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부끄럽지만 나는 고백한다.

박완서 작가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한국문학에서 꼭 알아야 하는 몇 분의 소설가가 있다. 토지의 박경리가 그러하고 태백산맥의 조정래, 조세희, 황석영, 그리고 수 많은 한국문학에 한 획을 그은 소설가들. 그 중에 박완서가 있다.

아주 오래 전 MBC에서 <미망>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다. 박완서의 작품이라고 했다. 드라마 앞 부분을 몇 편 시청했는데 개성 큰 상단의 외동 손녀딸이 상단의 주인인 할아버지가 죽고 상단을 맡아 이끄는 내용이었다. 손녀딸의 엄마가 집 안의 종과 정을 통하여 아이를 낳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드라마 초기 에피소드를 보곤 박경리의 토지와 비슷한다고 생각을 하고는 원작자인 박완서에 대하여 그만 편견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박완서의 작품을 절대 읽은 적이 없었다.

 

우연히 듣게된 이남희 작가의 수필쓰기 수업에서 아주 여러 번박완서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었다. 물론 주로 좋은 쪽이다. 수업을 통해 이남희 작가가 좋아졌다. 그런 이남희 작가가 수없이 언급한 작가라니, 내가 편견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박완서 작가의 수많은 작품 중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 많은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골랐다.

 

작가의 말 2쪽과 1장 '야성의 시기' 25쪽을 읽고 나니 내 오해와 패배가 확실해졌다. 모든 장을 다 읽고는 나는 그저 작가에게 경탄을 넘어 외경심까지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작가가 단지 기억에만 의존하여 쓴 작가의 유년시절에 대한 자전적 소설이다. 자서전도 아니고 "기억"에만 의존하여 쓴 "소설"이다. 분류가 참 애매할 듯도 하다. 기억에만 의존해서 썼다니 자서전일 듯도 하고 작가가 소설이라고 작가의 말에서 스스로 말했으니 소설일 수도 있겠다. 시대의 흐름 순으로 기술되기는 했어도 어찌보면 수필로 분류될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렇듯 분류가 모호한 책이지만 분명한 것은 책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어린 시절-약 7살 무렵쯤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작가가 20살이 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까지 약 13~4년을 다루고 있다. 작가의 유년시절이면 1930년대 후반과 가장 혹독했던 일제시대인데도 작가가 아직 철없는 아이때라 그런가 유년의 기억은 시골 마을에서 해맑게 자연과 친구들과 뛰어놀던 이야기들이다. 나와는 40년이 넘는 시간의 틈이 있는데도 나 역시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가 작가의 유년시절 이야기를 읽으면서 충분한 공감과 이해를 하였다. 특히 시골에서 서울로 학업을 위해 이사를 하고 서울 아이들의 생활과 시골에서의 작가의 생활을 비교하는 부분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하여 도시 아이들과 대면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격한 공감을 했을 것이다. 시골에 있다가 도시로 가면 처음에는 도시의 휘황찬란함과 새로운 번잡함에 잠깐 기가 죽기는 하나 얼마 안가 도시 아이들은 모르는 시골 생활의 풍부함, 흡족감에 표시는 내지 않지만 남몰래 우쭐해하는 것이 있다. 도시 아이들에게 말은 안하지만 '우리는 너희가 모르는 놀이와 추억과 즐거움이 있어. 너희는 평생 절대 모를 걸. 하지만 나는 알고 있고 또 평생 추억할 수 있지. 아, 꼬셔라~'라는 은밀한 우쭐감과 자랑스런 비밀을 시골 출신들은 다들 가지고 있는데 박완서도 나와 같은 이런 기분을 가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박 작가의 가족들 이야기인데 그 중에서도 할아버지와 엄마 이야기가 많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박완서 작가는 할아버지를 아비처럼 믿고 의지하며 자랐도 할아버지 또한 아비없이 자란 손 귀한 집 손녀딸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않을 만큼 귀여이 여기며 키웠다. 오죽하면 할머니가 애 버릇없이 키운다고 남편인 박작가의 할아버지에게 지청구를 할 정도였을까. 할머니에게도 박작가는 귀한 손녀였음은 매한가지였을텐데 말이다. 그만큼 할아버지와 박작가는 긴말한 유착 관계가 형성된 특별한 가족이었기에 작가의 유년과 청소년기에 많은 영향을 끼첬다.

