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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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고 배움을 구하는 것은 매번 좋다. 나라면 하지 않을 것들은 다른 이와 새로운 배움을 통해서 접하게 된다. 저변의 확대이다.

 

심리책이나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다. 고로, '당신이 옳다'도 혼자라면 선택하지 않았었을 책이다. 공교롭게도 하나의 배움과 또 하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 나는 이 책을 읽어낼 수 밖에 없었다.

 

'적정심리학', 이 얼마나 적정한 말인가. 현대심리학과 정신의학은(난 실은 잘 모르지만) 많이 치우쳐져 있는 것 같고 극단으로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도 같아 보인다. 프로이드, 융, MBTI 애니어그램 등등. 이제는 지식이라기 보단 상식과 보통명사처럼 되어버린 심리학 용어와 마음, 치유, 소통, 공감 등의 언어들. 이 넘쳐나는 상식과 명사들이 자주 내 맘을 혹은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것들은 정하지 못하고 지식과 주장에 의하여 '너 감정은 이런 거야. 이쪽에 가까워. 그러니 이렇게 해야 돼'라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적정'심리학이라는 이름이 우선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든 이름처럼, 책의 내용도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공감이라는 것을 잘 정의내려주는 것 같고 공감의 방법론까지 잘 설명해주었다. 이론은 늘 좋다. 문제는 실천이지.

 

나는 이 책에서 두 부분이 내 마음을 건드렸다.

"이는 자기 존재의 상태를 주목해 주고 알아주는 사람을 찾지 못한 채 기진맥진한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 옆의 어른들은 수건 돌리기하듯 아이의 고통을 다음 사람에게 순차적으로 넘기고 있었던 셈이다. 상담 교사는 부모에게, 부모는 정신과 의사에게, 정신과 의사는 약물치료와 다음 만남으로 공을 넘겼다. 이런 행태는 ‘일상의 외주화‘이다. - P76"

 

큰아이가 중2였을 때 아이도 힘들어했고 그 때문에 나도 힘들었다. 당시로 나이 50이 넘으셨던 여자 담임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약간 산만한 문제아 취급을 하셨을 때인데 학교에서 해마다 하는 우울증 검사, 심리 검사같은 것을 했는데 아이의 결과지가 좀 심각하게 나왔다고 한다. 어느 날, 학교 상담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하시는 말씀이 우리 아이가 자살징후를 보이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으니 병원을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놀란 가슴에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아이의 학교 생활을 물어보고 담임의 의견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담임은 자기도 결과지를 보고 놀래서 상담선생님께 결과를 넘기고 학부모와 연락해보라고 했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러니, 아이의 결과지를 보고 담임은 상담선생님에게 상담선생님은 학부모인 나에게 넘긴 것이었다. 상담선생님은 학부모인 내가 의사에게로 넘길 것을 당연히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담임이나 상담선생님 그 누구도 아이를 불러서 대면하여 결과지를 놓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애가 사춘기를 심하게 앓고 있긴 해서도 그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기에 학원을 마치고 오는 아이에게 대놓고 물었고 이야기를 하였다. 아이말인 즉슨, 담임선생님이 자기와 자기 친구들을 문제아 및 말썽쟁이로 취급하길래 미운 마음에 고생좀 해보시라고 심리검사 때 일부러 우울한 쪽으로 체크를 했다고 하면서 자신은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으니 엄마는 걱정하지 말고 회사 생활이나 잘 하라고 이렇게 엄마에게까지 학교에서 연락오고 할 줄은 생각못했다고 오히려 내가 놀랬을까봐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담임선생님과 상담선생님이 한 행동이 바로 '일상의 외주화'였을 것이다. 비단 이 분들 뿐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에 너무 열심인 나머지 어떤 문제 하나가 발생하면 스스로 정면 돌파를 하기보단 그 문제를 외주주려고 하는 경향을 많이 보인다. 일상이 힘들어서 발생한 문제들이 나의 일상을 더 힘들게 하고 내 몸과 정신을 귀찮게 하기 때문에 내버려두던지 아니면 외주를 주는 것이다. 나도 많은 부분 외주를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아이가 중2였을 때 그러지 않았던 것이 나 자신에 이 부분을 읽으면서 너무 대견하였다.

 

또 다른 한 부분은 다음 대목이다.

