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위로 - 음식과 연결된 우리의 삶
김경희 지음 / 이비락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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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빚던 맛은 누구에게나 아련한 추억으로 남습니다. 어느 명 셰프가 체계적이고 우아하게 만들어낸 풍미라 해도 투박한 엄마의 손맛에 비길 수가 없겠는데 마치 배가 아플 때 "엄마 손은 약손"이라며 쓸어 주시던 그 체온이 어느 수액, 진통제보다도 효과가 좋던 현상과도 비슷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나를 낫우는 핵심의 감정선이 무엇인지, 어떤 추억이 내 영혼에 근원적인 힐링을 가져다 주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의 세월호 사건은 한국인들에게 큰 충격과 상실감을 남겼습니다. 이 책 p35를 보면 그 일이 있은지 1개월 9일째 되는 날 갑자기 조카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크게 당황했던 저자 부부의 사연이 나옵니다. 큰 참사가 벌어지고 나면 내 주변 역시 저런 뜻하지 않은 큰 비극과 무관할 수 없다는 생각에 불안감과 긴장을 놓을 수 없게도 됩니다. 아이들이란 돈가스를 원래 좋아하고, 당시에는 아직 신메뉴에 가까웠던 치즈돈가스(애들 식으로 줄여서 부르길 "치돈")를 또 각별하게 좋아하던 조카, 그 어린 나이에 참척을 당한 부모님들은 얼마나 절망하셨겠습니까. 사랑하던 사람이 가고 나면 그 자취를 그가 좋아하던 음식이 대신 채우기도 하는 현상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님을 품은 강렬함이란 몸 속에서 활화산이 끓어오르듯 뜨거운 마그마가 온몸을 들썩거리게 한다(p63)." 이 문장에서 님이란, 우리가 모두 짐작하듯 사랑하는 그 님이라고 해석해도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님은 본디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함께 달구며 찾아오고, 그 님이 이렇게 뜨겁게 찾아오기에 님이 떠난 후에는 마치 총맞은 것처럼, 혹은 몸에서 엔진이 통째 빠져나간 듯 허탈하고 허망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책의 이 대목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한 건 그게 아니라 코비드19 감염이었습니다! 이러니 가족과 지인을 만날 수도 없고... 저자는 이 와중에도 루꼴라 새우죽을 만들며 고독을 달래고 다시 만날 그 아늑한 시간을 기다립니다. p70을 보면 루꼴라 새우죽을 만드는 간단한 레시피가 나오는데 저자는 겸손되이 이를 "주먹구구식 요리법"이라 이름 붙입니다. 이 책의 구성은 대체로 이런 식인데 그래서 수필집이기도 하고 요리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저자께서 아리까리한 중의법을 자주 구사해서 독자는 의외의 반전 때문에 즐거워지곤 하는데, p94에도 그런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집에는 진주가 하나 있는데 조개의 눈물이라는 그 진주가 아니라" 키우시는 강아지를 가리킵니다. 강아지도 어린이와 같아서 키우다 보면 온갖 배려를 다해야 하는데 분리불안 같은 걸 겪으며 낑낑대는 걸 보면 키우는 분들이 아닌 그저 지나가던 사람도 마음이 다 안쓰러워지죠. 에휴... 사람이나 개나 어쩌다 험한 세상에 태어나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 고생 중인지...  그러나 소중하게 주어진 생명이니 만큼 누구라도 최선을 다해 제 생을 살아내야 합니다. 이 꼭지에서 소개되는 메뉴는 북엇국입니다.

부부 중 한 사람은 아침형 인간, 다른 사람은 올빼미형이라면 서로 불편할 수도 있겠으나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그 어떤 벽도 넘기 마련입니다. p143을 보면 저자님과 남편분이 서로 사이클이 달라서 약간 고생하는 사연이 나오는데 이 와중에 남편께서 잠시 입원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부부의 사랑은 간병 중에도 그 순도를 다시 확인하게 되는데 제3자가 보기에도 그 좋은 금슬이란 뿌듯합니다. 다슬기탕이라는 메뉴가 생각 밖으로 조리 과정이 복잡할 수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마마라고 하면 누구나 "엄마"를 떠올리지만 연말 케이팝 시상식이 생각날 수도 있고 p212에서 MAMA는 무슨 뜻일까 궁금했는데 금산사 가는 길목의 명물 카페 이름이라고 나오네요. 한국인들이 유독 좋아하는 아메리카노를 저자는 카페인 울렁증 때문에 못 마신다며 대신 쌍화차(!)를 드시는데, 말만 들어도 좀 분위기가 올드해지는 느낌입니다. 이 대목에서 언급되는 카를라 브루니는 프랑스 전전 대통령 사르코지의 와이프인데 물론 Stand by your man은 태미 와이넷이 오리지널입니다. 여기서 소개되는 메뉴는 다소 깨는 듯한 오리주물럭인데 아무튼 저자가 끌어내는 결론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장 안온한 상황을 꾸려 줄 수 있는 여성만의 특권, 기쁨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음식은 그저 신체에 기초 대사량만 제공하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의 안정과 평화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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