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의 글쓰기 - 남과 다른 글은 어떻게 쓰는가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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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글쓰기를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유익하게 읽었다. 논설문이든 회사 보고서든 산문이 되든 각종의 글을 쓰는 기본에 대하여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었다.

 

강원국씨가 또 글쓰기에 대한 새책을 낸다고 했을 때, 내용이 무엇이든 사서 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전작 대통령의 글쓰기가 엑기스만 뽑아서 추려낸 것이라면 이번 책은 그 엑기스에 조금의 양념과 데코레이션과 플레이팅을 더한 거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겉보기만 좌르르하단 말은 아니다. 맛은 기본이니까.

 

책에는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수많은 팁들이 널려있다. 주워서 먹기만 하면 된다. 너무 많은 팁들이 있어서 선택 장애를 느낄 정도다. 그러나 이것을 요약에 요약을 하면 아래와 같다.

-. 글쓰기의 소프트웨어적인 부분

   1.생각(자료)를 평소에 생성, 채집, 축적할 것

   2. 생성/채집/축적된 자료는 말하기로써 진짜 자기의 것을 만들 것.

   3. 평소에 매일 조금이라도 쓸 것.(반복과 습관화)

   4. 무조건 일단 써 놓고 나중에 조금씩 수정을 하면 된다. 처음부터 완벽을 기할 필요는 없다.

   5. 적당한 공포감으로 조성된 절박함/간절함이 있을 것

 

-. 글쓰기의 하드웨어적인 부분

   1.어휘력/문장력

   2. 문법 - 화룡점정

   3. 필사

   4.설명아닌 묘사

   5.운율

   6.퇴고

   7.글쓰는 행위에 대한 리추얼

 

100세 시대가 왔다. 은퇴는 빨라졌다. 은퇴 후 재수없는 경우 맞이하게 될 100세의 삶까지 책을 하나 써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대통령의 글쓰기 즈음부터 하기 시작했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이런 내 생각을 확신으로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과연 이 초기 확신이 행동으로 이끌어내질 수 있을까. 나 스스로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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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글쓰기 - 남과 다른 글은 어떻게 쓰는가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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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더닝 크루거 효가라는 게 있다. 능력없는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는 반면, 능력있는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15쪽

소설은 내 경험에 ‘먄약‘을 더하면 된다.

20쪽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습관에서 나뉜다. 프로는 아리송한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고, 새로운 생각이 나거나 좋은 문장을 만나면 메모하고, 사람이나 사물을 볼 때는 유심히 관찰한다. 반면 아마추어에게는 이런 습관이 없다. 프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쓰는 습관이 있고, 아마추어는 없다.

48쪽

창의는 ‘양‘에서 나오기도 한다. 양질전화의 법칙이 적용된다. 퀀텀리프하듯이.

66쪽

글 쓰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써야 할 때 쓰는 사람과 평소 써두는 사람이다. 평소에 쓴다는 것은...평소 자신의 생각을 생성,채집,축적해두어야 한다. 써놓은 글을 평소에 조금씩 고치는 것도 포함한다.... 써둔 글에는 이자도 붙는다. 써둔 글이 늘어나면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78쪽

말을 하면 생각이 정리된다. 말해보기 전까지는 자기 생각이 아니다....즉, 말할 수 있어야 진짜 아는 것이고, 진정한 자기 생각이다.

80쪽

글 한 편을 읽고 자기만의 감정이나 느낌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그건 읽지 않은 것과 같다.
97쪽

책을 읽었다는 것은 남의 생각을 읽은 것이다.
114쪽

지금도 과연 내 상각이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글을 써야 한다. 내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쓰고 말하는 것 밖에 없다.

110쪽

미친면 미친다라고 하지 않는가

190쪽

안톤 체홉은 말한다. "달이 빛난다고 하지 말고 깨진 유리조각에 반짝이는 한 줄기 빛을 보여줘라."

무라카미 하루키도 작품을 쓸 때 자동차의 모델명까지 구체적으로 쓴다. 추상적으로 쓰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거대 담론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주변 얘기에 움직인다. 이론 말고 실제, 의도 말고 실행, 원칙말고 실천 내용을 써야하는 이유다.