언제나 나를 놓쳐선 안 된다. 언제나 내가 먼저다.
...중략...
공감은 내 등골을 빼가며 누군가를 부축하는 일이 아니다. 그 방식으론 상대를 끝까지 부축해 낼 수 없다. 둘 다 늪에 빠진다. 공감은 너를 공감하기 위해 나를 소홀히 하거나 억압하지 않아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 P120

 

당신이 옳다는 제목은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의 감정은 옳다 그러니 그 감정을 우선적으로 인정해야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로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어져 살기 위해서 때로는 자기 감정을 숨기고 헛된 미소와 치장된 말로 남들을 기쁘게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집에 돌아와서 내가 뭐하는 짓인가하며 그 공허한 시간을 아까워 한다. 반면에, 때로는 솔직한 내 감정을 드러내놓고서는 내 감정에 혹시 다른 사람이 속상했을까 안절부절하며 그들의 표정을 살피기도 한다. 돌아와서는 '그 때 그 말을 하면 안되는 거였어 조금만 누르고 참으면 될걸'하고 실제로는 솔직했던 내 감정을 후회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한 '당신이 옳다'는 명제와 '언제나 내가 옳다'는 명제는 위의 이러한 상반된 두 가지 상황에서 다 적용하며 내 마음의 주관을 세울 수 있는 명제였다. 전자의 경우이든 후자의 경우이든 모두 다 그 마음은 옳았다. 내 맘 뿐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도 다 옳다. 그 옳은 마음들은 함께 이야기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 가진 마음이 찝찝했던 것이다.

듣기에 따라 애매모호할 수도 있겠으나 내 맘도 옳고 그 맘도 옳다는 명제를 정신과 의사에게서 확인받고 나니 더할 나위 없이 내 맘이 편해졌다.

 

평소 내가 선호하는 종류의 책은 아니었으나 모든 것에서 베울 것이 있는 법이다. 나는 과거 내가 잘했던 부분을 기억하며 뿌듯해 하였고 어지러웠던 내 감정의 원인도 나름 정리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이 책에서 얻는 배움은 또 흐릿해지겠지만 흐릿해져도 흔적은 남을 것이라는 것은 믿는다. 흐릿해져서 흔적조차 가물해지면 이 감상문을 다시 찾아오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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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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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든 늙든 우리가 왜 이렇게 아픈지 이젠 알 것 같다. 자기 존재에 주목을 받은 이후부터가 제대로 된 내 삶의 시작이다. 거기서부터 건강한 일상이 시작된다. - P47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 P50

다 가진 자는 금은 넘쳐나는데 쌀은 한줌도 없는 이상한 기근을 겪는다. 금이 없어도 쌀이 있으면 살 수 잇지만 금이 산더미같이 있어도 쌀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존재에 대한 주목이 삶의 핵심이라는 사살을 모르고 질주하다 보면 현실에선 아무 쓸모도 없는데 사이버 세상에선 떼부자인 다 가진 자처럼 되기 십상이다. - P67

의사는 심리 검사를 해야 한다, 우울증이다, 약을 먹아야한다는 의학적 판단에 집중하느라 예전에 엄마가 그랫던 것처럼 아이의 존재 자체에 주목하는 일을 뒤로 미뤘을 가능성이 있다. (중략) 의사뿐 아니아. 상담 교사는 자살 충동이라는 지표에서 겁을 먹었고 엄마에게 배턴을 넘겼다. 엄마는 더 나은 전문가를 찾는 일에 매달렸고 의사에게 다시 배턴을 넘겼다. 그러는 동안 교사와 엄마의 시선에서 아이는 사라졌다. - P73

아이는 자기 존재의 상태를 주목해 주고 알아주는 사람을 찾지 못한 채 기진맥진한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 옆의 어른들은 수건 돌리기하듯 아이의 고통을 다음 사람에게 순차적으로 넘기고 있었던 셈이다. 상담 교사는 부모에게, 부모는 정신과 의사에게, 정신과 의사는 약물치료와 다음 만난ㅁ으로 공을 넘겼다. 이런 행태는 ‘일상의 외주화‘이다. - P76

인간의 마음이나 감정은 날씨 같다. 춥기도 하고 덥기도 하고 화창하고 맑다가 바람이 불기도 하고 태풍이 몰아치기도 한다. 예고 없이 지진이 일어나기도 하고 쓰나미가 덮치기도 한다. 그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무지개가 걸린다. 모른 체하는 데 일등이 있다면 날씨가 그렇다...중략...감종도 그렇다. 슬픔이나 무기력, 외로움 같은 감정도 날씨와 비슷하다. 감정은 병의 증상이 아니라 내 삶이나 존재의 내면을 알려주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중략...그러므로 우울은 질병이 아닌 삶의 보편적 바탕색이다. - P86

