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완성하는 유화의 기법
오오타니 나오야 지음, 카도마루 츠부라 엮음, 김재훈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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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교육과정 이하 학교에서 수채화 과정은 많이들 연습하지만 캔버스에 그리는 유화는 16세나 넘어야 시도해 본 듯합니다(요즘은 모르겠습니다만). 시간도 오래걸리고 주변도 번잡해지는 그림 그리기를 달갑잖아 하는 이들도 있었겠으나, 생각 혹은 주변의 풍광을 아름답게(최대한) 표현하는 시간은 확실히 아름다운 추억일 뿐 아니라 정서 함양에도 도움이 됩니다. 아름다움을 내 손 끝에서 재현하는 연습을 여러 번 한 영혼이 어떤 나쁜 짓을 저지르기란 쉽지 않기도 하겠고 말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악기 하나쯤은 자유로 다뤘으면 하는 마음이 있듯, 그림 그리기 역시, 그 중에서도 특히 유화 그리기는 모두가 마음 한 구석에 갖는 소망이지 싶습니다.


수채화에서는 제 생각에 음영색 3색(검, 회, 흰)이 그리 크게는 중요치 않았는데, 유화에서는 그리자유 기법이라고 해서 따로 독립된 영역인 듯합니다. 책에서는 "데셍처럼 빛과 음영의 명암으로 그리지만, 색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p43). 다음에는 이런 설명이 있는데, "사물의 색을 회색계조로 변화해야 하므로(회색계조란 앞에서 말한 검, 회, 흰입니다), 모티브 각 부분의 색은 어느 정도 밝으며 어떤 색이 있는지 확실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책에서 가르치는 대로 따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계조 같은 생소한 말에도 페이지 아래에 일일이 각주가 달려 있습니다.


그리자유로 그릴 때는 모든 색이 회색계조로 변하므로, 책에도 나오듯이 빨간색은 제법 검게 변합니다. 이처럼 명도가 각기 다른 색을만들 때 "페인팅 나이프"를 쓰는데 아래 사진과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팔레트가 사용 전, 사용 후에 어떻게 바뀌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그저 사진으로 찍어 놓은 파프리카(노랑, 빨강)들이, 유화로 멋지게 재창조 과정을 거쳤을 때 어떻게 바뀌는지 보십시오. 분명 같은 흑백인데도 어떤 채도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이 책에서 특히 제가 눈여겨 본 게 그리자유 파트였습니다. 막연하게, 아 빨간색은 좀 진하게 나오겠구나, 노랑이니까 연하겠지, 이런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책에서는 특히, 공통되는 색부터 그리면 농담의 차이를 파악하기 쉽다(p46)고 합니다. 또, "회색조로 그릴 때는 배경의 공간과 사물의 농도가 같아져버리는 일이 흔하다(p50)"고도 합니다. 


천연의 색도 그리자유로만 표현하기 어려운데, 대상이 금속이면 어떨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책에서 그리자유+고유색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아마 메탈은 그리자유가 그리 쉽지 않나 보다 하고 짐작합니다만 회색계조로만 계속 나가고 싶은 학습자가 그리 많지는 않겠고, 저 역시 다른 기법으로 발전도 하고 싶었으므로 그냥 책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가봤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다시피...  특별한 취향이나 관점을 가진 분이 아닌 이상, 와 한 가지 계조로만 하다가 고유색이 들어가니 뭔가 확 다르다 싶어서 신이 난다 하는 게 보통의 반응일 겁니다. 


기법을 연습할 때에는, 이 책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일단 그리자유, 그 다음에 고유색 중에서도 제한된 몇 가지만으로, 이런 식으로 색을 점점 늘려 가며 연습해 나가야 섬세한 표현이 가능해지는 듯합니다. 사실 이런 이치는 수채화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또 책에서는 0호, SM처럼 작은 화면을 먼저 3, 4 시간 동안 그리는 연습을 거치라고 합니다(p65). 그 다음 말씀이 명작인데, "세밀하게 묘사된 작품도 처음 단계에서는 '단순한 면'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합니다. 바로 다음 페이지에는 이런 말도 나옵니다. "선을 그려서 무무늬를 표현하는 게 아니다. 다른 색의 가늘고 긴 면으로 칠해야 한다". 이래서, 왜 어떤 그림은 졸작이고, 어떤 그림은 일반인이 봐도 감탄이 나오는지 그 차이가 설명되는 것 같네요. 


