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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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든 늙든 우리가 왜 이렇게 아픈지 이젠 알 것 같다. 자기 존재에 주목을 받은 이후부터가 제대로 된 내 삶의 시작이다. 거기서부터 건강한 일상이 시작된다. - P47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 P50

다 가진 자는 금은 넘쳐나는데 쌀은 한줌도 없는 이상한 기근을 겪는다. 금이 없어도 쌀이 있으면 살 수 잇지만 금이 산더미같이 있어도 쌀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존재에 대한 주목이 삶의 핵심이라는 사살을 모르고 질주하다 보면 현실에선 아무 쓸모도 없는데 사이버 세상에선 떼부자인 다 가진 자처럼 되기 십상이다. - P67

의사는 심리 검사를 해야 한다, 우울증이다, 약을 먹아야한다는 의학적 판단에 집중하느라 예전에 엄마가 그랫던 것처럼 아이의 존재 자체에 주목하는 일을 뒤로 미뤘을 가능성이 있다. (중략) 의사뿐 아니아. 상담 교사는 자살 충동이라는 지표에서 겁을 먹었고 엄마에게 배턴을 넘겼다. 엄마는 더 나은 전문가를 찾는 일에 매달렸고 의사에게 다시 배턴을 넘겼다. 그러는 동안 교사와 엄마의 시선에서 아이는 사라졌다. - P73

아이는 자기 존재의 상태를 주목해 주고 알아주는 사람을 찾지 못한 채 기진맥진한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 옆의 어른들은 수건 돌리기하듯 아이의 고통을 다음 사람에게 순차적으로 넘기고 있었던 셈이다. 상담 교사는 부모에게, 부모는 정신과 의사에게, 정신과 의사는 약물치료와 다음 만난ㅁ으로 공을 넘겼다. 이런 행태는 ‘일상의 외주화‘이다. - P76

인간의 마음이나 감정은 날씨 같다. 춥기도 하고 덥기도 하고 화창하고 맑다가 바람이 불기도 하고 태풍이 몰아치기도 한다. 예고 없이 지진이 일어나기도 하고 쓰나미가 덮치기도 한다. 그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무지개가 걸린다. 모른 체하는 데 일등이 있다면 날씨가 그렇다...중략...감종도 그렇다. 슬픔이나 무기력, 외로움 같은 감정도 날씨와 비슷하다. 감정은 병의 증상이 아니라 내 삶이나 존재의 내면을 알려주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중략...그러므로 우울은 질병이 아닌 삶의 보편적 바탕색이다. - P86

무기력은 은회 후 우울증이라는 병인가. 해결하고 극복할 과제인가. 아니다.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순하게 수용해야 할 삶의 중요한 감정이다. 은퇴 후에 이런 감정이 없다면 그게 외려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다. 퇴직 후에도 여전히 방부제를 많이 넣어서 썩지 않는 햄버거처럼 퇴직이라는 삶의 자연적인 흐름을 무언가로 계속 막다 보면 결국에는 터진다. 어차피 한 번은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할 섦의 중요한 숙제를 계속 뒤로 미루다 보면 이자까지 붙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 P87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직장 생활은 과장하자면평생 감옥에 있다 출소하면서 눈부신 햇빛에 눈을 찡그리는 출소자같은 상태다. 감방을 나온 사람의 눈동자에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홍채라는 조리개 기능으로 일단은 차단하듯, 너무 많은 시간과 자유와 자극으로부터 당분간은 주춤거린 채 있어야 한다고 알려주는 신호다. - P88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감정들은 삶의 나침반이다. 약으로 함부로 없앨 하찮은 것이 아니다. 약으로 부조건 눌러버리면 내 삶의 나침반과 등대도 함께 사라진다. 감정은 내 존재의 핵이다. - P92

