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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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특혜자들 역시 우리를 시샘하고 있다. 우리가 신비와 미지의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 은근히 부러운 모양이다. 정작 우리는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무의 장벽을 지각하지 못하는데, 우리가 없는 동안에도 삶을 계속 영위하는 그들은 오히려 그것을 민감하게 느끼기 때문에 더욱 샘이 나는 것이다. 그들은 상대적인 죽음을 마치 후가처럼 여기먼서 자그들은 사슬에 매여 있다고 느낀다. 대체로 그들은 염세주의에 잘 빠지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에 반해서 나와 같은 범주의 속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면서 더욱 빠른 생활 리듬을 따르다 보니 명랑한 기분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 P59

고백할 만한 속내 이야기가 없어서 그저 남의 얘기를 듣기만 해야 하는 신세만큼 처량한 것도 없다. 누구나 알다시피, 고전 비극에서 우리를 진자 슬프게 하는 것은 주인공의 비밀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의 비극이다. 평생 특별한 일이라곤 겪어본 적이 없는 순진한 사람들이 자기 모험을 자랑스러워하는 주인공의 장황한 이야기를 체념한 채 다소곳하게 듣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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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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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박완서 읽기 3번째.

그의 데뷔작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박완서는 40의 나이에 등단햇다. 요즘이라고 해도 여자 나이 40이면 첫 시작을 하기에는 자신감이 결핍될 듯한 나이인데 1970년에 여자 나이 40에 등단을 했으니 아마도 그 때 문단에서는 약간이라도 센세이션이 되었음직하다.

 

<니목>은 박완서 작가가 취직하여 다녔던 미군PX의 경험을 일부 반영하여 쓴 소설이다. 그때 만났던 박수근 작가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20대 젊은 여성들이 전쟁이라는 참상을 어떻게 겪고 느꼈는지가 옥희도(아마도 박수근)라는 인물을 가운데 두고 그려내었다.

 

1.4후퇴 후 전쟁이 약간은 익숙해져 벼린 날에 경아는 서울의 아주 오래된 한옥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고있다. 경아는 생계를 위해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가게에서 미군을 상대로 스카프나 손수건에 그림을 그리라고 영업을 하고 정산을 하는 일을 하고 있다. 4명의 환쟁들이 일을 하고 있는 가게에 진짜 화가인 유부남 옥희도가 생계를 위해 합류한다. 전기수리공인 황태수가 경아에게 호감을 느끼며 다가오는 중인데 경아는 유부남인 옥희도에게 마음이 끌려 그를 사랑하게 되고 만다. 그것은 유부남 옥희도도 마찬가지. 서로는 각자가 가지고 있던 결핍과 불안을 잠시라도 녹여줄 그런 대상이 필요했던 것인데 마침 그 곳이 각자가 서있었던 것이다.

참담한 전쟁의 가운데 경아는 전쟁이 모든 것을 황폐화시키고서야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쩌면 어서 빨리 황폐해지기를, 그러기 전에 자기가 먼저 황폐해지기를 바라며 버티고 있는 삶이다. 그 속에서 순수한 맑은 눈빛을 한 옥희도는 경아에게 어쩌면 빨리 자신을 황폐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고 또 어쩌면 황폐해져가고 있는 자신을 구해줄 사람이라고 잠재 의식 속에서 생각했었을 지 모르겠다. 소설의 끝부분에 이유가 밝혀지긴 하지만 경아는 전쟁이 준 고통속에서 엄마를 미워하며 엄마의 모습을 한 오래된 한옥을 죽기만큼 싫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하소설이 아닌 다음에야 이야기는 크리스마스 전 어느 즈음부터 아직 그 겨울이 끝나기 전까지 겨우 몇 개월을 그렸을 뿐이다. 그런데 600페이지가 얼추 되는 제법 두껴운 책은 경아의 생각과 느낌의 절절한 묘사와 그가 바라보고 느끼는 전쟁 중 서울, 전쟁을 견뎌내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으로 가득차 있다. 그 묘사와 서술이 너무도 생생하고 박완서 특유의 생경하면서도 상상가능한 비유와 은유로 인하여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스하고 조금은 건조한 시선으로 하여 나는 오히려 익숙해져버린 그 전쟁이 한층 더 무섭게 다가왔다. '역시 전쟁은 안돼. 두 번 다시 전쟁은 절대 안돼.'라는 생각을 박 작가의 담담한 표현으로 인하여 역설적으로 전쟁과 죽음과 학살을 더 절절히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참 보수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종아하게 되었던 재미는 책인데도 첫 부분에 경아가 싱그러운 젊음을 가진 태수보다도 아이가 다섯이나 딸린 멀쑥한 옥희도에게 연정을 느끼고 사랑을 갈구할 때 나는 경아가 미웠다. "아니 젊은 아가씨가 어떻게 남의 남자를. 멀쩡한 가정을 깨려고 하나. 저 밖에 모르는 나쁜 가스나"라는 생각을 하며 주인공인데도 애착이 가지 않았고 오히려 경아를 일편단심 좋아하고 위해주는 태수를 응원하였다.

