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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영화 읽기 수업 - 질문이 있는 교실 영화 이야기
지태민 지음 / 이비락 / 2024년 11월
평점 :
영화는 어린이가 세상을 배워 나갈 수 있는 좋은 텍스트 중의 하나입니다. 그저 말초적 재미만을 얻는 일회용 미디어로만 영화를 생각할 게 아니라, 영화 내적인 문법과 구조를 정석대로 배워 가며 감독과 배우가 이 작품 안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어린 독자, 관객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 책 저자 지태민 선생님의 방법론이 학교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책의 편제도 참 좋습니다. 1부는 단편영화 읽기인데, 일단 어린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시청각 매체에 집중하기 힘드므로 단편이 적합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단편 영화 중에는 흥행보다 메시지 전달, 작품성 구현에 집중한 명작들이 많습니다. 이런 작품이라야, 어린이를 깨어 있는 시민으로 양성하기 위한 좋은 교재가 될 수 있겠습니다.
2부는 주제별로 읽는 영화들입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너무 거창하거나 어렵지 않고 자신의 현실 문제에 적용해 볼수 있는 주제들인데, 학폭, 진로(進路), 환경, 지구촌의 평화, 장애인 등 소수자 이해 등 다섯 범주로 나뉩니다. 책에 실린 대부분 작품들이 제가 몰랐던 것들이었는데,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찾아서 관람한 후, 우리 주변과 세계의 현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만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3부는 학교 공부에도 도움이 되는 내용입니다. 국어, 도덕, 사회, 역사, 과학, 실과 등 여섯 과목의 공부와 관계 있는 작품들이 모였습니다. "실과"라는 과목 이름을 정말 오랜만에 들어 보는데, 초 4~6학년 때에만 배우기 때문입니다. 1~3학년 때에는 너무 어려서 배우지 않고, 중학교 때에는 가정/기술로 바뀌겠으며, 고등학교라면 실업계로 가야 그런 수업을 들을 테니 말입니다. 아무튼 학교 교과목과 영화가 이렇게 밀접히 연결되어 교재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국어 시간에 "시적(詩的) 허용"이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문법적으로 말이 안 되는 표현이라고 해도, 시에서만 구현할 수 있는 어떤 아름다운 효과를 위해 구태여 언어 규범을 따지지 않는 예외를 가리킵니다. p86을 보면 "영화적 허용"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역시 비슷한 개념입니다. 그러고 보면 영화는 이처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미지, 장면을 관객에게 대담히 표현하는 게 하나의 특권이며, 예외가 아닌 원칙에 가깝게 취급하고, 우리 관객들도 기꺼이 그런 영화적 허용을 감상하고 즐기기 위해 상영관에 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린 학생의 성장이라는 목표와 관련하여 <라따뚜이(2007)>라는 작품이 소개됩니다(p143). 성취기준 연계(이 책은, 수록된 모든 영화 작품에다 이 항목을 부기합니다. 학교 현장에서 지도하는 교사들이 참고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입니다)는, 2슬, 6도, 그리고 6실의 다섯 개 사항입니다(슬: 슬기로운생활, 도: 도덕, 실:실과). 주인공 레미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에 대해 교사는 학생과 토론을 통해 밝히고, 이로부터 뽑아낸 교훈을 아이에게 내면화할 수 있게 지도합니다. 그렇다고 영화 감상과 수업이 지나치게 계도적 분위기로만 흐르는 건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 모두가 재미있게 본 장면은 무엇이고, 그런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기법이 쓰였는지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눕니다. 이런 수다 비슷한 사후 정리 시간이 없다면 구태여 영화를 보려는 이들이 없을 것입니다.
영화는 현실의 반영에서 첫걸음을 떼지만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sein)을 지양하고 어떤 이상적인 당위(sollen)으로 나아갈 것을 관객에게 촉구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영화는 꼭 큰 돈을 들여 성인 예술가들만이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며 어린이도 감독이 될 수 있습니다(p221). p330을 보면 소설가 김훈의 원작을 바탕으로 윤제균이 연출한 <영웅>이, 학생들의 교육적 영화 읽기의 텍스트로 제시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역사가 개인과 특정 국면에서 어떤 접합점을 마련하여 폭발적 변용을 겪게 하는지, 소명의식이 어떻게 한 개인을 초월적 존재로 만드는지 깊이 성찰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그간 무심히 보아넘겼던 여러 영화적 독해지점을 음미하게 되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