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읽는 재클린의 가르침 - 다시 태어나고 싶은 당신을 위한 지적인 대화
임하연 지음 / 블레어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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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연 저자님의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저는 외국 서적의 번역인 줄로 잠시 착각했습니다. 두 대담자의 대화 형식이라는 게 일단 국내 자계서 중에서는 낯선 형식일 뿐 아니라,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마치 미국 현지의 연구서처럼 깊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국에서라면 재클린 케네디의 인생을 소재로 삼거나 그녀의 교훈을 조명 또는 인용하는 태도 자체를 보기 드뭅니다. 나이 드신 세대라면 1960년 그 남편 케네디 상원의원과 함께 혜성처럼 나타난 셀럽이었던 그녀의 독특한 개성과 자태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웬만한 연예인만큼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재클린 비셋이라는 배우까지 등장하여 그 후광을 입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재클린 케네디는 그 댄디한 남편과 함께 우아하고 과감한 스티일링으로 유명했고, 남편이 달라스에서 총격으로 암살당한 바로 그 현장에 같이 있었기에 비운의 영부인(장례식장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딸의 천진한 행동으로 더욱 큰 동정을 받았습니다)으로 세계인의 뇌리에 남았습니다. 그런가하면 사건이 터지고 나서 불과 5년 후에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나이 차가 이십 년 넘게 납니다)와 재혼을 발표하여 엄청난 논란을 낳았습니다. 지금이야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당시에는 영웅 JFK의 부인으로 영원히 남아 줄 것을 기대하던 지지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긴 경솔한 행동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오나시스라는 인물이 그리 좋은 평판을 가지지도 못했기에, 어느 매체에서는 캐멀롯의 귀니버 왕비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의 괴물, 성욕의 상징인 사튀로스와 야합(夜合)했다는 극단적인 평까지 나왔습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재클린의 그런 선택이 세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여성으로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주체적인 행동이었다는 평가가 오히려 우세해졌습니다. 아마 지금 같으면 이런 일이 터져도, 그냥 셀럽 하나가 돈 많은 스폰서(?)와 서로 이익인 결합을 이뤘나 보다 정도로 무덤덤하게 넘어갈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재클린의 이런 똑부러지는 기질과 결단은 1968년 선박왕과의 결혼뿐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 당시까지 비주류로 남아야 했던 로마 가톨릭 신앙인(아일랜드계, 따라서 비[非] 와스프) 집안 출신(p87)이었던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일관성 있게 보였다는 게 이 책 저자의 분석입니다. 

"모든 꿈은 계층 상승의 꿈이다(p88)." 대단히 속물적으로도 들리지만 우리 모두 까놓고 속마음을 말하자면 자신의 야망, 꿈 역시 저 한 줄로 요약될 수 있지 않을까요? 여자들이라면 집안 번듯하고 능력 있는 남자와 맺어져 화려하고 남 앞에 내세우기 좋은 인생을 살고 싶어할 겁니다. 남자들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좀 좋은 학교를 나와서 괜찮은 직장을 잡았다 싶으면 이제 재력가나 고위 관료의 딸과 어떻게 한번 엮여서 신분 상승을 꾀합니다. 사내 자식이 한심하게 여자와 집안에 기댈 생각이나 한다고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막상 이게 자신의 처지가 되고 보면 누구나 생각이 비슷해지겠죠. 반대로, 난 그딴 거 모르겠고 내 능력만으로 성공하겠다고 외길을 걷는다면 그거 참 당차고 대단한 자신감입니다. 

우리 사회는 과연 계급 사회일까요 아닐까요? 이 책 전체를 꿰뚫는 주제는,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이른바 "수저"의 계층 성분이, 후천적으로 가해지는 어떠한 자기계발의 노력 팩터보다 우선하여 그 개인의 출세 성공 여부에 작용한다는 비관적 인식을 일단 전제합니다. 무슨 "수저"냐가 큰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은 일단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게 전부이겠습니까? 저자가 재클린 케네디의 삶 그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 이처럼 다각도로 접근하는 건, 이 여성이 어려서부터 자신에게 부과되었던 온갖 장애와 제한을 몸부림치며 끊어내고 떨쳐내었던 아주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내었기 때문입니다.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무기력했던) 자신의 죽음을 결심함(p134)." 멋지지 않습니까? 