이것은 소설인데, 아니 현실일지라도 그들이 가진 감정을 제 3자가 뭐라 할 수 있겠냐마는, 유부남이라면 처음부터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있었나 보다, 나는. 경아가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의 도입부분에서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이 안되니 속도가 조금은 더뎠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아, 나는 내가 인지하고 있던 것보다 좀 많이 보수적이구나'라고.

어쨌든 나중에 경아의 그런 마음 끌림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등장하여서 그 미움으로 책을 마무리하지않을 수 있었어 좋았다.

 

국문학과를 입학하지 마자 전쟁이 일어나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23살의 나이에 결혼을 하여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육아와 가사로 전혀 글을 쓰지 못하다가 거의 20년 세월이 지난 후 박완서는 첫 작품을 내었다. 첫 작품 발표때까지 20년이 걸렸지만 첫 등단이후 박 작가는 그야말로 소설, 산문, 동화, 콩트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수많은 작품을 어느 젊은 작가 못지 않게 왕성하게 써내었다. 책 뒤에 붙은 작가 이력을 보니 그야말로 후덜덜하다. 20년 묵은 솜씨를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쓰고 소진하겠다는 결의까지 엿보였다. 그가 일생동안 써내었던 작품 수에 비하면 잘 알려진 소설은 의외로 몇 개 되지 않는 것 같다. 역시 후대에 길이 길이 이름이 남거나 혹은 시대에 두루 두루 회자되는 작품은 그만큼 어려운 가 보다. 하긴 모든 작품이 다 히트작이고 다 별 5개짜지이면 그 사람도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몇 개의 작품이라도 이렇게 오래도록 앞으로도 더 널리널리 읽힐 만한 작품을 쓰려면 역시 많이 일고 많이 써보아야 하는 것 같다. 박 작가의 두툼한 이력을 보며 누구나 다 아는 진리 하나를 또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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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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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나는 내가 전에 애송한 시의 구절을 생각해내려고 골몰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남의 흉내, 빌려온 느낌은 그것을 깨닫자 흥을 잃고 싱거워졌다. 그리고 가식없는 나의 것만의 남았다. - P37

"엄마. 우린 아직은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건 변화하게 마련 아녜요. 우리도 최ㅗ한 살아 있다는 증거로라도 무슨 변화가 좀 있어얄 게 아녜요?"
"왜? 이대로도 우린 살아 있는데."
"변화는 생기를 줘요. 엄마, 난 생기에 굶주리고 있어요. 엄마가 밥을 만두로 바꿔만 줬더라도....... 그건 엄마가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이잖아요. 그런 쉽고 작은 일이 딸에게 싱싱한 생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다는 걸 엄만 왜 몰라요?" - P127

조상들의 꿈을 아무리 공들여 닦아도 내 꿈이 달래지지는 않았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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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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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재미있게 읽었고 밑줄 그은 문장도 되게 많았는데 감상문을 남기려고 하니 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걸까? 컴퓨터 앞에 앉아 손가락을 키보드 자판위에 올려둔 채 움직이지 못하고 그냥 멍하니 앉아만 있다. 분명 지난 주 책을 막 덮었을 땐 할 말이 많았는데.

 

<자기 앞의 생>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모모라는 애칭을 쓰는 모하메드라는 10세 소년(나중에 14살이라는 것이 밝혀지지만)은 어느 건물 7층에서 창녀들의 아이를 주로 맡아 키우는 로자 아줌마 집에서 다른 창녀의 아이들과 같이 살고 있다. 이웃에는 많은 좋은 인생 선생님들이 있다. 양탄자 행상을 하는 하밀할아버지, 5층에 사는 여장남자 롤라 아줌마, 의사인 키츠 선생님, 자수성가한 포주 은다 아메데씨. 모모가 사는 벨빌(아름다은 마을이라는 뜻)은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들이나 창녀, 포주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들은 당시 프랑스 기준에서도 정상적인 사회에 빌붙어서 사회를 좀 먹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모모에게는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인생의 진리와 삶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 등을 가르치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살아있는 학교이자 선생님들이었다. 10살이었던 모모가 몇 달 만에 14살이 되고 부모와 다름없는 로자 아줌마가 늙고 병들어 그녀와 이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데 이 과정을 어린 모모의 시각에서 그린 일종의 성장 소설이다.

