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명작 단편소설 모음집
알퐁스 도데 지음, 김이랑 옮김, 최경락 그림 / 시간과공간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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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스무 편의 고전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누구나 평생 한 번쯤은 꼭 읽어야 할 명작들" 물론 이 중 단 한 편도 읽지 않고 한세상 마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삭막하게 살다 가기엔 생이 너무도 소중하고 아깝습니다. 문장이 쉽고 책 편집이 예뻐서 부담 없이 읽어나갈 수 있고, 특히 이런 고전 명작을 조금이라도 이른 시기에 읽어야 할 청소년들에게 알맞은 포맷이라고 생각합니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 둘이 책 맨처음에 나오는데 우리 모두가 적어도 그 제목만은 들어봤을 두 고전이며, 이 둘 중 한 편도 안 읽어 봤을 사람이 과연 있겠나 싶을 정도입니다. 아멜 선생님이 제대로 우리 주인공 프란츠에게 못 가르친 내용은 분사법(分詞法)인데, "법"은 빼도 되며 이 수업에서 무슈 아멜이 가르치려 했던 건 분사(participle)입니다. 과거분사, 현재분사 하는 그것... 프랑스어에는 영어와 달리 완료분사가 따로 있는데 복합과거 시제를 만드는 데 쓰입니다. 오늘 이후로 더이상 아름다운 우리말을 배울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 까다로웠던 문법 시간도 마냥 소중하게만 여겨지는데 1930년대 후반 일제하에서 민족 말살 정책을 겪은 우리 민족 입장에서도 공감되는 바가 많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정철의 관동별곡 가르칠 때 고마운 줄 알고 제발 졸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별>에서 새삼 놀란 건 목동인 주인공 소년이 역사와 별자리에 대해 저렇게 해박(p29)했나 하는 점입니다. 역시 여자 잘 꼬시려면 아는 게 많아야 합니다. 

이무렵에 프로이센이 비스마르크 같은 명재상을 만나 마침내 독일 통일을 이루고 프랑스를 어지간히 피곤하게 만들어서인지 프랑스 문학 작품들 속에 그 흔적이 많이 배어납니다. 모파상의 <비계 덩어리>에도 프로이센에 대한 적개심(p93)이 수시로 드러나며 저 앞 <마지막 수업>도 알자스와 로렌을 나폴레옹 3세로부터 빼앗았던 역사적 사건이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흔한 이름이기도 하지만 모파상의 작품에는 잔(느)라는 니름의 여성이 자주 등장하는 듯합니다. 한때 그렇게도 세련되었던 마틸드이지만 긴 세월 동안 그렇게나 고생을 겪고 나니 친구가 몰라볼 만큼 늙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독자에게 결정적 충격을 주는 대목도, 어떻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피해를 본 주인공에 대한 연민입니다. 그래도 소시민으로서의 알량한 자존을 지키기 위해 10년 동안 독하게 마음 먹고 빚을 갚은 마틸드 부부가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모파상의 의도는 다른 데 있었겠지만 사실 진짜 잔인한 건(그렇게 볼 수도 있는 건) 잔느입니다. 그 진실은 끝까지 밝히지 말았어야죠(물론 너무도 미안해서 그랬겠지만). 

톨스토이가 그렇게나 극찬했다는 체홉의 대표작 <귀여운 여인>이라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왜 그리 명작 평가를 받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결말에서 잠꼬대를 하며 곤하게 자는 사샤의 한 마디로 작품이 덜컥 끝나는 처리가 인상적이죠. 물론 리처드 기어,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그 영화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 책은 유독 사샤가 꿈 속에서의 전쟁놀이 중 기세 좋게 호통치는 대상을 "운명"이라며 해석까지 따로 넣었는데 원문에는 그런 말이 사실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새긴다면 사샤는 주인공 올렌카의 심정을 대변이나 해 주는 셈인데 그렇게나 사려깊고 조숙한 애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는 투르게네프의 <밀회>, 톨스토이의 <사람은...>, 고골의 <외투> 등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 셋이 더 실렸습니다.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은 희곡(극시)이지만 여기서는 단편 소설로 각색되어 실렸습니다. 에드가 앨런 포의 단편이 둘 실렸는데 <검은 고양이>와 <어셔 가의 몰락>입니다. 두 편 다 호러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으스스한 걸작입니다. 전자는 이번에 다시 읽으니 1인칭 주인공 화자가 자신의 가증스러운 범죄를 감추고 합리화하려 드는 대목(p192)이 두드러진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후자에서 로더릭 어셔가 작중에서 즉흥으로 짓는 <The haunted palace>가 또 근사한데, 치품천사로 번역되는 세라핌(p202)은 현재 한국과 세계에서 잘나가는 걸그룹 이름의 일부이기도 하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영국 작가 중 다른 사람의 작품으로는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가 이 책에 실렸습니다. 