이 책의 두 대담자 중 한 사람은 "상속자"라 불립니다. 상속자란 무엇입니까? 명성 높은 가문과 막대한 부를 물려받은 사람을 보통 상속자라고 하죠. 재클린 부비에가 평소에 지론처럼 말한 "상속자론"은 이와 결 이 좀 다릅니다. 그녀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내가 내 부모에게 물려받은 모든 장점과 조건을 잘 활용하 고 최대한도로 계발하여 내가 종전의 내 자신과 다른 존재로 거듭나는 게 참다운 상속자라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라도 지금 이 순간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금수저로 다시, 그것도 내 의지에 의해, 태어날 수 있는 거죠. 부모에게 좋은 출발점을 물려받고도 비생산적인 은둔의 토굴에서 분에 넘치는 사치를 부리며 허약한 자존을 애써 위로하는 절망적이고 한심한 금수저가 얼마나 많습니까? 재클린의 진짜 상속자 정신을 내 영혼에 새기면 당신도 오늘부터 금수저(그것도 진정한)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훈도 교훈이지만 재클린 부비에의 삶 자체가 궁금한 독자가, 좀 색다른 전기라고 생각하고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잘 읽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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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연두 특서 청소년문학 38
민경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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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아는 화가 날 만도 했습니다. 서주희가 채아의 현재 감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다분히 형식적인 위로를 건넸기 때문입니다(p42). 설령 주희한테 나쁜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도(과연 그런지는 p157에 나옵니다), 채아는 가뜩이나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아픈 지점을 그대로 긁은 셈이 되었으니, 저렇게 화를 낼 만도 합니다. 이 모든 게, 다름과 틀림이 곧 같은 게 아니라는 점, 많은 이들이 종종 잊고 사는 탓입니다. 아이들도 어른들한테 나쁜 영향을 받아서인지, 배려가 부족한 언행이 곧잘 나오곤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실 박채아는 성격이 좀 민감한 아이이긴 합니다. p22를 보면 정우빈에게 좀 과장되게 반응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물론 여자애들한테는 무조건 예쁘다고 해 줘야 하는데 눈치도 없이 기분나쁜 소리를 한 우빈이 잘못도 큽니다. 우빈이의 눈치없음과는 별개로, 자기 전에 화장을 잘 지우고 자야 한다는 말 자체는 틀리지 않습니다. 여튼, 이 챕터가 중요한 이유는 여기서 드디어 소연두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자폐스 펙트럼 특정 위치에서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고 박채아가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된 건, 죽은 오빠도 그런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서평 저 윗부분에서 언급했듯이 서주희와 싸운 이유도, 주희가 오빠에 대해 무신경한(채아에게 그렇게 들렸던) 말을 했기 때문이었죠. 

정우빈은 참 눈치가 없습니다. 저 앞에서도 채아가 괜히(괜히는 아니었지만) 소리를 지르고 했던 것도, 우빈이가 자기 마음도 몰라 주고 소연두(당시에는 우빈이가 그 이름도 몰랐습니다)에게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라도 채아는 연두에 대해 뭘 알아 봐야 했겠으며, 그게 아니었다 해도(죽은 오빠라는 연결고리가 있어서) 연두를 향해 이미 눈길이 쏠려 있었습니다. 아무튼 p74에서 우빈이는 연두한테 그런 문제가 있었던 줄 처음 알았습니다. 당연히 충격을 받았겠죠. 이 얘기를 해 주면서도 채아는 우빈의 관심이 자기에게 향하도록 무지 애를 씁니다. 우빈은 끝까지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며 무게를 잡는데 얘 다운 행동입니다. 

