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은행의 눈으로 보라 - 주식.채권에서 M&A.LBO까지 단숨에 이해되는 금융의 논리
김지훈 지음 / 원더박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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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배우는 지식이라고 하면 사실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수학, 통계 쪽이라면 고급과정에서 그 배우는 학생이 머리가 딸려서 수업을 못 따라가는 경우가 많죠. 반면 상업(예금)/투자은행이다 모기지다 OTT다 선물이다 하는 건 그저 제도에 대한 설명일 뿐인데, 가르치는 이들의 설명이 부실해서 학생들이 이해를 못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가르치는 사람의 잘못인데, 한국에 없는 제도를 억지로, 경험도 못 해 본 걸 자기 식대로 이해해서 가르치려니 제대로 될 리가 없죠. 그래서 이런 항목은 현장에서 직접 겪은 이에게 배워야 하며, 가르치는 이가 좋은 커리어까지 갖춘 분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죠.

예금(상업)/투자은행의 구분은 전형적인 교과서식 앙상한 설명으로 끝나는 항목인데, 그 중에서도 대체 투자은행이 뭔지는 대부분이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은행"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한국에서의 증권회사와 비슷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특히 이 책이 "(그것은) 잘못된 것(p20)"이라고 아주 콕 집어서 바로잡습니다. 후자는 듣는 사람도 이상하게 느끼는 게, 아니 그럼 왜 구태여 그걸 투자은행이라고 부르며, 왜 한국에는 굳이 증권회사라고 하는 게 발달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이런 의문을 평소에 가져 온 이들이라면, 아마 이 책 한 권 읽고 싹 해결되지 싶습니다.

일단 투자은행은, 한국에서도 몇 군데의 증권회사가 약간 포맷을 달리하여 이제 명색이 "투자은행"으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특히 증권 섹터에서, 보다 제고된 전문성을 발휘하리라는 기대인데 우리 일반 소비자들은 본격 가동된 투자은행이 (원래는) 뭘 하기로 된 곳이었는지, 나아가 선진 금융이 나래를 펴면 현재의 환경이 어떻게 바뀌겠으며 바뀐 환경에서 나의 투자 전략이 어떤 변신을 꾀하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할 겁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이 큰 도움이 되지 싶습니다. 적어도 저는 평소에 갖던 의문이 대부분 해소되었습니다.

주식이란 무엇이냐? 보통 한국인들은 "도박 비슷한 것. 잘못하면 패가망신하는 것"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특히 p28에서, 이런 가치투영적 관점, 나아가 무슨 선악을 가르는 듯한 이해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취지로 말합니다. 주식이란 그저, "소유권에 대한 지분"을 표창하는 게 원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증권 형태로 되어 있으니 유통이 자유롭고, 유통이 자유로운 건 그저 부차적인 모습일 뿐인데 이걸 메인으로 착각해서 "도박꾼들의 장난감" 같은 누명을 씌우는 거죠.

그러면 회사의 지분 소유에 중점을 두고, 가치 있는 회사에 내 돈을 투자하여 적당 시기에 배당을 받게 해 주는 수단인가. 물론 그렇죠. 책에서도 이와 같은 원칙론, 원래의 모습에 포커스를 둡니다. 그런데 원래의 모습을 정확히 이해하면, 그의 부차적 기능인 "투자 수단,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모습도 덩달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이 책 제목을 보죠. "투자은행의 눈으로 보라" 뭘 보라는 걸까요? 주식의 실체? 혹은 성공적인 투자 방법? 투자 섹터의 작동 원리? 그 모두입니다. 투자은행이 본래 금융의 본고장에서는 증권 발행과 유통의 중심에 놓여 있으니, 투자 은행만 칼같이 정확히 이해해도 이 분야 전반에 걸친 눈이 새로 띈다는 소립니다.

어떤 사업자가 무슨 사업을 론칭한다, 혹은 이미 론칭된 사업을 보다 큰 덩치로 키운다, 이걸 위해서는 증권시장에 상장되어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은, 다른 회사에 흡수되거나 흡수를 하거나, 아니면 일정한 비율로 합치거나 할 수 있겠죠. 투자은행은 이 모두에 간여하는 전문가들의 집단입니다. 특히 저자는 투자은행이 하는 일 중 "인수합병"을 강조합니다. 인수합병은 1990년대 이래 M&A라 하여 일반에도 널리 알려진(적어도 그 이름만큼은) 사항입니다.

왜 M&A가 그리 중요한가? 당사자(회사)끼리 일을 추진하면 본래의 목적이 잘 달성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일이 잘 마무리되면 서로가 윈윈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미세하게나마 자신만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신경전이 벌어지며, 이 과정에서 사소한 다툼으로 일이 틀어지기 쉽죠. 뭐 거기서 그치고 없던 일로 돌아가기나 하면 좋은데, 이 과정에서 상대 회사의 기밀이라도 누설되면 걷잡을 수 없는 분쟁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내다봤다면 "저 회사를 어떻게 믿을 수 있냐"며 아예 일이 추진되지도 않을 수 있죠. 이건 당사자들에게도 손해이며, 신뢰가 구축되지 않아 바람직한 결과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듯) 빚어지지 못한다면 사회적으로도 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아가, 내 회사와 상대 회사의 가치를 정확히 측정하는 작업은 애초에 당사자들끼리의 협상만으로는 합의에 이르기 어렵습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이 중간에 나서야 하며, 그 실사(가치 측정)도 쌍방이 흔쾌히 동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러면 기관의 사회적 공신력과 전문성이 매우 높아야 합니다. 한국에서 건설적 M&A가 잘 안 벌어지는 이유는 이런 명망 있는 투자은행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투자은행이 과연, 어느 한쪽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불공정하게 일을 추진할 동기는 없을까? 경제학에서는 이를 모럴 해저드 이슈로 다루죠. 사실 모럴 해저드(함정)는 괜히 이름이 그렇게 붙은 게 아니라서, 어떤 부패의 유인이 있으면 좀처럼 이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책에서도 여러 번 강조되듯, "사회적으로 공신력 있는 투자은행"이 떡하니 있고 활발히 가동되어야 하는 겁니다. 투자은행에서 커리어를 키워 가는 스페셜리스트(예를 들면 이 책의 지은이 같은)는, 내가 어느 투자은행에 근무하며 이 (유명한) 거래를 성사 시킨 사람이다 라고 경력 사항을 만들어나갈 "유인"이 충분히 존재하며, 이런 유능하고 명예욕 넘치는 이들이 또한 기존 저명 투자회사의 평판을 계속 이어나가는 겁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건, 미국에서는 상업(예금)은행과 투자은행의 준별이 아주 엄격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책에도 나오듯이, 1990년대 후반에 그 오래된 글래스-스티걸 법이 폐지되어, 한 기관이 투자은행과 상업(예금)은행 업무를 혹 겸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보다 앞선 시기에 보험과 은행이 겸업 가능해지는 등 이른바 방카슈랑스가 등장하기도 했죠. 이 모든 추세는 특히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가 내세운 "규제 완화, 폐지"와 맞물려 급속하게 추진되었고 경제 활황으로 이어졌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짙기 마련이라, 2008년에는 이런 거품이 드디어 부실의 누적과 더불어 터져 버렸습니다. 글래스-스티걸 법이 오래 전에 제정된 취지는, 일반 서민의 저축을 취급하는 은행이 "위험성 다분한 기업 투자"에 나서면 결국 서민 살림, 나아가 국민 경제의 붕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이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결과였고,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이 어떤 과정을 통해 파국으로 치달았는지가 이 책에 소설처럼 아주 자세히 설명됩니다.