무기력은 은회 후 우울증이라는 병인가. 해결하고 극복할 과제인가. 아니다.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순하게 수용해야 할 삶의 중요한 감정이다. 은퇴 후에 이런 감정이 없다면 그게 외려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다. 퇴직 후에도 여전히 방부제를 많이 넣어서 썩지 않는 햄버거처럼 퇴직이라는 삶의 자연적인 흐름을 무언가로 계속 막다 보면 결국에는 터진다. 어차피 한 번은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할 섦의 중요한 숙제를 계속 뒤로 미루다 보면 이자까지 붙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 P87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직장 생활은 과장하자면평생 감옥에 있다 출소하면서 눈부신 햇빛에 눈을 찡그리는 출소자같은 상태다. 감방을 나온 사람의 눈동자에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홍채라는 조리개 기능으로 일단은 차단하듯, 너무 많은 시간과 자유와 자극으로부터 당분간은 주춤거린 채 있어야 한다고 알려주는 신호다. - P88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감정들은 삶의 나침반이다. 약으로 함부로 없앨 하찮은 것이 아니다. 약으로 부조건 눌러버리면 내 삶의 나침반과 등대도 함께 사라진다. 감정은 내 존재의 핵이다. - P92

내 생각이 옳은가 아니면 내 감정이 옳은가. 감정이 항상 옳다. ‘나‘라는 존재의 핵심이 위치한 곳은 내 감정, 내 느낌이므로 ‘나‘의 안녕에 대한 판단은 거기에 준해서 할 때 정확하다. - P103

내 직장 이야기보다 직장에 대한 나의 느낌이 더 나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내 취향이나 기호도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도 내 몸에 걸친 옷이나 액세서리에 해당하는 것이다. 내 견해나 신념, 내 가치관도 그렇다. 내 견해, 신념, 가치관이라 함주어 말하는 것들 대부분 사실 그 시원은 ‘나‘가 아닌 다른 곳에서 유입된 것이 대부분이다. - P104

내 상처의 내용보다 내 상처에 대한 내 태도와 느낌이 내 존재의 이야기다. 내상처가 ‘나‘가 아니라 내 상처에 대한 나의 느낌과 태도가 더 ‘나‘라는 말이다. - P105

언제나 나를 놓쳐선 안 된다. 언제나 내가 먼저다.
...중략...
공감은 내 등골을 빼가며 누군가를 부축하는 일이 아니다. 그 방식으론 상대를 끝까지 부축해 낼 수 없다. 둘 다 늪에 빠진다. 공감은 너를 공감하기 위해 나를 소홀히 하거나 억압하지 않아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 P120

공감은 그저 들어주는 것,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듣는 일이다. 정확하게라는 말은 대화의 과녁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다. 공감에는 과녁이 있다......공감적 대화의 과녁은 언제나 ‘존재 차제‘다. - P132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과 공감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성취에 대한 인정과 주목을 존재에 대한 주목이라고 생각해서 그것에 매달리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먹어도 기대만큼 포만감이 없다. 물론 존재 자체에 대한 공감도 없고, 오른 석차에 대한 반응도 없는 무관심보다는 낫다. 하지만 밥 없이 반찬으로만 배를 채운 사람처럼 아무리 많이 먹어도 편안한 포만감이나 포만감으로 인한 안정감이 없다. 반찬으로만 채운 배는 한계가 있다.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과 공감은 갓 지은 밥 같은 것이다. 잘 지은 밥이 있으면 간장 하나만 가지고도 든든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밥이 기본이라서다.
공감은 누군가의 불어난 재산, 올라간 직급, 새로 딴 학위나 상장처럼 그의 외형적 변화에 대한 인정이나 언급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한 그 사람 자체, 그의 애쓴 시간이나 마음씀에 대한 반응이다. - P142

내 공감을 포갤 곳은 생각과 행동이 아니라 마음, 즉 감정이다.
...중략...
자기 마음이 공감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기가 감당해야 할 몫이나 대가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자기 마음이 온전히 수용되었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항상 옳다‘는 명제는 언제나 옳다. - P161

그러나 성인 간의 관계는 다르다.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지만 나만 잘한다고 되지 않는다. 상대가 감당해야 할 몫도 있다. 그것까지 내가 짊어질 이유는 없다.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 어떤 관계에서든 납득할 수 없는 심리적 갑을 관계가 일방적이고 극단적으로 계속된다면 이런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것이 더 건강하다. 우선 내 건강성을 지켜야만 나중을 기약할 수도 있다. - P171