p105에서 드러나듯 채아 엄마, 우빈이 엄마는 애들보다 더 먼저 친구였습니다. 이렇게 친구 문제를 내 문제처럼 받아들이고 대단한 열정으로 같이 싸워 주는 의리 있는 분도 있죠. 이렇게 자기 엄마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우빈이도 성격이 남자답고 정의감에 불탑니다. "우빈이는 엄마에게서 우정이 뭔지를 배웠다. 입에 발린 우정이 아니라 진짜 우정을." 제3자가 봐도 진짜 그런 것 같습니다. 마라탕을 매운맛(p125)으로 시켜먹으면서 둘은 그낭따라 유난히 꼬인 감정을 풀기 위해 애씁니다. 여자애들이 마라탕 더 잘 먹던데 채아는 그렇지도 못한가 봅니다. 

채아는 주희한테 불편한 일을 겪는 연두한테 가서 "싫으면 싫다고 분명히 말해!(p138)"라며 의사 표현에 괜히 머뭇거리지 말라고 격려합니다. 연두 엄마 입장에서 이런 채아가 당연히 고마울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채아가 아주 멋진 말을 합니다. "미안해하지 마세요. 그러시면 연두가 진짜 미안한 아이가 되잖아요." 인간이란 본래 남들을 잘 돕고 배려하는 본성이라는 게 있습니다. 단지 경쟁에 시달리다 보니 그런 자연스러운 마음씀이 잘 표현이 안 될 뿐입니다. 채아의 특수한 처지를 감안한다 해도 친구를 잘 챙기는 그 살뜰한 언행이 칭찬받아야 한다는 것 역시 당연합니다. 

서주희가 기어이 사고를 칩니다. 얘도 우빈이를 좋아해서 이러는 건데, 동기가 뭐든 간에 너무도 나쁜 짓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애가 생각이라는 게 없을까요? 자신이 뭔가 부족하니 남자애가 관심을 안 갖는 건데 자신을 고쳐 나갈 생각은 않고 엉뚱한 연두한테 분풀이를 합니다.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오를 때 그걸 다른 사람 하나를 표적 삼아 풀어대는 게 아주 못된 짓거리이며, 어른이 되어서도 이렇게 사는 한심한 인간이 꼭 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짓이 얼마나 끔찍한 범죄인줄(p148) 어른들이라도 좀 알게 해 줘야 합니다. 음... 그건 그렇고 쇼팽의 녹턴(p173)이 좋은 줄 아는 걸 보면 연두의 취향이 높은 수준이라는 데 동의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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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니블렛의 신냉전 - 힘의 대이동, 미국이 전부는 아니다
로빈 니블렛 지음, 조민호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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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 내내 이어졌던 냉전에서, 소련과 미국은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하는 부분이 적었습니다. 물론 소련도 자국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국제 시장에다 내다팔아 적지않은 이익을 거두었지만, 소련이 글로벌 경제 체제에 깊숙이 참여했다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21세기인 지금 양대 강국이라 할 미국과 중국은 서로 긴밀히 엮여 있습니다. 당장 중국으로부터의 모든 수입을 중단하거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시민들이 물가 상승으로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보듯 무역 장벽으로 인한 타격은 미국보다 중국이 더 심하게 입는 중입니다만 고립주의가 심화되면 모두가 피해를 봅니다. 올해 63세인 저자 로빈 니블렛 경(卿)도 p44에서, 미국이 중국과 이처럼 밀접히 기댄다는 상황 자체가 무척 역설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중국과의 크고작은 연결지점들을 잘라내려 하는 중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소련은 (구) 냉전 기간 당시 총GDP 기준 세계 3위 정도(1990년 기준. 이 책 p80)의 위상이었습니다. 글로벌 무역 체제에 참여하지 않고도 저 정도의 생산력을 유지했었으니 세계를 반분하여 지배했다는 대국 답습니다. 현재 러시아는 중앙아시아가 다 떨어져 나갔다고는 하나 여전히 광대한 자원과 영토를 보유했는데도 이탈리아, 캐나다보다도 못한 10위 정도의 능력입니다. 이미 정권을 잡은 지 26년이 흘렀는데도, 저렇게 국위가 쪼그라든 채 회복이 안 되는 책임을 구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고르바초프에게 돌릴 만큼 집권자 푸틴은 무책임하다고 저자는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저자는 러시아 인접국들로 하여금 마음을 열게 하고 구태여 서유럽, 미국의 세력권 안에 들 필요를 못 느끼게 하는 쪽으로 외교 정책을 전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난세기보다 더 두터워진 철의 장막(p86)"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임기 2연임 후 물러나는 관례를 벗어나겠다고 진즉부터 밝힌 시진핑은 스스로의 "사상"을 국부 마오쩌둥의 그것과 같은 반열에 둠으로써 "중국의 법치란 곧 시진핑의 통치를 의미(p103)"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진단합니다. 중국과 구 소련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달리 1960년부터 내내 심각한 분쟁 상태였었음이 외교기밀문서 공개 등을 통해 밝혀졌는데, 그런 과거와는 달리 두 나라는 시진핑 - 푸틴 두 권력자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토대로 밀착 협력 중인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서유럽은 종래의 안이한 태도를 버리고 러시아에 대한 경계심을 바짝 곤두세우는데(특히, 친러 정책으로 당장은 편했으나 장기적으로 독일 경제를 망쳤다며 메르켈에 대한 독일 내의 비판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그 분위기를 요약하면 "20세기에 그토록 어렵게 얻은 민주주의를 21세기에 빼앗길 수는 없다(p114)"입니다. 

