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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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주의자

토크니즘이란 이렇게 역사적으로 배제된 집단 구성원 가운데 소수만을 받아들이는 명목상의 차별시정정책을 말한다. 토크니즘은 차별받는 집단의 극소수만 받아들이고서도 자별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기회가 열려있는 것처럼 보이고 노력하여 능력을 갖추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다는 기대를 주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은 이상적인 평등의 상황과는 꽤 먼 상태임에도 평등이 달성되었다고 여기는 착시를 일으킨다. - P24

누군가는 여전히 특권이란 말이 불편할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 혹은 남성으로서 이렇게 살기 힘든데 나에게 무슨 특권이 있는 거냐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불평등이란 말이 그러하듯, 특권 역시 상대적인 개념이다. 다른 집단과 비교해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유리한 질서가 있다는 것이지, 삶이 절대적으로 쉽다는 의미가 아니다.
물고기에 비유해 생각해보자. 흐르는 물결을 따라서 헤엄치는 물고기는 그 물결을 가로지르거나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보다 편하다. 하지만 물결을 따라가며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고 그저 편하다고만 할 수 없다. 삶은 어떤 모습으로든 우리를 힘들게 한다. 게다가 기회가 주어지는 만큼 과업이 따르고,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책임이 무거워지는 법이다. - P33

상대적으로 특권을 가진 집단은 차별을 덜 인식할 뿐만 아니라 평등을 실현하는 조치에 반대할 이유와 동기를 가지게 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차별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국가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쳐왔지만 주류로서 자신이 가진 특권을 인식하지 못하여 차별적인 태도를 보이는 진보 정치인을 종종 보는 것처럼 말이다. - P36

우리는 때로 의식적으로 사회적 편견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평소에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는 사람이 정장을 갖춰 입고 구두를 신을 때가 있다. 대표적으로 취업 면접을 갈 때이다..(중략)...인생에서 중요한 일일수록 그 선택은 사회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니, 최대한 안전한 결과를 얻기 위해 가장 보수적인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 P75

당신은 차별이 보이는가? 구조적 차별은 우리의 감각으로는 자연스러운 일상일 뿐이다. 그래서 인식하기 어렵다. 노예제 시대에는 노예를 자연스럽게 여겼고,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는 시대에는 그것이 당연해 보였다. ...(중략)...우리는 생각이 시야에 갇힌다. 억압받는 사람은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사회구조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불행이 일시적이거나 우연한 문제라고 생각하나다. 그래서 차별과 싸우기보다 "어쩔 수 없다"며 감수한다. 유리한 지위에 있다면 억압을 느낄 기회가 더 적고 시야는 더 제한된다. 차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민하다" "불평이 많다""특권을 누리려고 한다"며 상대에게 그 비난을 돌리곤 한다. - P79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역사적으로 억압되었던 집단이 평등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이런 현상은 반복된다. 기존의 억압을 유지하기 위한 비하성 언어와 기존의 권력에 맞서기 위해 등장한 비하성 언어가 대립하는 것이다. - P97

유머의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청중의 반응에 의해 성패가 좌우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누가 웃는가?"라는 질문만큼 "누가 웃지 않는가?"라는 질문도 중요하다. ‘웃찾사‘의 흑인 분장 사건처럼 웃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그 유머는 도태된다. 누군가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농담에 웃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런 행동이 괜찮지 않다"는 메시지를 준다.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어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최소한 무표정으로 소심한 반대를 해야 할 때가 있다. - P99

한 가지 교훈은 분명하다. 때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도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 상처를 주는 잔인한 의미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다문화는 낙인이고 차별과 배제의 용어가 되었다. - P133

우리는 꽤 자주 누군가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해 거리에서 시선을 사용한다...(중략)...거리는 모든 사람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허용된 공간이 아니다. 거리에는 살마과 행동을 규율하는 규칙과 감시체계가 있다.
즉 거리는 중립적인 공간인 듯 보이지만 그 공간을 지배하는 권력이 존재한다. 익명의 다수가 시선으로써, 말이나 행위로써, 혹은 직접적인 방해나 법적 수단을 통해 그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불온한 존재들을 단속하는 데 동참한다.
그래서 때로는 소수자가 스스로 숨어 있기로 결정한다. 소수자가 안 보이는 또 하나의 이유다. - P139