222-223쪽

글에도 소리가 있다. 독자는 눈으로 보지만, 귀로도 듣는다. 글쓰는 사람은 리듬감을 가져야 한다. 글을 쓸 때 자기만의 리듬이 있어야 한다. 그 리듬을 타야한다. 시 낭송을 하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반복해서 읽다보면 자신도 그런 리듬으로 쓰게 된다. 그것이 자기의 문체가 된다.

227쪽

내가 좋아하는 안도현 시인은 삼겹살 먹을 때 제발 고기 좀 뒤집으라고 말한다. "삼겹살을 구울 때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며 젓가락만 들고 있는 사람은 삼겹살의 맛과 냄새만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고기를 불판 위에 얹고 타지 않게 뒤집고, 가스레인지의 불꽃을 저절할 줄 아는 사람은 더 많은 경험을 한 덕분에 더 많은 기럭을 소유하게 된다."

228쪽

나는 강단이 없는 대신 강박이 있다.

233쪽

생각은 말과 글로 표현된다. 또한 생각은 말과 글로 만들어진다.

244쪽

잘 쓰는 사람은 잠깐 쓰고 오래 고친다. 못 쓰는 사람은 오래 쓰고 잠깐 고친다. 쓰다가 진이 빠져 고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다 쓰고 나면 꼴도 보기 싫다.....고수는 초고를 단지 고치기 위해 쓴 글쯤으로 여기는 반면, 하수는 초고를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그것에 얽매인다. 고수는 글을 쓰고 나면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지만, 하수는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

254쪽

나는 또한 일하면서 배우고 있다고 느낄 때, 소모되지 않고 쌓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열과 성을 다했다.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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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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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 친구가 자기 인생책이라며 딸아이 생일날 선물로 꼭 읽어보라면서 선물한 책이다.

무슨 논리학 책인줄 알았다. 일주일의 휴가기간동안 다 읽자는 각오를 다지며 첫 페이지를 넘겼다.

일주일은 커녕 첫 페이지를 넘긴 그 다음날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하나의 막힘도 없이 자연스럽게 아주 개연성있게 이야기가 진행됐기 때문이며, 게다가 감동과 눈물까지 주었다.

또 다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보는 것 같았다. 재미와 의미가 다 있었단 것이다.

 

수를 사항한 한 박사가 있었다. 이 소설에는 사람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정수, 소수, 음수, 0을 사랑한 50대 초반의 박사가 있고, 그 박사 집에 가사도우미인 나가 있다. 그리고 나의 아들, 머리 정수리가 편편해서 박사가 루트라고 별명을 지어준 아이가 있다. 이 세 명이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물론, 박사의 형수, 가사도우미 사무실 등 소소한 등장인물도 있긴하지만 주요 서사는 박사, 나, 루트 이 세사람의 대화와 생활로 이뤄져있다.

박사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처럼 교통사고로 인해 한정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기억력의 한계는 80분. 80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리셋된다. 그래서 박사는 기억을 뇌가 아닌 포스트잇에 기억한다. 매번 리셋이 되면 가장 눈에 띄기 쉬운 곳에 기억을 붙여두고(주로 옷깃, 소매) 스스로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많은 가사도우미들이 교체가 되었는데, '나는' '나'를 노동력의 제공자가 아닌 대화가 가능한 대등한 상대로 대하는 박사덕분에 오히려 박사에게 최적의 가사도우미가 되었다. 우연히 아들 루트까지(회사의 규칙에 어긋나느) 박사집에 출입을 하면서.

이 셋은 일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같이 저녁을 먹고 야구경기를 보고 병간호를 하고 루트의 숙제를 봐주며 박사는 기억하지도 못하고 추억하지도 못할 시간을 축적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한계는 있는 법. 박사의 기억 시간이 80분에서 어느 새 점차 줄면서 70분, 60분 그리고 그 보다 더 작은 시간이 되면서 마침내 박사는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러나 같이 보낸 수많은 기억을 추억으로 간직한 '나'와 루트는 비록 박사는 기억하지 못할 지라도 한 달에 한번 박사를 찾아가면서 그의 끝모습까지 함께 해 주었다.

 

철부지 10살 루트는 수에서는 뛰어난 박사이지만 생활에서는 천진한 아이와 같은 박사에게서 아빠의 따뜻함, 든든함을 느끼게 되고 지적 영적 성장의 큰 영향을 받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

이들은 친 가족은 아니지만 친가족보다 더 친밀한 교류를 하고 공감을 하고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긍정의 시너지를 발휘한 거다. 박사는 본인은 전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수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발휘하면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 것이다. 그의 수에 대한 사랑은 마냥 수만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수는 상대를 사랑하는 도구에 불과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신파처럼 감동을 자극하지도 않고 눈물을 뽑아내려 안간힘을 쓰지도 않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얼굴을 따라 흐르는 한 줄기 잔잔한 눈물의 짠 맛을 느끼게 되는 책이다. 꼭 한번 읽기를 강추한다.

