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로드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2
최예지 지음, 살구 그림 / 폴앤니나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이해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왜?’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고 싶을 때마다 우리는 투쟁의 길을 걷기도 한다. 하지만 투쟁이든 아니든, 답을 찾든 못 찾든, 그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다. 곧 다시 답을 찾으러 떠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 순간의 답에 만족하면서 또 오늘을 사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저자가 써 내려간 이야기들에서, 또 한 번 그 세상 속 우리의 모습을 본다. ‘왜?’라고 묻고 싶은 순간에서 파생한 또 다른 감정을 만난다. 때로는 답을 찾는 것보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바라는 순간을 만나기도 하니까 말이다.

 

너는 이게 재밌니, 언젠가 영이 물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내키는 대로 죽죽 그어놓은 길 위를 너는 그냥 달리기만 할 뿐인데, 했다. 영에게 되묻고 싶었다. 너는 그게 재밌니, 이탈하는 게, 이탈을 감수하는 게, 포장도 안 된 허공 위를 덜컹거리며 쏘다닐 뿐인 네 인생이. 나는 중심으로, 중심으로 가고 너는 자꾸 바깥으로, 바깥으로 가겠지.

갑자기 영이 내게 말을 건다.

정말로 갈 수 있을 것 같니?

안쪽으로? (70~71페이지)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결국 물었지만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애비로드」의 화자는 미혼부인 아버지에게 듣고 싶었다. 미혼부와 사생아 사이에서 채워질 엄마의 존재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도 확실히 모른다는 엄마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엄마가 누구인지 묻는 딸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엄마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니가 내 씨인 건 확실하다고. 엉뚱한 그 대답에 웃음이 났는데, 생각해보니 아버지 말이 틀린 것도 아니더라. 정확히 알 수 없는 엄마의 존재를 애써 확인하려는 것보다, 확실한 것만 받아들여도 괜찮지 않을까? 하나라도 옆에 있는 존재를 더 아끼고 사랑하면,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은 나쁘지 않으니까. 다 알지 못했던 아버지에 관해 알아가는 미세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단편이었다. 세상의 많은 미혼모 사이에 있을 미혼부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건 아닐까. 세상은 완벽하지 못한 존재들이 더 많은 곳이니까.

 

세상의 불합리에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그 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안으로 숨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공과 영의 생존법」의 공은 영의 사망 소식에 둘 사이의 일을 기억해낸다. 근무지에서 성희롱을 일삼는 대상을 함부로 신고하지도 공을 대신해서 같은 곳에서 근무하던 영이 대신 나선다. 하지만 그 일을 공은 영이 죽은 후에 알게 된다.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기엔 묘한 기류가 흐른다.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겪어야 할 또 다른 피해가 그 목소리의 힘을 뺀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건 아마도」의 두 존재 역시 비슷한 구도였다. 한 사람은 대학가에서 다단계로 화장품을 팔려고 하고, 한 사람은 꾸미고 가꿔야만 하는 여성의 역할을 버려야 한다고 투쟁한다. 대립하듯 역할이 다른 두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그때도 지금도 두 사람은 다른 성향의 태도로 살아간다.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숨죽인 채로 세상에 스며들거나 여전히 불합리를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내거나.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고 틀린 인생은 아닐 테다. 하지만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더는 그 불합리한 세상에 스며들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은 계속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 번에 바뀔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또 언젠가 그 변화를 바라면서 투쟁하고 목소리를 낸다.

 

묘하고 애매한 사이에서 분명한 관계의 이름을 찾지 못한 「넌 항상 바깥에 있고」에서는 그 관계를 정의하지 못한 여운에 뭔가 더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드라이브, 드라이브」는 정리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헤어졌지만 제대로 헤어지지 못하고, 결국은 그 흔적을 하나 끌어와서 미련을 끊어내야 하는 건 아닐까 기대한다. 동생의 ‘같은 자전거가 아니’라는 말은, 새것으로 예전 것의 자리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손때 묻은 것으로 채우고 싶다는 바람이기도 하다. 새것과 친해지고 적응해가는 과정이 필요한 게 인간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누구든 무엇이든, 관계를 맺고 적응해가는 게 순리 같다. 「딸과 여신과 아이돌의 역사」와 「당신을 위한 스물한 번」은 묘하게 대조적이다. 가까이하려고 했더니 너무 가까워진 선에 부담과 짜증이 일어나기도 하고, 가까이 있을 때는 경쟁하느라 느끼지 못했던 편안함을 거리가 생기니 발견하기도 한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세상이다.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안 되기도 한다. 저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의외로 문제 해결의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주어진 몫을 감당하는 수밖에 없다는 절망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이렇게라도 나아갈 수 있음에 긍정의 힘을 얻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이 행복일지도, 그렇게 살아가는 게 즐거울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서든 나아가고 있다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방식이니까. 그러면서도 조금씩 옆을, 뒤를 보면서 세상을 바꾸려고 애쓴다. 해설에서 문학평론가 박혜진이 말한 것처럼, 내가 바뀌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세상이 이상하게 변해가는 속도를 늦추기도 한다. 누군가 외치고 투쟁하면서 노력하는 삶은 그런 것일 테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자기만의 태도로 살아가면서, 소박하게 변화를 이루어가는 사람들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