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성 문화, 사색 - 인간의 본능은 어떻게 세상을 움직였나
강영운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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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은 인간의 본능과 욕구 가장 깊은 곳에 새겨진 동력입니다. 자연계 어떤 동물도 색(色)에 미쳐 자신의 생존에 위태로울 결과를 초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번의 교미를 마치면 후사를 잇는 사명을 마치고 해당 개체는 숨을 거두는 경우도 많으니 서양에서는 post coitum omne animalium triste est("정교 후에 모든 동물은 슬퍼진다")라는 라틴어 격언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못하며, 한순간의 치정에 눈이 멀어 자신과 속한 집단의 미래를 모두 그르치는 어리석은 짓을 자주 저지릅니다. 역사 속에 나온 성 문화에 대한 기록을 읽으며 득한 사색의 결과물을, 저자 강영운 기자님께서 이 예쁜 책 한 권에 잘 정리하셔서 재미있게, 또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제목 중의 사색은 思索일수도 있으나, 저자는 史色으로 의미부여합니다. 

요즘은 한국인들도 미국 종목 주식 투자를 많이 하기 때문에 켈로그라는 이름이 (어린이나 학부모가 아니라도) 꽤 익숙합니다. 19세기 미국이 지금처럼 매춘, 육식, 과음이 심각하지는 않았겠으나 당시에는 이런 타락 풍조를 걱정하는 기독교 세력이 지금의 미국보다는 훨씬 영향력이 강했습니다. 목사 실베스터 그레이엄, 의사 존 하비 켈로그는 특히 청소년과 일부 성인들의 자위행위에 큰 우려를 갖고, 이런 비뚤어진 욕구 표출을 막으려면 육식 대신 시리얼을 널리 보급하려 들며, 여러 시도를 하던 중 밀반죽을 플레이크 형태로 바꾸어 고소하게 먹는 법을 개발합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게 켈로그(와 경쟁사인 포스트)의 여러 시리얼 제품인데, 고기 대신 이런 제품으로 식단을 확실하게 대체할 수만 있다면 (성욕 자제까지는 몰라도) 당뇨, 통풍, 고지혈증 등 성인병은 제법 예방되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사실 유럽의 고전들을 보면 노골적인 설정과 묘사가 의외로 많아 "내가 지금 뭘 읽는 중이지?"라며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저자께서는 이 책을 쓰시기 위해 많은 책을 참조하셨는데(p333 이하) 그 중에는 우리 독자들도 익히 읽은 흥미로운 고전, 대중서도 여러 권 있더군요.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 3권, 4권 등을 보면 근대 프랑스의 성문화가 어떠했는지 생생하게 배울 수 있는데 이 책에도 그 중 가장 흥미롭게 읽을 만한 부분이 많이 인용되었습니다(물론 그 책 내용 외에도 많은 고전들이 참조되었네요). 

이 책 p91을 보면 "포르노가 전제정의 밑동을 파헤쳤다"는 문장이 있는데 린 헌트의 <포르노그래피의 발명> 같은 책만 봐도 이 놀라운 명제가 참에 가까움을 알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성교를 타고 날랐다." 사랑이 비를 타고 내려오는 줄은 알았지만 그런 줄은 여태 몰랐네요. 포르노컨텐츠를 통해 혁명 세력은 글자도 채 모르는 대중에게 왕실과 귀족들의 문란하고 타락한 생활을 널리 알렸고 이것이 촉발한 권위 실추와 분노가 혁명의 한 동인이 되었음을 저자는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콘o이야말로 19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한 적 있습니다(p120). 무분별한 이성 교제에 뒤따르는 가장 큰 벌은 바로 포태이며 다만 그 책임은 남녀가 불공평하게 지는 게 문제이긴 합니다. 남자 쪽이 최소한의 책임감은 있다는 전제 하에, 피임은 남녀 모두의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책 챕터10에는 악어의 대변까지 포함해서, 역사상 있었던 별의별 기상천외한 피임법들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놀라운건, 히포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p114) 등도 그릇된(효과 없는) 피임법을 제시했었다는 것입니다. 악어, 코끼리 대변 등을, 그것도 사후에 해당 부위에 주입하라는 식이었다니 현대인의 눈에는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신구교 막론 피임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 구약의 오난도 근친 간 포태를 피하려 들다(오히려 이편이 현대인에게는 훨씬 윤리적인데도!) 신의 저주를 받았다고 나옵니다. 포태도 포태지만 성병 역시도 무서운 후과였겠는데, 가톨릭 신학자, 심지어 군주까지도 이를 피하기 위한 여러 기발한 도구를 고안했으며 효과가 비록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그럭저럭 쓰이기는 한 듯합니다. 저자는 역사학자 앵거스 맥래런(1942~)의 "피임은 역사 속에서 가부장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며 여성들이 생식 능력을 자신의 의지로 통제하려는 몸부림(p121)"이란 말을 인용하며 제10장을 마무리합니다. 