현대 단편 플롯을 최종 완성하다시피한 사람이 미국작가 오 헨리이겠으므로 그의 단편이 셋이나 이 책에 실렸는데 당연한 결과입니다. <마지막 잎새>와 <크리스마스 선물>은 뭐 모르는 이가 있을까 싶습니다. 후자는 어렸을 때 읽으며 감동도 감동이지만 정말 기발한 이야기라며 감탄했었습니다. <20년 후>는 이걸 어렸을 때 읽으면 20년이란 세월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와서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읽으니까 느낌이 완전히 새롭네요. 결말을 다 알고 읽어도 온몸에 전율이 돋는 명작입니다. 다른 미국 작가 중에는 호손의 <큰바위얼굴>이 실렸는데 아마 국어 교과서에서 이 작을 처음 접한 이들도 있겠습니다. 개더골드(스캐터카퍼), 올드스토니피즈는 원어 그대로인데 천둥장군(p357)만 번역어로 실렸네요(원어는 올드블러드앤썬더). 제가 피즈(phiz)라는 단어를 몰라서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physiognomy(骨相學)에서 유래했다고 나옵니다. 

프랑스 작가들의 비중이 단연 높은데 후반부에도 앙드레 지드, 위고의 작품이 한 편씩 실렸습니다. 동양인 작품은 루쉰의 <고향>, 독일어 작품은 카프카의 <변신>뿐입니다. 여튼 이런 앤솔로지를 감상하는 기분은 언제나 새롭고 벅차며 영감에 가득한 듯하네요. 적절하게 곳곳에 컬러 일러스트가 들어간 점까지 너무 좋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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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성 문화, 사색 - 인간의 본능은 어떻게 세상을 움직였나
강영운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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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은 인간의 본능과 욕구 가장 깊은 곳에 새겨진 동력입니다. 자연계 어떤 동물도 색(色)에 미쳐 자신의 생존에 위태로울 결과를 초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번의 교미를 마치면 후사를 잇는 사명을 마치고 해당 개체는 숨을 거두는 경우도 많으니 서양에서는 post coitum omne animalium triste est("정교 후에 모든 동물은 슬퍼진다")라는 라틴어 격언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못하며, 한순간의 치정에 눈이 멀어 자신과 속한 집단의 미래를 모두 그르치는 어리석은 짓을 자주 저지릅니다. 역사 속에 나온 성 문화에 대한 기록을 읽으며 득한 사색의 결과물을, 저자 강영운 기자님께서 이 예쁜 책 한 권에 잘 정리하셔서 재미있게, 또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제목 중의 사색은 思索일수도 있으나, 저자는 史色으로 의미부여합니다. 

요즘은 한국인들도 미국 종목 주식 투자를 많이 하기 때문에 켈로그라는 이름이 (어린이나 학부모가 아니라도) 꽤 익숙합니다. 19세기 미국이 지금처럼 매춘, 육식, 과음이 심각하지는 않았겠으나 당시에는 이런 타락 풍조를 걱정하는 기독교 세력이 지금의 미국보다는 훨씬 영향력이 강했습니다. 목사 실베스터 그레이엄, 의사 존 하비 켈로그는 특히 청소년과 일부 성인들의 자위행위에 큰 우려를 갖고, 이런 비뚤어진 욕구 표출을 막으려면 육식 대신 시리얼을 널리 보급하려 들며, 여러 시도를 하던 중 밀반죽을 플레이크 형태로 바꾸어 고소하게 먹는 법을 개발합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게 켈로그(와 경쟁사인 포스트)의 여러 시리얼 제품인데, 고기 대신 이런 제품으로 식단을 확실하게 대체할 수만 있다면 (성욕 자제까지는 몰라도) 당뇨, 통풍, 고지혈증 등 성인병은 제법 예방되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사실 유럽의 고전들을 보면 노골적인 설정과 묘사가 의외로 많아 "내가 지금 뭘 읽는 중이지?"라며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저자께서는 이 책을 쓰시기 위해 많은 책을 참조하셨는데(p333 이하) 그 중에는 우리 독자들도 익히 읽은 흥미로운 고전, 대중서도 여러 권 있더군요.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 3권, 4권 등을 보면 근대 프랑스의 성문화가 어떠했는지 생생하게 배울 수 있는데 이 책에도 그 중 가장 흥미롭게 읽을 만한 부분이 많이 인용되었습니다(물론 그 책 내용 외에도 많은 고전들이 참조되었네요). 