공감은 모 아니면 도가 아니다. 엄마가 담배 피우는 것을 허용하고 공감해 줬다고 담배까지 사다 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담배를 사다 주지 않았다고 담배 피우는 것을 허용한 엄마가 아닌 것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두 사안은 별개다. - P195

사람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껴야 자신이 놓인 상황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 공감에 제한을 둘 필요는 없다. 사람은 믿어도 되는 존재다. 사랑하는 사람의 유일한 역할이 그것이다. 온 체중을 다 실어 아이를 믿어주면 그게 어떤 일이든 본인이 오히려 ‘내가 너무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는 건 아닌가‘ 열심히 고민한다. 안전하면 입체적이고 온전한 성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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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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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있는 재료만 가지고 거기 맞춰 집을 짓듯이 기억을 꾸미거나 다듬는 짓을 최대한으로 억제한 글짓기를 해보았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집의 규모와 균형을 위해선 기억의 더미로부터의 취사선택은 불가피했고, 지워진 기억과 기억사이를 자연스럽게 이어 주기 위해서는 상상력으로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작가의 말중에서 - P6

저녁 노을이 유난히 새빨갰다. 하늘이 낭자하게 피를 흘리고 있는 것같았다. 마을의 풍경도 어둡지도 밝지도 않고 그냥 딴 동네 같았다. 정답던 사람도 모닥불을 통해서 보면 낯설듯이. - P28

사랑마당과 뒷간이 있는 텃밭사이를 흐르는 개울은 뒤란 개나리 울타리 밖을 휘돌아 내려오는 거였다. 뒤란은 또한 안방 머리맡이기도 해서 장마철엔 물소리가 콸콸 시끄럽게 들렸다. 보통 때는 조잘대는 것처럼 유쾌하게 들릴 적도 있고, 졸졸졸 귀기울여도 들릴락 말락 할 적도 있었다. 그러나 물이 넘치거나 마른 적은 없었다. 겨울에도 가장자리만 얼고 가운데는 쉬지 않고 흘렀다. 가장자리의 얼음장은 별의별 신기한 무늬로 아롤겨렸었다. 추운 줄도 모르고 환상적인 모양의 살얼음을 깨트려서 입 속에 넣고 아삭거리면 핏줄까지 씻겨 내려가는 것처럼 상쾌했다. - P57

가장자리에선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일이 잘 보였고. - P73

나는 숨넘어가는 늙은이처럼 헐벗고 정기 없는 산을 혼자서 매일 넘는 메마른 고독을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추억을 만들고, 새울 아이들을 경멸할 구실을 찾았다. - P76

더위가 퍼지기 전 이른 아침 이슬이 고인 풍성한 이파리 밑에 수줍게 누워 있는 애호박의 날씬하고도 요엄한 자태를 발견했을 때의 희열은 또 어떻고. 못생긴 걸 호박에 비기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 사람들이 지어 낸 말이다. 늙은 호박에 비한 거라고 해도 그건 불공평하다. 사람도 의당 늙은이하고 비교해야 할진대 사람의 노후가 늙은 호박만큼만 넉넉하고 쓸모있다면 누가 늙음을 두려워하랴. - P97

내 꿈의 세계 창 밖엔 마루나무들이 어린이 려람실의 단층 건물보다 휠씬 크게 자라 여름이면 그 잎이 무수한 은화가 매달린 것처럼 강렬하게 빛났고, 겨울이면 차가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힘찬 가지가 감화력을 지닌 위대한 의지처럼 보였다. 책을 읽는 재미는 어쩌면 책 속에 있지 않고 책 밖에 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창 밖의 하늘이나 녹음으로 보면 줄창 봐 온 범상한 그것들하곤 전혀 다르게 보였다. 나는 사물의 그러한 낮섬에 황홀한 희열을 느꼈다. - P135

그때까지의 독서가 내가 발붙이고 사는 현실에서 붕 떠올라 공상의 세계에 몰입하는 재미였다면 새로운 독서 체험은 현실을 지긋지긋하도록 바로 보게 하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 P181

감수성과 기억력이 함께 왕성할 때 입력된 것들이 개인의 정신사에 미치는 영향이 이렇듯 결정적이라는 걸 생각할 때, 나의 그런 시기의 문화적 환경이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너무도 척박했었다는 게 여간 억울하지가 않다. 그러나 한편 우리가 밑바닥 가난 속에서도 드물게 사랑과 이성이 조화된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 덕이었다고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 것은 강경애의 소설을 읽고 나서였다. - P182

