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위로 - 음식과 연결된 우리의 삶
김경희 지음 / 이비락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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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빚던 맛은 누구에게나 아련한 추억으로 남습니다. 어느 명 셰프가 체계적이고 우아하게 만들어낸 풍미라 해도 투박한 엄마의 손맛에 비길 수가 없겠는데 마치 배가 아플 때 "엄마 손은 약손"이라며 쓸어 주시던 그 체온이 어느 수액, 진통제보다도 효과가 좋던 현상과도 비슷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나를 낫우는 핵심의 감정선이 무엇인지, 어떤 추억이 내 영혼에 근원적인 힐링을 가져다 주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의 세월호 사건은 한국인들에게 큰 충격과 상실감을 남겼습니다. 이 책 p35를 보면 그 일이 있은지 1개월 9일째 되는 날 갑자기 조카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크게 당황했던 저자 부부의 사연이 나옵니다. 큰 참사가 벌어지고 나면 내 주변 역시 저런 뜻하지 않은 큰 비극과 무관할 수 없다는 생각에 불안감과 긴장을 놓을 수 없게도 됩니다. 아이들이란 돈가스를 원래 좋아하고, 당시에는 아직 신메뉴에 가까웠던 치즈돈가스(애들 식으로 줄여서 부르길 "치돈")를 또 각별하게 좋아하던 조카, 그 어린 나이에 참척을 당한 부모님들은 얼마나 절망하셨겠습니까. 사랑하던 사람이 가고 나면 그 자취를 그가 좋아하던 음식이 대신 채우기도 하는 현상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님을 품은 강렬함이란 몸 속에서 활화산이 끓어오르듯 뜨거운 마그마가 온몸을 들썩거리게 한다(p63)." 이 문장에서 님이란, 우리가 모두 짐작하듯 사랑하는 그 님이라고 해석해도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님은 본디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함께 달구며 찾아오고, 그 님이 이렇게 뜨겁게 찾아오기에 님이 떠난 후에는 마치 총맞은 것처럼, 혹은 몸에서 엔진이 통째 빠져나간 듯 허탈하고 허망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책의 이 대목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한 건 그게 아니라 코비드19 감염이었습니다! 이러니 가족과 지인을 만날 수도 없고... 저자는 이 와중에도 루꼴라 새우죽을 만들며 고독을 달래고 다시 만날 그 아늑한 시간을 기다립니다. p70을 보면 루꼴라 새우죽을 만드는 간단한 레시피가 나오는데 저자는 겸손되이 이를 "주먹구구식 요리법"이라 이름 붙입니다. 이 책의 구성은 대체로 이런 식인데 그래서 수필집이기도 하고 요리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저자께서 아리까리한 중의법을 자주 구사해서 독자는 의외의 반전 때문에 즐거워지곤 하는데, p94에도 그런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집에는 진주가 하나 있는데 조개의 눈물이라는 그 진주가 아니라" 키우시는 강아지를 가리킵니다. 강아지도 어린이와 같아서 키우다 보면 온갖 배려를 다해야 하는데 분리불안 같은 걸 겪으며 낑낑대는 걸 보면 키우는 분들이 아닌 그저 지나가던 사람도 마음이 다 안쓰러워지죠. 에휴... 사람이나 개나 어쩌다 험한 세상에 태어나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 고생 중인지...  그러나 소중하게 주어진 생명이니 만큼 누구라도 최선을 다해 제 생을 살아내야 합니다. 이 꼭지에서 소개되는 메뉴는 북엇국입니다.