낙인을 피하기 우해 사회가 ‘정상‘ 또는 ‘주류‘로 여기는 정체성으로 보이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이를 어빙 고프먼은 ‘패싱‘이라고 부른다. - P140

권력을 가진 사람이 사용하는 싫다는 표현은 다르다. 사장이 어떤 직원을 싫다고 말할 때, 교사가 어떤 학생을 싫다고 말할 때, 이건 단순한 개인 취향이 아니며 권력관계의 변동도 아니다. 바로 권력 그 자체이다. 무사한 차별이 싫다는 감정에서 나오고, 그 감정이 누군가의 기회와 자원을 배제할 수 있는 권력으로 작동하다.
그렇기에 이성애자가 하는 "동성애자가 싫다"는 말은 동성애자가 "이성애자가 싫다"고 하는 말과 같지 않다...(중략)...말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주체 사이의 권력관계가 그 말의 의미와 결과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 P143

2005년에는 헌법재판소가 호주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부계혈통주의에 기반한 가족제도는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우려하던 사회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질서가 생겼을 뿐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혼인의 자유를 누리고 행복하게 되었으며 세상은 조금 더 평등하게 되었다. - P161

롤스에 따르면 시민 불복조잉란 "법이나 정부의 정책에 변혁을 가져올 목적으로 행해지는 공공적이고, 비폭력적이며, 양심적이긴 하지만 법에 반하는 정치적 행위"를 말한다. 단순히 법을 어긴다고 시민 불복종이 되는 것이 아니다. 대개 사람들이 법을 어길 때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남모르게 행동한다. 반면 시민 불복종은 공개적으로 위법 행동을 함으로써 대중에게 문제 상황을 알린다.
시민 불복종은 일종의 ‘말 걸기‘행위다. 매우 절실한 형태의 말걸기다. 사안의 긴급함과 중요성이 주목받지 못하고 이해되지 못할 때, 그래서 통성적인 경로를 통해 효과적으로 의견이 전달되지 않을 때 시민 불복종이 나타난다. 합법적인 수단으로는 효과가 없고, 소수자의 의제에 다수자가 무관심하거나 변화의 의지가 없을 때, 불복종의 방식으로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모으고 사안에 대해 알리는 것이다. - P166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다수자와 소수자의 자유는 같지 않다.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지적하듯, 다수자는 소수자의 의견을 거침없이 공격할 수 있다. 반면 소수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표현을 순화하고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도록 극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된다. 다수자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서 잘 말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사실상 침묵을 강요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정의는 누구를 비나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누가 혹은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은 아직 충분히 정의롭지 않고, 부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 P171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공존의 조건으로서 평등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고정된 ‘옳은‘ 삶을 규정하지 않는 이 해체의 시대가 버겁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는 인류가 지속적으로 갈구하는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왕족이나 귀족이라는 소수가 누리던 자유를 민중이라는 다수가, 그리고 다음 단계로 사회 바깥에 놓여 있던 모두가 향유하게 될 때까지 세상은 아직 더 변해야 한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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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박완서 지음 / 창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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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는 1999년경부터 2002년 중반까지 박완서 작가가 이곳저곳에서 발표했던 에세이를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펴낸 산문집이다. <두부>가 발간된 것은 2002년 10월인데 이때는 작가가 칠순하고도 2년이 된 해였다.


박완서의 산문을 보면 작가에게 평생 그리움을 안겨주었던 고향 개성 박적골과 평생 책임과 숙제처럼 남겨졌던 6.25전쟁이 없는 적이 없다. <두부>에서도 그렇다. 5부로 구성된 <두부>의 2부인 아치울 통신은 박완서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과 가장 비슷한 산과 들을 품은 곳, 아치울로 이사 가서 사는 일상을 꽃과 나무와 새들의 이야기와 함께 담아내었다. 아치울 통신이라고는 하지만 5할은 아치울에 투영된 고향의 그리움이 곳곳에 배여있다. 3부 이야기의 고향은 늘 작가가 그리워 한 고향 박적골 이야기가 이번에도 빠지지 않고 백반 집의 공깃밥과 김치처럼 얹져져 있다.