우리가 올바른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업의 가치를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한데, 책에는 이를 위해 파악해야 할 여러 개념들이 잘 설명됩니다. p186에서 저자도 재미있게 설명하듯, 아니 왜 "현금"이 회사 가치 파악에서 제외되어야 하는지 어려워할 이들이 있겠죠. 답은, "회사의" 가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집에 주택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누가(은행이라든가) 실사를 왔는데, 집주인이 "내가 가진 현금이 이 정도요" 라며 금고를 보여 주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되겠죠(집에 저당권을 설정한다든가 할 때를 생각해 보면). 건물 자체, 혹은 회사 자체의 가치를 알아야 하니까요.

"비지배주주지분"도 별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모회사 A가 자회사 B의 지분 70%를 갖고 있다면, B에게 비지배주주지분이란 30%가 되겠죠. 이때 A가 소유한 (B의) 70%는 당연히 회사 A의 것이지 B의 것이 아닙니다. 반면 30%야말로 B에 남겨진 온전한 가치죠. 이는 어느 국가가 연결회계 원칙을 채택하느냐 아니냐와는 무관하게, 그 회사의 진정한 가치를 측정한다는 점에서 타당합니다. 이거는 사실 영어로 읽으면 아무 헷갈릴 게 없는데 한국어로 번역이 저리 되어서 이해에 혼란이 오는 겁니다. 이 저자의 잘못은 아니고 한국 학계의 관행이 그런 거죠.

한국도 글로벌 스탠다드를 충분히 따르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제 한국 고유의 특성보다는 이런 보편성에 모든 게 수렴해 가는 과정입니다. 여태 한국에 없던 "투자회사"의 개념을 속속 파악함으로써, 역으로 투자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이해를 이 지평선을 통해 다져 나가는 게 이 책의 취지이겠습니다. 요즘은 거의 전 국민이 주식하는 세상인데, 금융깨나 잘 안다는 분들도 이 책으로 (말 그대로 투자은행의 관점에서 풀어낸 설명을 통해) 모르는 부분, 이해가 미진했던 부분을 명쾌히 해결할 수 있을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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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끝내는 AI 비즈니스 모델 - 비즈니스 캔버스를 만들기까지
정두희 지음 / 청림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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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조경으로 활용할 수도, 열매를 얻을 수도, 목재로 활용할 수도 있다. ... 애플리케이션이 사용자에게 어떻게 활용되게 할지, 이를 통해 기업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게 할지에 대한 설계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비즈니스 모델이다(p24)."

"사고하고 학습하고 발전하는 인간의 방식을 구현해 놓은 정보 기술이 바로 인공지능이며, AI 혁신은 바로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혁신(innovation)을 하는 것이다(p21)."

2016년 알파고가 인간 바둑 고수 이세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생활 속에 AI가 부쩍 잦은 빈도로 침투해 들어왔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SF영화에서나 보듯 똑똑한 로봇의 시중을 받기는 고사하고,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번역 서비스조차 그리 큰 만족감을 주지는 못합니다.

이런 가운데, AI에 관심을 두고 새로운 방향성의 수익을 창출하거나 기존 사업의 혁신을 꿈꾸는 건 소비 섹터가 아닌 생산자들이어야 할지 모릅니다. 일반 소비자는 트렌드에 무심하다 해도, 경쟁자들보다 한 발 두 발 앞서가야 내일의 생존이 가능할 비즈니스맨들은, 4차 산업 혁명으로 게임 체인징이 이뤄지는 가까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자신의 사업 분야와 전혀 관계 없어 보이던 AI를 이제 이해하고 활용해야 할 단계인 듯합니다. 새로 창업하려는 젊은 도전자들이라면 AI를 도외시한 스타트업이 애초에 불가능하리라는 현실 정도는 당연히 자각헤야겠고 말입니다.

p33에서 저자는 말합니다. "과거에는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how to solve)가 중요했던 반면, 앞으로는 어떤 문제를 푸느냐(what to solve)가 중요해진다." 즉, 우리는 수많은 문제들에 휩싸여 전전긍긍하지만 애초에 잘못 설정된 과제를 붙들고 비능률적인 싸움을 벌여 온 건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인공지능의 적극적 활용은, 아예 처음부터 올바르게 설정된 문제 개념 자체를 잡아 주며, 이를 통해 쓸데없는 시행착오나 비효율적인 우회 경로를 모두 피해갈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AI는 그만큼이나, 기존 사업의 판도와 구조 모두를 송두리째 바꿔 놓을 혁신의 tool입니다. 제대로 정의도 되지 않은 문제는 애초에 잘 풀릴 수가 없습니다.

p48에는 AI의 5대 기능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5요소는 기능이기도 하고, AI가 어떻게 가치 창출을 하며 스스로를 진화시키는지 보여 주는 과정의 다이어그램이기도 합니다. 인식, 예측, 자동화, 소통, 생성의 5단계인데, 사실 그 하나하나가 기존 컴퓨터의 수동적, 기계적 장점으로는 완수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특히 마지막 기능인 "생성"은 인간의 창조적 본성을 따라한 것으로, AI의 본원적 속성을 잘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예측 중에서 특히 중요한 건 맥락의 예측입니다. 다른 예측은 구세대 컴퓨터에서 그저 CPU 성능만 개선해도 어느 정도는 가능했었으나, "맥락의 해석"은 본격 인간의 고등지능에 도전하는 과제이겠기 때문입니다. 자동화 역시, 기존의 컴퓨터는 인간이 설정해 놓은 규칙 아래에서의 수동적 최적화인 반면, AI는 인간도 채 알 수 없었던 단계로의 자율적, 자가최적화입니다(p55). "자동탐색"의 좋은 예는 이미 알파고의 대국에서 우리 모두 잘 감상한 적 있죠. p60에는 기계적 생성이 아닌 심미적 생성(인간만이 가능하다고 여겨 온)이 나오는데, 이 AI 화가 오비어스는 "생성적 적대신경망"을 탑재했다고 책은 설명합니다(GAN에 대해서는, "생성적 대립 신경망이라는 번역어도 쓰이는데, 이때 "대립"은 생성모델과 판별모델 사이의 대립을 뜻합니다).

"알고리즘의 정교함은 데이터의 부재를 구제해 주지 못한다(p105)." 아무래도 현대 AI의 발전은 빅데이터가 확보되고부터 그 든든한 기반 하나를 마련한 게 사실입니다. 다만 구세대 프로그래밍에서는 데이터가 빈약해도 정밀하게(사실은 그렇지도 못해서, 한국에서는 "돌아가기만 하면 프로그램"이란 잘못된 상식이 널리 통했었죠) 고안된 알고리즘이 더 중요히 여겨졌고, 데이터는 운용 후에 차차 확보하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목도하는 AI는 방대한 데이터 안에서 자체 알고리즘을 AI 자신이 생성해 나가는 구조입니다. 이게 안 된다면 그건 이미 AI가 아니며 4차 산업혁명 양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구세대 IT 전문가라면 "데이터가 우선이고 알고리즘은 다음 문제"라는, 완전히 뒤바뀐 패러다임에 쉬이 적응하기 힘들 것입니다.

어떻게 데이터를 확보할 것인가? 개발자(혹은 더 넓은 의미로 생산자, CEO)가 모두 무슨 포털 사이트처럼 방대한 데이터를 입수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가는 구글 같은 곳에서는 다양한 API를 마련하여 이용자들이 자신의 편의에 따라 요모조모로 활용할 수 있게 이미 게시해 두고 있습니다. 윈윈을 추구하는 진정한 플랫폼 사업자임에 틀림없죠. 반면 IT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스타벅스 같은 기업도 고객의 취향에 대한 심층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디지털 플라이휠"을 활용한다고 합니다(p108). 이것만 봐도, 빅데이터의 활용과 AI 중심의 사업 구조 구축이 몇몇 소수 뱅가드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이미 모두의 과제임을 알 수 있죠.