호주 북부에는 노던 테리터리라고, 광대한 면적의 미개발 행정구역이 있는데 주 자치정부가 다윈 시(호주 최북단이라고 해도 됩니다)의 어느 항구를 중국에다 99년 임대하는 계약까지 2015년에 체결했었다고 합니다(p143). 마치 19세기 서세동점기에 홍콩, 칭타오 등 중국 곳곳을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에 조차해 줬던 청나라의 망신을 설욕이라도 하려는 듯한 움직임이었습니다(사실, 영토 중의 상당 면적이라기보다 항구 하나의 임대차이므로 제 생각에는 호주 실정에서 이게 아주 큰 의미까지를 둘 것까진 아닙니다). 그러던 게 중국 간첩 적발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워졌고, 2023년 신 정부가 들어서서 국방 정책 전면 쇄신을 직접 밝힘으로써 친미 선회가 더 뚜렷해진 게 호주 정가의 현재 상태입니다. 책에서는 "하나가 된 두 반구(半球)"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때의 두 반구란 태평양을 사이에 둔 동반구, 서반구를 가리킨다고 생각되네요.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2015년까지만 해도 청정에너지 전환 움직임이 전지구적 스케일에서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이때는 세계가 신 냉전으로 세력이 재편되는 긴장보다는 테러의 위협에 공동대처하는 기조가 훨씬 강했고 따라서 국제 협력도 지금보다 훨씬 잘 이뤄지는 분위기였다는 게 저자의 회고입니다(p176 이하). 이러던 방향성이 깨어진 건 탄소 감축 목표가 불균등하게 이행되어서라는데, 중국은 그간 배출량이 크게 늘어난 반면, 미국은 소폭이나마 감소했고, 같은 개발도상국인 인도마저도 그리 큰 폭으로 증가하지는 않았다고 이 책에서 인용한 통계에 나옵니다. 중국은 저렇게 대놓고 어기는데 왜 우리만 지켜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높아진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또 아프리카 등 후진국에다 그린 에너지 전환 동참을 요구하기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는 점도 드는데 이들 나라로부터의 에너지 자원 수입을 서구 세계가 중단하면 당장 누가 피해를 보겠냐고 묻습니다. 