그림을 다 잘 그려 놓고도 정작 캔버스 표면이 신경 쓰이는(p68) 경우가 많겠으며, 저 역시 고교 때 숙제 같은 게 나오면 "이렇게 그냥 내도 될까?"하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아직 젊으신 분이어서 어떤 세심한 코칭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책에서는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는데 "흰색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리고 음영색 셋으로 만든 혼색한 검정으로 밑칠을 하는 것도 좋다"는 겁니다. 


천의 주름(p80) 같은 건 진짜 어렵죠. 책에서는 "그리자유처럼 해도 좋겠으나, 하얀 천에도 색감이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게, 그림은 어디까지나 그리는 사람의 해석이지, 어떤 모티브의 재생, 복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건 동양화를 보면 알 수 있죠(물론 진경산수화처럼 철학이 다른 것도 있지만). 


책을 끝까지 다 읽어 보면 회색 계조의 활용이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이 책과 달리 그리자유 기법을 그리 강조하지 않는 유화도 있겠으나, 저 같은 초보자에게는 이 방법이 훨씬 따라하기가 쉬웠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그림은 뭘 따라하는 게 아니고, 초보 단계에서는 이런저런 기법을 흉내내듯 하다 나중에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식으로 발전해야 할 듯합니다. 이번 조영남 판결에서 알 수 있듯 중요한 건 아이디어와 창의이지 기법 자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기법 훈련 없이 아이디어만 내세운다면 적어도 다른 사람 상대로는 설득력이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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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게 말해도 마음을 얻는 대화법 - '할 말' 다 하면서 호감을 얻는 대화의 기술!
후지요시 다쓰조 지음, 박재영 옮김 / 힘찬북스(HCbooks)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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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얻는 건 쉬운 게 아닙니다. 쉬운 게 아닌 정도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얻는다면 그 사람은 인생과 사회생활 최고의 스킬을 가진 거죠. 뭘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자기만의 제한된 세계에 갇혀 이게 옳다 저게 그르다 아무 말이나 떠들지만, 단 몇 사람만이라도 그들의 마음을 산다면 그 사람은 이미 지존의 경지에 오른 겁니다. 그게 기술 수준에 그치든, 아니면 진정 인격 수양이 된 부산물이든 말입니다.

목소리나 발음이 좋아도 모두 호감형은 아니다(p39). 그렇다고는 해도 일단 목소리, 발음이 좋으면 정말 "일단은" 상대가 호감을 갖는 게 사실입니다. 예전에 어떤 정치인(아주 유명했던 사람)은 "정치인이라면 일단 목소리가 좋아야 한다"고 했는데, 본인을 포함해서 본인이 기용했던 후배 정치인들도 다 목소리가 좋았죠.

저자는 "교언영색하는 자 중에 신용할 수 있는 자가 없다"며 논어의 한 구절을 재인용하고(같은 페이지), 말 잘하는 사람은 다 사기꾼이라는 속언도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이 일본(저자는 일본인입니다)에도 있는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지난시절 일본의 속언을 받아들인 건지도 모르죠. 여튼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커뮤니케이션의 원활함을 위해 발성과 발음에 노력하는 건 좋으나 그게 전부는 아니(p40)"라는 겁니다.

다시, 그럼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저자는 단언컨대 "기분 조절(p41)"이라고 합니다. 제가 요즘 아주 감탄하면서 본 어떤 여성분이 있는데, 얼굴도 뭐 좀 그렇고 발성도... 분명하기는 하나 그리 드물다 할 만큼 훌륭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알 수 없는 힘, 매력으로 청중을 장악하는 실력이 정말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책을 읽어 보니 딱 "기분 조절"이란 대목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여기서 기분 조절이라 함은, 요즘 이른바 "텐션"이라고 하는, 혼자 들떠서 막 떠들어대는 기세를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활기를 유지하되, 청중과 정확히 호흡을 맞추면서 자신의 침착함과 긴장도 그대로 끌고 가는 기술이며, 전 이런 게 단지 기술만 연마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마음의 바탕에, 긍정적이고 밝고 타인과 잘 공감하고, 비틀리거나 어두운 구석이 없는 마인드셋이 있어야 이런 태도,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생각합니다.