1부와 4부는 결이 좀 다르다. 노년의 자유라는 주제로 글이 모아진 1부는 칠순 즈음이 된 작가가 나이 듦과 노년의 시간에 대하여 때로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작가는 노년의 시간을 시간 속의 미아가 된 것 같다며 두려워하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세상을 가볍게 보아 넘겨도 되는 지금의 시간이 좋다며 다시는 젊음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한다. 누구나 일생에 한 번밖에 경험하지 못하는 나이 듦이기에 노련한 작가마저 노년의 시간과 자유에 대해서는 노련하지 않게 청춘을 대하는 20세 젊은이처럼 두렵고 설레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글 속에서 느껴진다.


단출하나 3개의 에피소드로 된 4부에서는 작가를 사로잡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한 명은 김윤식 평론가이고 다른 한 명은 박수근 화가이며 마지막 한 명은 이영학 설치미술가이다. 이름만 알았던 김윤식에 대하여 소소하나마 그의 인물 됨됨이를 알 수 있었고 박완서 작가의 처녀작 <나목>을 통해 이미 알았던 박수근 화가의 이야기를 소설이 아닌 산문을 통해 제대로 알게 되었으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이영학이라는 설치미술가와 그의 작품 세계를 <두부>를 통해 알았다.


박완서가 글을 잘 쓰는 소설가임은 대한민국에서 책 좀 읽어보았다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를 일컬어 한국 문학의 대표, 상징, 대모라고 해도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의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는 데에 반문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박완서의 소설을 2편 밖에 읽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재미있는 편이긴 하지만 그의 소설이 엄청나게 재미있다, 박진감 있게 흥미진진하다고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내 문학적 이해와 공감이 아직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의 재미와 흥미를 떠나서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박완서는 '글을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쓴다'라는 것이다. 그의 산문을 읽다 보면 감정의 표현과 눈에 보이는 어떤 것들의 묘사와 상황에 대한 비유와 은유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해내고 저런 묘사를 그려낼 수 있는지 감탄을 자아낸다. 그리고 당연히 알고 있던 것들을 비유와 은유로 끌어내어 작가가 쓰고자 하는 상황을 독자가 바로 글을 읽는 그 순간 바로 내 일처럼 느끼고 공감하게끔 하는데 이런 작가의 능력에 나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는 표현밖에 하지 못해서 참담한 마음뿐이다.


박완서의 책, 특히 산문집을 읽으면서 줄을 치며 읽는 부분이 많은데 그 줄친 부분이라는 것이 헤세의 <데미안>처럼 철학적 사유를 위해 두고두고 읽으려고 그은 밑줄이라기보다는 '한국어'를 이보다 더 이상 맛깔나게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은 우리 말의 아름다운 표현 때문에 그은 밑줄인 경우가 더 많다. 박완서는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의 상황에서 가장 영롱하게 빛나는 명사를 골라 또 그 영롱한 명사와 가장 잘 어울리는 동사와 형용사를 찾아내고 배치하여 한국의 정서를 가슴에 안고 한국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그의 글을 읽는다면 입으로 탄성이 절로 나고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을 만큼의 문장을 만들어 낸다. 이번 책 <두부>도 나에게는 그런 책이었는데 책을 읽다가 표현이 너무 찬란하고 처절해서 줄을 긋다가 긋다가 온통 줄을 그어 댄 통에 나는 중간쯤 가다가 그만 줄 긋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두부>의 1부 노년의 시간에서는 시간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세월에 대한 느낌을 쓴 것들이 많았는데 나도 어느덧 중년이 되고 나이 듦을 몸으로 마음으로 절절히 체험할 때이다 보니 그 어느 글보다 가슴에 와닿고 줄 칠 부분이 많았다.


