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 개정보급판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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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너무 정상적인 것이다. - P51

마지막 남아 있던 피하지방층이 사라지고, 몸이 해골에 가죽과 넝마를 씌워 놓은 것 같이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의 몸이 자기 자신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P67

외부 사람들 중에는 강제수용소에 예술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뿐만 아니라 유머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더 놀랄 것이다. 비록 그 흔적이 아주 희미하고, 몇 초 혹은 몇 분 동안만 지속되지만, 유머는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 다른 무기였다. - P86

인간의 고통은 기체의 이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일정한 양의 기체를 빈 방에 들여 보내면 그 방이 아무리 큰 방이라도 기체가 아주 고르게 방 전체를 완전히 채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88

그들은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쳤ㅈ만, 결국 자신의 정해진 운명을 확인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 P105

오토. 자네는 지금 어디에 있나? 아직 살아있나? 우리가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낸 후 자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자네 아내를 다시 만났나? 그리고 기억하나? 자네가 어린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는 동안에도 내가 자네에게 내 유언을 한마다 한마디 외우게 했던 것을. - P105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 P120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 P121

수면 부족과 식량부족 그리고 다양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이 수감자를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 P121

적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주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반면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예술, 혹은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충족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 두 가지가 거의 메말라 있는 삶에도, 외부적인 힘에 의해 오로지 존재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지고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삶에도 목적은 있다. 물론 그에게는 창조적인 삶과 향락적인 삶도 모두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 P122

당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중략)...한 저명한 연구전문 심리학자는 강제수용소의 이런 삶은 ‘일시적인 삶‘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한 마디 더 붙이자면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P127

‘finis‘라는 라틴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끝이나 완성을 의미하고 하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를 의미한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는 사람과는 정반대로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한다. 따라서 내적인 삶의 구조 전체가 변하게 된다. - P127

삶이 날아간 것 같은 이런 느낌은 다른 요인에 의해 더욱 심화된다. 갇혀 있어야 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과, 갇혀 있는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 P129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퇴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중략)...그런 종류의 사람들은 이것이 단지 예외적으로 어려운 외형적 상황일 뿐이며, 이런 어려운 상황이 인간에게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수용서의 어려운 상황을 자신의 정신력을 시험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대신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아무런 성과도 없는 그 어떤 것으로 경멸한다. 그들은 눈을 감고 고걱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에게 인생은 의미 없는 것이 된다. - P130

평범하고 의욕 없는 사람들에게는 비스마르크의 이 말을 들려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생이란 치과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 있는 것이다. " - P131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미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긍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 P138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에서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 P139

이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가 부각된다.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고 견뎌낼 수 있다. - P142

긍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 P181

인간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잠재되어 있는 삶의 의미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의 내면이나 그의 정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중략)...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으면 잊을수록 - 스스로 봉사할 이유를 찾거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통해 - 그는 더 인간다워지며, 자기 자신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소위 자아실현이라는 목표는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자아실현을 갈구하면 할수록 더욱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 P183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그리고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 P184

타고난 자질과 환경이라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 인간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달려 있다.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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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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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두 번이나 읽게 되었다.

처음은 그냥 줄거리만 따라 읽었는데, 우리 정서와 동떨어진 그저 유명한 소설일 뿐이었다.

이번에 다시 한번 더 읽게 되었다. 토론을 하기 위해서 앞번보다 더 글자를 곱씹어가며, 인물의 마음을 상상하면서 천천히 읽었다.

정성을 들여 책을 읽으니, 책은 내게 더 깊이 들어왔다. 영미권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떤 평론가는 이 책을 두고 여성판 '허클베리 핀'이라고도 하였다.

6살에서 9살에 이르는 시기 동안 미국 남부 앨러바마주 메이콤이라는 마을에 사는 어느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경제공황 무렵인 1932년 경의 세상과 어른들의 이야기를 그린 책이 '앵무새 죽이기'이다.

주인공 진 루이스 핀치, 일명 스카웃은 오빠 젬과 사이좋은 오누이 사이다. 스카웃과 젬은 여름 방학마다 놀러 온 스카웃과 동갑 내기 남학생 딜과 함께 메이콤의 단조로운 일상을 놀이와 호기심과 모험으로 가득 채워 나날이 새로운 날들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소설의 화자가 꼬마 소녀 스카웃이기에, 같은 여성으로서 나는 어느 평론가의 여성판 '허클베리 핀'이라는 평가에 동의하는 바이다. 아주 좋아하는 톰 소여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보다 나는 스카웃의 모험과 호기심에 더 공감을 많이 느꼈다. 아마 동성으로서 내 유년 시절을 연상하며 스카웃에게 감정이입이 되었으리라.