독자 역시, 평소에 그 나름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끼던 바를 책에서 다시 만날 때 전폭적인 지지와 공감을 보내게 됩니다. p46이하에서는 그야말로 제가 평소에 생각하던 내용들이 그대로 나와서 참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p48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 의욕이 있다(매사에 임하는 힘이 넘쳐흐른다)

이게 실제로 조직에서 이런 사람을 겪어 봐야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압니다. 이런 이들은 발걸음도 참 사뿐사뿐하고, 눈빛부터가 강한 에너지를 뿜으며, 사람을 척 마주했을 때 벌써 사람을 (기분 좋게) 압도하고 들어갑니다. 머리가 좋다, 외모가 출중하다, 체형이 날씬하다, 이런 게 문제가 아닙니다. 못생기면 못생긴대로 이런 사람들은 신기하게 호감을 얻습니다. 좀 무식해도 상관 없습니다. 여튼 말 몇 마디를 들어봐도 어떤 일에서는 이런 사람 말을 꼭 들어야 일이 전반적으로 잘 풀릴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알지 못할 권위 같은 게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뇌 과학이 없었던 오래전부터 이런 힘을 '기'라고 불렀다(p49)."

대화로 사고가 변하면, 그 다음은 행동의 단계(p56)라고 합니다. 저자는 사업차 미얀마에 자주 방문하는데, 일본 음식 츠케멘을 먹으며 친하게 지낸 현지인 한 분을 통해 수십 명의 지인을 더 교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뻔뻔하고 솔직하게 말하면서도 마음을 얻는 방법"을 논하지만, 그 못지 않게 "대화 다음 단계로서의 행동"도 강조합니다.

대화의 목적이 뭘까요? 물론 조직 안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지시를 내리고, 피드백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특히 조직 안에서 대화의 다른 목적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조직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업(up)시키고, 조직의 목표를 향해 전 조직원이 하나가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화의 내용 같은 건 별 알맹이가 때로는 없어도 무방합니다. 어떤 대화는 그저 과정을 마치기만 해도 나중에  분위기가 정말 좋아집니다. "모든 요소에 변화가 일어나고, 그 요소들이 합쳐져 나와 타인에게 기분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저자의 말입니다. 기분 변화가 그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이런 것은 집에서 아이를 지도하는 부모님들도 좀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아이가 숙제를 안했다, 이러면 엄마 입장에서는 일단 짜증이 나죠. 그럼 아주 퉁명스럽고 짜증스럽게 "왜 안 했니?"라며 일단은 타박을 줍니다. 그래서 아이가 지금, 혹은 앞으로는 숙제를 척척 잘하게 되느냐, 애 입장에서는 짜증 한 마디를 들은 외에 다른 효과가 없습니다. 정말로 애가 숙제를 잘 하는 게 목적이고, 내 분풀이를 하는 게 아니라면, 이런 경우에도 "원래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아이는 어느새 학습효과가 생겨, "숙제와 엄마의 주문에 대해 자동으로 부정적인 기분부터 드는" 부작용이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엄마 때문에 공부가 싫어지면 누가 책임을 져야겠습니까?

서양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그 자체에 일단 거부감을 느낀다고 하죠. 얼굴이야말로 그 사람의 감정 모든 게 다 드러나는 곳인데 이걸 가린다는 건 뭔가 그 사람이 다른 의도를 감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건 문화의 차이이며, 동양인이 구태여 가족에게 "사랑해, 사랑해"를 되풀이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그 마음 다 아는 것과 (그 반대의) 서양 문화가 서로 큰 차이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여튼 저자는, 표정을 통해 자신의 모든 감정을 전달하라고 합니다. 아까 제가 언급했던 그 여자분도, 뭐 딱히 미인이라서가 아니라 얼굴을 충분히 활용해 모든 감정을 전달하는 그 기술이 뛰어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저런 자계서들을 보면 "자신감을 갖고 임하라. 이쪽이 꿀린다는 인상을 주자 말라"는 주문이 있습니다. 자신감이 나쁠 거야 없겠지만, 어떤 사람은 이런 주문을 잘못 소화해서 상대방의 기분이나 상태, 해당 주제에 대한 이해도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들이댑니다. 이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황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듣는 사람 입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이나 하고 이런 유치한 행동을 하는 건가?" 이런 건 자신감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감 부재의 증명입니다. 책에서는 "고객의 자유의사를 어디까지나 존중합니다(p117)"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라야 성공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제가 어떤 아파트 분양을 하던 과장님을 만난 적 있는데, 그분이 꼭 이랬습니다. 만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차근히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며 간간히 기술이 들어오는데 그런 것도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원래 고수는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일본 저자들의 책을 보면 가끔은 "이게 주제와 무슨 관계가 있나?" 싶은 서술도 간혹 눈에 띕니다. 책에서는 특히 챕터 8이하에서 바른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취지는 뭐 분명합니다. 자세가 바른 사람은 타인에게 호감을 주고, (진짜 중요한 건 이건데) 자세가 바르면 그 사람 자신이 기분이 좋아지고 최상의 컨디션에서 일하게 된다는 겁니다. 말하고 행동하는 그 사람 자신이 컨디션 최고인데, 누가 의심을 품거나 비호감 반응을 그리 쉽게 보이겠습니까?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므로, 뭐 손해 볼 것 없는 이상 우리도 한번 따라해 보는 겁니다.