 

엄마, 엄마라는 존재는 참 한 인간의 성격 형성과 인격 됨됨이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도 지대하여 모성애가 중요시되는 것이 음모라고 가끔씩 반박하는 나조차도 많은 부분 엄마의 영향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딸들은 특히 엄마에 대한 애증의 산과 골이 더 높고 깊게 마련이다. 박완서 작가도 그의 많은 작품에서 엄마를 소재를 쓴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이번 작품을 통해 인지하게 되었다. '엄마의 말뚝'은 연작으로 까지 나왔다.

박작가의 엄마는 남편의 죽음으로 인하여 시골의 무지에서 탈출하고 도시와 문명을 따른다. 자식을 남편과 같은 꼴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절박함이 송도 그 시골에서 시부모의 반대까지 무릎쓰고 자녀들은 대처에서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신념을 지켜내었다. 삯바느질로 연명하여 아들과 딸(박완서)을 서울로 전학시키고 서울대로 입학시켰다. 요즘 시대로 하면 극성 학부모인 셈이다.

 

김대중 자서전에서도 보면, 김대중 대통령의 어머니가 아이는 꼭 공부를 많이 시켜야 하고 시골이 아닌 큰 도시에서 공부시켜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 김대중 대통령이 국민학교다닐때 신안의 조그만 섬에서 목포로 이사를 나갔다. 생계 수단이 없었는데도 오로지 자식 교육때문에 가족이 이사를 한 것이다. 박완서 작가의 엄마도 같은 케이스였다.

양쪽 다 어쨌든 세속된 기준으로 보면 세상에 이름을 남겼으니 이 두 어머니들 모두 자식 교육에 성공한 셈이던가.

 

박 작가 엄마의 에피소드를 읽을 때 김대중 대통령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우리 엄마 아버지도. 우리 집도 역시나 넉넉한 형편이 안되었고 자녀의 학업에 그리 신경을 쓴 집이 아니었다. 그저 고등학교까지만 마쳐주면 제 입에 풀칠이나 하면 만족하는 집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대학을 가겠다고 바득바득 우겼고 여자아이가 집을 떠나면 큰일나는 줄 알았던 우리 아버지 엄마는 동네 가까운 학교를 겨우 허락하셨다. 그 때 내가 만약 대처로 공부하러 갈 수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하는 아주 쓰잘데기 없는 공상을 두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잠깐 하였다. 마찬가지로, 지금 엄마가 된 내 입장에서는 아이들 교육에 조금 더 신경을 썼다면 우리 아이들 역시 미래와 선택이 좀 달라졌을까는 생각도 하였다. 부모에 대한 아쉬움과 자식에 대한 미련은 언제 어느 세월에서도 없어질 수는 없는것일 거다.

 

한동안 해외고전문학을 많이 읽다가 우리말로 된 소설을 읽었다. 태어나고 자라면서 엄마를 통해 습득한 언어가 왜 모국어인지 확연히 알수있었다. 단어 하나 하나가 별 생각과 설명없이도 가슴 속에 콕콕 박히고 묘사 한줄 한줄은 마치 내가 언제 어디선가 본 것같이 그림이 그려진다. 국어가 한국말이 자연스럽게 내 몸에 내 정신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말이 이렇게나 아름답고 묘사가 풍부한 언어였던가.

 

물론 이것은 한국어의 차원 높음도 있겠지만 이 차원높은 언어를 담백하지만 격조있게 아주 썩 잘 써낸 작가의 위대함이렸다. 글을 써보기로 하고 읽은 우리말 소설, 박완서의 국어는 '그래 나도 할 수 있어'와 '어떻게 하면 이런 언어를 생각하고 그릴 수 있을까'하는 근거없는 자신감과 감히 넘어볼 수 없는 벽을 동시에 느끼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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