이 책 p91을 보면 "포르노가 전제정의 밑동을 파헤쳤다"는 문장이 있는데 린 헌트의 <포르노그래피의 발명> 같은 책만 봐도 이 놀라운 명제가 참에 가까움을 알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성교를 타고 날랐다." 사랑이 비를 타고 내려오는 줄은 알았지만 그런 줄은 여태 몰랐네요. 포르노컨텐츠를 통해 혁명 세력은 글자도 채 모르는 대중에게 왕실과 귀족들의 문란하고 타락한 생활을 널리 알렸고 이것이 촉발한 권위 실추와 분노가 혁명의 한 동인이 되었음을 저자는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콘o이야말로 19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한 적 있습니다(p120). 무분별한 이성 교제에 뒤따르는 가장 큰 벌은 바로 포태이며 다만 그 책임은 남녀가 불공평하게 지는 게 문제이긴 합니다. 남자 쪽이 최소한의 책임감은 있다는 전제 하에, 피임은 남녀 모두의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책 챕터10에는 악어의 대변까지 포함해서, 역사상 있었던 별의별 기상천외한 피임법들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놀라운건, 히포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p114) 등도 그릇된(효과 없는) 피임법을 제시했었다는 것입니다. 악어, 코끼리 대변 등을, 그것도 사후에 해당 부위에 주입하라는 식이었다니 현대인의 눈에는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신구교 막론 피임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 구약의 오난도 근친 간 포태를 피하려 들다(오히려 이편이 현대인에게는 훨씬 윤리적인데도!) 신의 저주를 받았다고 나옵니다. 포태도 포태지만 성병 역시도 무서운 후과였겠는데, 가톨릭 신학자, 심지어 군주까지도 이를 피하기 위한 여러 기발한 도구를 고안했으며 효과가 비록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그럭저럭 쓰이기는 한 듯합니다. 저자는 역사학자 앵거스 맥래런(1942~)의 "피임은 역사 속에서 가부장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며 여성들이 생식 능력을 자신의 의지로 통제하려는 몸부림(p121)"이란 말을 인용하며 제10장을 마무리합니다. 

입맞춤, 뽀뽀, 키스는 비슷한 듯 보여도 매우 다릅니다. 예전에 브레즈네프와 호네커가 정상회동에서 이른바 mouth-to-mouth kiss를 인사치레로 행해서 서구권에 충격을 주기도 했는데(p138) 물론 독일권 일부에서도 이런 풍습이 있긴 했지만 여튼 놀랍기는 합니다. p141을 보면 마오쩌둥과 흐루스초프 회동 당시에 포옹까지도 꺼리며 악수로 대체했다는 기술이 있는데 확실히 동아시아권은 신체 접촉 범위 설정에 있어 소극적인 편입니다(물론, 저자도 설명하시듯이 당시 중소 긴장 관계도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바비 인형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의외로 성적 코드가 두드러진 아동용 장난감이자 캐릭터입니다. 얼마 전 이 캐릭터를 다시 부각시킨 영화가 개봉되어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도 했는데(p159), 미국의 사업가 핸들러 부부도 순수하게 자기 창작으로 이 바비를 만든 건 아니고 독일의 빌트 릴리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이 부부의 마텔 사(社)가 언제나 우연한 경영 방침을 유지했다고 지적하는데 혁신을 강조하는 이 대목은 경영학상의 지침으로도 유용하게 읽힙니다. 