다만, 비중있는 소재지만 양념처럼 적소에서 등장하는 수, 수식, 수의 개념을 이해한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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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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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의 책은 전독했다. 단 한권도 날 실망시킨 적이 없다. 참으로 적절한 시기에 참으로 적절한 문장으로 생각으로 나에게 다가와 실마리를 주고 간다. 이 실마리로 나는 엉켜있는 실타래를 풀려고 다시 시도한다. 실마리를 잡아 당기며, 그에게 고마움의 미소를 짓는다. 한번 보고 얘기나누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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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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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권력은 공간으로 확인된다. 모든 상호작용에는 지켜야 하는 물리적 거리가 있다. .... 친밀한 거리, 개인적 거리, 사회적 거리, 공적 거리. 각 거리는 문화마다 다르다.
모든 인간에게는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적공간, 즉 배후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인간의 존엄은 이 회소한의 배후 공간이 있어야 유지된다. 교도소는 범죄에 대한 징벌로 이 배후 공간을 박탈한다. 여러 명이 좁은 방에서 함께 생활하며 화장실까지도 공유해야 한다.
한국 남자들이 ‘건들기만 해봐라‘하고 이빨 꽉 깨물고 사는 이유는 바로 이 배후 공간의 부재 때문이다.

39~40쪽

가장 정리하기 힘든 것은 ‘시간‘과 ‘공간‘이다. 문화는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정돈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시간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달력을 만들었다.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개고, 일주일은 7일로 나누고, 한 달은 4주로 분리하고, 일 년은 열두 달로 분해했다. 그렇게 시간을 각 단위로 나누면 하루, 일주일, 한달, 한해는 매번 반복된다. 반복되는 것은 하나도 안 무섭다.

시간을 ‘반복‘으로 극복하려 했다면, 도무지 정리할 수 없이 무한히 필쳐진 공간에서 느끼는 공포를 인류는 어떻게 극복하려 했을까? ‘원근법‘이다......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에 정확히 재현하는 원근법이 발명된 후, 인류는 무한한 공간에 대한 근원적 공포로부터 드디어 풀려났다. 2차원에 구현된 공간은 통제 가능하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을 두려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44~46쪽

고령화 사회의 근본 문제는 ‘연금‘이 아니다. 은퇴한 이들의 ‘아이덴티티‘다.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확인할 방법을 상실한 이들에게 남겨진 30여 년의 시간은 불안 그 자체다. 불안은 원래 미래가 불확실한 젊은이들의 정서다. 경험과 경륜의 노인들이 불안해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할 때 한 사회는 균형을 잡으며 건강하게 버틸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오늘날 아무런 대책 없이 수십 년을 견뎌야하는 ‘젊은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65쪽

좋은 것에 가까이 가려는 ‘접근동기‘와 대상을 피하려는 ‘회피동기‘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다가가려는 접근 동기는 ‘전체지각‘을 활발하게 한다. 반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도망치려는 회피동기는 부분을 뜯어보는 ‘부분지각‘을 더 촉진시킨다. 히긴스와 그의 동료는 불안하면 부분지각이 강해지고, 행복하면 전체지각이 강해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원래 노인의 지헤는 숲, 그러니까 전체를 보는 데 있다. 시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떨어질수록 전체 맥락을 볼 수 있는 지헤가 더 확대된다는 것이 노인학의 일관된 연구 결과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자아 정체성의 위기에 시달리는 ‘젊은 노인‘들이 많아질수록 전체를 보고 사회의 발전 방행을 제시할 수 있는 혜안이 사라진다. 불안한 젊은이들은 나무를 보고, 불안한 젊은 노인들도 나무를 본다. 큰 틀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이는 없다.

