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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평점 :
사람을 만나고 배움을 구하는 것은 매번 좋다. 나라면 하지 않을 것들은 다른 이와 새로운 배움을 통해서 접하게 된다. 저변의 확대이다.
심리책이나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다. 고로, '당신이 옳다'도 혼자라면 선택하지 않았었을 책이다. 공교롭게도 하나의 배움과 또 하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 나는 이 책을 읽어낼 수 밖에 없었다.
'적정심리학', 이 얼마나 적정한 말인가. 현대심리학과 정신의학은(난 실은 잘 모르지만) 많이 치우쳐져 있는 것 같고 극단으로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도 같아 보인다. 프로이드, 융, MBTI 애니어그램 등등. 이제는 지식이라기 보단 상식과 보통명사처럼 되어버린 심리학 용어와 마음, 치유, 소통, 공감 등의 언어들. 이 넘쳐나는 상식과 명사들이 자주 내 맘을 혹은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것들은 정하지 못하고 지식과 주장에 의하여 '너 감정은 이런 거야. 이쪽에 가까워. 그러니 이렇게 해야 돼'라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적정'심리학이라는 이름이 우선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든 이름처럼, 책의 내용도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공감이라는 것을 잘 정의내려주는 것 같고 공감의 방법론까지 잘 설명해주었다. 이론은 늘 좋다. 문제는 실천이지.
나는 이 책에서 두 부분이 내 마음을 건드렸다.
"이는 자기 존재의 상태를 주목해 주고 알아주는 사람을 찾지 못한 채 기진맥진한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 옆의 어른들은 수건 돌리기하듯 아이의 고통을 다음 사람에게 순차적으로 넘기고 있었던 셈이다. 상담 교사는 부모에게, 부모는 정신과 의사에게, 정신과 의사는 약물치료와 다음 만남으로 공을 넘겼다. 이런 행태는 ‘일상의 외주화‘이다. - P76"
큰아이가 중2였을 때 아이도 힘들어했고 그 때문에 나도 힘들었다. 당시로 나이 50이 넘으셨던 여자 담임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약간 산만한 문제아 취급을 하셨을 때인데 학교에서 해마다 하는 우울증 검사, 심리 검사같은 것을 했는데 아이의 결과지가 좀 심각하게 나왔다고 한다. 어느 날, 학교 상담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하시는 말씀이 우리 아이가 자살징후를 보이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으니 병원을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놀란 가슴에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아이의 학교 생활을 물어보고 담임의 의견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담임은 자기도 결과지를 보고 놀래서 상담선생님께 결과를 넘기고 학부모와 연락해보라고 했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러니, 아이의 결과지를 보고 담임은 상담선생님에게 상담선생님은 학부모인 나에게 넘긴 것이었다. 상담선생님은 학부모인 내가 의사에게로 넘길 것을 당연히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담임이나 상담선생님 그 누구도 아이를 불러서 대면하여 결과지를 놓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애가 사춘기를 심하게 앓고 있긴 해서도 그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기에 학원을 마치고 오는 아이에게 대놓고 물었고 이야기를 하였다. 아이말인 즉슨, 담임선생님이 자기와 자기 친구들을 문제아 및 말썽쟁이로 취급하길래 미운 마음에 고생좀 해보시라고 심리검사 때 일부러 우울한 쪽으로 체크를 했다고 하면서 자신은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으니 엄마는 걱정하지 말고 회사 생활이나 잘 하라고 이렇게 엄마에게까지 학교에서 연락오고 할 줄은 생각못했다고 오히려 내가 놀랬을까봐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담임선생님과 상담선생님이 한 행동이 바로 '일상의 외주화'였을 것이다. 비단 이 분들 뿐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에 너무 열심인 나머지 어떤 문제 하나가 발생하면 스스로 정면 돌파를 하기보단 그 문제를 외주주려고 하는 경향을 많이 보인다. 일상이 힘들어서 발생한 문제들이 나의 일상을 더 힘들게 하고 내 몸과 정신을 귀찮게 하기 때문에 내버려두던지 아니면 외주를 주는 것이다. 나도 많은 부분 외주를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아이가 중2였을 때 그러지 않았던 것이 나 자신에 이 부분을 읽으면서 너무 대견하였다.
또 다른 한 부분은 다음 대목이다.
언제나 나를 놓쳐선 안 된다. 언제나 내가 먼저다.
...중략...
공감은 내 등골을 빼가며 누군가를 부축하는 일이 아니다. 그 방식으론 상대를 끝까지 부축해 낼 수 없다. 둘 다 늪에 빠진다. 공감은 너를 공감하기 위해 나를 소홀히 하거나 억압하지 않아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 P120
당신이 옳다는 제목은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의 감정은 옳다 그러니 그 감정을 우선적으로 인정해야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로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어져 살기 위해서 때로는 자기 감정을 숨기고 헛된 미소와 치장된 말로 남들을 기쁘게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집에 돌아와서 내가 뭐하는 짓인가하며 그 공허한 시간을 아까워 한다. 반면에, 때로는 솔직한 내 감정을 드러내놓고서는 내 감정에 혹시 다른 사람이 속상했을까 안절부절하며 그들의 표정을 살피기도 한다. 돌아와서는 '그 때 그 말을 하면 안되는 거였어 조금만 누르고 참으면 될걸'하고 실제로는 솔직했던 내 감정을 후회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한 '당신이 옳다'는 명제와 '언제나 내가 옳다'는 명제는 위의 이러한 상반된 두 가지 상황에서 다 적용하며 내 마음의 주관을 세울 수 있는 명제였다. 전자의 경우이든 후자의 경우이든 모두 다 그 마음은 옳았다. 내 맘 뿐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도 다 옳다. 그 옳은 마음들은 함께 이야기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 가진 마음이 찝찝했던 것이다.
듣기에 따라 애매모호할 수도 있겠으나 내 맘도 옳고 그 맘도 옳다는 명제를 정신과 의사에게서 확인받고 나니 더할 나위 없이 내 맘이 편해졌다.
평소 내가 선호하는 종류의 책은 아니었으나 모든 것에서 베울 것이 있는 법이다. 나는 과거 내가 잘했던 부분을 기억하며 뿌듯해 하였고 어지러웠던 내 감정의 원인도 나름 정리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이 책에서 얻는 배움은 또 흐릿해지겠지만 흐릿해져도 흔적은 남을 것이라는 것은 믿는다. 흐릿해져서 흔적조차 가물해지면 이 감상문을 다시 찾아오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