노을이 너무도 핏빛으로 선열하여 영웅호걸의 낭자한 출혈처럼 비장할 적이 있는가 하면, 가인의 추파처럼 요요할 적도 있다 ... 아침에도 노을이 지지만 그건 곧 눈부신 햇살을 거느리기 때문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잊힌다. 그러나 저녁노을은 언제 그랬더냐 싶게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끝이 어둠이기에 순간의 영광이 더욱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집착 없음 때문이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까닭 (p136-137)



어느 늦은 가을 해 질 녘, 서쪽 하늘의 불타는 듯한 저녁노을을 보고 '처절하게 붉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내 표현이 성에 차지 않았었다. 그런데 박완서의 '영웅호걸의 낭자한 출혈처럼 비장'하고 '가인의 추파처럼 요요하다'라는 언어 사용의 적절성을 보고 박 작가를 통해 국어의 아름다움과 글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집착에 매여 있기에 내 저녁의 노을이 아름다운 줄 아직 알지 못하겠다. 아니, 눈으로만 아름다움을 알되 가슴으로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이 맞겠다. 아직은 조금 더 치열한 중년을 보내고자 한다. 그러고 난후 이십 년하고도 몇 년이 더 지날 때쯤이면 나도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의 진정한 아름다움의 이치를 알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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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박완서 지음 / 창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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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ㄴㄹ

내가 정말로 보고 싶었던 것은 옥살이하는 그도, 재판받는 그도 아닌, 한모의 두부를 향해 고개 숙인 그, 입술 주변에 허연 두부파편을 붙인, 적나라하게 초라해진 그였다. - P29

젊은이는 고분고분 두부를 받아먹으면서 먹물처럼 계속해서 어둠을 풀어내고 있었다. - P31

그런 날이 오기전에 그가 먼저 세상을 떴고, 그가 땅에 묻힐 때 그 옆에 내 자리까지 잡아놓고 나니, 내 여생은 6.25같은 국난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한눈 팔 것도 샐 구멍도 없이 막힌 길이나 다름없었다. 나느 그 빠져나갈 길 없는 정해진 통로에 문득문득 공포를 느꼈다. 그건 죽음의 공포하고는 또다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따분한 시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이렇게 메마르고 삭막해도 되는 것일까. - P41

노망이란 무엇일까? 돌이킬 수 없는 옛날을 돌이킬 수 있을 것처럼 여기는 착란, 변하게 되어 있는 것을 안 변하는 것으로 붙잡아두려는 고통스러운 망상, 죽음이 보이는 시점에서 어린시절로 돌아가려는 퇴영에 지나지 않는 것을. - P43

건강한 육신에도 얼마든지 망령된 생각이 깃들이는데 나이와는 상관없이 상상력이 자유롭고 또 그걸 곧장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졋다는 건 얼마나 축복인가. - P47

나처럼 오랫동안 변치 않은 고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것만도 얼마나 큰 복인가. 그리고 그건 나에게 맞는 복이었다. 만약 내가 고향을 방문할 수 있게 된다면 그날이 바로 마음속에 있는 내 고향, 이상화된 농경사회의 평화와 조화를 상실하는 날이 될 게 뻔하지 않은가. 어떻게 변했나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보아버리면 다시는 안 보았을때로 돌아올 수 없을 테니까. 일단 글을 깨치고 나면 문맹산태가 되는것이 불가능하듯 말이다. - P51

병을 앓고 있다고 하지 않고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병다운 고통이나 자각증상이 거의 없는 대신 남이 눈치채지 않도록 고이 간직해야 하는 부담감이 소유의 불편과 맞먹기 때문이다. - P53

처음 그 병의 진단을 받고 선뜻 믿기지 않았던 것은, 아니 벌써 성인병이라니. 하는 아직 젊은 마음 때문이었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어차피 노년의 문지방이란 누구나 그렇게 떠다밀리듯이 넘게 되어 있는 게 아닐까. - P55