스카웃과 젬의 아버지는 애티커스 핀치라는 오십 줄에 들어선 남자인데 직업은 변호사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생소하면서도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이 바로 이 애티커스 핀치라는 남자였다. 아, 애티커스가 변호사여서거나 명사수라서가 아니다. 내가 감명받았던 것의 애티커스 핀치의 자녀 교육법이었다.

인간의 생애 중에서 가장 에너제틱하고 하루 중 걸음 수가 제일 많을 시기가 6살 무렵 무터 12살 무렵까지이다. 애터커스는 두 자녀를 두었는데 두 명이 다 이 시기에 해당되었고 게다가 아빠 애티커스는 이 에너제틱 한 아이를 양육하기에는 나이가 좀 많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티커스는 아이들을 너무나 잘 양육하고 있었다!

스카웃과 젬은 잘못한 일이 있어서 애티커스에게 야단을 맞은 적도 많지만 단 한 번도 아빠에게 맞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스카웃도 젬은 아빠가 때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었다.

스카웃과 젬이 옆집에 사는 은둔의 부 래들리 아저씨를 밖으로 끄집어 내려는 짓궂은 여러 시도를 들켰을 때에도, 학교 친구 월터 커닝햄과 치고받는 싸움을 벌여 학교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었을 때에도, 이웃에 사는 듀보스 할머니에게 버릇없는 말대꾸를 하였을 때에도, 애티커스는 고함을 치거나 바닥을 손을 때리거나 가슴을 치는 일 없이 조곤조곤 말로 아이들을 설득시켰다. 아이들이 설득되지 않더라도 손이나 매로 아이들을 때리는 법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설득되지 않으면 설득되지 않는 대로, 가정의 규칙을 들어가며 '안되는 건 안된다'라는 것을 강조하였고 가족의 일원으로 동참하려면 그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하였다.

또 스카웃과 젬이 어른들의 세계-힘과 권력이 우선되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고 관행이 우선되며 위선의 예절이 난무하는-에 반발하며 반항과 질문을 계속할 때에도 애티커스는 인내를 갖고 하나하나 대답을 해주며 아이들에게 어른의 세상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흔히 우리가 이론적으로 알고 있고 맞다고 생각하는 그 교육법을 행하고 있는 부모가 바로 애티커스였다.

'앵무새 죽이기'는 작가 하퍼 리의 자전적 소설인데 어쩌면 소설 속 애티커스 핀치가 실존 인물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하퍼 리는 정말 행운아가 아닌가!

게다가 애티커스는 강간죄의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는 흑인 톰 로빈슨을 변호하는 변호사인데, 여전히 흑백의 이분법이 만연하던 시절, 흑인을 변호한다는 것은 동네에서 왕따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나팔을 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것을 걱정하는 스카웃과 젬에게 애티커스는 이런 말로써 그의 임무를 정당화하였다.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앵무새 죽이기'를 번역한 김욱동은 책의 말미 '작품 해설'에서 '앵무새 죽이기'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넘치는 작품이라고 하였다.

소설에서 사회적 약자라 하면, 은둔의 부 래들리, 누명 쓴 흑인 톰 래들리, 백인의 창고를 교회로 개조하여 예배를 드리는 메이콤 마을의 흑인 주민들, 백인이면서 흑인과 더 친하게 지내는 돌퍼스 레이먼스 아저씨 등이 있는데, 스카웃과 젬과 딜 그리고 애티커스는 이들 모두에게 그들의 친구와 같이 대하여 일체의 편견 없는 동일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이들에 대하여 선입견을 갖고 삐딱한 시선을 보내며 불친절한 행동을 드러낼 때, 우리의 주인공들은 상대가 부 래들리이든, 레이먼드 아저씨이든, 톰 로빈슨이든 간에, 눈에서 나오는 빛과 입에서 나오는 말이나 손끝에서 전해지는 행동이 늘 따뜻하고 온화하고 부드럽다.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애티커스가 한 말과 행동을 스카웃과 젬이 그대로 보고 배운 결과일 터이다.

딜이 만약 결이 다른 아이였다면, 스카웃과 젬과 친구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 딜이 스카웃과 젬과 친한 친구가 된 걸 보면 딜 역시 사람과 세상에 편견을 가지지 않은 큰 사람이다.

