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습니다 : 시즌 1
이홍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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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22살에 결혼하고 25살에 이혼녀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고, 겨우 3년 살고 이혼할 거 그렇게 요란하게 결혼했느냐고 사람들 입에 올랐다. 여러 가지 이유로 독립할 수 없던 친구는 이혼 후 친정에 와서 지냈다. 밖에 거의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만 지냈고, 혹시라도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어두워진 후에 나갔다. 어느 날 그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근처 마트에 가는데 차를 가지고 가자고 하더라. 왜? 걸어서 5분이면 가는 거리를? 그때 친구의 말을 듣고 많이 놀랐다. 혹시 자기가 지나가면 저기 누구네 첫째 딸 지나간다고, 이혼하고 와서 친정에서 지낸다고 수군거릴까봐 아예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 무슨 피해의식인지,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 왜 그런가 싶었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렸는지 다른 사람들 말에 신경 쓰고 살지 않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조금 더 세월이 흐른 후에 알았다. 사람들은 자기와 상관없는 남의 일에 참 관심이 많고, 남의 사정 다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이야기 하는 거 좋아한다. 특히 여자의 이혼에 주홍글씨를 새긴다. 여자라서 받는 차별에 이혼이라는 차별을 더한다.

 

이혼이 무슨 범죄인가? 그 사람의 이혼이 자기에게 무슨 피해를 줬나? 평소에 이혼제도를 환영하던 나는 이혼이라는 화두에 차별을 두는 이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인스타그램에서 인기였던 이야기가 단행본으로 나왔다기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공감했는지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었다. 그림으로 보여주는 이혼녀들의 고통과 상처가 몇 컷의 만화로 다 전달될 수 없겠지만, 이 몇 컷의 만화가 보여주는 효과는 컸다. 주인공 '이홍녀'가 들려주는 이혼 후의 일들이 생생하게 들려와서 마치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우리 가족에게도 있는 '이혼'이라는 이력을 보편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가까이서 듣는 기분이다.

 

 

스마트폰 앱 디자이너 이홍녀는 1년 전 이혼했다. 다시 일을 찾기까지 쉽지 않았지만, 일에 서투르거나 부족함 없이 열심이었다. 하지만 이혼 후 그녀의 일상은 이혼 전과 달랐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받는 차별에 이혼으로 받는 차별까지 더해졌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둘이 되었는데, 이제는 행복해지고 싶어서 혼자인 삶을 택했다는 게 차별받아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이혼 후 집안은 썰렁하다. 결혼 이후의 일상을 생각하면서 산 혼수들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렇게 차지한 자리만큼의 냉기를 뿜는다. 식구가 늘어날 것으로 여겨 마련한 커다란 아파트, 대용량 냉장고, 6인용 소파. 대식구를 기준으로 마련한 집안의 온갖 것들에 이홍녀는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다. 가족들의 대소사에서도 이혼을 숨겨야 하거나 사람들 앞에 함께 나타나지 않게 한다. 여동생의 상견례에 아직 싱글인 언니로 소개되거나, 여동생의 결혼식에 바쁘다는 이유로 참석하지 못하는 언니가 되어야 했거나. 가족들에게 큰딸의 이혼은 감춰야 할 비밀이 된 거다. 어디 그것뿐인가. 회사의 동료들은 그녀에게 저급한 농담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갔다 온 사람'에게 이 정도의 농담(?)도 못 하냐는 식으로 받아친다. 친구는 또 어떻고. 마치 그녀를 위한다는 식으로 돌싱은 돌싱끼리 만나야 편하다면서 원하지도 않는 소개팅 자리를 주선한다.

 

왜 이혼한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바라보는 세상의 방식을 강요하려 하는지 궁금하다. 결혼이나 이혼은 한 사람의 개인적인 선택이며 행복의 기준이고 방식이 된다. 아이가 한 명이거나 여러 명이거나 하는 것처럼, 그 개인과 가정의 다른 사정일 뿐이다. 그런데 왜 개인의 삶이 깊이 들어오려고 하면서 남의 인생을 설계해주려고 하느냔 말이다.