대개 성인병의 내방을 받는 것은, 제 몸 안 돌보고 길러낸 자식들이 제각기 거들먹거리며 부모 슬하를 떠나갈 무렵이다. 애면글면 돌보고 사랑하고 책임져야 할 대상이 없어진 허탈감을 메워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자신의 몸이 그 존재를 드러낸다. - P56

나는 이제 소주 한잔에 삼겹살 한점을 먹고 싶어도 그 전에 내 몸의 눈치를 보며 비굴하게 아부까지 해야 한다. - P56

옛날사람이면 늙은이보다도 더 오래된 사람이 아닌가. 나는 현란하게 흥청대는 첨단의 소비문화 한가운데서 미아가 된 것처럼 우두망찰했다. 그때 그 미아의 느낌은 공간적인 게 아니라 시간적인 거여서 어딜봐도 귀로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 막막하고 절망적인 것이었다. - P68

실루엣만으로도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는 게 바로 피붙이의 징그러움이다. 달려가 어딜 싸돌아다니다가 이제 오냐고 다짜고짜 때리기부터 한다. 내 손바닥의 아픔으로 내 새끼의 존재를 확인해야만 비로소 타들어가던 애간장이 스르르 녹게 된다... 최고의 엑스터시도 육신을 통하지 않고는 이를 수 없는 걸 어이하리 - P75

담장 밖 시냇가에 황금갑옷을 입은 듯 장엄하게 물들엇던 은행나무가 엊그저께 아침에 보니 마지막 잎새도 안 남기고 황량하게 옷을 벗어던져 내가 본 찬란한 영광이 꿈인 듯 허전하더니, 살구나무는 천천히 질 모양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뚝뚝 떨어지는 낙엽은 은행나무처럼 찬란하지 않은 소박한 누런색이지만, 가지 끝의 잎들은 부끄럼 타듯이 살짝 붉다. - P78

차가 긴 강변북로를 벗어나 구리 쪽으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진지한 가로수가 나타났다. 평소 무자비할 정도로 뭉턱뭉턱 전지한 가로수를 꼴 보기 싫어했는데 하나같이 박수근이 그린 겨울나무들이 거기 나와 서 있는 것처럼 반갑고 정겨웠다. - P97

잎과 꽃과 열매까지 포함해야 나무의 전체가 되는 줄 알았다. 이제 보니 그것들을 다 떨구고 맨몸으로 서 있는 나목이야말로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없다는 게 바로 저런 게 아닐까 싶게 거침없이 당당하고 늠름해 보엿다. 나무의 맨몸의 아름다움에 배하면 꽃이나 잎은 한낱 가식이나 방편에 지나지않은 것처럼 부질없게 여겨졌다. 사람도 만일 일생 쓰고 살던 위선이나 허위를 떨어버릴 수 있다면 무엇이 남을까. - P98

흙의 에센스가 바로 이런 거다 싶은 강한 냉이맛이 수액처럼 고루 펴지면서 마치 내가 한그루 나무가 된 양 싱그러워지는 걸 느꼈다. - P106

기상이변이란 바로 하늘을 믿을 수 없는 것이고, 하늘을 믿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원초적인 공포감을 자아내는 것도 없다. 덮어두엇던 죄의식까지 불러내기 때문이다. - P116

한결 성기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굵은 빗줄기는 마치 은빛 회초리처럼 대지를 향해 강한 적의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P119

가을이 산을 내려오고 있다. 대총봉이나 내장산처럼 자지러지는 단풍은 아니었지만 산정에만 드문드문 보이던 황갈색이 어느 틈에 중턱까지 퍼졌다. 봄은 기를 쓰고 올라가더니 가을은 이렇게 신속하게 내려오고 있다. - P132

내 안에는 아직도 내 힘으로는 다스려지지 않는 떨림이 남아있다.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모진 세상, 미지의 운명 앞에 이리도 알몸인듯 시린가. - P134