저자는 지금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에 가하는 경제 제재를, 마치 1930년대부터 일본에 적용했던 이른바 ABCD 포위망에 비견할 만하다고 지적합니다. 결국 일본은 이런 옥죄임을 참지 못하고 1941년 12월에진주만을 기습함으로써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지금 러-중 연대와 미국 사이에 일어나는 긴장은 사태의 전부가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거대한 파국의 서막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불길한 예견입니다. 그럼 충돌은 피할 수 없는가? 전 호주 총리 케빈 러드는 "관리되는 전략적 경쟁(p240)"이 중요하다고 말했으며, 저자는 설령 2024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어 미국이 더욱 자국 중심으로 치닫더라도(12월 현재 이는 기정사실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글로벌 자유주의, 민주주의 가치 동맹을 더욱 강화하는 게 시대적 사명이지, 결코 파국으로 내닫는 선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힘주어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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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읽는다 세계의 전쟁·분쟁 지식도감 지도로 읽는다
라이프사이언스 지음, 안혜은 옮김 / 이다미디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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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도감류를 만드는 이다미디어의 새 책입니다. 책표지에도 나오듯이 작금의 세계는 곳곳에서 터지는 전쟁 때문에 도대체 편안할 날이 없습니다. 푸틴은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까? 인도와 태평양 일대에서 미국과 중국은 왜, 어떻게 대립하는 중이며 과연 승자는 누구일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은 과연 어떻게 귀결할까? 만약 이다미디어의 기존 도감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정독해 온 독자라면 이 문제에 대해 이미 대강의 답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최신의 이슈는 최신의 접근법에 의해, 그 문제에만 포커스를 맞춰 해결하는 게 좋죠. 이 새 도감은, 확실히 가장 최근의 사정들을 모두 반영하여 우리 동시대인들의 시급한 궁금증을 풀어 주는 데 주력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중앙아시아 5개국, 이른바 "스탄 국가들"이 모두 독립함에 따라 이 지역의 정세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이런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건 중국인데, 서북부의 방대한, 또 자원도 다량 매장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끼칠 영향을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본래 이 지역은 실크로드의 관문이었고 생김새도 언어도 풍속도 크게 다른, 이른바 서역인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그러던 게 18세기 들어 건륭제가 준가르 부와의 싸움에서 크게 이기고 이 일대를 새 강역으로 편입하여 오늘에 이릅니다. 책 p44 이하에서는 영국 BBC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여기서 벌어진 소수민족과 여성에 대한 가혹한 인권 침해를 언급합니다. 또 이어지는 챕터에서는 몽골 공화국과의 큰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정책적으로 진행되는 한족(漢族) 이주 때문에 터전을 잃어가는 내몽골 자치구의 문제점을 조명합니다. 

버마(현 미얀마)는 원래 다수의 버마 족 외에 여러 소수 종족들이 어울려 살아온 나라입니다. 이 소수 민족 중 영국 제국주의에 적극 협력한 이들이 있었기에, 독립 후에는 주류와 결코 좋지 못한 감정을 씻지 못하고 불안정한 동거를 이어 왔습니다. 1962년 쿠데타로 집권한 네윈 장군은 무려 26년 동안이나 철권 통치를 이어왔고 그 후에도 군부 통치가 계속되다 독립운동의 영웅 아웅산의 딸 수치 여사가 2010년에 선거에서 승리하고 나라를 이끌게 되었죠. 이 수치 여사의 정부를, 2021년 군부가 다시 뒤집어 현재는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이 다시 벌어지는 판입니다. 사실 수치 여사가 먼저,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소수 민족 억압 정책을 강화하다 서방 측(여태 그녀의 강력한 후원 세력이었던)의 비판을 받았고, 이 틈을 타서 군부가 정권을 엎은 것이므로 동정의 여지가 적습니다. 수치 여사가 스스로 도덕적 명분도, 정치적 어드밴티지도 모두 망치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으므로 자업자득인 셈입니다. 

p142 이하에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보다 종합적이고 통시적인 고찰이 나옵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1차 대전 무렵부터 이 지역을 사실상 다스리던 대영제국이 1945년 철수하며 뒷마무리를 제대로 짓지 않았고, 유대 시오니스트들이 무작정 밀고 들어와 자기들의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죠. 20세기 말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과 이스라엘 사이에 협정이 체결되었으나 2004년 이분의 서거(p158) 후 팔레스타인 정치 세력이 파타와 하마스로 분열된 것도 사태 악화에 한몫했습니다. 파타도 한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무장 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단어였는데 세월이 흘러 온건파의 명칭이 되었다는 게 아이러니입니다. 