저자는 아들러의 말도 인용합니다. "상대의 자존감을 높여 줘라. 그럼 그 상대도 당신에게 호응할 것이다." 그런데 뭐 실제로는 그런 말이 안 통하는 상대도 있을 겁니다. 남을 깎아 내려야 자신의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사실 이런 사람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대로 "사회에서 만나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책에서 가르치는 어떤 정상적인 교훈을 적용할 수가 없습니다. 말이 안 통하는 인간을 무시하는 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입니다. 반대로, 자신이 누군가와 만나 개인적인, 혹은 속한 회사의 목적을 달성하고 싶다면, 먼저 자신부터가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에 휩싸인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상대방까지 기분 좋게 할 수 있고, 그 다음에 모두가 만족하는 어떤 거래 목적이 달성되는 거죠. 이런 사람은, "뻔뻔하게 말해도" 다른 사람이 기분 좋게 그걸 받아들입니다. 반대로 스스로의 확신이 없는 채 이기적으로 뻔뻔하게 말하는 사람은 그저 불한당일 뿐 어떤 목적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무슨 기분 풀이를 위해 타인을 대하는 건 아닌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애초에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사는 사람은 무슨 분풀이를 할 거리가 생기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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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 기분 따라 행동하다 손해 보는 당신을 위한 심리 수업
레몬심리 지음, 박영란 옮김 / 갤리온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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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어느 젊은 직장 후배가, 이제는 퇴직한 선배더러 "기분이 태도가 되시면 안 되죠!"라며 따끔하게 쏘아붙이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정말 기분이 나빠서 주체를 못할 때도 있겠으나, 그것이 자신의 인격을 (남들이) 평가하는 잣대인 "태도(애티튜드)"가 되게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자신의 실언에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p20)" 이는 맹자의 말이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아마 직장에서 높은 직급에 있는 이들뿐이지 않을까 라는 게 저자의 생각입니다. 사람은 본래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 경향"이 있어서라는군요. 아무리 맘 편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 해도, 누군가에게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있다면 말과 행동을 삼가기 마련입니다.

저자는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즉, 어떤 사람도, 직장에서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 사람 역시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결국은) 진다는 겁니다. 그 사람에 대한 평판은 이미 바닥 이하를 치고 있으며, 다만 그저 그 사람 앞에서나 적당히 비위를 머맞추고 지나갈 뿐이라는 거죠. 반대로(여기서부터가 중요한데) "기분이 태도가 안 될 만큼 자신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조직 내 누구라도 그 사람에게 존경을 바친다는 겁니다. 독자인 제 생각에 저자가 강조하는 건, 그저 퇴출, 배척만 면하는 조직인이 되어서는 안 되며, 누구로부터건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냐는 취지인 듯합니다.

"부정적인 사람, 나의 에너지 도둑(p57)" 어느 조직에나 보면 자신만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남의 기분까지 망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저자의 분석에 의하면 1) 지나치게 자기애가 강한 사람 2) 불평이 끊이지 않는 사람 3) 안 좋은 소문을 흘리는 사람 등으로 특징이 보인다고 합니다. 이 중 몇 가지를 겸한 사람도 있겠고, 한 가지뿐이지만 정도가 아주 심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구누구가 이렇다면서 뒤에서 맹렬히 성토하지만 정작 자기자신이 가장 심하게 저러는 사람도 있지 싶습니다. 참 웃기는 게, 남이 이렇다면서 비판하는 사람이 정작 자신의 가장 심한 결점엔 완전히 눈을 감는다는 겁니다.

"실망을 잘 다루자. 그래야 인간관계가 힘들지 않다(p68)" 우리는 흔히 "너한테 실망했어"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나는 혹시 남을 실망시키는 사람이 아닌가요? 우리는 대개 너무도 이기적이거나 피해의식에 가득해서, 내가 남의 어떤 기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않고 나의 기대만 어루만지기 일쑤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이야기하는데 내가 어느 정도 남한테 잘해줬다고 여기면, 남도 그만큼을 해 줘야 한다고 여기는 어떤 기대감을 뜻하는 듯합니다. 이런 기대감은, 대부분의 경우충족이 되기 어렵습니다. 애초에 이런 기대를 접어야, 실망에서 오는 그 깊은 피로감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애초에 남들이 내 맘같을 수가 없고, 기대나 애정이 정비례하여 돌아오게 일일이 균형을 맞춘다는 게 불가능합니다. 이 씁쓸한 진리를 일찍 깨닫는 게 결국은 핵심인 듯합니다.