노을이 너무도 핏빛으로 선열하여 영웅호걸의 낭자한 출혈처럼 비장할 적이 있는가 하면, 가인의 추파처럼 요요할 적도 있다. - P136

아침에도 노을이 지지만 그건 곧 눈부신 햇살을 거느리기 때문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잊혀진다. 그러나 저녁노을은 언제 그랫더냐 싶게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끝이 어둠이기에 순간의 영광이 더욱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집착 없음 때문이다. - P137

소설은 허가맡은 거짓말 - P202

늙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산천이나 초목처럼 저절로 우아하게 늙고 싶지만 내리막길을 저절로 품위잇게 내려올 수 없는 것처럼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이 나이가 좋다. 마음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안하고 싶은 건 안할 수 있어서도 좋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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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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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아는, 하지만 이름은 모르는, 도서관에서 몇 번 스치다가 서로의 얼굴이 익숙해진 그냥 아는 사람이 적극 추천하였다. 굉장히 감명깊게 읽었어요. 한번 읽어보세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님의 헌신으로 어렵게 대학을 마쳤습니다. 탁월한 수업태도와 성적으로 석박사를 취득하고 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은행장 출신의 아버지를 둔 양가집 규수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여 어여쁜 딸도 하나 낳았습니다. 1,2차 세계 대전이라는 불안한 세계 정세 속에서도 열심히 학문을 연마하여 수많은 논문을 제출하였고 책도 몇 번 출간하였습니다. 동료 교수의 시기와 질투로 강단에 서는 것에 애로가 많았지만 끈기와 인내로 잘 극복하였습니다. 평범한 사람인지라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고 옆길로 새기도 했지만 대학의 정년보장 교수직을 무사히 마치고 명예로운 은퇴를 하였습니다.


줄거리를 쓰고보니 스토너씨의 삶은 통속적인 기준으로 볼때 전혀 소설감이 아니다. 어찌 보면 전형적인 자수성가한 가난한 집 아들의 성공기 혹은 일대기쪽이 더 가까울 수도. 그래서일까? <스토너>는 1965년 존 윌리엄스에 의해서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의 삶이 가진 평범성과 일반성때문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스토너씨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에는 1965년 즈음 미국을 비롯한 세상의 시대상황은 용광로 속 불꽃이었고 땅 속 마그마를 곧 내뿜으려는 활화산이었다. 스토너씨는 50년동안 책 속에 잠들어있다가 2015년 어느 날 세상과 다시 조우했다. 이제는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씨를 만나고자 한다.


20세기에 왜 스토너씨는 사람들에게 잊혀졌고 21세기에는 무엇때문에 사람들에게 소환되고 기억되어질까?




- 스토너는 대학에 입학해서 생활비와 숙식비를 버느라 알바와 공부를 병행했다. 부족한 실력에 조바심이 일었지만 공부시간은 늘 모자랐다. 그가 일하는 시간 역시 고용주가 게으름을 피우는 시간만큼 늘어갔기(p17) 때문이었다.


- 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앞두고 친구들이 입대를 결정할 때 스토너는 그때까지 내면을 성찰하는 버릇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와 동기를 찾아 헤매는 일이 힘들뿐만 아니라 살짝 싫다는 생각도 들었지만입대를 않고 남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나자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p55)


- 친구가 많지 않았던 스토너의 대학에 로맥스라는 새로운 교수가 부임해왔다. 스토너는 로맥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젊은 시절의 어색함과 서투름은 아직 남아 있는 반면, 어쩌면 우정을 쌓은데 도움이 되었을 솔직함과 열정은 사라져 버린 탓이었다. (p133)


- 영문학과 교수가 되어 강의를 시작한 스토너는 학문에서 느끼는 감정과 강의실에서 전달하는 내용사이에 커다란 틈이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경험이 쌓이면 그 틈이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자각때문에 너무 고민한 나머지 이제는 그 고민이 습관이 되어 구부정한 어깨만큼이나 그의 일부가 되었다(p158)


- 교수로서 아버지로서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인생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스토너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고 알고있던 것들이 머리에서 싹 비워지는 것을 느꼈으며 의지력이 모든 힘을 잃어버리는 것 같기도 한 상태, 자신이 식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을 찔러 활기를 되찾아 줄 뭔가를 갈망했다. 고통이라도 좋았다. (p251)