67쪽

접근동기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에 접근하기 위해, 즉 무언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말하며, 반대로 회피동기는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것을 뜻한다......세상일에는 접근동기로 접근해야 하는 일과 회피동기로 접근해야 하는 일이 따로 있다. 일의 결과가 바로 나타나는 일은 회피동기(그렇게 하면 손해를 본다)로 설명해야 유리하고, 결과가 나중에 나오는 것일수록 접근동기(그렇게 해야 성공한다)로 설명해야 유리하다고 히긴스는 주장한다.......접근동기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회피동기는 일을 치밀하게 한다. 창조적 능력이 발휘되려면 긍정적 정서를 동반하는 접근동기를 자극해야 한다. 놀듯이 일해야 창의성이 발휘된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치밀함과 정학성을 요구하는 일은 회피동기를 자극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왜 애플 같은 회사가 나오지 않는가를 접근동기-회피동기로 설명하면 아주 잘 이해된다.

69-70쪽

문제는 전경과 배경의 전환이 매끄럽지 않을 때다. 배경으로 물러나야 할 전경이 계속 버티고, 전경으로 올라와야 할 배경이 애매할 때다. 내 삶의 이야기가 매끄럽지 않다는 거다. 맥락에 따라 달라져야 하느 게슈탈트 형성이 뒤엉켜 있는 상태가 지속되면 참 힘들다. 자신만 힘든 것이 아니다. 주위 사람 모두를 힘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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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게슈탈트를 바꾸는 방법은 대충 세 가지다. 첫째, ‘사람‘을 바꾸는 거다. 항상 같은 사람들을 만나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말아야한다. 동창회, 산악회같은 것은 아주 ‘쥐약‘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헐 수 있어야 삶의 게슈탈트가 건강해진다.
둘째, ‘장소‘를 바꿔야 한다. 장소가 바뀌면 생각과 태도도도 바뀐다. 마지막으로 ‘관심‘을 바꾸는 것이다. 전혀 몰랐던 세상에 대히 흥미가 생기면 공부하게 된다. 새로운 사실을 깨치고 경험하게 되는 것처럼 기쁜 일은 없다. 긍정적인 게슈탈트 전환이다.

아무튼 나 스스로 게슈탈트 전환이 가능해야 한다. 스스로 안 되면 남에의해 억지로 바뀌게 된다. 아, 세상에 그것처럼 괴로운 일은 없다.

105-106쪽

공부라는 구체적 경험을 다시 배우는 요즘이다. 스스로의 간절한 필요가 있어야 공부의 방향이 명확해지고, 그래야만 공부가 재미있어진다. 30여년 죽어라 공부하고, 또 10여 년 교수생활을 하고도 제대로 못 느껴봤던 진짜 공부를 나이 오십 넘어 뒤늦게 하고 있다. 삶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112쪽

젊은 날의 성공이 자랑스러울수록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게 남 흉내를 열심히 내야한다. 그래야 소외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와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과 호기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삶이 지속적으로 창조적이 된다. 삶은 나이 들수록 재미있어야 한다.

157쪽

인간의 모든 상호작용에는 언제나 해석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 모든 정보가 정확하고 완벽한 상호작용은 재미없다. 상대방의 역할이 없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꼰대‘라고 할 때는 해석의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전하는 정보의 내용은 명확하다. 그러나 일방적이다. 상호작용이 불가능하다.

241쪽

월급쟁이 생활을 때려치우기만 하면 바로 내 삶의 주인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큰 착각이다. 평생 추구해야 할 공부의 목표가 없음을 돈의 문제로 환원시키며 자신의 쫓기는 삶을 정당화하는 것 또한 참으로 비겁하다. 삶의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을 관심의 대상과 목표가 있어야 주체적 삶이다. 우리가 젊어서 했던 ‘남의 돈 따먹기 위한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다.

318쪽

자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으로부터의 자요free from‘와 ‘~을 향한 자유 from to‘. 무엇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의 소극적 자유free from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도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질그릇을 만들기 위해 물레를 돌리는 데 방해가 된다며 자기의 새끼손가락을 잘라버리는 조르바식 자유가 진정한 자유free to다. 추구하는 바가 분명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 아름다운 가치를 위해 자신의 손가락 정도는 자를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333쪽

서울에 있으면 밤다마 사람들 만나고 놀러 다닐 확률이 높습니다. 어차피 직업도 없고 외로워서 나도 모르게 사람들 모이는 자리에 나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나이에 자꾸 사람들 만나봐야 상처주고, 상처 받는 일만 생깁니다. 외롭다고 관계로 도피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모든 문제는 외로움을 피해 생겨난 어설픈 인간관계에서 시작됩니다.

3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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