하지만 세월이 오래되어도 사람들이 고전이라고 부르며 좋아하는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 읽히는 시점에 따라, 읽히는 시공간의 다름에 따라 각기 다른 부분에서 마음이 움직인다.

나는 이번에 읽는 '앵무새 죽이기'에서는 이 구절이 유독 눈에 걸렸다.


아빠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말이다, 자업자득이란다. 우리는 보통 우리 수준에 맞는 배심원을 갖기 마련이거든. 우선 첫째, 용감한 메이콤 시민들은 재판에 관심이 없지. 둘째, 걱정도 되지. 그러니 그들은..."


톰 로빈슨의 재판이 열리고, 길머 검사와 애티커스 변호사는 배심원과 테일러 판사님 앞에서 동네 주민들이 꽉 들어찬 재판정에서 각각 증인 심문을 진행하였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모든 증거와 증언과 논리는 톰 로빈슨이 무죄이며, 톰을 고발한 백인인 동네 양아치 밥 유얼과 그의 딸 메이엘라 유얼이 톰을 모함한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래서 다른 재판과 달리, 배심원들은 오랜 토론을 가졌다. 하지만 재판의 결과는 의심만으로도 흑인은 유죄 판결이 내려져야 하는 시절이었고, 아무리 잘못된 고발과 기소라 하더라도, 고발인이 모두가(백인이든 흑인이든) 인정하는 양아치 백수건달이라 하더라도, 백인이 재판의 의뢰인이라면 그 의뢰인은 당연히 승리를 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잘못된 재판 결과를 보고, 스카웃과 젬이 아빠에게 물었다.

왜 우리나 모디 아줌마 같은 사람들이 배심원이 될 수는 없는 거예요?

이 질문에 대한 애티커스의 대답이 내가 이번에 이 책에서 유독 눈에 걸리는 구절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보통 우리 수준에 맞는 배심원을 갖기 마련이거든."

1932년 당시 미국 남부 메이콤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배심원을 둔 대가로 죄 없는 흑인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그 후 몇 십 년의 투쟁과 몇몇의 희생이 담보가 되어 현재 미국은 그보다는 나은 세상이 되었다. (흑백 차별에 한해서는)

나는 내가 제법 높은 수준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의 배심원 자리(지도자)에는 내 수준에조차 전혀 미치지 못하는 얄팍한 사람이 떡 하니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애티커스 말이, 수준에 맞는 배심원을 가진다는데, 지금 대한민국의 배심원 자리에 있는 사람이 우리의 현재 수준인 건가?

재판을 지고 나온 애티커스의 답답한 심정과 명백한 진실을 감추는 어른들을 보고 절망을 느낀 스카웃과 젬의 마음이 그 구절을 읽는 나에게 한치의 공백도 없이 고대로 시공간을 넘어 전달되었다. 내 마음은 답답하고 절망적이다.

지금 우리의 배심원 격인 자리에 계시는 분이 아랍에미리트에 가서 '아랍에미리트의 적이 이란이다'라는 말을 공개 석상에 하였다고 한다. 이란에서는 해명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자칫하다간 호르무즈 해협도 못 쓰고 원유 대금 8조의 향방도 안갯 속이라고 한다.

내 마음은 언제까지 답답하고 절망적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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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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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어떤 사람이 손에 쥐고 있는 성경책은 누군가......아 그렇지, 네 아빠가 손에 쥐고 있는 위스키보다 더 나쁘기도 하단다. - P93

언젠가 아빠는 내게 형용사를 몽땅 빼버리고 나면 사실만 남게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 P119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 P149

"난 네가 뒷마당에 나가 깡통아니 쏘았으면 좋겠구나. 하지마 새들도 쏘게 되겠지. 맞힐 수만 있다면 쏘고 싶은 만큼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돈다는 점을 기억해라."
어떤 것을 하면 죄가 된다고 아빠가 말씀하시는 걸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디 아줌마에게 여쭤 봤습니다.
"너희 아빠 말씀이 옳아." 아줌마가 말씀하셨습니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 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 P174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 P200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리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겨우 45킬로그램도 안 되는 몸무게로 할머니는 승리하신 거야. 할머니의 생각대로 그 어떤 것, 그 어떤 사람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돌아가셨으니까. 할머니는 내가 여태껏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용기 있는 분이셨단다. - P213