가장 골치아픈 일은, 효율적인 AI의 작동에 방해가 되는 이른바 "더티 데이터"를 어떻게 걸러냐느냐 하는 이슈입니다. 실제로 며칠 전 어느 신문기사에서도, 이런저런 데이터만을 잘 학습한 AI가 느닷 인종차별적 언사를 내뱉어 관계자들을 당황시켰다는 사건을 다뤘죠. 더티 데이터에 오염되어 그로부터 잘못된 학습을 하고 바람직하지못한 사고 패턴을 생성한 AI는 이미 실패한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테크놀로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소양이 있어야 사업 모델 형성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일단 주변의 사소해 보이는 자료, 자원부터라도 최대한 활용할 것을 권하며, "최소의로데이터도 전혀 없는 기업은 없다"고 합니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데이터로 유용한 소스로 바꿔 주는 API도 적잖게 나와 있습니다. 저자는 또한 "가치의 경로"를 시급히, 그러나 정확히 그려낼 것을 조언합니다. 기술에 대해 깊은 소양이 없더라도, "절실한 경험을 통해 자신도 미처 몰랐던, 그러나 대중이 간절히 원해 온 니즈를 발견"하면 가치 경로 역시 어렵지 않게 완성됩니다. 이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모든 세부 기술에 능통한 엔지니어는 아니었던) 故 스티브 잡스이겠습니다. 평생 스마트폰에 대한 컨셉 하나만 붙들고 산 그였기에 (자신이 아닌) 남들이 발견한 기술과 아이디어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때 누구보다도 빨리 상용화에 성공했던 것입니다.

AI의 5대 기능 중 첫째 순번에 놓였던 "인식(의 정확성)"은 종전 전문가들이 수행하던 많은 작업을 대체합니다. "인식"은 물론 다른 네 가지 기능과 서로 융합하여 AI를 완성하지만, 이것 하나만으로도 의학 등 핵심적 분야에서 인류에 큰 혜택을 이미 주고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가정의, 주치의 제도가 (예를 들어 미국에) 있다 해도 로컬 전체의 주민을 커버하기란 한계가 있는데, AI는 거의 완성에 가까운 "개인화"를 이루어 효용을 극대화합니다(p151). 책에는 프로 스포츠 구단에 "존 세븐"이란 시스템을 도입하여 부상 선수를 크게 줄인 사례가 나오는데, p151뿐 아니라 저 앞 p40에서도 언급됩니다. AI의 "개인화" 서비스에 크게 성공한 극적인 케이스입니다.

아마 개인화의 가장 절실한 니즈는, 온라인에서 골라 본 옷 등이 막상 배송 후 착용시 나에게 잘 안 맞았다든가 하는 당혹스러운 경험에서 잘 나타날 것입니다. p165에서는 "엘리먼트퓨어"라는 AI 시스템을 예로 들어 이런 고충을 말끔히 해결한 모범 케이스를 보여 줍니다. p186에는 아마존에서 시행 중인 프라임 퍼스널 쇼퍼가 나오는데, 퍼스널 쇼퍼(shopper이며, chauffeur가 아닙니다)는 쇼핑 갈 시간도 없는 바쁜 부자들을 위한 심부름꾼 비슷한 거죠. 이 아마존 서비스는 소비자가 뭘 주문하기도 전에(!) 그의 취향을 잘 파악하여 미리 상품을 배달해 주는데, 마음에 안 들면 그대로 반품하면 된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탁월한 비즈니스 모델로 가치를 창출"한 예로 평가하는데, 이 책에서 염두에 두는 모든 사업 모델은 "탁월함"을 구현하며, 탁월하지 못한 건 미래(아니 현재)에 이미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암시합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건 물론 (사업가가 완벽히 이해하고 개인화한) AI입니다.

저자는 책 내내 "네트워크 선순환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양질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교한 알고리즘을 구축하여 사용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마련되면, 이에서 서비스를 소비하고 다시 체험을 공유하는 유저들의 (무의식적인) 기여 덕분에 다시금 양질의 Db가 높이를 쌓아가고, 다시 서비스는 좋아져서 소비자는 만족하고... 뭐 이런 식입니다. 이를 통해 AI의 5대 기능 중 하나인 "소통"이 더욱 내실화함은 물론입니다.

유능한 개발자는 기업 안에서 우대되어야 합니다. 파이썬, 텐서플로, 케라스 등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아야 하며, R을 능숙히 이용하고, 기본적인 수학, 통계 지식도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p202). 어떤 경우에도 인력 확보가 가장 중요한 준비임은, 뒤 p213에서도 다시 강조됩니다. 매뉴얼이나 훔쳐 보며 서투른 발걸음을 듬성듬성 떼는 사이비 인력은 전혀 필요 없습니다. 이런 기술 지식도 필요하지만, 산업 자체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하며, 어쩌면 가장 중요할 "고객 지식" 역시 필수입니다. 사업이란 기본적으로 돈을 벌어야 하며, 혁신도 최소한의 지속성을 확보해야 가능하므로 ROI 전략 수립(p208)도 필수입니다.

AI 전략이 비즈니스 전체 전략과 통합이 이뤄져야 합니다. 예전에 "하나를 위한 전체, 전체를 위한 하나" 같은 말이 유행했는데, 책에서는 이것과 비슷하게 "비즈니스를 위한 AI, AI를 위한 비즈니스"란 말이 나옵니다(p224). 이를 위해 필요한 건 전 부서의 협력 체계(p225)이며, 또한 리더십(p229)입니다.

AI의 경이적 기능은 누가 뭐래도 "예측"에 있습니다. AI와 무관해 보이는 할리데이비슨 같은 제조업체도 "AI 기반 마케팅 플랫폼인 '앨버트'를 도입하여, 세일즈 리드 고객을 무려 2930%나 확장시켰다"고 책에 나옵니다(p235).

일본에서는 AI가 사회 전반에 확산할 경우, 고대 신탁 관습처럼 아무 근거도 없이 "상서로운 새, 무당, 천체의 조짐 따위가 신의 뜻을 대신 전했다"며 정체불명의 권위가 이성과 논리를 대체할 결과를 몹시 우려한다고도 합니다. 이 책에서도 p238 이하에서, "AI의 최대 단점 중 하나는 어떻게 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엔지니어, 개발자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이는 사실, 앞에서 강조한 대로 뛰어난 개발자, 연구 인력을 확보하여 결국엔 "어떻게 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을 구명해 내야 할 문제라고 저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책에서도 법적 책임을 가릴 때 결국은 법원과 소비자 앞에 설명을 해야 할 기업의 책무를 지적하네요. 현재 자율주행의 전면 도입이 늦어지는 것도, 기술적 완성도 문제보다는 다양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법적규율을 어찌 마련할지에 대한 컨센서스가 미비한 탓이 크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이 책도 결국은 기업이 매순간 직면하는 선택의문제를 빼놓지 않습니다. AI와 무관한 시대에도, 기업은 결국 비용을 최소화할지, 아니면 수익을 극대화할지가 문제였고, 이는 AI 비즈니스 모델에서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재미있게도 연구조사결과는, 과감하고 도전적인 기업일수록 수익 창출에 무게를 두며, 후발주자일수록 비용을 아끼며 소극적 혁신을 한다고 결론냅니다(p262). 물론 저자가 높이 평가하는 건 전자입니다. 애초에 AI 자체가 혁신을 그 본성 중 하나로 삼지 않겠습니까.