원래 예멘도 남북으로 분단된 나라였으나 20세기 말에 통일되어 희망찬 미래를 꿈꾸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게 지금은 수십 개 종족이 합종연횡을 거듭하며 도대체 뭐가 뭔지도 알 수 없는 난장판의 내전이 벌어질 뿐 아니라,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 아라비아 반도와 페르시아만 너머에서 후티 반군을 후원하여, 예멘 북동쪽의 사우디 영토에까지 분쟁이 확산되는 등 사태가 갈수록 악화됩니다. 물론 이란 쪽에서도 같은 시아파인데 다른 나라 안에서 소수파라는 이유로 탄압받는다면 이를 좌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미국도 민주당이 집권할 때는 친 이란 정책을 폈다가, 공화당이 정권을 잡으면 이란에 대해 다시 강경 스탠스로 전환하는 등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인 것도 책임이 큽니다. 이 틈을 파고든 중국의 과감한 행보 때문에 현재 사우디는 미국과 외교적으로 거리가 멀어지는 중입니다. 

아프리카는 19세기 유럽 제국주의의 대대적인 발호 기간에 그 면적의 1/2가 프랑스에, 1/3이 영국에 지배당하는 등 큰 아픔을 겪은 대륙입니다. 이 책에서는 비교적 먼 시점까지 거슬러올라가서 오늘날 미로처럼 꼬여 진행되는 종족 간 분쟁, 군벌 사이의 패권 다툼을 총체적으로 분석, 조망합니다. 이다미디어의 도감들이 항상 그랬듯 현재의 이슈를 현재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톺아보되, 그 역사적 맥락까지도 철저히 되짚는 학구적인 태도가 또한 돋보입니다. 또 도감에서 필수인 컬러 주제도(主題圖), 기타 사진 자료가 많아서 독자에게 너무도 멋진 선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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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마케팅 실전 활용 - 수익 창출을 위한 실무 성공 전략
마정산 지음 / 정보문화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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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케팅에 있어 온라인의 비중은 절대적이라 할 만합니다. B2C뿐 아니라 B2B도 그러하며, 모든 방향, 업종에서 인터넷, 모바일을 통한 공략이 불가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업자들, 대표님들은 그저 동종업자들이 행하는 평균 수준에서만 간신히 구색맞추기나 하는 데서 만족합니다. 승부를 걸고 전력을 다해야 할 영역에서 시늉만 낸다면 남들보다 앞서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서서히 뒤처지다 도태할 위험마저 있습니다. 이 책은 무엇이 디지털 마케팅의 핵심이며, 실전 마케팅에서 어떤 점에 유의하여 고객에게 어필하고, 그들의 성향을 파악하여 향후 트렌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갈지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방안들을 서술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36을 보면 콘텐츠를 활용한 마케팅의 중요성이 나옵니다. 아무리 제품이나 서비스가 뛰어나도 사람들이 일단 관심을 보여야, 최소한의 주목이라도 끌어야 판매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요즘은 짧은 영상, 즉 쇼츠라고도 하고 플랫폼에 따라 릴스라고도 하는, 어떤 이야기가 담긴 콘텐츠가 소통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영상도 너무 길면 사람들이 보질 않고, 그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의 밀도 있는 반응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하므로 이런 숏폼을 만들어내는 재주 또한 여간한 센스로는 못합니다. 요즘 시대에 대세로 통할 수 있는 짧은 영상이라면 틱o 같은 곳에 많이 등록되었으니 그런 곳을 찾아보며 제작 문법을 익힐 만합니다. 