자유니 민주주의니 하는 말은 도처에 범람했지만 별안간 그 눈부신 걸 바로 보기엔 우리가 눈을 뜬 지 불과 얼마 안 돼 있었다. - P195

실상 그때 우리가 날뛴 것은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닌, 학교 재단문제일 수도, 미 군정이 밀가루나 드롭스처럼 흥청망청 쏟아부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앓은 배탈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었다. - P196

텃밭이 거기 있음으로써 그건 귀가가 아니라 귀향이 될 터였다. - P227

단박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갈 만큼 승승장구할 때 승자가 과연 그렇게까지 모질게 굴 필요가 있었을까. 승리의 사간은 있어도 관용의 시간은 있어선 안 되는 게 이데올로기의 싸움의 특성인 것 같다. - P260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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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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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나는 고백한다.

박완서 작가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한국문학에서 꼭 알아야 하는 몇 분의 소설가가 있다. 토지의 박경리가 그러하고 태백산맥의 조정래, 조세희, 황석영, 그리고 수 많은 한국문학에 한 획을 그은 소설가들. 그 중에 박완서가 있다.

아주 오래 전 MBC에서 <미망>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다. 박완서의 작품이라고 했다. 드라마 앞 부분을 몇 편 시청했는데 개성 큰 상단의 외동 손녀딸이 상단의 주인인 할아버지가 죽고 상단을 맡아 이끄는 내용이었다. 손녀딸의 엄마가 집 안의 종과 정을 통하여 아이를 낳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드라마 초기 에피소드를 보곤 박경리의 토지와 비슷한다고 생각을 하고는 원작자인 박완서에 대하여 그만 편견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박완서의 작품을 절대 읽은 적이 없었다.

 

우연히 듣게된 이남희 작가의 수필쓰기 수업에서 아주 여러 번박완서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었다. 물론 주로 좋은 쪽이다. 수업을 통해 이남희 작가가 좋아졌다. 그런 이남희 작가가 수없이 언급한 작가라니, 내가 편견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박완서 작가의 수많은 작품 중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 많은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골랐다.

 

작가의 말 2쪽과 1장 '야성의 시기' 25쪽을 읽고 나니 내 오해와 패배가 확실해졌다. 모든 장을 다 읽고는 나는 그저 작가에게 경탄을 넘어 외경심까지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작가가 단지 기억에만 의존하여 쓴 작가의 유년시절에 대한 자전적 소설이다. 자서전도 아니고 "기억"에만 의존하여 쓴 "소설"이다. 분류가 참 애매할 듯도 하다. 기억에만 의존해서 썼다니 자서전일 듯도 하고 작가가 소설이라고 작가의 말에서 스스로 말했으니 소설일 수도 있겠다. 시대의 흐름 순으로 기술되기는 했어도 어찌보면 수필로 분류될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렇듯 분류가 모호한 책이지만 분명한 것은 책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어린 시절-약 7살 무렵쯤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작가가 20살이 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까지 약 13~4년을 다루고 있다. 작가의 유년시절이면 1930년대 후반과 가장 혹독했던 일제시대인데도 작가가 아직 철없는 아이때라 그런가 유년의 기억은 시골 마을에서 해맑게 자연과 친구들과 뛰어놀던 이야기들이다. 나와는 40년이 넘는 시간의 틈이 있는데도 나 역시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가 작가의 유년시절 이야기를 읽으면서 충분한 공감과 이해를 하였다. 특히 시골에서 서울로 학업을 위해 이사를 하고 서울 아이들의 생활과 시골에서의 작가의 생활을 비교하는 부분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하여 도시 아이들과 대면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격한 공감을 했을 것이다. 시골에 있다가 도시로 가면 처음에는 도시의 휘황찬란함과 새로운 번잡함에 잠깐 기가 죽기는 하나 얼마 안가 도시 아이들은 모르는 시골 생활의 풍부함, 흡족감에 표시는 내지 않지만 남몰래 우쭐해하는 것이 있다. 도시 아이들에게 말은 안하지만 '우리는 너희가 모르는 놀이와 추억과 즐거움이 있어. 너희는 평생 절대 모를 걸. 하지만 나는 알고 있고 또 평생 추억할 수 있지. 아, 꼬셔라~'라는 은밀한 우쭐감과 자랑스런 비밀을 시골 출신들은 다들 가지고 있는데 박완서도 나와 같은 이런 기분을 가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박 작가의 가족들 이야기인데 그 중에서도 할아버지와 엄마 이야기가 많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박완서 작가는 할아버지를 아비처럼 믿고 의지하며 자랐도 할아버지 또한 아비없이 자란 손 귀한 집 손녀딸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않을 만큼 귀여이 여기며 키웠다. 오죽하면 할머니가 애 버릇없이 키운다고 남편인 박작가의 할아버지에게 지청구를 할 정도였을까. 할머니에게도 박작가는 귀한 손녀였음은 매한가지였을텐데 말이다. 그만큼 할아버지와 박작가는 긴말한 유착 관계가 형성된 특별한 가족이었기에 작가의 유년과 청소년기에 많은 영향을 끼첬다.