알고 있는 걸 모두 말할 필요는 없지. 그건 숙녀답지 못한 거고..... 둘째로, 사람들은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이 옆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화가 나는 거지. 올바른 말을 한다고 해도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바꿔 놓을 수 없어. 그들 스스로 배워야 하거든. 그들이 배우고 싶지 않다면 입을 꼭 다물고 있거나, 아니면 그들처럼 말하는 수밖에. - P237

" 사람들 중에는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 살마들도 잇거든. 그들에게 지옥에 떨어질 놈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들더러 지옥에 떨어질 놈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니?
난 그들에게 구실을 주려는 거야. 사람들은 구실이 생기면 기분이 좋아지지. 내가 아주 어쩌다 읍내에 나올 때, 조금 비틀거리며 이 봉지에 든 뭔가를 미시면, 사람들은 돌퍼스 레이먼드가 술의 노예가 되었다고 말하는 거야. 저자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아저씨, 그건 정직하지 않잖아요. 지금보다도 아저씨를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데다기 이미...."
"물론 정직하지는 않다만 사람들에게는 아주 도움이 되거든." - P372

아빠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말이다, 자업자득이란다. 우리는 보통 우리 수준에 맞는 배심원을 갖기 마련이거든. 우선 첫째, 용감한 메이콤 시민들은 재판에 관심이 없지. 둘째, 걱정도 되지. 그러니 그들은..."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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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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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려고 생각은 하였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우선순위에서 늘 뒤로 밀렸던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누군가와 다 같이 읽게 되니 뒤로 밀려있던 순위가 단번에 1등을 차지했다.


이어령에게는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할까?

교수, 학자, 작가, 칼럼니스트, 예술가, 장관, 아트디렉터.....

워낙 많은 일들을 너무도 다 잘 해내었기에 어떤 수식어를 그 이름 앞에 붙여도 하나도 상경하지 않은 사람. 바로 이어령이다.


이 책을 계기로 김지수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떤 잡지사의 에디터였다고 하며 이어령 교수의 제자였다고 한다. 그런 인연으로 김지수 작가는 암 투병으로 힘든 몸을 이끌고서도 끝까지 공부하고 탐구했던 '까칠한' 인간 이어령을 16번이나 단독 인터뷰하는 기회를 얻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총 16개의 수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16개 수업은 나름의 제목을 갖고 있지만, 나도 내 나름으로 각각의 수업에서 얻어 낸 키워드가 있다.


1장 바디/스피릿/마인드. 자기 머리로 생각하라. 꿀벌 독서법

2장 큰 질문을 경계하라

3장 진실의 반대말은 망각과 은폐. 우리를 감쪽같이 속이고 있는 것, 죽음

4장 운명과 자유의지

5장 존경vs사랑. 관습vs도발 혹은 삐딱

6장 디테일의 진실. 타자성의 철학

7장 진선미-순수, 실천, 판단의 기준

8장 스토리텔링이 있는 부유한 삶. 인생의 3단계 - 관심/관찰/관계

9장 꿈꾸는 삶

10장 상처와 고통

11장 눈물 한 방울

15장 도마뱀의 창조성. 한국인


김지수 작가가 이어령 교수를 거의 신급으로 존경하고 사랑한 관계로 책은 마지막 수업을 정리한 것이라기보다는 이어령의 말을 경전으로 만들려고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점이 오히려 약간의 반감을 생기게 했다고나 할까?


과도한 경전화의 느낌을 알아서 편집하고 나면, 이어령의 말들은 생전에 그가 이룬 수많은 일들처럼, 그의 말조차 무수히 많은 것들을 이루어 내고 있다.

그의 말을 읽음으로써 필부(匹婦)인 나는 전혀 몰랐던 지식과 사상을 알게 되었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16개의 수업 중에 마지막 몇 개의 수업은 앞의 수업을 반복하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앞의 수업을 잘 들었으면 뒤에 있던 수업은 밑줄을 긋지 않아도 절로 반복 효과가 나는, 아주 바람직한 수업이었다.

모두가 가슴에 새길만하고 머리에 쌓아둘 만한 가치 있는 수업이었으나 그래도 내가 스스로를 돌이켜 보고 생각을 되새김한 가장 좋았던 수업은 두 번째 수업 '큰 질문을 경계하라'였다.


이어령 교수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질문을 두루뭉술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어떤 양봉업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문학이란 무엇입니까?"

이어령 교수는 이런 경우가 왕왕 있었다고 하며, 그의 개인적 경험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이런 유의 큰 질문 - 책 한 권으로도 답이 모자랄만한 총론 같은 질문이 아주 많다고 하였다.


