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강경수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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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가방에 소지품을 챙겨 넣는다.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넣다 보니 가방이 점점 뚱뚱해진다. 그래도 빠트릴 수 없는 한 가지, 다회용 컵이다. 매번 외출할 때마다 들고 다니고, 집에 와서는 씻어두고. 사실 귀찮다. 한번 마시고 쓰레기통에 휙 버리면 그만인 컵이 흔했는데, 무겁게 들고 다녀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깜빡하지 않는 한 꼭 챙긴다. 내 몸이 경험한 불볕더위와 혹한 때문이다.


몇 년 전 여름, 에어컨 없이 지내고 있었다. 집안 공사로 버린 에어컨을 아직 사지 않은 상태였고, 그럭저럭 여름을 견딜 수 있을 거로 믿었다. 하지만 그 여름의 더위는 선풍기와 자연 바람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었고, 우리는 에어컨 없는 생활을 포기하고 다음 해 여름이 오기 전에 에어컨부터 마련했다. 지난겨울에는 이 정도로 추울 수 있을까 싶은 공포를 실감했다. 시골집의 모든 게 얼어붙어 이게 집인가 빙하 위인가 싶었다. 엄마는 서울에서 계속 지내시던 상태라 집이 더 추웠을 테지만, 멀쩡한 집 안에 있는 나도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우연히 기차역에서 만난 어느 어르신이 한 말이 기억난다. ‘80년을 넘게 살면서 이런 추위는 처음 봐.’ 그 정도였나? 내 나이의 두 배쯤 살아오신 분의 말씀이니 맞겠지.


이런 추위와 더위가 왜 점점 심해지는 걸까? 전문가들은 지구의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 말하곤 한다. 단순히 기후 변화 하나의 문제만은 아니겠지만, 결국은 인간이 지구를 함부로 사용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강경수 작가의 눈보라역시 우리가 오랫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머물던 것들의 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경고하는 듯하다.





북극곰 눈보라는 눈보라가 몰아치던 날 북극에서 태어났다. 사냥해서 먹고살던 눈보라는 빙하가 녹아내려 더는 사냥이 어려워지자 근처의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 것을 구했다. 읽으면서도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걱정될 무렵, 눈보라는 먹이를 구하려 마을로 내려간다. 사람들은 북극곰의 등장에 공포에 떨고 경계하며 눈보라를 몰아낸다. 그러던 눈보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들이 판다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온몸에 흙을 바르고 다시 마을로 내려간 눈보라를 사람들은 판다로 알고 반가워하며 받아들인다. 좋은 징조라고 눈보라를 쓰다듬고 아끼던 중, 사람들의 손길을 그대로 맞이하던 눈보라의 몸은 발랐던 흙이 점점 벗겨진다. 사람들은 다시 경계하고 분노하며 눈보라를 쫓아낸다.



그림책인데 이렇게 서늘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북극에 자꾸 녹아 없어지는 빙하, 사라지는 빙하로 점점 살길이 막히는 북극곰, 그러다 점점 소멸하는 거겠지. 어디 북극곰뿐일까. 우리가 알던 대한민국의 사계절은 점점 경계가 사라지는 듯하다. 어느 순간 여름과 겨울만 느낄 뿐이다. 우리가 즐기던 봄과 가을은 모두 어디로 갔나. 일 년 내내 거의 같은 계절을 보내는 나라도 있겠지만, 그동안 익숙했던 계절의 변화를 우리가 더는 예전처럼 즐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아쉽고 그립다. 다시 되돌릴 수도 없다는 사실이 더 두려운 일이 되었다. 점점 높아지는 기온, 점점 높아지는 해수면. 이대로도 괜찮은가?


세상은 편해졌다. 계절 상관없이 과일을 즐기고,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대며 더위를 날린다. 겨울에 몸을 따뜻하게 해줄 난방도 충분하다. 그러는 동안 지구가 망가지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엄마는 요즘 눈이 오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한다. 어느 순간 나에게 눈은 돌아다닐 때 불편하고 위험한 존재로 각인되었지만, 적당히 내리는 눈은 겨울 가뭄을 해소해준다. 엄마의 텃밭은 메말라서 먼지가 일어날 정도다. 물을 뿌리자니 남아 있는 농작물이 얼 것 같다고 눈이 와야 한다는 노래를 계속 부르고 계시는 엄마. 눈이 내려 밭을 덮어주고, 그 눈이 서서히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자연의 이치라는 듯이, 이불처럼 엄마의 밭을 덮어줄 눈을 기다리신다.



마을에서 쫓겨난 눈보라는 도망가지만, 마을 사냥꾼의 총은 눈보라를 향한다. 그때 내리던 함박눈 덕분에 눈보라는 총알을 피하고 눈보라 속으로 사라져간다. ‘눈보라가 총을 맞지 않고 살아서 도망간 건 다행이지만, 그렇게 사라졌다고 해서 계속 잘 살 수 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이미 눈보라는 삶의 터전에서 먹을 게 없기에 마을로 내려갔던 건 아닌가. 이제 다시 돌아간 그곳에서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빙하가 녹아내릴 정도로 기온은 높은데, ‘눈보라를 받아들이지 못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왜 그렇게 꽁꽁 얼어붙어 있던 걸까. 인간 세상에서 다가온 북극곰이 그저 두렵기만 한 대상일까? 아직 무슨 해를 끼치지도 않았는데?


작가는 이 이야기로 결말을 들려주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이런데, 우리는 왜?’라는 질문으로 끝맺는 것만 같다. 지금을 즐길 수 있다고 다 괜찮은 걸까? 점점 변해가는 기후가 이대로 괜찮지 않은데? 앞으로도 기상 이변이 계속될 것이다. 어떤 나라는 사라질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지구를 떠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만든 상황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것도 당연한데, 이렇게 모른 척하기만 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건 없다. 그때마다 우리는 외면하기만 해야 하는지 묻는 책이다. 녹아가는 빙하와는 반대로 얼어붙기만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방법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그래야만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같이 상생하는 방법과 의미를 배울 수 있겠지.


예쁜 그림과는 상대적으로 메시지는 깊었던, 누구라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에 많은 생각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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