부부 중 한 사람은 아침형 인간, 다른 사람은 올빼미형이라면 서로 불편할 수도 있겠으나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그 어떤 벽도 넘기 마련입니다. p143을 보면 저자님과 남편분이 서로 사이클이 달라서 약간 고생하는 사연이 나오는데 이 와중에 남편께서 잠시 입원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부부의 사랑은 간병 중에도 그 순도를 다시 확인하게 되는데 제3자가 보기에도 그 좋은 금슬이란 뿌듯합니다. 다슬기탕이라는 메뉴가 생각 밖으로 조리 과정이 복잡할 수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마마라고 하면 누구나 "엄마"를 떠올리지만 연말 케이팝 시상식이 생각날 수도 있고 p212에서 MAMA는 무슨 뜻일까 궁금했는데 금산사 가는 길목의 명물 카페 이름이라고 나오네요. 한국인들이 유독 좋아하는 아메리카노를 저자는 카페인 울렁증 때문에 못 마신다며 대신 쌍화차(!)를 드시는데, 말만 들어도 좀 분위기가 올드해지는 느낌입니다. 이 대목에서 언급되는 카를라 브루니는 프랑스 전전 대통령 사르코지의 와이프인데 물론 Stand by your man은 태미 와이넷이 오리지널입니다. 여기서 소개되는 메뉴는 다소 깨는 듯한 오리주물럭인데 아무튼 저자가 끌어내는 결론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장 안온한 상황을 꾸려 줄 수 있는 여성만의 특권, 기쁨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음식은 그저 신체에 기초 대사량만 제공하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의 안정과 평화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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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교과서 3 : 고객편 - 고객의 마음을 얻는 것이 장사다 장사 교과서 3
손재환 지음 / 라온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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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두 권에 이어 이 책은 자영업자 사장이 어떻게 나의 고객들을 분석하고 응대할 것인지 그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책 앞표지에는 저자가 직접 쓰신 글씨체로 "이 책이 당신의 앞날에 등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그만큼 장사는 현장에서 매우 절박하게, 많은 사장님들이 자신의 앞날을 걸고 치열하게 벌이는 전투와도 같습니다. 경쟁자들에게 밀리면 죽는 것이며 한번 말아먹고 나면 재기도 힘듭니다. 성공한 분의 상세한 회고담을 듣고 나는 과연 무엇이 잘못되거나 좀 부족했는지 복기해 보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겠습니다. 

장사 교과서 시리즈 전에도 저자는 자신의 안경점이 특별한 성공을 거두었던 비결을 정리한 <안경 혁명>이라는 책을 쓰신 적 있고 저도 리뷰를 남겼었습니다. 이 책 p59를 보면, 매장에 들어오는 손님의 복장이나 분위기 등을 보고 얼마나 예산을 갖고 무슨 생각으로 여기 들어왔는지 빠르게 살펴 보는 저자의 노련한 안목이 서술됩니다. 돈이 많지 않은 분에게 고가의 상품을 권해 봐야 소용 없겠고, 반대로 넉넉한 형편이 한눈에도 척 보이는 이에게는 그 임하는 전략이 달라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특히 재미있는 대목은, 겉으로 보아 어떤 부류인지 내게 감이 잘 안 오는 고객에게는, 가장 최상의 제품을 나중에 척 권하면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는 대목입니다. 이 파트에서도 유능한 영업사원이 얼마나 큰 몫을 해내는지 확인할 수 있는 일화가 소개됩니다. 이래서 잘하는 직원은 사장이 직접 가서 스카우트도 해 온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고객 만족을 넘어서, 고객에게 (새로운) 체험을 시켜야 한다(p98)." 이 파트에도 사장님들이 신경 써서 공부해야 할 포인트가 많이 나옵니다. 한 예로, 닭갈비를 아무리 맛있게 만들어도 사장님이나 셰프가 공을 들이는 만큼에 비례하여 고객들이 그 수고와 탁월성을 일일이 알아봐 주지는 않습니다. 안타깝지만 말입니다. 다른 가게들도 다들 자기 방식대로 맛있게 만들고, 사람의 입맛이란 게 다 다른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닭갈비집은 레스토랑 분위기를 내어 고객들이 더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저자께서는 자신의 안경점에 미용실 의자를 도입하여 색다른 효과를 내었고, 아드님이 갖고 놀던 건담 모형들을 죽 전시하여 분위기를 살짝 바꾸기도 했습니다. 실내 분위기를 바꾸는 건 돈이 들어 못 한다는 반응도, 이처럼 돈이 적게 드는 아이디어 현출 앞에서는 할 말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고객은 생리적으로 돈 쓰는 걸 아낍니다. 이런 사람들한테 무조건 "우리 집이 싸다(p121)."라고 권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왜 여기서 물건을 사야 당신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그 고객의 논리와 입장에서도 수긍이 가게 설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안경은 5년을 못 쓰느냐?라고 묻는 고객한테 가장 소중한 눈 건강에 월 만 원 투자하는 셈치라는 설득은 언제나 잘 통했다고 합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만 갚는 게 아님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착용감이 좋으면 가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포인트도 고객에게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하시는데, 역시 사람 상대하는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님이 다시 확인 가능합니다. 