 

엄마, 엄마라는 존재는 참 한 인간의 성격 형성과 인격 됨됨이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도 지대하여 모성애가 중요시되는 것이 음모라고 가끔씩 반박하는 나조차도 많은 부분 엄마의 영향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딸들은 특히 엄마에 대한 애증의 산과 골이 더 높고 깊게 마련이다. 박완서 작가도 그의 많은 작품에서 엄마를 소재를 쓴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이번 작품을 통해 인지하게 되었다. '엄마의 말뚝'은 연작으로 까지 나왔다.

박작가의 엄마는 남편의 죽음으로 인하여 시골의 무지에서 탈출하고 도시와 문명을 따른다. 자식을 남편과 같은 꼴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절박함이 송도 그 시골에서 시부모의 반대까지 무릎쓰고 자녀들은 대처에서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신념을 지켜내었다. 삯바느질로 연명하여 아들과 딸(박완서)을 서울로 전학시키고 서울대로 입학시켰다. 요즘 시대로 하면 극성 학부모인 셈이다.

 

김대중 자서전에서도 보면, 김대중 대통령의 어머니가 아이는 꼭 공부를 많이 시켜야 하고 시골이 아닌 큰 도시에서 공부시켜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 김대중 대통령이 국민학교다닐때 신안의 조그만 섬에서 목포로 이사를 나갔다. 생계 수단이 없었는데도 오로지 자식 교육때문에 가족이 이사를 한 것이다. 박완서 작가의 엄마도 같은 케이스였다.

양쪽 다 어쨌든 세속된 기준으로 보면 세상에 이름을 남겼으니 이 두 어머니들 모두 자식 교육에 성공한 셈이던가.

 

박 작가 엄마의 에피소드를 읽을 때 김대중 대통령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우리 엄마 아버지도. 우리 집도 역시나 넉넉한 형편이 안되었고 자녀의 학업에 그리 신경을 쓴 집이 아니었다. 그저 고등학교까지만 마쳐주면 제 입에 풀칠이나 하면 만족하는 집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대학을 가겠다고 바득바득 우겼고 여자아이가 집을 떠나면 큰일나는 줄 알았던 우리 아버지 엄마는 동네 가까운 학교를 겨우 허락하셨다. 그 때 내가 만약 대처로 공부하러 갈 수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하는 아주 쓰잘데기 없는 공상을 두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잠깐 하였다. 마찬가지로, 지금 엄마가 된 내 입장에서는 아이들 교육에 조금 더 신경을 썼다면 우리 아이들 역시 미래와 선택이 좀 달라졌을까는 생각도 하였다. 부모에 대한 아쉬움과 자식에 대한 미련은 언제 어느 세월에서도 없어질 수는 없는것일 거다.

 

한동안 해외고전문학을 많이 읽다가 우리말로 된 소설을 읽었다. 태어나고 자라면서 엄마를 통해 습득한 언어가 왜 모국어인지 확연히 알수있었다. 단어 하나 하나가 별 생각과 설명없이도 가슴 속에 콕콕 박히고 묘사 한줄 한줄은 마치 내가 언제 어디선가 본 것같이 그림이 그려진다. 국어가 한국말이 자연스럽게 내 몸에 내 정신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말이 이렇게나 아름답고 묘사가 풍부한 언어였던가.

 

물론 이것은 한국어의 차원 높음도 있겠지만 이 차원높은 언어를 담백하지만 격조있게 아주 썩 잘 써낸 작가의 위대함이렸다. 글을 써보기로 하고 읽은 우리말 소설, 박완서의 국어는 '그래 나도 할 수 있어'와 '어떻게 하면 이런 언어를 생각하고 그릴 수 있을까'하는 근거없는 자신감과 감히 넘어볼 수 없는 벽을 동시에 느끼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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