책 말미에는 "독자의 회사에서 어느 정도 AI 친화, 내면화를 이뤘는지" 테스트할 수 있는 항목이 나와 있고, 간단한 용어 설명이 정리됩니다. 아 그럼 "회사"를 갖지 못한 나와는 무관하고나 하며 안이하게 넘길 수 있지만, 미래는 대부분의 시민이 어느 특정 직장에 소속되기보다, 자신의 장기를 살려서 AI 시스템 하나를 끼고 무엇인가를 만들어 파는 생산자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신문 방송 등은 레거시 미디어로 불리며, 컨텐츠가 있는 개인들은 유튜브 등 플랫폼을 통해 나를 봐 달라며 1인 방송을 하지 않습니까. 이를 통해 올리는 수익도 일급 유튜버의 경우 엄청나죠. 모두가 창의성을 발휘하는 만인 생산자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일단 이 책을 통해 마인드셋을 하나 만들어놓아야 할 듯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코딩도 배워야 하고, 이 책에서 강조하는 기술 소양도 쌓아야 하겠죠. 다시 강조하지만 "비즈니스(사업)는 이제 모두의 비즈니스(관심사)가 되어 가는 중"입니다. 사업가 아닌 사람은 못 살아남는 세상이 곧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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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의 힘 - 끊임없는 자극이 만드는 극적인 성장, 개정판
켈리 맥고니걸 지음, 신예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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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의 힘"! 강원도의 힘은 들어봤어도 스트레스의 힘이란 말은 처음 들어 봅니다. "강원도의 힘"도,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가 만나 빚는 묘한 효과 때문에 대중의 귀에 오래 맴돌았는데, 스트레스의 힘도 비슷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스트레스라고 하면 만악의 근원이고 달갑잖은 불청객에 불과한데 얘가 무슨 힘을 발휘하겠으며, 그 힘이 과연 좋은 데 쓰이기나 할까 싶습니다. 그런데 사회생활이란 걸 하는 이상 스트레스는 어차피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란 말이 있듯이 스트레스도 잘만 관리, 이용하면 오히려 순기능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게 이 책 저자분의 말입니다.

책에는 먼저 "스트레스 사고법"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물론 "해롭다/그게 아니라 장점을 끌어올리기도 한다"의 이분법입니다. 압도적으로, 무슨 스트레스가 나의 장점 발휘에 기여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연구 결과는 우리의 상식과 일치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람들이 스트레스의 장점을 발견한다는 증거도 존재한다(p44)." 저자 자신이 최초로 발견했다는 게 아니라, 그저 보통 사람들(저 연구 대상에 포함된)이 실제 스스로 스트레스의 순기능을 찾아내고 그로부터 효과까지 본다는 소리입니다. 어떨까요? 실제로도 "이불밖은 위험해"라며 집 안에서 꼼짝도 않고 머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없고 간에, 우리가 의식을 하건 안 하건 간에, 사람들은 너무 편한 삶이 계속되면 "혹시 이러다 탈(정신적, 육체적) 나는 건 아닌가" 지레 겁을 먹고 일부러라도 모험을 (소소하게나마) 합니다. 작게는 암벽 등반이나 고난도 운동 같은 게 다 포함됩니다. 이렇게 일부러 스스로에게 부여한 과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잘 극복하면, 오히려 더 큰 활력과 에너지가 생기기도 합니다.

일부러 빚어낸 스트레스라면 대응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미 그런 걸 스트레스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그런데 동기가 뭐가 되었든 간에, 편하고 즐거운 것과 거리가 먼 어떤 불편함이 일단 나의 일상을 가로막고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는 스트레스입니다. 저자는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과정뿐 아니라, "처음부터 스트레스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 자체가 이미 성과의 양과 질을 다르게 해 준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좋게 바라보면, 벌써 성과가 나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저자가 정리한 그들의 특성은 다음과 같습니다(p47).

- 스트레스가 실재(實在)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반대: 주의를 돌리려고 애쓴다- 현실 도피)
- 그 근원을 해결할 작전을 짠다(반대: 그냥 감정을 없애는 데 주력한다)
- 타인에게 충고, 조언을 구한다(반대: 술 등에 의존한다)
- 극복, 제거, 변화를 위해 조치를 취한다(반대: 아예 관계, 역할, 목표에 쏟던 에너지 자체를 거둬들인다)

한국사회에 "스트레스"라는 말이 유행하고 대중이 널리 쓰게 된 건 아마 1980년대부터일 것입니다. 당시에 어떤 전문가는 "그냥 일에 전념해서 잡생각을 줄이면 될 걸, 스트레스란 말을 만들어내는 바람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도 했는데 그 이전에는 한국인들이 이런 말을 잘 안 썼다는 증거도 됩니다(스트레스 상황 자체야 구석기 시대, 아니 지질시대부터 있었겠지만). 여튼 스트레스 자체를 잊느냐, 아니면 누군가가 (타인의) 직접 스트레스 상황에 개입을 해서 대상화하느냐는 전략적 선택지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UBS에서 있었던 사례를 듭니다. UBS 직원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첫째 그룹은 스트레스에 대해 부정적인 기존 관념을 강화받고, 둘째 그룹은 스트레스에 대해 긍정적인 관점을 주입받으며, 셋째 그룹은 별다른 조치 없이 대조군으로 두었습니다. 그 결과는, 이런 중재자의 개입 덕분에 훨씬 좋은 결과를 보게 되었다는 쪽이었습니다.

책에는 또한 월튼이란 학자에 의해 이뤄진 "사고 방식 중재"라는, 다소 적용 폭이 넓은 기법에 대해 소개합니다. 사람은 그저 타고난 대로, 혹은 오랜 동안 환경에 의해 길들여진 대로 생각의 패턴을 유지할 수밖에 없을까요? 저자는 저 월튼의 연구를 통해, 사고방식이나 세계관은 얼마든지 스스로, 혹은 누군가가 개입해서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이런 개입은 마법이나 SF가 아니라 엄연히 순수 과학과 실증의 영역이라고 합니다. 사고 방식을 바꾸지 못한다는 건 그저 선입견일 뿐입니다(p57). 보다 범용인 사고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는데, 스트레스에 대한 태도나 대처 방법을 못 바꿀 이유가 없고, 그게 가능하다면 아마도 결과 역시 긍정적이지 않을지요.

사고방식의 (3자) 중재는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p64)

1) 새로운 관점 배우기
2) 받아들이고 적용하도록 고무하는 연습하기
3) 타인과 공유 기회 만들기

스트레스 상황이 공포일 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겪으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부터가 공포입니다. 그런데 스트레스에 대한 관점을 바꾸면, 스트레스에 실제 대처하는 능력이 향상되기에 앞서 적어도 저런 공포감은 훨씬 잘 극복된다고 합니다. 공포감이란 게 생각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런 공포감 때문에 도대체 무슨 새로운 과업 자체를 도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업에 도전할 수 없으면 성과가 나지 않고, 이는 다시 자신감 저하로 이어집니다.

"엄청 스트레스 받아!(p70)" 이처럼 고함치고 짜증내는 건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 거의 99%가 보이는 반응일 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반응 자체가 스트레스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이며, 저 실험에 참가한 이들처럼 누군가의 중재에 의해 스트레스 관점을 변화시키려 노력했다 해도 도로 예전처럼 돌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른바 스트레스 요요인 셈인데, 그렇다고 해도 그 현실(역시 스트트레스죠)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시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트레스 과학"의 탄생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연원이 깊은데 1939년 헝가리의 한스 셀리에에 의해 이뤄졌다고 합니다(p75). 불쾌한 경험을 한 쥐들은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기고 근긴장이 사라지는(p76) 등 분명한 증상이 나타났다고 하네요. 셀리에는 내분비학자였고 이런 연구는 내분비학의 체계 안에서 이뤄졌으며 따라서 스트레스는 분명 의학적 관점에서 실체를 지닌, 질병과 연관을 갖는 그 무엇임이 밝혀진 것입니다. 셀리에는 이미 당시에, 해로운 스트레스(distress)의 해독제 역할을 하는 바람직한 스트레스(eustress)의 존재를 알아낸 것이죠(p78).