 

모모의 시점에 씌여지긴 했지만 에밀 아자르의 생각임에 틀림이 없을 모모의 사람에 대한 시각, 세상에 대한 관점 그리고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는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 마다 보석같은 언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줄을 긋다긋다 못해 나중에는 줄긋기를 포기했는데 줄을 계속 긋다가는 모든 글을 다 필사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같이 책을 읽었던 지인들은 모모와 로자 아줌마와의 끈끈한 관계와 사랑, 휴머니즘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 나 역시 사랑과 인간애를 이야기했고 시간을 이야기했고 안락사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14살 모모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내가 아는 온갖 현학적인 말로 사랑을 아는 체 했고 죽음에 대한 관념적인 말들로 감상을 채웠다. 혹자는 그런 나에게 느낀 점이 많았나 보다라거나 생각을 깊이 했나보다라는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나는 죽어가는 로자 아줌마를 돌보는 모모가 기특하긴 했어도 아직 세상 물정을 알기엔 어린 아이로 느껴진다. 모모는 아직 14살 밖에 안 되었으니까 온 주변의 좋은 이웃선생님들이 모모더러 로자 아줌마를 병원으로 모셔야 한다고 합창하듯 이야기해도 로자 아줌마가 싫어하니까 죽어가는 사람도 인권이 있으니까라고 생각하며 로자 아줌마의 마지막을 책임진다. 그래 그건 모모가 고작 14살이니까 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14살 무렵에 80이 넘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생업과 살림에 바쁜 부모님 대신 나는 내 유년의 많은 시간을 할머니와 보냈다. 할머니와 서로 정이 각별하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사흘 내내 울었다. 입에서 자만 나와도 할머니의 쭈글한 얼굴과 바짝 말라서 살갗이 접히는 손등이 생각나서 또 울었다. 상을 치르고도 거의 일 년은 할머니글자만 봐도 생각만 해도 꺼이꺼이 울음을 내었다.

내 기억에 엄마는 달랐다. 엄마가 20살에 시집오고 50이 다 되어서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거의 30년을 한 집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사신 거다. 엄마는 슬픈 시늉만 내는 것 같았다. 14살 무렵의 나는 엄마가 왜 진심으로 슬퍼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엄마가 약간은 이중인격자처럼 보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엄마 나이 20살에 아직 환갑도 안 된 시어머니와 한 집에서 살았던 것이고 할머니는 며느리를 봤다는 이유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30년 가까이 사신 거다. 그것도 마지막 몇 년은 아이같이 행동하셨다. 엄마가 왜 슬픈 시늉만 냈는지 너무도 이해가 된다.

 

그런 엄마가 이제 80이 넘었다. 그렇게 초롱하고 눈치 빠르던 엄마도 이제 당신이 슬픈 시늉을 보였던 당사자처럼 되어 가고 있다. 몸도 병들고 마음도 아이처럼 변하고 있다. 당신은 변해가는 자신을 모습에 슬퍼할까 목숨을 부지하는 것에 감사하며 기뻐할까

 

투정 많고 유치해지는 엄마를 바라보는 나는 자꾸만 슬프다. 시들어가는 엄마를 보며 옛날 우리 엄마가 할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가 엄마처럼 되어가는 것 같아서 슬프다. 밖에서는 효녀인 척 세상없는 부모 생각하는 척하지만 철없는 아이 같은 엄마 앞에선 말 안 듣는 아이 나무라듯 자꾸 엄마를 나무란다. 내가 나쁜 건지 엄마가 나쁜 건지. 내가 슬픈 건지 엄마가 슬픈 건지

 

로자 아줌마는 겨우 몇 주 아팠고 겨우 3주 생사를 넘나들었다. 그런데 요즘같이 의학이 발달되어 과학이 사람의 생명을 강제 연장시키고 있는 현실에서도 이웃선생님들은 어린 보호자 모모의 말을 듣고 기다려줬을까? 그리고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3주가 아니라 3달을 아니 3년을 생과 사의 경계를 왔다 갔다 했다고 해도 끝까지 아줌마 곁에서 같이 있어주었을까?