- 스토너는 젊었을 때는 잘 생각해보지도 않고 거리낌없이 열정을 주었다.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p353)


- 세월은 흘러 스토너도 은퇴할 때가 되었다. 이른 은퇴를 권유하는 고든에게 스토너는 대답했다.시간이 생겨도 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걸세. 그런 걸 배운적이 없으니까.(p355)


- 생의 끄트머리에서 스토너는 남들 눈에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우정을 원했고 사랑을 원했으며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꾸었다.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스토너는 자신에게 물었다.넌 무엇을 기대했나?(p387)




세속에서 말하는 영웅의 삶도 아닌 스토너씨.

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일 수도 있고,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 교수님일 수도 있으며, 어제 회의실에서 크게 깨지고 저녁에 술 한잔 같이 기울인 상사일 수도 동료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스토너씨는 오늘 회사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매 순간순간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있는 바로 나 일수도 있다.


책의 초반에는 흔하디 흔한 모습에 '이게 소설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오래동안 꺼내보지 않은 일기장'을 들춰보는 듯 호기심과 익숙함이 교차되었지만 어느덧 중반을 지나다보면 호기심은 공감으로, 익숙함은 친근감으로 바뀌어 내처 소설을 계속해서 읽고 있는 나를 별견하게 된다.


스토너씨가 겪은 일상, 스토너씨가 품던 고민은 현재 내가,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다. 그래서 별 것 아닌 것 같던 스토너씨의 인생은 책의 후반을 달려갈수록 별 것이 되었다. 지금 사람들이 스토너씨에게 끌리는 것은 내가 별 것일 수 있다는 위로와 공감덕분이리라.


생의 끄트머리에서 스토너씨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씨를 보내면서 나도 나에게 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리고 무엇을 기대할거냐?



해답을 찾으려 독서를 하지만, 독서는 끊임없이 질문만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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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09-2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비슷한가봐요......개인이 가지고 있는 개별성도 물론 존재하지만 인간 자체의 본연의 모습들을 서로 바라볼때 마음속의 큰 위로와 위안을 받을 때가 많은 것 같아요 ^^

올 초에 사두고 아직 읽지 않았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읽어야 겠네요 ^^
리뷰 감사해요.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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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는 젊은 나이였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부모는 항상 늙은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서른 살 때 이미 쉰 살처럼 보였다. 노동으로 인해 몸이 구부정해진 아버지는 아무 희망 없는 눈으로 식구들을 근근이 먹여 살리는 척박한 땅을 지긋이 바라보곤 했다. 어머니는 삶을 인내했다. 마치 생애 전체가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긴 한 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P9

집은 대략 정사각형 모양이었으며, 칠을 하지 않아 맨살이 드러난 포치와 출입문 주의의 목재들은 축 늘어져 있었다. 오랜 세월동안 이 집은 마른 땅의 색깔을 닮아갔다. - P10

스토너는 집에서 하는 허드렛일보다 조금 덜 피곤한 허드렛일을 하듯이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 P10

그가 일하는 시간은 고용주가 게으름을 피우는 시간만큼 늘어났다. - P17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이 한참 동안 숨을 멈추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허파에서 숨이 빠져나갈 때마다 옷이 움직이는 것을 세심하게 인식했다. 그는 슬론에게서 시선을 떼어 강의실 안을 둘러보았다.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온 햇빛이 동료 학생들의 얼굴에 안착해서, 마치 그들의 안에서 나온 빛이 어둠에 맞서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한 학생이 눈을 깜빡이자 가느다란 그림자 하나가 뺨에 내려앉았다. 햇빛이 뺨의 솜털에 붙들려 있었다. 스토너는 책상에 꽉 붙들고 있던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그 갈색 피부에 감탄하고, 뭉툭한 손끝에 꼭 맞게 손톱을 만들어준 그 복잡한 메커니즘에 감탄했다. - P22