옥시토신도 결국 스트레스 반응의 일환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입니다. 이 호르몬은 사람들에게 사회적 지원망과 관계를 맺으라고 독려(p93)하며, 이 결과로 배려-친교 반응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엔도르핀, 아드레날린, 테스토스테론, 도파민 등은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상황에 도전하는 에너지를 만들어낸다고 하는데(p94) 이는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도 적잖게 경험하는 바입니다. 어떤 좌절이나 모욕을 겪었을 때 아 나는 안되겠구나 하고 주저앉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오 그래? 어디 끝까지 가 보자며 오기가 발동할 수도 있는데 이 후자에 저들 호르몬이 끼어드는 거죠.

감정은 뇌에 자극을 주고 이런 자극이 뇌를 성형적(plastic)으로 만듭니다(p96). 저자는 이렇게 활성화된 뇌가, 결국 인격이나 감정 소화 면에서 전보다 더 성숙한 인간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동서양의 옛 성현들이 일찍이 말한 대로, 시련이 사람을 강하게 만들고 성공으로 이끈다는 지혜가 과학의 근거를 갖는 지점이죠. 반대로 스트레스를 회피하고 남탓과 원망, 짜증이 일상화한 인생은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난관을 극복 못 하고 궤도에서 점점 더 멀리 이탈하게 마련입니다.

스트레스는 회피하거나 무시할 대상이 아니라 더 친하게 지내고 객관화해야 할 까다로운 친구에 가깝습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크레이스너, 엡스타인 두 분 의학박사의 연구대로 "스트레스를 끊임 없이 대화의 주제에 올리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입니다. 의대생들은 아마 그 나이 또래 중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집단 중 하나이겠습니다. 이들이 다루는 환자의 끔찍한 모습, 아픈 상태 등이 사실 정상인은 일상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의 근원이고,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배우는 지식 역시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전통적으로 이들은 감정을 억누리고 환자를 인간 아닌 대상으로만 바라보기를 훈련 받았는데, 그 결과는 사실 예상 외로 비극적임이 밝혀졌다고 합니다(p124). 학생들은 자살하기도 하고, 의사들은 나중에 직업에 대한 진정한 확신을 못 가지며, 이는 결국 의료사고나 분쟁 등으로 이어집니다. 그러고 보니 의사야말로 스트레스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연구를 하기에 최적의 직업임이, 다른 이유 하나가 더 있었던 셈이네요.

"꿈을 이뤄주는 스트레스 과학" 많은 우수한 연구자들에게도 강의 의무는 적잖은 부담입니다. 실제로 제가 학교 다닐 때도 많은 우수한 교수님들이 그렇게나 강의하는 걸 싫어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토로하는 걸 봤습니다. 교수는 분명 사회적으로 극히 선망되는 직업인데도 이런 스트레스와 애환이 있었던 건데.. 알토스 교수라는 분은 스트레스관을 바꾸는 "개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나서 태도가 180도 바뀌었습니다. 어떤 학생은 "교수님이 내 질문에 답해 주시는 속도가, 내가 내 여친에게 문자로 답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다."라고도 했다네요(p157). 스트레스는 이처럼 잘만 관리하면, 직업에 보다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오히려 탈바꿈해 줄 뿐 아니라, 근원적인 인간관계 향상과 사회성 제고까지도 산출할 수 있습니다.

꼭 타고난 성격이 소심해서가 아니라, 스트레스에 과도하게 시달리고 나아가 스트레스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면 절로 사회 불안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오히려 성격이 밝고 남과 잘 어울리는 "인싸" 유형이 이런 장애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아마 과도하게 가졌던 기대가 정면으로 배반당한 데 대한 좌절의 결과일 수 있죠. 그런데 저자는, "불안증을 앓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리 기능이 통제 불능 상태라고 자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따라서 "스트레스 반응이나 불암감 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 자체의 전환이 무척 중요하다"고 합니다.(p182)

그래서 스트레스는 존재 자체를 없앨 수 없고, 그 "사용법"이 중요합니다. 그 예로 책에서는 나의 목표가 무엇이고, 목표 달성에 도움되는 건 무엇이며, 나는 과연 사람들 사이에 긍정적 영향을 일으키고 싶은 것이며, 그 변화의 종류와 그를 통한 기여가 무엇인지 의식적으로 반복적으로 생각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p211). 아무래도 사람이란 동료나 집단 안에서 인정받고 소속감을 늘리며 이를 통해 자존을 높이는 걸 태생적으로 좋아하는 존재이니 말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 사람은 시대가 주는 스트레스를 누구보다 민감하게 느끼는 편이었을 겁니다. 그걸 자기 나름대로 극복해 보려 애 쓰다, 마침내 가장 확실하게 극복하는 방법을 찾고, 이를 사람들과 공유하다가 공동체 전체를 구원(!)하기에 이른 거죠.

"누군가와 더 굳건히 연결되고 누군가의 지지를 받으며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싶은 사람들(p242)"은, 사실은 자신부터 타인에 대한 태도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그래서 "어떤 지원을 타인에게 받고 싶건 간에, 그 지원의 원천은 자기 자신이라야 한다"는 게 저자의 결론입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사고 방식의 전환,스트레스에의 과감한 (나 자신의) 개입"이 중요하다고 다시 강조합니다. "스트레스를 통해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가?(p307)"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 적 있습니까? 도피, 회피가 아니라 스트레스에서 나의 성장 그 자양분을 찾을 때, 스트레스가 극복이 될 뿐 아니라 종래의 나보다 키가 한 뼘 더 커 있는 자각을 하게 되며, 그 뿌듯함이야 상상을 뛰어넘지 않겠습니까.

스트레스를 내 편으로 만들면 위협을 도전으로 바꾸고, 믿음의 촉매제가 되어 주며, 회복력을 북돋우는 약이 됩니다. 독이 아니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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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조노믹스 - 미래 비즈니스의 패러다임을 뒤바꾼 아마존 혁신 경영의 비밀
브라이언 두메인 지음, 안세민 옮김, 김용준 감수 / 21세기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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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닷컴은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했으나 이제는 (사이버) 매장 안에서 다루지 않는 것이 없는 일종의 백화점으로 만인의 뇌리에 각인되었습니다. 20여년 전 탄생시에도 화제가 되었지만, 당시 비슷한 포지션이었던 반스앤노블(물론 훨씬 오랜 역사의, 오프라인 유통망을 지닌 굴지의 도서 유통업체였지만)은 지금도 그저 온라인서점일 뿐이고, 1990년대 리테일 최강자였던 월마트 등은 입지가 현저히 위축되었습니다. 당시에도 잘나갔지만 지금은 아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마존닷컴의 성공 비결은 분명 심층 분석의 가치가 있습니다. 아울러 전도 유망한 벤처기업인 레벨에서 이제 세계 굴지의 기업가가 된, 오너 베조스의 천재성과 경영 철학 역시 궁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p46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베조스가 온라인 소매 산업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도 빠르게 확대해 나가며 전통 소매업체에 위협을 가하고 있지만, 이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아직도 우리는 "책 팔다가 백화점 된 곳" 정도로 아마존을 인식하지만, 아마존의 사업 영역과 그 혁신의 여파는 이미 소매업을 넘어 산업 전 분야, 전 방위에 미친다는 뜻입니다. 다음 문장은 "아마존이 고객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인공지능 분야에 투자하면, 이것이 인공지능 플라이휠을 더욱 세게 구동시켜 때로는 아마존의 자체 산업이 되는 제품과 서비스가 탄생하기도 한다." 즉, 타 산업에 침투하여 기존의 강자들을 몰아낼 뿐 아니라, 산업의 재편과 해체를 유도하는가 하면, 아예 전에 없던 산업과 제품, 서비스를 만들기까지 한다는 뜻입니다.