온라인이건 모바일이건 혹은 길거리에 전단지를 뿌리는 재래식 마케팅이건 간에, 결국은 경쟁자들과 싸워서 이기는 데에 주안이 놓여야 합니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게 마케팅의 핵심이라는 전제(p76) 하에 저자는 세 가지 포인트를 강조합니다. 첫째 경쟁자, 둘째 내가 속한(혹은 "가진") 회사, 셋째가 소비자라는 것입니다. 이 셋은 영어로 쓴다면 각각 competitor, company, consumer이므로 다른 말로 3C 분석이라고도 한다는군요. 

저자는 여기에다, 동양의 고전 <손자병법>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을 접목합니다. "나를 알고 적(상대)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로워지지 않는다." 여기서 "상대"라 함은 경쟁사는 물론, 내가 내 물건을 판매하려 드는 소비자도 포함됩니다. 또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고전 영화 <대부>에 나온다는 명대사도 인용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장점은 과대평가하고, 타인의 장점은 과소평가한다." 이처럼이나 자기객관화라는 게 어려우며, 또 상대방의 기량이나 가능성을 제대로 봐 주는 작업이 까다로운 것입니다. 여튼 마케팅의 출발 지점 또한 여기입니다. 

전환율과 ROAS라는 수치, 통계에 대해 아십니까? p107에 어떤 사례와 함께 이런 용어들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후자는 return on ad spend의 약자로서 , 해당 광고로부터 유발된 매출액을 광고비로 나눈 비율을 말합니다. 그러니 광고가 만약 이상적으로 집행되었다면 이건 100%이 아니라 1,000%도 나올 수 있는 수치이겠습니다. 전자는 CVR(conversion rate)이라고도 하는데 전환수(실제로 구매한 수)를 클릭 수로 나눈 값입니다. 판매자는 이런 수치들을 꼼꼼히 검토하여, 해당 광고가 매출 증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과감하게 폐기하고 그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도 디지털 마케팅에 적합한 업종이 따로 있고, 내가 속한 이 일은 전통적 방식이나 뭔가 (모바일 아닌) 다른 홍보를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여전히 많은 사장님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이런 판단 착오 때문에 기어이 폐업의 길로 밀려납니다. 저희 동네 사정만 해도, 어떤 중형 마트로부터 갑자기 카톡 메시지가 제게 날아와서 좀 당황했는데 누가 요즘 이용이 뜸하다 싶으니 이제 카톡을 통해서도 광고를 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게 명절이나 휴가철에 가가호호 전단지 꽂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낫다는 걸 인식한 결과 아닐까요. 저자는 p134에서 전략과 방향성만 분명하다면, 모바일 마케팅이 먹혀들지 않을 영역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강조합니다(p134). 

온라인 사이트는 꼭 만들어야 할까요? 만약 만들 것 같으면, 비록 운영비 지출이 아깝긴 해도 지나치게 영세한 곳에 맡기진 말라고 합니다. 이런 건 일단 만들고 나도 지속적인 유지, 운영, 관리가 중요한데 만약 위탁받은 업체가 폐업이라도 한다면 그 이후의 처리가 난감해서라고 합니다(p161). 이커머스 플랫폼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현재로서는 누구나 쿠팡 등을 떠올릴 텐데, 이런 플랫폼이라고 해도 모든 물품을 취급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의 특성에 따라 즐겨찾는 업체가 다르다는 말도 나옵니다(p210). p246 이하에는 한때 각광 받던 브랜드였으나 점차 타성에 젖어 소비자 인식이 악화한 탓에 위기를 맞았다가, 온라인 마케팅에서 반전의 계기를 찾아 다시 살아난 버버리의 예가 재미있게 분석되네요. 

디지털 마케팅은 보조 시어터가 아니라 모든 경쟁자가 참여하여 혈전을 벌이는 주된 전장(戰場)입니다. 이런 현실을 일깨우고 자세한 각론을 풀어 주는 유익한 경영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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