p136을 보면 참 민감한 이슈가 나옵니다. 공장에서 출고된 안경테에 흠이 발견되고(즉, 안경점 사장의 잘못은 아님) 이걸 이미 다 찍어나온 상태에서 고객에게 정직하게 말을 하느냐, 아니면 그냥 줬다가 나중에 고객이 클레임 걸면 그때서야 처리를 해 줄 것인가. 도의상으로야 당연히 전자로 나가야 합니다만 이 경우 고객들은 불안해하거나 오히려 해당 안경사를 질책한다고 합니다. 반면 후자의 경우 일단 거래가 이뤄진 후이기 때문에 고객은 보다 조심스럽게 문제를 해결하려 오니, 사장은 전자를 택할 수 없지 않냐는 건데요. 이는 정말 난감한 상황이죠. 저는 소비자들도, 저런 경우를 맞닥뜨렸을 때 역지사지하여 오히려 "착한 사장님(즉 전자)"한테 고마움을 표시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는 편이, 다음에 이 사장님을 만날 때 여전히 정직하게 대할 필요가 있는 사람으로 그가 나를 대하게 하는 전략이기도 하며, 만약 내가 짜증만 낸다면 아 역시 장사는 사기치면서 하는 게 맞구나 하는 확신을 그 사장한테 심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역시 저자의 생생한 경험이 잘 녹아 있는 책이라서 재미있게도 읽히고 많은 점을 배울 수도 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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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모바일 접근성, 모두를 위한 비즈니스 확장
수크리티 차다 지음, 김현영 옮김 / 글로벌콘텐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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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이란 개념은 늦게 잡아도 PC 운영체제인 윈도 시절부터 이미 있었습니다. 아마 제어판에 들어가 보면 접근성 항목이 있었을 테고, 이후 스마트폰 설정에도 보다 세밀화한 코너가 마련되었지만 많은 이들이 나와는 무관하다는 판단 후 다시 들어가 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책을 쓴 분은 안드로이드 개발자이신데, 접근성이란 개념의 외연을 확장하고 더 구체화하며 더 강력한 기능을 부여하여 전개하는 점이 특징입니다. 

모든 프로토콜은 이상적인 내용과 비전을 담아 전문가들이 정합니다. 그렇다고 이런 프로토콜을 모든 개인과 회사들, 특히 운영체제와 브라우저를 만드는 큰 회사들이 일일이 준수하는 것은 아닙니다. p34를 보면 웹 컨텐츠 접근성 지침이 설명되는데, 이를 줄여서 WCAG라 부릅니다. 이는 네 가지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는데(p35), 인식과 운용, 이해의 용이성, 견고성 등이 그것입니다. 이 원칙들을 어떻게 준수할 것인가? 책에서는 그 수준(준수하는 정도)를 A, AA(더블에이), AAA의 세 레벨로 나눕니다. 