아이폰 안에 시리가 있듯이, 아마존은 인공지능 "비서" 알렉사를 만들었습니다. 이 알렉사는 가정에 있는 각종 전자기기, 설비를 원격으로 작동, 제어할 수 있고, 유저의 취향을 파악하여 음악을 골라 틀어 주는가 하면, 이 체제를 탑재하고서 앞으로 생산되는 다양한 제품의 두뇌 구실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아마존은 이제 주요 가전 기기 기업이 되었다(p49)."고도 합니다. 물론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그렇다는 말이며, 예전부터 삼성, 엘지 등 하드웨어 영역(아무리 고부가가치 하이엔드 제품을 만든다 해도)의 강자가 결국 이들 소프트웨어의 지배자들에게 종속되고 말리라는 오랜 우려를 다시 상기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번다는 말처럼요.

몇 년 전 트럼프가 아마존을 두고 "우체국을 후려쳐서 돈을 버는 악덕 기업"이라 폄하한 적이 있었는데, 의외지만 아마존은 미국 정부와도 꽤 친하며 오히려 유착 관계를 의심받을 정도입니다(이래서 트럼프와 따로 놀며 대립하는 딥 스테이트 음모론이 인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라고 해도 마냥 방산업체에 우호적인 건 아닌데, 역사상 최초로 "군산복합체"란 말을 만들어낸 이가 바로 아이젠하워였습니다. 여튼 아마존은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을 통해 CIA, 국방부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사업 계약을 체결했다(p62)"고 합니다. 바로 앞 페이지에는 사업가, 공직자로서 크게 성공했던, 제프 베조스의 할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이분은 1960년대(민주당 집권기죠) 기밀 군사시설 고위직으로 봉직했으며, 간접적으로 인터넷의 탄생(본래 미 국방부 인프라)에 기여했다고도 합니다. 그러니 손자 제프의 이런 빛나는 인생 행보와 방향성이 결코 우연이 아닌 셈입니다.

예전에 경제학자 케인즈는 "장기적으로는 모든 게 균형을 이룬다"는 반대 진영의 주장에 대해 "장기적으로는(=결국) 우리 모두가 죽는다"고 되받아침으로써, 당장 우리가 활동하고 살아가는 "단기, 지금"에 효용이 없는 모든 정책, 이론에 대한 깊은 회의를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제프 베조스는 반대로, "모든 것이 장기적이다"라고 일찍부터 지지자, 주주, 투자자들에게 말해 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장기적으로는 결국 이익이 된다"거나 "올바르고 유익하다"고 말할 때, 그 숨은 뜻은 "단기적으로는 바보짓하는 거다"라는 말에 별 다름 아닙니다. 사업도 마찬가지라서, 길게 보고 정도 사업 경영한다고 하면 조롱이나 당하기 좋죠.

그런데 제프 베조스는 이런 통념을 정면으로 깬 사람입니다. p148에는 그가 프라임 배송 서비스를 론칭시켰을 때의 일화가 나옵니다. 당시 이미 아마존은 마니아층을 형성했고, 천천히 받고 싶은 사람은 낮은 배송료를 물고, 빨리 받고 싶은 사람은 특급 수수료를 내게 하여 배송을 차별화했는데 이런 게 무슨 악덕 상혼도 아니고 상식의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마니아층(혹은 주머니가 넉넉한 소비자)에서는 구태여 특급배송을 선택하곤 했죠. 경제학 기본 원리 중 하나가, 생산자(판매자)는 (그게 가능하다면) 가급적 가격 차별을 실시하여, 더 지불할 의향이 있는 소비자에게 높은 가격을 받아내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겁니다. 꼭 나쁜 것도 아니어서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자기 효용만큼 더 내고, 없는 사람은 소비를 줄이거나 안쓰면 되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베조스는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결정을 내립니다. 프라임 서비스(일정 금액 이상 배송비 무료 정책)를 도입해서, 아마존을 더 자주 이용하고 충성하는 고객에게는 더 큰 혜택을 준 거죠. 경영진은 당연히, 자발적으로 더 많은 비용을 내겠다는 소비자에게 왜 불필요하게 회사가 손해를 감수하냐고 했습니다. 이에 대한 베조스의 대꾸는 "소비자에게 더 많은 편익을 제공하여, 아마존에서의 소비가 아주 습관이 되어 버린 유저를 더 많이 확보하는 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건 크게 봐서 "박리다매" 정책이고 큰 그림을 본 마케팅 전략이기도 하지만 말이 쉽다고 행동까지 쉬운 건 아닙니다. 눈 앞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걸 사업자 입장에서 편하게 바라볼 수는 없죠.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한때 국민 SNS였던 싸이월드의 몰락 과정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도토리나 배경음악 아이템으로 유저의 호주머니를 알뜰하게 털어가는 영리한 사업체였지만 플랫폼으로서 결국 단명했죠. 단기와 장기를 분별할 줄 아는 비전의 차이이며, 글로벌 강자는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른 법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p101). "베조스의 장기적인 전략으로 아마존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지난 20년 동안 베조스는 현금 자산의 많은 부분을 주주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사업을확장하고 연구 개발에 투자하고 우수한 직원을 고용하는 데 사용했다. 월스트리트가 분기별 수익을 절실히 요구하고, 아마존 주식 가격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을 때, 베조스는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기업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자신만의 성전에 몰두했다." 어떻습니까? 우리네 통념으로는 상장법인이라 함은 시장의 요구에 민감해야 하고, CEO가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해 있으면 그건 퇴출 1순위감이라며 비웃기나 십상입니다.

베조스가 만약 한국식으로 경영했다면 모르긴 해도 단기에 떼돈을 벌긴 했겠지만,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사업이 위축되다 문을 닫고 몰래 꿍쳐 놓은 비자금이나 뜯어먹으며 노년을 살았을 겁니다. 그것도 그 나름 뭐 폼나는 삶입니다만 도덕적이지는 못하고, "세계적 레벨의 위대한 기업가"로서 얻는 존경과는 극과 극으로 먼 경로 아니겠습니까. 이게 한국과 글로벌 스탠다드의 차이입니다.

이처럼 프라임 프로그램은 상식을 벗어난 역발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만, 책에서는 그 성공 비결에 대해 보다 심층적으로 다룹니다(p150). 저자는 이른바 "단절 모델"과 프라임 프로그램을 대조시키는데, 단절 모델이라 함은 책에서도 설명되듯 피트니스 클럽 회원제라든가 무제한 뷔페 식당 같은 것입니다. 혜택이 큰 듯하지만 결국 다수의 소비자들은 혜택을 다 못 찾아먹고 업자 좋은 일만 시킵니다. 마음이 여간 독하지 않고서는, 허용된 시간 안에 제공되는 이익을 다 못 챙길 텐데, 아마존 프라임은 이런 꼼수를 부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일정 금액만 지불하면, 아마존 프라임은 광범위하고 양적으로도 풍부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소비자는 아깝게 뭘 찾아먹고 연회비를 날리는 일이 없습니다. 적어도 회원권제로 업계가 부리는 전형적인 얄팍한 꼼수로는 이익을 남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마존이 얻는 이익이 무엇인가. 소비자는 개별상품을 인터넷에서 살 때, 아마존에 "중독"되어 다른 곳에서 더 이상 가격비교를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소비행위를 할 때 그 소비가 주는 객관적 효용에 의한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주관적 효용에 따라 행동합니다. 남들이 보기엔 손해가 나도, 나는 이걸 소비함으로써 행복해진다면, 또 주관적 가치가 부여된다면 그 선택을 하는 거죠. 이래서 아마존은 충성스러운 소비자들을 자신의 (광범위한) 생태계 안에 가둬 둡니다. 뭐 아마존 유저들이 그 안에서 행복감을 느낀다면 제3자가 뭐라할 건 아닙니다. 프라임 서비스는 또한, 다른 프로바이더가 제공하지 못하고 아예 상품의 컨셉 자체를 상상 못하는 여러 다양한 "체험"을 하게 돕는데, "체험"은 확실히 이 시대의 키워드이자 아마존이 창립 초기부터 내세웠던 사업 지향성 중 하나입니다.