요즘 펭수가 나오는 어떤 광고를 보면 "힘이 안 나는데 어떻게힘을 내요?"라며 되묻는 장면이 있습니다. 웃기지만 맞는 말입니다. 저자는 p120에서 "우울증 환자한테 운동하라"는 조언이 무력할 뿐이라고 합니다. "의지로 극복하라" 같은 건 애초에 아무 의미가 없는 소리입니다. 우울증 환자의 세계는 "정상인"과는 처음부터 다르며, 자신의 증상이 2주 이상 계속되면 깨끗하게 자신이 "환자"임을 인정하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인생은 짧고도 길어서 끝까지 자신과 함께할 수 있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p96)." 과연 맞는 말입니다. 자신이 어떤 욕구가 있다, 이러면 그걸 억누를 게 아니라, 자신과 타인 앞에 당당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이게 단기적인 스트레스(p111)를 억제할 뿐 아니라, 길게는 자기 존중감까지도 증대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인생도, 자기 존중감 없이는 행복해질 수 없으니 이 말은 정말 중요한 충고입니다.

보통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사람은, "아 내가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라며 쓸데없는 후회를 일삼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실제로는 그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도 올바른 결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실제로는 지금 모습보다 더 나은 모습이 될 수 있었다며 남을 설득하거나 속이기 위해 이런 소리를 하는 거죠. 저자는 이를 두고 "반사실적 사고(p171)"라며 현실과 괴리된 나쁜 습관이나 정신의 발현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자신뿐 아니라 남까지 힘들게 하는 사람이 안 되려면, 무엇보다 현실과 자신의 기대치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알고 보면, 그냥 자신의 미숙한 감정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남 앞에 노출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현실감의 부족이겠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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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이렇게 불편한 게 많지?
다카하시 아쓰시 지음, 임경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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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남달리 민감합니다. 이렇게 민감한 게 사회성이 떨어져서인지, 수양이 부족해서(p14)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나마 "내가 남보다 불편한 게 많구나"라며 자각이라도 가능한 사람은 나은 편입니다. 진짜 심각한 사람은, 자신이 뭘 불편해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아서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아주 확신을 갖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비정상인 줄 모르고, 대로에 누워서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남들의 관심을 구합니다.

한편으로, 이것저것이 유난히 불편한 사람은 "아 난 원래 좀 그렇구나"라며 현실을 인정하고 그에 바탕한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억지로 자신을 억누르면 그건 그것대로 부작용이 커지는 게 당연하죠. 저자는 재미있게도 자신 역시 그런 사람임을 쿨하게 인정하고, 그에 알맞은 여러 방법을 찾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유행하는 말로 "프로 불편러"라 부를 수 있는 HSP라는 특수한 유형은 이미 일레인 아론이라는 어느 박사님이 찾아냈다고 하며, 저자는 그 어려운 내용을 쉽게 이 책에서 풀어냅니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팔랑귀"라고 하는데 이런 분들 대부분은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어 하며 남들에게 고백합니다. 사실 남들에게 영향을 잘 받는 건 사회성과 공감 능력이 있으며 어떤 고집 같은 게 없다는 소리이므로 오히려 자랑할 만합니다. 이것도 1996년 자코모 리촐라티가 발견한 거울 뉴런에 의해 설명 가능하며 자계서 좀 읽어 본 이들에게는 익숙한 개념이죠. 이런이들은 공감을 잘하고 좋은 걸 복제하는 데 능하므로 결국 조직과 사회 안에서 유익한 역할을 잘한다는 뜻이니 오히려 안도를 해야 마땅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알고 싶지도 않은 비밀을 구태여 알게 되는" 경향도 강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구태여 나한테 찾아와서 그 사실을 잘 말하곤 한다는 뜻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이런 일이 난감할 수 있어도, 결국 타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며 나 자신의 내면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이니 다행이지만, 이럴수록 말 자체보다는 그것이 전달되는 느낌에 더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라인이라는 메신저도 잠시 언급하는데 우리 나라 메신저(p106)가 이처럼 일본인 저자한테까지 일상적으로 접하는 존재가 되었구나 싶어서 좀 놀라기도 했습니다.