아마도 우리는 질문하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거나, 질문하는 것을 고깝게 보고 돌출된 행동이라고 여기는 문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이 논문을 쓴다면 "8.15 해방과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같은 것을 많이 쓴다면, 서양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하나의 사례를 가지고 세세하게 따지고 드는 논문을 많이 쓴다는 것이다.


나도 이와 관련된 사례가 있다.

회사를 다닐 때 외국인과 한국인이 섞여 워크숍을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한국인은 두어 명이었고 외국인은 열 명 정도인 워크숍이었다.

워크숍에서는 더 좋은 중간 관리자가 되기 위한 몇몇 활동을 하였는데 그중 하나는 팀끼리 토론을 통해 우리 회사에 맞는 중간 관리자는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논의하고 발표하는 것이었다.

좋은 중간 관리자라, 어찌 보면 뻔한 대답이 나올만한 주제이다. 아랫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스스로 솔선수범하고, 상사와 회사가 요구하는 것을 밑으로 잘 전달하는 것. 뭐 이런 뻔한 교과서적인 답을 준비하면서 나는 토론에 활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서양에서 온 동료들은 이 뻔한 내용을 갖고 어찌나 시시콜콜 대화를 하고 대립을 하고 갑론을박을 하는지 나는 이 모습이 우스울 지경이었다.

아니, 뭐 이리 진지하고 세밀하게 사례를 들어가며 토론을 한단 말인가!

발표 시에 보니 서양의 동료들은 아주 디테일한 본인들의 사례를 들어가며 좋은 중간관리자에 대하여 구체적인 상을 제시하였다. 내가 준비한 것은 너무나 광범위하고 그야말로 뻔한 말이어서, 발표에서 나는 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면서 공교육에서 질문과 발표의 교육을 받지 못한 주입식 교육법 탓을 하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가 '질문 있습니까?'라고 할 때 내 질문은 주로 두루뭉술한 거대 담론적인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질문을 했는데, 질문이 멍청해 보여서 타인의 따가운 눈초리를 감당해 내야 할 수도 있고, 시간도 없는데 뭐 그런 것까지 묻는다고 그런 건 따로 조용히 가서 질문하라는 불평을 들을 수도 있다. 이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가장 안전한 질문, 그리고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도 화려한 미사여구로 있어 보이는 질문을 하다 보니 내 질문은 주로 '큰 질문'이 되었다.


이어령 교수의 두 번째 수업을 들으면서 내 질문의 허점을 깨닫게 되었고 문제점을 알 수 있었다.

수업을 받고 공부를 하고 배운 것이 있다면 그 수업은 아주 좋은 수업이다.

게다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기에 돈이 들지 않았다.) 배웠다면 더더욱 금상첨화일 터이다. 모든 수업이 다 좋은 수업이었지만, 이어령 교수에게서 들은 마지막 수업 중 두 번째 강의가 내게 딱 그런 수업이었다.


밑줄을 여러 군데 그었다. 수업 내용은 반복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배운 것을 두고두고 보고 익히기 위하여, 밑줄 그은 문구들을 나의 '좋은 말 모음집' 노트에 고이고이 필사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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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국내 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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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거운 짐이 우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만들어 땅바닥에 깔아 눕힌다. 그런데 유사 이래 모든 연애 시에서 여자는 남자 육체의 하중을 갈망했다. 따라서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 P12

토마시는 생각했다. 한 여자와 정사를 나누는 것과 함께 잔다는 것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거의 상충되는 두 가지 열정이라고.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 P28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고자 하는 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다. - P49

우리생각에는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아틀라스가 어깨에 하늘을 지고 있듯 인간도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 P60

테레자에게 책이란 은밀한 동지애를 확인하는 암호였다. 그녀를 둘러싼 저속한 세계에 대항하는 그녀의 유일한 무기는 시립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뿐이었다. - P85

필연과 달리 우연에는 이런 주술적인 힘이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 P88

그녀는 말을 멈추더니 다시 덧붙였다. "앞은 파악할 수 있는 거짓이고, 뒤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였지." - P114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ㄲ 작곡하고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 P152

사비나에게 있어 진리 속에서 산다거나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군중 없이 산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좋건 싦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며, 우리가 하는 그 무엇도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군중이 잇다는 것, 군중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사비나는 작가가 자신의 모든 음닐한 삶, 또한 친구들의 은밀한 삶까지 까발리는 문학을 경멸했다. 자신의 내밀성을 상실한 자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라고 사비나는 생각했다. 또한 그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자도 괴물인 것이다. 그래서 사비나는 자신의 사랑을 감춰야만 한다는 것을 괴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진리 속에서‘ 사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 P187