 

적당한 기간 3주만을 견디었기 때문에 모모는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기도 않게 적당히 인생을 배우고 죽음을 관조하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대하여 철학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모모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적당한 기간이 아니고 징글징글한 기간이 되어 나의 원천을 배반하고 죽음을 원망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나에게도 모모처럼 버틸 수 있는 적당한 시간이 주어지기를. 내가 당하는 쪽이든 내가 견디는 쪽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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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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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아줌마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을 떨고 나서 나한테 괜히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녀를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 목숨은 그녀에게 남아 있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목숨을 소중히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볼 때 그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 P66

그제서야 나는 아줌마의 머리가 약간 이상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불행한 일을 너무 많이 겪었기 때문에 이제 그 결과가 나타날 때도 된 것이었다. 사는 동안 겪는 모든 일에는 결과가 따르기 마련이니까. - P81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심장과 머리이며, 그래서 그것들은 아주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심장이 멎으면 사람은 더이상 살 수 없게 되고, 뇌가 풀려서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 사람은 더이상 제힘으로 살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주 일찍부터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 능력이 떨어지면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게 된다. - P101

나는 마약에 대해서는 침을 뱉어주고 싶을 정도로 경멀한다. 마약 주사를 맞은 녀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대,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 P103

마약을 얻어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마약 주사를 맞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녀석들은 단박에 공짜로 주사를 놓아준다. 자기 혼자 불행해지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내게 첫 주사를 놔주고 싶어하는 녀석들은 숱하게 많았지만, 내가 뭐 남 좋자고 사는 것도 아니고, 내겐 로자 아줌마만으로도 벅찼다. 나는 나쁜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모든 것들 다해본 다음에나 그 행복이란 놈을 만나볼 생각이다. - P104

"두려워할 거 없어."
그걸 말이라고 하나. 사실 말이지 ‘두려워할 거 없다‘라는 말처럼 얄퍅한 속임수도 없다. 하밀 할아버지는 두려움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믿을 만한 동맹군이며 두려움이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서 자기의 오랜 경험을 믿으라고 했다. 하밀 할아버지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메카에까지 다녀왔다. - P112

하밀 할아버지가 없었다면 나는 뭐가 됐을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다 하밀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것이다.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 삼천을 따라 프랑스에 왔는데, 할아버지가 아직 어릴 때 삼촌이 돌아가셨지만 스스로 일어서는 데 성공했다. 요사이에야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것은 자신이 그렇게 오래 살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P126

나는 아주 먼 곳, 전혀 새롭고 다른 것들로 가득찬 곳에 가보고 싶은데, 그런 곳을 상상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공연히 그곳을 망칠 것 같아서이다. 그곳에 태양과 광대와 개들은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들은 그대로도 아주 좋으니까. 그러나 나머지는 모두 우리가 알아볼 수 없도록 그곳에 맞게 다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래봤자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사물들이 얼마나 자기 모습을 끈덕지게 고집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참 우습기까지 하다. - P127

할아버지도 이제 너무 늙어서, 알라신을 생각해줄 처지가 아니잖아요. 알라신이 할아버지를 생각해줘야 해요. - P158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고, 그것은 프랑스의 것이 아니었다. 하밀 할아버지가 종종 말하기를, 시간은 낙타 대상들과 함께 사막에서부터 느리게 오는 것이며, 영원을 운반하고 있기 때문에 바쁠 일이 없다고 했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도둑질당하고 있는 노파의 얼굴에서 시간을 발견하는 것보다는 이런 이야기 속에서 시간을 말하는 것이 훨씬 아름다웠다. 시간에 관해 내 생각을 굳이 말하자면 이렇다. 시간을 찾으려면 시간을 도둑맞은 쪽이 아니라 도둑질한 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P178

"선생님, 내 오랜 겅험에 비춰보건대 사람이 무얼 하기에 너무 어린 경우는 절대 없어요." - P271

열다섯 살 때의 로자 아줌마는 아름다운 다갈색 머리를 하고 마치 앞날이 행복하기만 하라리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열다섯 살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를 비교하다보면 속이 상해서 배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생이 그녀를 파괴한 것이다. 나는 수차례 거울 앞에 서서 생이 나를 짓밟고 지나가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를 상상했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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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20-04-09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앞의 생』은 저도 감명깊게 읽은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쓴 작가 로맹 가리에 얽힌 이야기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제가 직접 만든 영상도 있으니, 재미삼아 한번 구경해 보세요~
https://youtu.be/vKy0n0XDJ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