일본인들은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부터 마스크를 잘 쓰고 다녔는데 이게 일본인들 특유의, 남 눈에 띄는 걸 불편해하는 습관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p117).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간해서는 남이 날 한번 봐 줬으면 하고 좀 튀게 하고 다니는 편이죠. 이런 게 민족성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여튼 우리나라에서도 남 눈에 가급적이면 안 띄었으면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단지 주의해야 할 것은, 이른바 (저자의 말에 따르면) "에너지 뱀파이어(p121)"의 표적이 안 되게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저자를 비롯하여 HSP라는 이 특수한 유형은, 유독 정이 많아서, 들어줄 필요가 없고 심지어 들어 줘서는 안 되는 남의 고민 같은 걸, 매정하게 끊지 못하고 계속 들어준다고 합니다. 이게 바로, 아주 이기적인 "에너지 뱀파이어"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는 행위라고 합니다.

저자는 길지 않으나 직장 생활을 했는데, 혹시 오해할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꽤 유능하신 편이었고 주위의 기대도 모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신입은 그야말로 사회성이 떨어져서 매번 지적만 당하고 조직 분위기도 잘 적응 못 했다고 하네요. 그럼 저자가 왜 HSP인가? 이런 동료를 보면 너무 불쌍해져서, 내가 일을 잘하면 혹시 (안그래도 힘든) 저 동료에게 더 몹쓸 짓을 하는 건 아닌가, 뭐 이런 걱정이 들어서라고 합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HSP가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가요? 바로 내가 그래 라며 공감하시는 분들이 있을까요?

에너지 뱀파이어의 피해를 막자는 조언은 p170에 다시 반복해서 나옵니다. 아마 저자분이 이런 유형 때문에 피해를 많이 보신 것 같습니다. 여튼 HSP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나의 장점을 분명히 알자(p185), 지나치게 남에게 공감해 주지 말자, 주위에 나 비슷한 사람이 있는지 살펴 보자, 내가 본래 그런 사람이란 걸 쿨하게 인정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감한 사람이 세상을 구하는 법이므로 자부심(?)을 갖자는 게 저자의 조언입니다. 코믹하게 들려도 아니 세상에 얼마나 에너지가 넘치면 남들의 그 쓰잘데기 없는 일에까지 일일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겠습니까. 대신 남들에게는 없는 감수성과 에너지가 엄청나니, 그걸 잘 활용해서 성공하는 쪽으로 잘 돌리자는 게 저자의 제안이자 충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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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 - 가장 위대한 영국인, 청년 처칠의 자서전
윈스턴 처칠 지음, 임종원 옮김 / 행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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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은 20세기 중반, 세계가 악마의 손에 넘어갈 뻔한 파멸적 순간에서 반인도주의 진영을 격파한 진정한 영웅입니다. 하지만 나면서부터 좌절과 실패 없는 평탄한 인생을 살아 왔는가 하면 그런 축복 받은 경로와는 매우 거리가 멉니다. 그는 신분 질서가 유독 까다롭게 지켜지는 영국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명문가문 태생이었지만 작위와 재산은 다른 형제에게 상당부분 양보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쳐도 그는 귀족 가문 출신에게 보장되다시피한 다른 엘리트 인생을 선택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고 자신의 격정과 본능, 지혜가 이끄는 가장 험악한 선택만을 골라서 걸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진정 놀라운 점이며, 그랬기에 히틀러가 프랑스 영토 거의 3/5를 함락할 시점 영국 정부가 무조건 항복 안까지 검토할 절망적 시점에서 "단호한 항전"을 택할 수 있었습니다.

본디 귀하게 자란 인생은 잔혹한 시련이 닥칠 시 일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나약한 선택을 하기 일쑤이며, 20세기 중반 영국은 그 정도로 낡고 쇠약해진 상태였습니다. 이런 인물이 출현하지 않았다면 유럽은 물론 세계 전체가 히틀러를 위인, 신인으로 숭배하는 체제 하에 살고 있었을 터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인물은 어찌해서 그런 그릇과 배포가 길러졌는지 그 젊은 시절을 중점으로 살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런 훌륭한 인물을 모실 수 있는 영광을 누렸고, 그가 죽을 때까지 약 20년 동안 변하지 않고 따뜻한 우정을 나누었다(p94)." 이 말은 그가 젊은 시절 군에서 모셨던 브라바존 대령을 두고 한 것입니다. 그 성씨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아일랜드계이며 책에는 "가난한 아일랜드 지주 출신"이란 말이 나옵니다. 지주가 "가난하다"는 건 형용모순일 수 있으나 저 무렵 아일랜드 지주들은 위에서는 잉글랜드의 압박을 받고, 아래로부터는 동족인 아일랜드 소작농들의 거센 반란에 직면하는 등 고충 끝에 신분이 몰락하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는 시스템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직분에 충실한 장교였으며, 꼬장꼬장한 원칙주의자로서 젊은 윈스턴의 인성을 형성하는 데 한몫을 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 , 그리고 얼스터 문제조차도 우리의 우정을 갈라 놓지 못했다."는 부분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 적어도 북아일랜드 이슈만큼에서는 윈스턴과 대령의 의견이 매우 크게 갈렸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건 민족 간의 원한에 엮인 거라 그리 작은 대립도 아닐 텐데, 성숙한 인격체들은 언제나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빌미를 사전에 피합니다.

