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박완서 읽기 3번째.

그의 데뷔작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박완서는 40의 나이에 등단햇다. 요즘이라고 해도 여자 나이 40이면 첫 시작을 하기에는 자신감이 결핍될 듯한 나이인데 1970년에 여자 나이 40에 등단을 했으니 아마도 그 때 문단에서는 약간이라도 센세이션이 되었음직하다.

 

<니목>은 박완서 작가가 취직하여 다녔던 미군PX의 경험을 일부 반영하여 쓴 소설이다. 그때 만났던 박수근 작가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20대 젊은 여성들이 전쟁이라는 참상을 어떻게 겪고 느꼈는지가 옥희도(아마도 박수근)라는 인물을 가운데 두고 그려내었다.

 

1.4후퇴 후 전쟁이 약간은 익숙해져 벼린 날에 경아는 서울의 아주 오래된 한옥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고있다. 경아는 생계를 위해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가게에서 미군을 상대로 스카프나 손수건에 그림을 그리라고 영업을 하고 정산을 하는 일을 하고 있다. 4명의 환쟁들이 일을 하고 있는 가게에 진짜 화가인 유부남 옥희도가 생계를 위해 합류한다. 전기수리공인 황태수가 경아에게 호감을 느끼며 다가오는 중인데 경아는 유부남인 옥희도에게 마음이 끌려 그를 사랑하게 되고 만다. 그것은 유부남 옥희도도 마찬가지. 서로는 각자가 가지고 있던 결핍과 불안을 잠시라도 녹여줄 그런 대상이 필요했던 것인데 마침 그 곳이 각자가 서있었던 것이다.

참담한 전쟁의 가운데 경아는 전쟁이 모든 것을 황폐화시키고서야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쩌면 어서 빨리 황폐해지기를, 그러기 전에 자기가 먼저 황폐해지기를 바라며 버티고 있는 삶이다. 그 속에서 순수한 맑은 눈빛을 한 옥희도는 경아에게 어쩌면 빨리 자신을 황폐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고 또 어쩌면 황폐해져가고 있는 자신을 구해줄 사람이라고 잠재 의식 속에서 생각했었을 지 모르겠다. 소설의 끝부분에 이유가 밝혀지긴 하지만 경아는 전쟁이 준 고통속에서 엄마를 미워하며 엄마의 모습을 한 오래된 한옥을 죽기만큼 싫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하소설이 아닌 다음에야 이야기는 크리스마스 전 어느 즈음부터 아직 그 겨울이 끝나기 전까지 겨우 몇 개월을 그렸을 뿐이다. 그런데 600페이지가 얼추 되는 제법 두껴운 책은 경아의 생각과 느낌의 절절한 묘사와 그가 바라보고 느끼는 전쟁 중 서울, 전쟁을 견뎌내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으로 가득차 있다. 그 묘사와 서술이 너무도 생생하고 박완서 특유의 생경하면서도 상상가능한 비유와 은유로 인하여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스하고 조금은 건조한 시선으로 하여 나는 오히려 익숙해져버린 그 전쟁이 한층 더 무섭게 다가왔다. '역시 전쟁은 안돼. 두 번 다시 전쟁은 절대 안돼.'라는 생각을 박 작가의 담담한 표현으로 인하여 역설적으로 전쟁과 죽음과 학살을 더 절절히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참 보수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종아하게 되었던 재미는 책인데도 첫 부분에 경아가 싱그러운 젊음을 가진 태수보다도 아이가 다섯이나 딸린 멀쑥한 옥희도에게 연정을 느끼고 사랑을 갈구할 때 나는 경아가 미웠다. "아니 젊은 아가씨가 어떻게 남의 남자를. 멀쩡한 가정을 깨려고 하나. 저 밖에 모르는 나쁜 가스나"라는 생각을 하며 주인공인데도 애착이 가지 않았고 오히려 경아를 일편단심 좋아하고 위해주는 태수를 응원하였다.

이것은 소설인데, 아니 현실일지라도 그들이 가진 감정을 제 3자가 뭐라 할 수 있겠냐마는, 유부남이라면 처음부터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있었나 보다, 나는. 경아가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의 도입부분에서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이 안되니 속도가 조금은 더뎠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아, 나는 내가 인지하고 있던 것보다 좀 많이 보수적이구나'라고.

어쨌든 나중에 경아의 그런 마음 끌림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등장하여서 그 미움으로 책을 마무리하지않을 수 있었어 좋았다.

 

국문학과를 입학하지 마자 전쟁이 일어나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23살의 나이에 결혼을 하여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육아와 가사로 전혀 글을 쓰지 못하다가 거의 20년 세월이 지난 후 박완서는 첫 작품을 내었다. 첫 작품 발표때까지 20년이 걸렸지만 첫 등단이후 박 작가는 그야말로 소설, 산문, 동화, 콩트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수많은 작품을 어느 젊은 작가 못지 않게 왕성하게 써내었다. 책 뒤에 붙은 작가 이력을 보니 그야말로 후덜덜하다. 20년 묵은 솜씨를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쓰고 소진하겠다는 결의까지 엿보였다. 그가 일생동안 써내었던 작품 수에 비하면 잘 알려진 소설은 의외로 몇 개 되지 않는 것 같다. 역시 후대에 길이 길이 이름이 남거나 혹은 시대에 두루 두루 회자되는 작품은 그만큼 어려운 가 보다. 하긴 모든 작품이 다 히트작이고 다 별 5개짜지이면 그 사람도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몇 개의 작품이라도 이렇게 오래도록 앞으로도 더 널리널리 읽힐 만한 작품을 쓰려면 역시 많이 일고 많이 써보아야 하는 것 같다. 박 작가의 두툼한 이력을 보며 누구나 다 아는 진리 하나를 또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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