요즘은 한국 TV 드라마를 봐도 재방송에서는 한국어 자막이 대부분 깔립니다.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배려일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화면을 가린다며 불평하기도 하나 누구나 차별 없이 컨텐츠를 향유해야 한다는 원칙에 수긍하고 변화한 풍토에 적응하는 편이 바람직하겠습니다. 이 책 p42를 보면 시각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정보를, 해당 감각이 불편한 이들에게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방법이 제시되었습니다. p43을 보면,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의지하는 야후 파이낸스가 제공하는 "오디오 차트"가 나오는데, 주식(혹은 어떤 금융상품이든) 가격 변동 차트가 안 보이는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이 정보를 전달하는지 개략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은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소셜 미디어입니다. 이런 걸 쓸 때에도 이제 모두에게 차별 없이 더 편리한 사용을 배려할 필요가 있겠네요. 대체로는 이런 컨텐츠가 유저들에게 제목을 가장 먼저 읽히게 하고, 제목-이미지 설명-가격 등을 함께 그룹화하여 개별 항목으로 주의가 분산되지 않게 하라는 지침이 있습니다(p80). p82를 보면 안드로이드 앱에서 어떤 코드를 집어넣어 이 효과를 내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오네요. 또 콘텐츠의 흐름을 가로 또는 세로로 제한하여 쉬운 추적과 독해를 도우라고도 합니다. 

사실 특정 옵션은 이게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들을 위해서는 비활성화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접근성 코너(운영 체제에서)는 이를 위한 것인데, 아쉽게도 이 조건이 그리 잘 충족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안드로이드 레벨에서 이를 허용해도 기기 제조사의 배려가 부족해지기도 합니다. p108에 이에 대해서 자세한 논의가 나오는데, 개발자들이 물론 수고가 많겠습니다만 원칙에 보다 충실하게 전향적인 태도로 임했으면 좋겠네요. p109의 한 구절, "글로벌 설정 준수"라는 말도 그 함의가 다르게 다가오는 듯도 하고요. 

모든 규약이 그렇지만 서로 충돌하는 항목이 반드시 있고, p143을 보면 타깃을 크게 설정하는 쪽으로 권장되는 경우가 있고, 이것이 지나치게 넒어질 때 탐색이 오히려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배율을 높일 때 하나의 고정된 방향만 가능하게 하는 UI 팩터를, 사용자 설정을 통해 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더 많은 이들이 자유롭게 웹을, 또 모바일을 이용하게 돕는 환경은, 결국은 특정 부류의 이용자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하는 길이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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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체코 - 최고의 체코 여행을 위한 한국인 맞춤형 가이드북, 최신판 ’24~’25 프렌즈 Friends 37
권나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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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는 대략 10년 전부터 한국인들도 새삼 그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알아 보고 부쩍 자주 찾기 시작한 나라입니다. 이곳은 합스부르크 제국이 공을 들여 경영하던 제법 넓은 영지였고, 독립된 군주국으로서의 지위를 잃은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선명한 정체성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냉전 시대에도 고유의 문화가 발달했음은 물론 공산권 중에서는 공업이 비교적 잘 발달한 지역이라서 생활 수준이 높았습니다. 따라서 관광 인프라도 좋을 뿐 아니라 개성 있는 문화 유적도 많아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많은 손님들이 구경 오는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세기 초에 완성된 카를 교(橋)가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아주 유명한데, 이 이름이 유래한 카를 4세만 해도 보헤미아를 고유의 영토로 다스리던 군주였고 합스부르크 가(家)보다 더 명망 높던 혈통이었습니다. 이랬던 가문과 국가가 한번 세력을 잃고 나니 백성은 백성대로, 왕가는 왕가대로 쪼그라들어 강대국의 핍박을 받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으니 한국인들에게도 남 일 같지 않은 사연입니다. p142에 카를교 박물관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 나옵니다. 