내 생각이 옳은가 아니면 내 감정이 옳은가. 감정이 항상 옳다. ‘나‘라는 존재의 핵심이 위치한 곳은 내 감정, 내 느낌이므로 ‘나‘의 안녕에 대한 판단은 거기에 준해서 할 때 정확하다. - P103

내 직장 이야기보다 직장에 대한 나의 느낌이 더 나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내 취향이나 기호도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도 내 몸에 걸친 옷이나 액세서리에 해당하는 것이다. 내 견해나 신념, 내 가치관도 그렇다. 내 견해, 신념, 가치관이라 함주어 말하는 것들 대부분 사실 그 시원은 ‘나‘가 아닌 다른 곳에서 유입된 것이 대부분이다. - P104

내 상처의 내용보다 내 상처에 대한 내 태도와 느낌이 내 존재의 이야기다. 내상처가 ‘나‘가 아니라 내 상처에 대한 나의 느낌과 태도가 더 ‘나‘라는 말이다. - P105

언제나 나를 놓쳐선 안 된다. 언제나 내가 먼저다.
...중략...
공감은 내 등골을 빼가며 누군가를 부축하는 일이 아니다. 그 방식으론 상대를 끝까지 부축해 낼 수 없다. 둘 다 늪에 빠진다. 공감은 너를 공감하기 위해 나를 소홀히 하거나 억압하지 않아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 P120

공감은 그저 들어주는 것,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듣는 일이다. 정확하게라는 말은 대화의 과녁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다. 공감에는 과녁이 있다......공감적 대화의 과녁은 언제나 ‘존재 차제‘다. - P132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과 공감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성취에 대한 인정과 주목을 존재에 대한 주목이라고 생각해서 그것에 매달리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먹어도 기대만큼 포만감이 없다. 물론 존재 자체에 대한 공감도 없고, 오른 석차에 대한 반응도 없는 무관심보다는 낫다. 하지만 밥 없이 반찬으로만 배를 채운 사람처럼 아무리 많이 먹어도 편안한 포만감이나 포만감으로 인한 안정감이 없다. 반찬으로만 채운 배는 한계가 있다.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과 공감은 갓 지은 밥 같은 것이다. 잘 지은 밥이 있으면 간장 하나만 가지고도 든든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밥이 기본이라서다.
공감은 누군가의 불어난 재산, 올라간 직급, 새로 딴 학위나 상장처럼 그의 외형적 변화에 대한 인정이나 언급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한 그 사람 자체, 그의 애쓴 시간이나 마음씀에 대한 반응이다. - P142

내 공감을 포갤 곳은 생각과 행동이 아니라 마음, 즉 감정이다.
...중략...
자기 마음이 공감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기가 감당해야 할 몫이나 대가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자기 마음이 온전히 수용되었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항상 옳다‘는 명제는 언제나 옳다. - P161

그러나 성인 간의 관계는 다르다.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지만 나만 잘한다고 되지 않는다. 상대가 감당해야 할 몫도 있다. 그것까지 내가 짊어질 이유는 없다.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 어떤 관계에서든 납득할 수 없는 심리적 갑을 관계가 일방적이고 극단적으로 계속된다면 이런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것이 더 건강하다. 우선 내 건강성을 지켜야만 나중을 기약할 수도 있다. - P171

공감은 모 아니면 도가 아니다. 엄마가 담배 피우는 것을 허용하고 공감해 줬다고 담배까지 사다 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담배를 사다 주지 않았다고 담배 피우는 것을 허용한 엄마가 아닌 것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두 사안은 별개다. - P195

사람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껴야 자신이 놓인 상황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 공감에 제한을 둘 필요는 없다. 사람은 믿어도 되는 존재다. 사랑하는 사람의 유일한 역할이 그것이다. 온 체중을 다 실어 아이를 믿어주면 그게 어떤 일이든 본인이 오히려 ‘내가 너무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는 건 아닌가‘ 열심히 고민한다. 안전하면 입체적이고 온전한 성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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