그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그리고 이때 생전 처음으로 그는 고독을 느꼈다. 밤에 다락방에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어두운 방구석을 바라볼 때가 있었다. 램프의 불빛이 구석의 어둠에 맞서 너울거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열심히 바라보고 있으면 어둠이 빛 속으로 모여들어 그가 읽던 책에 나오는 상상의 모습들을 펼쳐 보였다. 그러면 자신이 시간을 초우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강의 중에 아처 슬론이 말을 걸었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과거가 어둠속에서 빠져나와 한데 모이고, 죽은 자들이 그의 앞에 되살아났다. 그렇게 과걱와 망자가 현재의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로 흘러 들어오면 그는 순간적으로 아주 강렬한 환상을 보았다. - P26

그는 자신의 장래를 수많은 사건과 변화의 가능성의 흐름이라기보다 탐험가인 자신의 발길을 기다리는 땅으로 보았다. ...(중략)... 장래에 자신이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장래 그 자체가 변화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변화의 도구라고 보았다. - P38

하지만 윌리엄은 부모에게 아무 할 말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와 그의 부모는 벌써 낯선 타인들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그는 이런 상실감 때문에 사랑이 더 커졌음을 느꼈다. - P39

그는 가을학기가 시작되기 전 일주일 동안 강의계획을 짜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보게 마련인 가능성들을 보았다. - P40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되네. 인류가 겪은 패배와 승리 중에는 군대와 상관없는 것도 있어. 그런 것들은 기록으로도 남아 있지 않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할 때 이 점을 명심하게. - P54

그에게는 지금까지 내면을 성찰하는 버릇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와 동기를 찾아 헤매는 일이 힘들 뿐만 아니라 살짝 싫다는 생각도 들엇다. 자신이 자신에게 내놓을 것이 거의 없다는 생각, 내면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 또한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내 결정을 내리고 나자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 P55

전에는 죽음을 문학적 사건 또는 불완전한 육체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조용하게 마모되어 가는 과정으로 생각했다. - P59

그는 데이브와 그랬던 것처럼 로맥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이런 마음을 스스로 인정한 뒤에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젊은 시절의 어색함과 서투름은 아직 남아 있는 반면, 어쩌면 우정을 쌓은데 도움이 되었을 솔직함과 열정은 사라져버린 탓이었다. - P133

그는 잔신이 영문학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강의실에서 전달하는 내용 사이에 커다란 큼이 있음을 항상 의식하고 있었다. 그때는 시간이 흘러 경험이 쌓이면 그 틈이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가장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감정들이 강의에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생기가 넘치던 것들이 그가 하는 말 속에서 시들어버렸고, 그에게 가장 감동을 주었던 것들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이처럼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자각 때문에 너무 고민한 나머지 이제는 그 고민이 습관이 되어 구부정한 어깨만큼이나 그의 일부가 되었을 정도였다. - P158

하지만 그의 머리는 그가 원하는 곳으로 이끌려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수년 전부터 읽으려고 마음먹고 있던 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머리는 그가 원하는 곳으로 이끌려 가려고 하지 않았다. 생각은 그가 들고 있는 책에서 멀어져 방황했고, 그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마치 그가 알고 있던 것들이 때로 머리에서 싹 비워져 버리는 것 같았다. 그의 의지력이 모든 힘을 잃어버리는 것 같기도 했다. 가끔은 자신이 식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자신을 찔러 활기를 되찾아줄 뭔가를 갈망했다. 고통이라도 좋았다. - P251

"그렇게 걱장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이 말을 학 나자 갑자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 P264

나이 마흔 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 P272

젊었을 때는 잘 생각해보지도 않고 거리낌 없이 그 열정을 주었다. 아처 슬론이 자신에게 보여준 지식의 세계에 열정을 주었다. 그게 몇 년전이더라? 어리석고 맹목적이었던 연애시절과 신혼 시절에는 이디스에게 그 열정을 주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도 주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열정을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엇다. 하지만 지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 P353

시간이 생겨도 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걸세. 스토너가 말했다. 그런 걸 배운 적이 없으니까. - P355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잔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우정을 원했다. ...(중략)...그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열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중략)...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 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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