나체의 사회문화적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면 반대로 옷을 입는다는 게 뭔지를 알려 들 때 답이 나옵니다. 책에 나오듯이 많은 문화권에서 나체의 대중 노출은 사회적 자살을 뜻하며, 극형에 처해지는 죄수는 종종 옷이 모두 벗겨지기도 했는데 이는 이 죄인에게 아무런 사회적 존중을 하지 않겠다는 상징적인 처분이란 뜻입니다. 다만 최근에는 이런 사회적 압박에 대한 반발에서 거꾸로 누드에 대한 예찬 움직임이 나오기도 했는데 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걸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겠습니다.   

18세기 후반 사드 후작은 변태적인 취향이나 생각에만 골몰한 게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도 끔찍한 범죄, 그것도 소아, 청소년 상대의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륜상 용납되지 못할 잔혹함인데, p207을 보면 기욤 아폴리네르 등 전위문학가들(20세기 초)의 "시대의 뮤즈, 가장 자유로운 영혼" 같은 평가가 나오는데 물론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건 아니고 문학, 문예, 인문적 맥락을 고려하여 해석해야 하겠습니다. 

백년전쟁 초기 열세를 극복하고 프랑스가 영국의 침략을 물리친 데 대해 우리는 여걸 잔다르크의 활약만 알지만 사실 다른 여인이 하나 더 있어서 사기를 앙양하고 전쟁의 국면을 바꾸었다고 책 제 20장에 나옵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바로 아녜스 소렐(1422~50)인데 물론 18세기 소설가 스탕달의 작품에 나오는 줄리앙 소렐과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저자께서는 매우 유머러스하게 이 여인이 백년전쟁에서 어떻게 누군가(아주 높은 분)을 자극하여 프랑스의 승리를 이끄는 데 혁혁히 기여했지를 서술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초 장왕의 고사 삼년부동불비불명도 있지만 이렇게 그 동인이 무엇이든 간에 적절히 자극만 되면 전혀 의외의 성과가 나오는 게 사람이기도 합니다. 성(性)은 이처럼 핵보다도 강력한 파괴력도 갖지만 동시에 버들가지보다 부드럽고 약한 본성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꾸니 정말 흥미롭고 짜릿한 소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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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기업은 어떻게 위기에 더 성장하는가 - 결국 이기는 기업의 경영 원칙
리즈 호프먼 지음, 박준형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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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게도 기업에도 위기란 언제나 닥칩니다. 위기 없이 모든 과정을 무사히만 넘어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대개는 존망(存亡)의 기로에 서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런 위기를 극복하면 그저 살아남은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종전과는 다른 탁월한 단계로 거듭나곤 합니다. 우리가 최고의 기업으로 아는 구글이나 애플, MS나 코카콜라 등도 평탄하게 내내 최고였던 게 아니라 순식간에 이류, 나아가 폐업지경까지 굴러떨어질 뻔한 적이 있었으며, 그런 위기를 뛰어넘고 나서 현재의 최고 자리에까지 오른 것입니다. 이 책은 그런 기업들이 위기, 특히 코로나 팬데믹 같은 전례 없던 위기를 넘긴 방법에 대해 생생한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고찰합니다. 

크리스토퍼 나세타는 세계 최고의 호텔 체인인 힐튼의 CEO이며 올해 60세입니다. 세련되고 다정해 보이는 외모는 과연 힐튼이 지향하는 비전에 어울리는 이미지입니다. 그는 콧대 높은 고급 서비스를, 호주머니 두둑한 고객들만 보고 제공하는 과거의 패턴을 벗어나, 새로운 체험을 갈망하며 가성비와 합리적 소비를 중시하는 젊은이들의 수요를 정확히 타게팅했습니다. 호텔 산업은 거시경제의 사이클에 제법 큰 영향을 받는 편인데, 21세기 초 닷컴 버블 붕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 등으로 힐튼은 제법 큰 위기를 맞았고 이때 부임한 게 나세타입니다. 책에서는 "힐튼이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한 위기가 닥치기 몇 개월 전에" 그가 취임했다며 이 승부 근성 강한 경영인이 이룬 성과를 함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합니다. 