제국주의 영국은 히틀러의 도발을 트리거 삼아 전후 거의 한순간에 해체되다시피했습니다. 이에는 소련의 공산주의 이념이 식민 각국에 민족주의 이념을 전파한 공도 있을 테며, 애초부터 대영 제국 내부의 모순, 즉 넓은 해외에 분산된 광대한 영토를 해군력 하나만으로 관리하기가 어려웠다는 근원적 이유를 도외시하기 어렵습니다. 영국의 하층민, 서민 출신들은 처음부터 군에 입대하여 병으로서 식민지에서 복무함으로써 출세를 도모했고, 윈스턴처럼 터프하게 경력을 가꿔 나가려는 인물들은 장교나, 혹 그게 안 되면 종군기자로서 현장 경험을 쌓으려 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그의 선택은 좀 유별난 편이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지금도 크리켓이나 폴로 경기가 큰 인기를 끄는데, p194에는 더럼 경보병 연대 팀의 무적 기록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그럼 식민지 출신 팀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비실비실한 상대이기만 했냐면 그렇지 않아서, 같은 페이지에는 "마하라자의 자존심도 가볍게 쓸려나갔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실 북서부 인도, 현재의 파키스탄 접경 지역 주민들은 오랜 동안 인도 전역을 통치해 온 무사 출신의 후예들이거나 그들과 불굴의 라이벌 관계를 이뤄 온 종족들입니다. 체격도 정신적 무장도 세계 어느 종족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강건한 이들이죠. 아무리 통치국이라고는 하나 식민지를 지배한다는 게 얼마나 터프한 일인지 짐작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폴로 이야기는 이 책 곳곳에 등장하는데 p150, p254 같은 대목도 재미있게 읽어 볼 만합니다.

빈돈 블러드 경(p163) 같은 매우 특이한 캐릭터도 젋은 처칠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무려 찰스 2세 시절(그러니 이 시절 윈스턴보다 230년 전 사람) 왕실의 보물을 훔치려 한 블러드 대령의 후손이라는 점을 크게 자랑스러워 했다니... 그런데 이 부분 행간을 잘 읽어 보면, 당시 각종 부채 때문에 재산이 저당잡혀 있던 찰스 2세가 고의로 절도를 사주했다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자기 물건에 대한 절도의 교사범이 찰스 2세였던 셈이죠. 여튼 이런 캐릭터의 범상치 않은 과거사가, 심지어 파슈툰 족의 공감도 얻을 수 있었으리라는 윈스턴의 해석이 재미있습니다.

"나는 영국에서 일어난 혁명이, 프랑스 혁명보다 더 심각하고 더 처절했음을 목격했습니다. 지배층은 정치적 기득권을 모두 빼앗겼으며, 재산과 토지도 잃었습니다... (p116)" 우리는 흔히 영국식 계급구조가 불변의 공고함을 지니는, 세계 역사상 가장 보수적인 것으로 오해합니다만 보는 시각에 따라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는 걸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처칠은 이 의견에 동조했다는 것이며, 이 말을 한 사람은 폴 캉봉 프랑스 대사였습니다. 어쩌면 이 말이, 존 F 케네디가 자신의 졸업 논문으로 제출한 <Why England slept>의 대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영국은 묻는다
위기가 임박하면
인도의 아들은 죽기살기로 싸울 것인가?