 

 

이홍녀는 퇴근 후 혼자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자주 가던 술집의 직원은 그녀에게 주문하지 않은 메뉴를 건네면서 거리를 좁힌다. 연하남이다. 군더더기 같은 많은 말 없이 조용히 그녀에게 건네는 위로 같았다.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고 호감을 키워가면서 그녀는 고민에 빠진다. 자기의 이혼 사실을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상대에게 솔직하고 진지하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정확한 자기 입장을 말해야 했겠지. 왜 이렇게 아프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만나면서 호구 조사를 하고 경제력을 묻기도 하면서 불편했던 기억, 없는가? 나는 이런 거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데 드러내야 하고, 설명하기 애매한데 상대를 이해시켜야 하는 일들. 왜 한 사람으로 봐주지 않고 내 뒤에 있는 것들을 먼저 밝혀야 하는 게 되어버렸는지... 솔직히 아주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누군가를 만나면서 좀 더 진지한 미래를 바라보고 싶을 때, 우리는 그 사람 하나만을 보는 건 아니니까. 혹시 내가 만들고 싶은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가 없을지 찾아보고 계산해보고 싶은 걸 안다. 하지만 한 개인의 아픔일 수도 있고, 행복을 설계하는 미래일 수도 있는 이혼이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는 조건 중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답답해지기도 한다.

 

 

28살에 다시 결혼을 생각하던 친구는 지금의 남편에게 말했다고 한다. 자기는 한번 이혼한 적이 있으며, 이 사실을 숨기고 결혼하고 싶지는 않다고. 당시 친구의 남편은 초혼이었으니까 당연히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그러면서 생각해볼 시간을 주었단다. 당신이 이런 나와 결혼해도 좋을 것 같으면 그때 다시 결혼을 이야기하자고. 기꺼이 친구를 선택한 그는, 한 사람을 보는데 그 사람이 이혼했다고 해서 그동안 봐왔던 그 사람의 인격이 변하지는 않았다고, 그러니 이 여자와 결혼하는데 이혼했다는 사실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여럿이 모여 있을 때 이 이야기를 듣는데, 그 친구 남편이 참 선하게 보이기까지 하더라. 사람이 살아가는데 명예나 돈이나 다른 것들이 최우선의 기준이 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데 무엇보다 인간적인 모습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걸 다시 배운 것 같았다.

 

우리는 여러 가지로 차별을 경험하며 산다. 싫다고 말하지 못해서 참고 견디는 일들이 수없이 많다. 왜 참는지 생각해보면, 참고 있던 그 순간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막상 참아 보니 그 순간보다 더 나은 내일은 없었다. 이홍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여자이니까, 이혼했으니까 참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더는 없어야 했다. 이제는 혼자 걸어야 하는 길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싫은 건 싫다고 말하면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걷고 싶으니까. 이홍녀도 우리도, 그동안 끌려가던 삶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인생으로 쓰기 위해 고민한다.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말이다. 혼자여도 충분히 괜찮고, 누구나 자기 삶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응원을 보내는 이야기에 괜히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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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9-09-23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이 웹툰을 인스타에서 봤어요. 연하남이랑 헤어지는 부분까지 봤는데 정말 허탈했어요. 우리는 언제쯤 편견이나 왜곡없이 세상을, 사람들을, 현상을 볼 수 있을까요?

구단씨 2019-09-24 22:09   좋아요 0 | URL
주인공이 연하남과 헤어진 이유가, 단지 이혼했었다는 이유 한가지뿐일까 싶었어요.
어쩌면 연하남은 처음부터 주인공과 진지한 만남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거든요.
어쨌거나, 말씀하신 그 편견이나 왜곡 없는 세상을 만나는 건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하네요.
안타깝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