제임스 패트릭 고먼은 호주 태생이며 굴지의 금융기관인 모건 스탠리의 회장입니다. 나세타 회장보다 몇 살 위며 아직 경영인으로서 한창 활동할 나이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는 일은, 예컨대 사우디의 실권자인 빌 살만 같은 이와 만나 유망한 사업에 대해 마치 일상사처럼 상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듯 지구촌에는 간헐적으로 전염병이 돌며 21세기 초 사스(SARS), 2014년 메르스, 그리고 2020년 코비드19 같은 게 그 예입니다. 역시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대로, 앞의 두 병과 달리 코비드19는 전세계 경제를 올스톱시켰습니다. 고먼은 이 질병이 여태 겪었던 몇 번의 경우와 완전히 다른 재앙이라는 점을 중동에서부터 이른 시기에 이미 직감했습니다. 팬데믹은 모든 경제 단위에 큰 위기를 던진다는 건 우리도 지난 코로나 시기에 얼마나 많은 자영업자들이 폐업했는지를 보고 잘 압니다. 델타의 CEO인 에드 바스티안 역시도 자신의 사업(항공)에 이 위기가 어떤 의미일지 바로 보고 판단했습니다. 위기에 대해 기민하게 대처한 두 사람은 위기가 종료한 후 더 큰 승자로 우뚝 섰습니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으며 요즘도 케이블 TV에서 종종 방영되는 게 영화 <빅 쇼트>입니다. 모두가 한 방향만을 바라볼 때 과감하게도 반대편을 보고 베팅하여 남들이 쪽박을 찰 때 홀로 큰 돈을 번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p159를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고 오히려 전보다 더 큰 내실을 다진 미 8대 은행에 대한 평가가 있는데, 우리들이 기억하는 대로 당시에는 부도덕한 금융인들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절정에 달해 "월가를 점령하라!" 같은 시위가 빈발하던 때입니다. 이게 입장을 바꿔 경영자 쪽에서는 당장 회사가 망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한국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숱한 금융기관, 대기업들이 쓰러졌으며 흡수합병과 구조조정을 잘 치러낸 곳들은 지금 엄청나게 체질이 강화되어 승승장구합니다. 

스티브 므누신은 영화에 대해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제작자로 이런저런 화제작에 이름을 올린 그를 알 만합니다. 이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냈으며, 코비드19 유행기에 타 대륙으로의 항공을 일절 중단시킬지를 놓고 관계 장관으로서 책임 있는 의견을 내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트럼프는 자신이 임명한 장관, 국무장관 국방장관 등과 싸우는 게 주특기였으며 그래서 장관 해임이 타 행정부에서보다 빈발했습니다. 므누신은 4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한 유일한 내각 멤버였을 만큼 트럼프와 코드가 잘 맞았습니다. 

더그 파커는 앞의 에드 바스티안처럼 항공사(US Airways)의 CEO이며 정부 당국에서 어떤 조치를 내릴지에 따라 회사의 명운이 휘청일 수 있음을 알고 이 전례 없던 위기를 어떻게 잘 다룰지를 놓고 노심초사 중이었습니다. 항공사뿐 아니라 에어비엔비 같은 숙박업체(모바일 혁명으로 급부상한)도 팬데믹 때문에 큰일이 난 판이었습니다. 우리도 저무렵 대한항공, 진에어, 하나투어 같은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기 때문에 이 책에서 묘사하는 긴박한 상황에 공감이 잘 됩니다. 한순간 삐끗하면 그 즉시 폐업해야 할 지뢰밭 같은 여정... 한국인들도 저때 한경이나 매경, mtn 등 경제채널을 틀어놓고 뭐 좋은 정보 없나 귀를 쫑긋할 때였는데 더그 파커도 CNBC를 틀고 순간순간 나오는 속보에 가슴을 졸였다고 하는군요. 물론 개미투자자와 거대기업의 CEO가 느끼는 중압감은 차원이 다르겠지만... p260 같은 데를 보면 개별 기업을 넘어 거의 업종 자체가 붕괴할 위기인데 이런 걸 경영자가 어떻게 견디나 싶기만 합니다. 

골드만삭스의 본사는 건물 아래 허드슨강을 굽어본다고 이 책에 나옵니다. 일이 잘 풀리면 그보다 더 근사한 뷰와 낭만이 없겠으나, 만약 성과가 기대에 크게 못 미치기라도 하면 속된 말로 "한강마려운" 지경까지 가기도 하며 우리나라 증권사 상당수가 (한강이 보이는) 여의도에 본점을 두는 것도 우연만은 아닙니다. 팬데믹 때문에 대불황이 닥치면 또한 조업 일정 등으로 타격을 받는 게 자동차 업계인데, 미국에서 전통적으로 3대 메이커라고 하면 GM, 포드, 크라이슬러이며 한 세기 전과 차이가 있다면 크라이슬러가 이탈리아 피아트에게 넘어가 이름이 살짝 바뀐 정도입니다. 3사 CEO가 만나 노동정책을 논의하는 자체가 반독점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지적이 나왔다는 대목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긴 한국도 공정위가 과징금 때릴 때 기업 실무자들이 언제 어디서 만났다는 사실을 갖고 담합 판정의 기초로 삼긴 합니다. 