아마존은 물론 원가 절감을 위한 혁신에 주력하는 기업입니다. 그런 기업은 각종 자동화 시스템 도입을 위해, 기존의 생산성 떨어지는 많은 노동집약적 일자리를 퇴출시키는 데 일조하기도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IT 기업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잃게 한다며 강하게 비판한 적 있습니다. 확실히, 드론으로 택배가 이뤄지면 트럭 운전수, 창고 근로자, 계산원 등이 설 자리가 없어지긴 합니다(p209).

그러나 저자는 "거꾸로, 이런 기계가 도저히 수행할 수 없는 섬세하고 창의적인 일자리가 새로 등장할 것"이며, "아마존 고" 매장에서 젊은이들이 일부나마 이런 일을 맡고 있다고 합니다. 글쎄 앞으로 아마존 계열 기업이 얼마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지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모르겠습니다만, 폴 버호벤이 묘사한, "로봇이 모든 일을 대신하고 실업자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디스토피아(p210)가 도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네요. 이에 대해 저자는 마냥 낙관하지도 않고 모호한 말로 괜한 기대를 품게 하지도 않으며, 다만 개별 노동자가 "긱 경제"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른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보편적 아젠다로 부상한 지금, 근거가 있든 없든 아마존닷컴이 저런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괴물"이란 비판에 대해 마냥 눈감고 귀닫을 수는 없을 겁니다. 이에 대해 그들은 "아마존닷컴에 서비스와 제품을 납품하는, 이전 같으면 판로를 못 찾고 사장되었을 수많은 중소업체들이 아마존이란 플랫폼에서 활로를 찾았고, 그들은 다시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p223)."고 합니다. 일리 있는 말입니다.

아마존은 약품 유통 산업, 헬스케어 산업에도 진출하려 시도합니다.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게, 충성스러운 유저들의 다양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시스템을 경쟁력 있게 발전시켰기 때문입니다. 임직원 중 적지 않은 수가 의약학을 전공한 사실도 그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게 단지 개별 기업의 탐욕과 야망이 아니라, 미국은 본디 공보험체계의 미비로 아프면 그냥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이 많은 나라입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사망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현상만 봐도 알 수 있죠. 아마존은 혁신을 통해 조기에 병의 징후를 발견하고, 유통망 혁신을 통해 약값을 낮출 수 있다고 공언합니다. 사실이라면 아마존에 충성스러운 유저들은 뜻밖의 곳에서 진짜 낙원을 발견한 셈입니다.

마지막에는 "그럼, 이렇게 사방에 문어발을 뻗치는 공룡 기업과, 지난시절 독점의 폐해 때문에 철퇴를 맞았던 각종 트러스트, 카르텔과는 무엇이 다른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만합니다. 이 책의 장점은 외부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그것대로 소개하면서, 아마존의 지향점을 과장 없이 설명한다는 데 있습니다. 책에는 20세기 초 마크 트웨인이 말한 "도금시대(gilded age)"란 유명한 용어가 등장하는데, 이들 암울한 시대의 약탈적 독과점 기업과 아마존의 차이점이라면 결국 소비자와 얼마나 긴밀히 소통하고 공감하느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돈을 치르고 거래가 끝나면 안면몰수였던 지난시대의 기업과 달리, 아마존닷컴은 초심을 잃지 않고 고객의 입장을 중시하는 친구로 남는다고 말합니다. 여튼 기업이 이 정도로나마 대중을 상대로 정서적 배려를 하는 제스처도 처음 보는 모습인 건 분명합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이 기업이 전례 없던 혁신을 이어나가는 이상 아마 소비자와 함께 나눌 몫, 되돌려 줄 몫도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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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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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다른 건 몰라도, 어려운 주제를 어린이용 모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가독성 최고로 표현하는 재주만큼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당할 작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소설 전편을 통해 "감정이 농도 짙게 흐르는 기억은 유독 강하게 뇌 속에 남는다"는 말이 나오지만, 이 책에 나온 뇌신경학 여러 원리와 "당신이 몰랐던 진짜 역사"의 편린들은 아마 독자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이 책 2권 p242에는 "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승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법칙(?)은 작가 자신에게도 적용되지 않겠나 싶어요.

p26에 "그렇게 우리는, 아니 자네들은.."이란 말은, 역사에서 언제나 "them and us"로 나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영원한 간극을 실감케 합니다. 이 신작 <기억>의 주제는, "그들"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왜곡된 진실을 언제나 회의해 보고 비판할 줄 알자는 쪽이니 말입니다. 이 대목에 나오는 로베르 조르주 니벨 장군은 2차 대전의 매국노(1차 대전 구국의 영웅) 페탱과 동갑이죠.

주인공 르네는 역사 교사이며, 신비한 능력을 지닌 오팔의 도움을 얻어 전생(前生)의 자신(들)인 (여러) 영혼과 교감합니다. 처음에 아직 재주가 서투를 때는 먼발치에서 영화처럼 구경만 하다, 슬슬 스킬이 늘수록 대화도 나누고 "그보다 더한 것"도 시도합니다. 전생 중 하나인 메노는 갤리선의 노잡이 노예인데, 적절한 시점에 르네가 개입하여 "내면의 소리(웹툰 마음의 소리가 생각나네요)"를 들려 주어 그(라기보다 자기 자신)가 바른 선택을 하게 돕습니다.

이 1권에서는 자주 로마인들의 의도적 역사 왜곡 중 하나로 "카르타고 인들은 식인 습관을 지닌 야만인"이라고 한 행적을 거론합니다. 이는 전근대 사회, 심지어 현대에 들어서도 지배층이 피지배층에게 그릇된 타자의식을 주입하여 "누구누구는 너의 적"임을 세뇌하는 관행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이겠습니다.

책에는 없지만 신대륙 선주민에 대한 잘못된 지식 중 하나가, 미개인은 머리 속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것은 신(이나 어떤 초월적 존재)의 계시"라며 폭주한다는 것이죠. 그저 자기 생각일 뿐인데도 말입니다. 현재는 이런 인식이 백인층의 왜곡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작가 베르베르는 이런 잘못된 선입견을 재치있게 비틀어 이 소설의 제재로 활용하지 않았나 싶네요. 우리도 어느날 문득 좋은 생각(영감)이 떠오르면 전생, 혹은 후생의 "나의 영혼"이 잠시 찾아와 조언을 베푼다고 여겨야겠습니다. ㅋ

베르베르 특유의 여전한 유머도 여기저기서 보이는데 이를테면 p126에서 "자신은 언제나 조정이 싫고 요트가 좋았다"고 말하는가 하면, 제2권 p74에서는 다시 "요트의 진화를 보면 메노가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고도 합니다.

베르베르의 특유의 간단하면서도 심오한 통찰도 여전히 빛납니다. p126에는 고통의 중단이 곧 쾌감이라고 하며, p128에는 행복한 삶은 주관적이라는 타당한 진리를 되뇝니다. p134에는 "자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정신은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제2권 p77에서 이 대목이 오팔의 말 "게브가 가르쳐 준 대로..."에서 반복되기도 하죠.