바다 건너 위대한 백인의 어머니여
영원히 제국을 통치하고
오랫동안 다스리고
영광과 자유가 위대한 백인의 조국에 있다"(p158)

지금 시각으로 약간 역겨울 수 있지만 식민지에 주둔하던 어떤 연대의 군가 가사라고 합니다. 연대에는 물론 인도 현지에서 징병된 병사, 부사관들도 많고, 이들 중 상당수는 제국주의의 질서에 순치된 이들이라 이런 가사가 매우 자연스럽게 입에서 불려지는 이들도 있었을 겁니다. 이후 1차 대전 당시, 인도의 민족주의자들조차 영국군에 협력하고, 그 대가로 종전 후 독립을 보장받자는 움직임이 컸으며, 놀랍게도 간디 역시 여기에 가담, 주도하는 처지였습니다. 무작정 선과 악, 흑과 백으로 나눠서 볼 게 아니라 이런 시대상도 정확히 알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 영국은 이후 그 약속을 아주 뻔뻔스럽게 위반했죠.

처칠은 원래 자유당 소속이었다가 뒤에 당적을 옮겨 보수당원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도 당시에는 말이 많았는데 처칠은 위트 있게 이런 공격을 받아넘긴 일화도 유명하죠. p269에는 제임스 모들리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살아온 경력을 보면 처칠 같은 이와는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루는 게 분명한데도 노동당은커녕 자유당도 아닌 보수당 출신입니다. 한편으로, 19세기 초 극심했던 노동 착취상과 달리, 이 무렵이면 노동자 계급 출신 중에서도 자주성가한 사람이 많이 나온다는 뜻도 되며, 그런 현상을 보고 처칠 같은 귀족 출신이 (혹시 저들이 우리를 앞지를지 모른다는 속 좁은 조바심이 아니라) 국가가 제대로 되어 간다는 안도의 생각을 품는다는 게 이 책에도 잘 나옵니다. 그게 맞죠. 백성이 가난하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니 귀족인들 무사하겠습니까? 같은 시대 러시아를 보면 무슨 꼴이 나는지 알 수 있죠. 한편으로 재미있는 말도 많이 나오는데, 밸푸어 하원의장(우리가 아는 그 사람입니다)이 젊은 윈스턴을 두고 "약속된 청년(promised, 즉 전도양양한)인 줄 알았더니 약속만 하는 청년이었군(즉 자기 말을 지키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한다거나, 4대째 들어 다시 나막신(가난한 계층이 잠시 출세하는 듯하다가 도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풍자를 담은 속담)" 같은 게 있습니다. 이 시절의 회고에서 나중에, 처칠 앞 임기에 나치 상대로 유화정책을 편 체임벌린 같은 이도 나옵니다.

우리가 흔히 인생의 가장 낮은 단계로 타락할 때 "막장"이란 단어를 쓰는데, 이게 탄광업 용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물론 한국도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해당 업종에 종사하는 어려운 분들이 있었습니다만 이미 없어진 지 오래된 직업인데 왜 근래들어서 이 말이 유행하는지는 알 수 없죠. 여튼 젊은 윈스턴은 남아프리카 식민지까지 그 부지런하고 모험심 가득한 발을 뻗어 포로 수용소를 탈출하고 막장 체험을 하는 등 태생이 고귀한 부잣집 도련님으로서 상상도 못할 고생을 합니다. 이래서 옛 사람들 말이, "귀한 자식일수록 험하게 키우라"고 했나 봅니다.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전도서 4:31, 이 책 p363에서 재인용)

자, 이렇게 험한 고생을 겪었으며 그 와중에서 세상을 보는 지혜를 많이도 쌓은 젊은 윈스턴은, 일인지하 만인지상, 영국 여왕 한 사람만을 그 머리 위에 둔 수상 직위를 노년에 두 차례나 지냅니다. 왕은 아니어도 왕 다음 가는 높은 사람이었던 그도, 말년에 젊은이들이 이런저런 도전을 해 오면 무척 성을 낸다거나 괴팍한 반응을 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실 그가 조금만 더 여유를 가졌으면, 이처럼이나 반항기 넘치고 모험심 가득하며 기성 체제에 대한 회의와 도전을 삼가지 않았던 자신의 젊은 날을 봐서라도 더 위트 있게 대했을 만도 한데요.

거의 정확히 이 책이 다룬 시기를 영상으로 옮긴 작품으로는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간디>를 연출한 그 사람입니다)이 1972년에 찍은 <영 윈스턴>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단 이 책과는 별개의, 윈스턴처칠이 쓴 다른 회고록에 바탕을 두었죠. 또 윈스턴 처칠의 2차 대전 후 은퇴 시기를 다룬 책으로는 좀 램스덴이 쓴 <Man of the century>가 있으며, 을유문화사에서 이종인 씨가 옮긴 번역본으로 나와 있으니 이 멋진 책의 후편 읽는다 셈 치고 참조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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