기업은, 특히 대기업은 따로 신사업을 벌이지 않아도, 고정비용으로 나가는 지출이 무척 많습니다. 이렇게 거시경제 전반에 위기가 닥치면 운전자금 조달이 경색되며 CEO들은 돈을 대기 위해 곡예를 벌여야 합니다. p273을 보면 연준이 기준금리를 제로로 내렸다는 말이 나오는데 저때 저랬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제롬 파월의 입만 바라보며 며칠 전처럼 가슴을 졸여야 합니다만 팬데믹 때 받아먹은 것도 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책 15장부터는 파커와 므누신이 벌이는 외줄타기 쇼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당시 뉴욕 주지사 앤드류 쿠오모(p323)는 그 부친이 마리오 쿠오모이며 이분도 뉴욕 주지사를 지냈고 12년에 걸친 공화당 장기집권을 끝낼 기대주였습니다. "그 일"만 아니었으면 빌 클린턴의 자리를 이 사람이 대신 차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집안 내력인지 평소에 잘하다가 결정적일 때 주춤거렸고 대권과 거리가 멀어지는 게 부자가 똑같습니다. 더그 파커는 공화당 민주당 가리지 않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 민주당 주지사, 또 하원 의장 낸시 펠로시(p352)와 컨택하는 등 동분서주합니다. 미국 경제를 들었다놨다 하는 거물들이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배경에서 이렇게 한 무대에 등장하여 열연(?)하는 모습이 너무도 제미있었으며, 주요 인물들과 사건을 따로 강조한 편집도 무척 센스 있어서 독서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현실은 이처럼, 픽션보다 더 드라마틱합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받아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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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마음 뒤로 숨다 - 나만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심리 공감 비블리오테라피
임옥순 지음 / 행복플러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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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유동물은 대체로 정서와 감정이 독특하게 발달한 까닭에, 마음을 다치고 아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강철 같은 마인드로 각종 곤경과 도전을 씩씩하게 이겨 나가는 것도 물론 좋지만, 상처는 대개 적절한 방법으로 제때 어루만져 주는 것이 좋으며, 혼자 힘으로 어렵다면 전문가를 찾아 도움을 받는 게 바람직하겠습니다. 책은 독자에게 지식과 지혜를 전달하지만 동시에 은은한 가르침으로 마음의 상처를 낫우기도 하는데 좋은 책 읽고 다시 마음의 의기를 회복한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비블리오테라피의 대가가 쓰신 이 책에는 일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힐링이 될 만한 좋은 말씀이 많은 데다 내담자들의 사례도 풍부하기 때문에 독자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명절이 다가오니 전통음식이 당기는 이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모시송편이라고 하면 꼭 추석에만 먹는 게 아니라 고유의 형태와 맛을 내어 수시로 만드는 지방(p176)이 있습니다. p58을 보면 미국으로부터 간만에 귀국한 따님(저자분)을 위해 어머님께서 만들어 준 모시송편 이야기가 나옵니다. 묘사가 맛깔나서 해당 음식을 먹지 않아도 뭔가 배가 불러 오는 달달하고 푸짐한 느낌(공감각?)이 들었는데요. 저자께서 이 모시송편 이아길 꺼낸 이유는 음식 이슈를 상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좀 다른 의도였습니다. 