입맞춤, 뽀뽀, 키스는 비슷한 듯 보여도 매우 다릅니다. 예전에 브레즈네프와 호네커가 정상회동에서 이른바 mouth-to-mouth kiss를 인사치레로 행해서 서구권에 충격을 주기도 했는데(p138) 물론 독일권 일부에서도 이런 풍습이 있긴 했지만 여튼 놀랍기는 합니다. p141을 보면 마오쩌둥과 흐루스초프 회동 당시에 포옹까지도 꺼리며 악수로 대체했다는 기술이 있는데 확실히 동아시아권은 신체 접촉 범위 설정에 있어 소극적인 편입니다(물론, 저자도 설명하시듯이 당시 중소 긴장 관계도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바비 인형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의외로 성적 코드가 두드러진 아동용 장난감이자 캐릭터입니다. 얼마 전 이 캐릭터를 다시 부각시킨 영화가 개봉되어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도 했는데(p159), 미국의 사업가 핸들러 부부도 순수하게 자기 창작으로 이 바비를 만든 건 아니고 독일의 빌트 릴리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이 부부의 마텔 사(社)가 언제나 우연한 경영 방침을 유지했다고 지적하는데 혁신을 강조하는 이 대목은 경영학상의 지침으로도 유용하게 읽힙니다. 

나체의 사회문화적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면 반대로 옷을 입는다는 게 뭔지를 알려 들 때 답이 나옵니다. 책에 나오듯이 많은 문화권에서 나체의 대중 노출은 사회적 자살을 뜻하며, 극형에 처해지는 죄수는 종종 옷이 모두 벗겨지기도 했는데 이는 이 죄인에게 아무런 사회적 존중을 하지 않겠다는 상징적인 처분이란 뜻입니다. 다만 최근에는 이런 사회적 압박에 대한 반발에서 거꾸로 누드에 대한 예찬 움직임이 나오기도 했는데 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걸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겠습니다.   

18세기 후반 사드 후작은 변태적인 취향이나 생각에만 골몰한 게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도 끔찍한 범죄, 그것도 소아, 청소년 상대의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륜상 용납되지 못할 잔혹함인데, p207을 보면 기욤 아폴리네르 등 전위문학가들(20세기 초)의 "시대의 뮤즈, 가장 자유로운 영혼" 같은 평가가 나오는데 물론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건 아니고 문학, 문예, 인문적 맥락을 고려하여 해석해야 하겠습니다. 

백년전쟁 초기 열세를 극복하고 프랑스가 영국의 침략을 물리친 데 대해 우리는 여걸 잔다르크의 활약만 알지만 사실 다른 여인이 하나 더 있어서 사기를 앙양하고 전쟁의 국면을 바꾸었다고 책 제 20장에 나옵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바로 아녜스 소렐(1422~50)인데 물론 18세기 소설가 스탕달의 작품에 나오는 줄리앙 소렐과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저자께서는 매우 유머러스하게 이 여인이 백년전쟁에서 어떻게 누군가(아주 높은 분)을 자극하여 프랑스의 승리를 이끄는 데 혁혁히 기여했지를 서술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초 장왕의 고사 삼년부동불비불명도 있지만 이렇게 그 동인이 무엇이든 간에 적절히 자극만 되면 전혀 의외의 성과가 나오는 게 사람이기도 합니다. 성(性)은 이처럼 핵보다도 강력한 파괴력도 갖지만 동시에 버들가지보다 부드럽고 약한 본성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꾸니 정말 흥미롭고 짜릿한 소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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