁다. 사실인 걸 어쩌라구.

 

 살아오면서 읽은 책들과 내가 함께 겪었던 사건들이 떠올랐다. 10대 때부터 책을 사러 다녔던 동네 서점, 한 달에 한 번씩 책을 사러 갔던 광화문의 할인책방, 바슐라르의 책들을 한꺼번에 다 사버렸던 홍대앞 서점(바슐라르는 죽음 뒤 세상이 도서관이면 좋겠다면서 그렇다면 죽음이 기쁘겠다던 시인이자 학자였다)과 이미 읽은 줄 모르고 다시 샀던 책들, 절판된 판본이 꽂힌 내 책장을 바라보며 배시시 웃던 기억, 이사할 때 이삿짐 직원들에게 책 때문에 들었던 타박과 인터넷 서점에서 택배가 오는 날이면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택배기사님과 모종의 문자를 주고 받으며 시간을 조정했던 일들. 그 모든 나와 책의 역사가 어느 틈에 내 옆에 앉아 지켜보고 있다.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을 읽는 내내 그랬다.

 

 역사에 기록된 책을 사랑해서 책에 파묻혀 살았던 많은 독서가에 비할 수는 없고 나는 그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예스24의 상품 카트에는 517,860원어치, 상품 보관함에는 6,566,530원 어치 책들이 담겼다. 알라딘과 교보까지 합치면 약 천오백만 원 어치 정도 책들. 지금 당장 살 책들이다. 만약 내게 유산이 몇십 억 생긴다면 아! 당장 이것들을 결재해서 싸담아 보라카이로 날아가서 멋진 호텔에 박혀 책을 읽으면서 이번 겨울의 끝자락을 보내고 싶다. 이런 내 미망(迷妄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맴. 또는 그런 상태)을 글로 쓸 줄 정말 몰랐다. 이게 다 톰 라비가 쓴 책을 읽은 탓이다.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은 라비의 책에 대한 사랑이 낳은 변종 책이다. 딱히 내세울 만한 지식도 없고 그럴싸한 지혜를 감춘 책도 아니다. 내세운 유머도 미미하며 책을 둘러싼 여러 유형들을 짚어주는 수준은 대단히 극단적이다. 극단적으로 넓혀준 품 탓인지, 내가 책을 사랑했던 순간을 떠올렸고 그 시절을 기억하며 잊었던 날들과 먼지만 쌓인 책들을 다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랑했던 책들. 부모가 알려주지 않았던 인생을 사는 태도와 친구가 말해주지 않았던 비밀들과 허락되지 않은 낯선 곳으로 가는 여행을 함께 해준 책들에 대한 내 깊은 사랑을 축축한 내 마음의 저장고에서 꺼내 넓은 땅, 따뜻한 볕에 두고 말렸던 시간. 책 없인 못 살 것 같은 외로운 인생들에게 이런 시간, 해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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