p154를 보면 우 파보우카, 체르나 마도나 같은 카페 명소들이 소개되는데, 체코가 원래 가톨릭 전통도 유구하지만 프라하의 defenestration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종교개혁의 본고장이기도 하며 더 오래 전에 위대한 후스도 배출했을 만큼 신교의 개성도 강하게 풍기는 고장입니다. 자유분방한 예술가들이 터잡아 활동하고 공업이 발달한 것도 진취적인 프로테스탄트들의 영향이 없었다고 결코 단정할 수 없습니다. 

p170에도 나오듯 체코의 랜드마크 하면 또 성 바츨라프 기마상이 유명합니다. 이처럼 유럽은 게르만, 슬라브 가리지 않고 상무(尙武)적인 기질이 강했으며 귀족 신분제 자체가 무장의 배타성에 상당 부분 기반하여 유지되었습니다. 물론 귀족들 사이에 문예의 교육도 중시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방어가 가능할 정도의 무술은 필수 소양이었으며 무력으로 나와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능력이 없다면 올바른 귀족 대접을 받기 어려울 정도였죠. 같은 페이지에 나오는 국립 박물관은 외국의 관광객들이 반드시 둘러보고 이 나라의 매력에 푹 빠져 볼 수 있는 필수 코스입니다.  

로마 대약탈로 인해 교황청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시의를 잘 탄 마르틴 루터의 가르침이 유럽 곳곳에 스며듦에 따라 종교의 자유는 시대의 대세가 되었습니다. 17세기 초 들어 30년 전쟁이 터지고 실력 위주 의 풍조가 확산됨에 따라 가장 출세한 인물 중 하나가 용병대장으로 유명한 폰 발렌슈타인이었는데 책 p214에 그의 궁(宮)과 정원이 소개됩니다. 한국 중등 교육 과정에서는 잘 다루지 않지만 유럽에서는 인지도도 높고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이죠. 바로 맞은편에 카프카 박물관이 나오는데 이 역시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사랑받는 문인을 테마로 삼은 곳입니다. 

13세기 보헤미아 왕국(이미 이때 대공령 따위가 아닌 버젓한 왕국이었습니다)의 위세를 드높인 바츨라프 2세 때의 영화를 증명하는 쿠트나 호라(p308). 은이 화폐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건 중국에서도 명대에 들어와서나 가능했는데 보헤미아에서는 이미 이때 은광에 기반하여 조폐 기능까지 행했다는 게 놀랍습니다. p314를 보면 성 바르바라 성당이 나오는데 한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본 곳입니다. 그 내역은 수호 성인(성녀)인 바르바라의 행적을 기림인데 책에 설명이 잘 되어 있습니다. 