우리는 이상하게도, 남들이 예사롭게 지나치거나 따뜻한 감정만 느낄 법한 대상, 사건을 통해서도 과거의 특정한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이 저릿해지곤 합니다. 억압된 감정, 상처... 이런 것들이 "중간대상"을 통해 기어이 살아나고 마는 것입니다. 불안발작(anxiety fit), 예기불안(expectation anxiety), 불안정애착(insecure attachment)...용어가 별스러운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우리들이 이런 증상을 (알고보면) 끊임없이 겪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들이 전문가들에 의해 고안되고, 또 치유의 단서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많은 산모, 아기 엄마들은 우울증을 겪곤 하는데 그만큼 출산이나 육아가 주는 부담과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를 무난하게 넘어가는 분들은 운이 좋거나 평소에 정신 건강을 잘 관리해서이겠습니다. 한편 엄마가 불안해하면 아기도 그 영향을 받고 반드시 낌새를 채게 마련입니다. 이때 충분한 배려를 받지 못했거나 그랬다고 여기는 아기는 상처를 받고, 이후의 성장 과정에서도 채 상처를 낫우지 못한 채 꽁꽁 싸매고 숨기다가 더 크게 도지도록 방치했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내담자를 여러 번 겪었는데, 처음에는 자신이 이런 상처가 있다는 자체를 타인에게나 자신에게나 부인하려다 이내 그 분노(유년기에 제대로 케어받지 못했다는)가 폭발한다고 합니다. 이런 분노는 정말 위험할 수 있으니 저자의 조언대로 적시에 치유를 받아야만 합니다. 

저자께서는 중간중간 위트도 표현하시는데 예를 들면 이별의 정한(情恨. p87) 같은 용어입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른이나 아이나 누군가와 비자발적으로 헤어진다는 건 고통스러운 체험이지만 그렇다고 국어 자습서에나 나올 법한 이별의 정한이라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란 결코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므로, 책을 읽으면서 이게 내 말이구나 싶다면 즉시 나의 증상을 현실로 인정하고 치료를 시도해야 하겠습니다. 헤어짐에 대한 복잡한 감정 이야기는 p105에도 나옵니다. 

심리학 용어 중에는 해당 학문에 대해 아무 조예가 없어도 개념 정의를 듣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게 많습니다. 이 책에도 그런 예가 많습니다. 전이(轉移. transference)란, 프로이트에 의하면 "과거의 상황에 느꼈던 특정한 감정, 혹은 날 때부터 무의식에 새겨진 정서를 현재의 다른 대상에서 다시 체험하는 것"이라 합니다(출처: 한국어 위키피디아 해당 항목). 그러나 이 책 중에서 저자는 "내담자가 치료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옮겨붙이려는 시도"의 뜻으로 쓰기도 합니다(p130). 한때 동창찾기 사이트로 유명했던 모 브랜드 이름도 등장해서 잠시 예전 생각이 나기도 했는데 이 책에는 그만큼 삶에 대한 저자의 여유로운 통찰이 돋보이는 대목이 많습니다. p216을 보면 봉숭아의 영문명을 바꿔야 한다는 제안도 나옵니다. 물론 유머이겠습니다. 

p195에서 저자는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 <키다리 아저씨(이기적인 거인)>를 인용하며,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울타리에 갇혀 사는 외로운 존재들의 위험성과 불쌍한 처지를 지적합니다. 이는 자신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이 빚은 결과이며 낮은 자존감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이는 다양한 종류의 강박으로 발현되며, 헛되이 남들 앞에 존재를 과시하려 든다거나, 특정한 사상을 자기 멋대로 왜곡하여 마치 자신이그 분야에서 최고 권위라도 가진 양 헛된 망상으로 자신을 포장하려 드는 등 여러 병적인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상처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먼저 포착하여 어떻게든 해결해야, 자신이나 남에게 폐가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게 한 독서였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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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날마다 교회가 무엇인지 묻는다 - 말씀이 실제가 되는 교회론
이재학 지음 / 샘솟는기쁨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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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에서 말하는 그 종말은 삶 속에 날마다 일어나야 한다. 죽은 후에 가는 천국만으로는 신앙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p34)" 타 종교와 달리 크리스트교는 언제나 현세에의 참여를 권하며,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며 마침내 함께 천국에 들기를 꾀합니다. 현실에서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데 그저 천국에서의 보상만 바라며 무기력하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은혜와 구원은 이미 신의 섭리가 정했지만 현실 속에서 확인과 체험이 이뤄져야 하며 참된 기독교인은 결코 현실로부터 도피하지 않습니다. 이는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신대륙에 정착하여 척박한 환경을 일군 청교도인들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초대 교회는 모든 면에서 기독교인들의 모범입니다. p62를 보면 초대 교회 신도들은 세례를 받기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고 나옵니다. 또 3B가 강조되었다고 하는데 believe, behavior, belonging이 그것입니다. 믿음과 행동도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소속감을 초대 교회가 그처럼이나 강조했다는 점도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교회 안에서 기독교인인 것이며, 공동체를 떠나 믿음과 행동만으로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내세울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재학 목사님은 말합니다. "세례의 본래 의미는 공동체적 신앙 사건이다." 또 "소속감이란, 목숨 걸고 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이다."라고도 합니다.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네로가 믿음의 자녀를 핍박할 때, 신앙의 고백은 곧 사자밥이 되는 길이었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얼마나 쉽게 믿음을 내세우고, 또 얼마나 쉽게 공동체를 떠납니까. p239에는 저자가 참조한 책들 중 알렌 크라이더(Alan Kreider. 1941~2017)의 저서가 세 권 소개되니 독자들이 찾아볼 만합니다. 