프란츠는 모든 거짓의 원천이 개인적인 삶과 공적인 삶의 분리에 있다고 확신했다. 개인적인 삶 속에서의 모습과 공적인 삶 속에서의 모습은 별개다. 프란츠에게 있어서 ‘진리 속에서 살기‘란 사적인 것과 공개적인 것 사이에 있는 장벽을 제거하는 것을 뜻했다. 그는 아무것도 비밀이 아니며 모든 시선에 열린 ‘유리 집‘속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던 앙드레 브르통의 구절을 즐겨 인용했다. - P187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 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 P201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항상 베일에 가린 법이다. 결혼을 원하는 처녀는 자기도 전혀 모르는 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명예를 추구하는 청년은 명예가 무엇인지 결코 모른다. 우리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항상 철저한 미지의 그 무엇이다. 사비나 역시 배신의 욕망 뒤에 숨어있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른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것이 목표일까? - P202

그녀는 자기에게 참을성이 없었던 것을 후회했다. 함께 더 오래 있었더라면 그들은 조금씩 그들이 사용했던 단어들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어휘는 너무도 수줍은 연인들처럼 천천히 수줍게 가까워지고, 두 사람 각각의 음악도 상대편의 음악 속에 녹아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제 너무 늦었다. - P205

그가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그가 원하는 바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 P353

목청 높여 자신의 종말을 재촉하는 것이 나았을까? 혹은 침묵해서그 대가로 좀 더 느린 종말을 사야 했을까?
이런 질문들에 한 가지 해답만이 존재할까?
그리고 다시 한 번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생각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 P357

진정한 목표는 정치범의 석방이 아니라 아직도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다. - P436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도와주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네 범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익명의 무수한 시선, 달리 말하자면 대중의 시선을 추구한다.
(중략)
두 번째 범주에는 다수의 친한 사람들의 시선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속한다. (중략)
세 번째 범주가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 속에서 사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중략)
끝으로 아주 드문 네 번째 점주가 있는데, 부재하는 사람들의 상상적 시선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 P440

현실이란 꿈을 뛰어넘는 것, 꿈을 휠씬 뛰어넘는 것이란 확신을 갖기 위해 그는 여행을 했던 것이다! - P448

테레자는 태평하게 무릎을 베고 누운 카레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대충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자기와 비슷한 대상에게 잘 대해 준다는 것은 아무런 미덕도 아니다. 테레자는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정중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거기에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릭 심지어 토마시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사랑받는 여인으로 처신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토마시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와 타인의 관계가 어디까지 우리 감정, 우리 사랑이나 비-사랑, 우리 호의 혹은 증오의 결과인지 또는 어디까지가 개인 간 역학 관계에 의해 사전에 규정되었는지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참된 선의는 아무런 힘도 지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만 순수하고 자유롭게 베풀어질 수 있다. - P470

"오로지 우리를 위해서 밖에 나온 거야. 카레닌은 산책할 생각이 없었던 거야. 단지 우리를 즐겁게 해 주려고 온 거야."
그녀가 한 말은 슬펐지만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그들은 행복했다. 그들이 행복한 것은 슬픔을 무릅써서가 아니라 슬픔 덕분이었던 것이다. - P476

공포는 하나의 충격, 완벽한 맹목의 순간이다. 공포에는 모든 아름다움의 흔적이 결핍되어 있다. 오로지 우리가 기대하는 미지의 사건이 내뿜는 광폭한 빛만 보일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슬픔이란 우리가 무엇니가를 안다는 것을 상정한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귿르을 기다리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공포의 광채는 휘장에 가리고, 우리는 전보다 세상을 휠씬 아름답게 만드는 푸르스름하고 부드러운 빛 속에서 세상을 발견한다. - P493

"솔직히 말해서 아들과의 만남이 두려워. 바로 그래서 나는 그를 보고 싶지 않았던 거야. 내가 왜 이리 고집불통인지 나도 모르겠어. 어느 날 어떤 결심을 하면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조차 모르면서 그 결심에는 자기 고유의 관성이 생기는 거야. 세월이 흐를수록 그것을 바꾸는 게 더 힘들어." - P500

그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오고 갔다. 테레자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안개 속을 헤치고 두 사람을 싣고 갔던 비행기 속에서처럼 그녀는 지금 그때와 똑같은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은 우리가 종착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 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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