우리처럼 전화(戰禍)와 외침(外侵)을 많이 겪은 나라이지만 p390 이하에 잘 나오듯 고딕 양식의 종교 시설이 이처럼 잘 보존된 나라도 드물다 싶을 만큼, 대체 나라 전체가 예쁘고 개성 강한 유적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체코입니다. 그런가하면 모던한 카페나 맛집도 많아서 유럽 안에서도 젊은이들이 분위기를 사랑하고 즐기는 힙한 맛집이 많아서 요즘 같은 국경 없는 시대에 세계 각국의 청춘들이 모여 추억을 만드는 체코. 한 권의 컴패니언과 함께 멋진 여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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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열림원 세계문학 4
헤르만 헤세 지음, 김길웅 옮김 / 열림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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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가 힌두이즘에 대한 심원한 통찰을 담아 창작했던 고전입니다. 역사적으로는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단일 정체성을 가진 대각성인이 한 분 있었는데, 이 소설 속에서는 먼저 깨달아 스승 노릇을 할 수 있는 고타마라는 인물이 있고, 고귀한 태생의 젊은 구도자인 주인공 싯다르타가 따로라는 점도 특이합니다. 싯다르타는 살짝 싱클레어를 닮았고 고타마가 데미안 포지션이기는 하나 훨씬 정서가 안정되었고(ㅎㅎ) 보편적 도덕성을 지향하는 개성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배경도 인도이며 분위기가 심오하고 신비롭기는 하나 이 장편에서 표현된 철학이 과연 불교와 깊은 관계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으며 그저 헤르만 헤세 고유의 유니버스로 파악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역사적 싯다르타가 구도의 길을 걸을 때에도 온갖 사악한 영들이 끼어들어 집요하게 그 득도를 방해했습니다만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p65에 나오듯 마라가 빚어내는 마야의 베일은 그의 눈을 어지럽히지만, 싯다르타가 어떤 필터를 통하지 않고 세상을 그대로 바라볼 때 온 누리는 색(色)으로 마법을 부립니다. 그 색은 물론 구도(求道)와 무관하게 비천한 감각과 욕망을 따를 뿐인 평범한 인간의 눈에도 그리 보이지만, 이 시점의 싯다르타 눈에 보이는 의미와는 그 결이 다릅니다. 이 형상은 대체, 왜 다른 모습이지 않고 그 모습 그 색이라야만 하는가, 이런 심각한 의문과 함께 바라본 형상은, 이제 싯다르타를 전혀 다른 세계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색이 비로소 공(空)임을 그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 왜 무(無)가 아니라 공(空)인지도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p86에 나오는 카말라와 싯다르타의 만남 장면은 마치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에서 주인공 블라디미르가 지나이다 부인을 만나는 대목과도 닮았습니다. 작품 속에서의 기능은 상당히 다르지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에바 부인의 등장 씬도 연상되는 부분이 있죠. 왜 청년은 헤세의 세계에서 이처럼 어떤 연상의 여인에게 어떤 가르침을 꼭 받고 특정 의례를 거쳐야만 하는 걸까요? 사실 카말라가 싯다르타에게 좁은 의미의 색, 즉 색정(色情)을 마스터해 주는 대목은 이제 제가 나이 들어 읽으니 그리 편하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이렇게해서 싯다르타는 또 한 사람의 스승을 떠나보내는데... 어쩌면 카말라 부인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점잖은 분이 아니라 일종의 고급창녀(아나톨 프랑스의 <타이스>라든가) 혹은 한국 텐프로 대마담 같은 사람이었다는 거죠(p168). 다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이 시점의 싯다르타에겐 그렇게 아득한 스승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겠습니다. 

소설 초반에 잠깐 나왔던 친구 고빈다가 p140에 다시 나옵니다. 이제는 제법 의젓한 스님 티가 나는데, 그래도 싯다르타는 한눈에 그를 알아보지만 고빈다는 싯다르타, 이제 부처님이나 마찬가지인 그를 못 알아보죠. 그도그럴것이 이제 싯다르타는 누가 봐도 위대한 스승이지 자신과 철없던 시절 함께 발가벗고 뛰놀던 그 소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같으면, 성공해서 외모 관리가 잘 되어 여전히 젊어 보이는 동창이, 그간 너무 고생하여 찌들고 상한 동창을 못 알아보곤 하는 풍속과 정반대이긴 합니다만. 

역사적 싯다르타에게도 라훌라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싯다르타도 저 창녀 카말라에게서 본 아들이 있고, 이제 그 아들이 그의 마음을 한없이 아프게 합니다. 아들이 개구쟁이라서가 아니라(뭐 모를 일이긴 합니다만), 그 혈육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지극한 사랑이 부처님으로서 도달한 그의 평정심에 마지막 파문을 일으킨 셈입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이 마지막 고비도 기어이 극복합니다. p208에서 이제 고승이 된 고빈다는 다시 싯다르타를 만나지만 또다시 그를 못 알아봅니다. 이제 싯다르타는 모든 이들의 스승이자 초월자가 되었기에, 누가 그를 만나든 간에 그는 팔색의 형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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