기도는 그저 정해진 문구만 외는 전시용 행위가 아니라 나의 열띤 영성이 형제들과 함께 표출되는, 그 자체로 나의 구원이 확인받는 몸짓이라야 합니다. p77을 보면 열시 기도회가 나중에 열심 기도회로 바뀐 경위가 나오는데, 이처럼 모든 성도가 하나되어 믿음과 영성이 뜨겁게 타오르는 모습은 타 교회의 신도들에게까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돌아보면 기도가 교회를 하나되게 했다(p79)." 기도 시간이 저녁이라는 점도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니고데모의 예에 비추어 특별한 영감을 줍니다. 

여름성경학교는 어느 교회나 운영하지만 특별히 재미있는 곳이 있고 은혜를 각별히 받는다는 느낌이 따로 오는 곳이 있습니다. 아이들만큼 정직한 영혼이 또 어디 있겠으며, 해당 사역이 잘 되고 있는지 아닌지는 아이들 반응만큼 정확한 바로미터가 또 없습니다. p126 이하에는 하늘땅교회에서 아주 성공적으로 열린 하마알 여름성경성품학교의 사례가 자세히 나오는데, 한국에서 여름성경학교의 역사도 그 나름 오래되었지만 약간 타성에 젖는 면도 적지 않은 만큼, 이 하늘땅교회의 사례가 훌륭한 하나의 모범이 되어야 할 듯합니다. 

예수 따로 교회 따로(p149)라면 이는 이미 교회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담과 이브가 지은 아득한 원죄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죄인들입니다. 따라서 일단 죄를 뉘우치고 씻어내야 하는데, 교회라는 건 곧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일상에서 혹은 마음으로 죄를 짓고 끝없이 더러워진 우리들이 여전히 죄인인 채로 어떻게 교회를 구성하고 지체로서(p194) 예수를 모시겠습니까? "내 자신이 성령으로 변화하여 진리를 따르지 않으면 (교회 등) 안전한 곳은 더 이상 없다.(같은 페이지)" 우리 자신이 세상의 죄인들과 다를 바 없다면 교회는 무엇으로 구성되겠으며, 우리들이 여전히 덜 깨끗한 채라면 교회는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아무런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는 순진무구한 공동체입니다. 일생을 두고 아버지 곁에서 묵묵히 가사를 돌본 큰아들이나, 전 재산을 다 까먹은 후에야 눈물을 흘리며 고향으로 돌아온 탕아(prodigal son)이나 같은 대접을 받는다니 일견 불합리해 보이지만(p157) 그 역시도 한없이 크고 넓은 신의 자애로움입니다. 우리는 이상하게도 큰아들에 종종 감정이입하여 불평하지만, 이 비유는 오히려 우리들 모두가 못된 둘째에 가까움을 꼬집는 의도입니다. 죄인이 스스로 죄인인 줄도 모르니 한심한 둘째만도 못한 셈입니다. 

우리의 욕심은 스스로를 죄악으로 이끄는 만악의 근원입니다. 교회의 대형화가 그리 바람직하다고만 할 수 없는 게, p215에 나오는 대로 우리들의 욕심이 엉뚱하게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 배출되지는 않았는닌지 돌이켜볼 필요도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하는 일은 자신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p216)." 의심과 경쟁을 버리고 더 큰 이상을 향해 하나되는 마음가짐과 행동이라야 성령이 함께하는 거룩한 열매맺음이 이뤄지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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