저 뒤 p186에는 하고자 하는 확신만 있으면 못 할 일이 없다는 말이 다시 나오는데, 2권의 p293, p303에는 "정신의 자유로운 운용"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또 하나의 전생에서 사무라이였던 르네는 "적아 칼을 뽑고 내가 그걸 대비하는 사이에 무한대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걸 깨우치는데 많이 공감되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건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르죠.

p137에서는 "지진? 가끔씩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삶이 지루하지"라는 게브의 말이 나오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대로 "일체유심조"가 아닐까 합니다. p141의 "무사태평함과 그에서 비롯한 삶의 힘"이라든가, p146의 "살아있는 한 삶에서 만나는 이런저런 불행은 잔파도에 불과하다"는 말 등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돕습니다. 저 뒤 p346에는 스트레스가 잦으면 해마에 구멍이 나고 이것이 기억력 감퇴를 유발한다는 신경학 지식이 나오죠. 그러나 강한 사람이라면, 저 게브의 말처럼 "삶에 있어 일종의 자극" 정도로 잘 소화할 수도 있습니다.

무사태평함과 그에서 비롯한 삶의 힘! p289에서 르네를 조사하던 형사는 그의 범죄 혐의보다 초연한 태도를 두고 더 큰 증오심을 표현합니다. 소인배가 더 우월한 존재를 질시하는 이런 모습은 제2권에서 원시 인류가 아틀란티스 인들을 공격하는 장면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p150, 또 제2권 p100에는 "나비 효과"라는 말이 나오는데 십여 년 전 미국 영화 <나비 효과> 역시 (일기장의 도움과) 정신 집중을 통해 위험한 순간마다 붕 자신의 과거로 여행하는 이야기였죠. 어쩌면 베르베르도 그 영화를 통해 영감을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맞을 듯) p152에는 "법률상 아버지의 30퍼센트 이상이 사실은 남"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 프랑스인들의 혼외 관계는 상상을 초월하게 문란하죠. 영화 <셸부르의 우산>도 사실은 이런 모티브를 조금은...  p175에는 아버지가 요양 중인 시설 이름이 "파피용"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게 "나비"라는 뜻이며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있습니다. 그 영화의 주제는 "자유"입니다.

시설에서 르네의 아버지는 "사람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는 태도(p177)를 보이는데  르네는 이걸 두고 "혹시 아버지의 선택"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합니다. 많은 환자들은 "아프니까 저런 행동을 하지" 싶은 동정의 시선을 받지만, 사실은 그 중 상당수가 의도된 행동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이 작품에서 르네의 부친 그 동기는 2권에 가서야 제대로 드러나고요. p181에 "간유 한 잔"에서 와 정말 비위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부친의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사회 해체를 주장하는 히피의 삶에 크게 공명했다는 말이 있는데 p278, p166, p178 등에 나옵니다.

p183에서 다윈의 말이라며 "그들이 이긴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건 사실 다윈이 생전에 가장 경계했던 태도입니다. 이른바 사회적 다윈주의에 대해 다윈 본인은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었죠.

르네의 여친 엘로디는 과학 교사인데 p211에서 "그래서 나는 남자들에게 너는 여자들에게 이용당하고 만다"고 하는데 신중하긴 하지만 뭔가 피해의식이 비춰지기도 했습니다. p332에서는 다시 전문가들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2권 p84에도 다시 비슷한 장면이 있습니다. 1권에는 남녀 관계에 대해 작가 베르베르의 유익한 통찰이 나오는데, p212 남자를 파멸시키는 여자의 유형에 대한 언급, p215에는 "성적인 접촉이 배제된 그저 편안한 융화"가 최종지점일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p274에는 유명한 에릭 번의  교류 분석 이론이 나오며, 르네를 향해 너의 행태는 "퇴행 분석이 아니라 그냥 퇴행"이라고 꼬집는 말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p392에서 "슈멩 데 담의 전투 교훈" 같은 건 절대 그렇지 않고 유익하죠.

한편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줄기는 게브와 르네의 소통이겠는데, p136에 벌써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나의 전후생"이 언급됩니다. 2권 p97에는 오팔의 말로 "어쩌면 당신이 역사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바꿔 놓은"이 나오고요. 아마 1권 p136에 저 말이 나왔을 때 많은 독자들은 예사로 여기고 넘어갔을 겁니다.

p220에서 구두장이 신발이 가장 더럽다는 말은 우리네 속담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와 비슷하지 않을까도 생각했습니다. 초연하고 이상적인 삶을 사는 게브 들의 독특한 삶의 특성 중에는 "(p244)우리에게는 잉여가 발생하지 않아" 같은 게 있어 마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떠올리기도 했네요. p305에는 뇌 활용 방법이 언급되는데 아마 재발견만 된다면(!) 자계서 주제로 짱일 것 같습니다. 여튼 그들의 삶은 매우 평온하고도 이상적이며 p305의 폭력에 대한 경멸이라든가 p243의 육식에 대한 혐오, p247의 "무려 80억이 사는 공동체라면 애 다루듯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겠군!" 같은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권 p238에는 이것 관련 "우리 조상들은 짐승이나 마찬가지"라는 말도 나옵니다.

p358에는 게브와 그의 배우자가 서로 싸우는데 경지에 이른 현자답지는 않은 행동입니다(ㅋ) p359에서 "우리는 대체로 건강함"을 자랑하나, 소설 2권에서 p111 배 위의 다툼이라든가, 2권 p114에서 드디어 병에 걸린다든가 하는 장면은 그들 존재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p383에서 다시 나오듯 사실 그들의 기술 수준은 형편없습니다.

p258의 "집단의 기억"이란 키워드는 사실 이 작품 전체의 주제어에 가깝습니다. 2권 p347에도 "인류는 기억을 되찾지 않으면..."이란 말을 통해 그 과제의 절박성을 다시 일깨웁니다.

p291에는 감옥과 호스피스의 공통점에 대해 뼈아픈 한 마디가 있는데 마치 이번 코로나 사태 때 스페인에서 벌어진 노인 유기 사태가 생각나더군요. p313에 그 유명한 "메스머라이즈"라는 단어의 어원이 나옵니다.

p319에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명언이 나옵니다. 맥락상, 마치 예전 6. 25때 대중 사이에서 유행한 "먹고 안 죽으면 보약이다"가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이것 관련 2권의 p116에 "시련은 끊이지 않는다..."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문장입니다.

p322에서 "어떤 거짓말쟁이들은 탐지기도 속을 만큼 자신의 말을 믿는다"는 말이 나오는데, 한편으로 신념의 중요성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팩트를 무시한 채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비판도 되는 문장입니다.

p337에 "아틀란티스는 그리스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역시 기록의 맹점 내지는 "승자의 기록이 낳는 왜곡"의 예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의 상상대로 아틀란티스가 설령 있었다 한들 그 endonym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죠. 우리가 아는 페르시아나 그 수도 페르세폴리스 역시 페르시아어가 아니라 그리스어이듯 말입니다.

p354 이하에는 마치 닥터 멩겔레 같은 괴물 의사 쇼브가 나와 "기생 감정"의 불필요성과 해악이라든가 "잡초 제거(p330)" 같은 요설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 중 일부는 매우 타당성이 크기도 하죠. 안타깝게도요.

p370에서 한때 프랑스 식민지였던 크메르에서 자신의 또다른 전생(상좌부 불교 승려)을 만난 르네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결국 광신이라는 점에서 같다"는 소중한 교훈을 배웁니다.

391에는 드디어 수시로 영혼 둘이 합쳐지며 더 큰 힘을 발휘하는데 르네-이폴리트가 아예 이름으로 나옵니다. 이 비슷한 예는, 2권 p91의 르네 -게브, p306의 르네-야마모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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