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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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려고 생각은 하였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우선순위에서 늘 뒤로 밀렸던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누군가와 다 같이 읽게 되니 뒤로 밀려있던 순위가 단번에 1등을 차지했다.


이어령에게는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할까?

교수, 학자, 작가, 칼럼니스트, 예술가, 장관, 아트디렉터.....

워낙 많은 일들을 너무도 다 잘 해내었기에 어떤 수식어를 그 이름 앞에 붙여도 하나도 상경하지 않은 사람. 바로 이어령이다.


이 책을 계기로 김지수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떤 잡지사의 에디터였다고 하며 이어령 교수의 제자였다고 한다. 그런 인연으로 김지수 작가는 암 투병으로 힘든 몸을 이끌고서도 끝까지 공부하고 탐구했던 '까칠한' 인간 이어령을 16번이나 단독 인터뷰하는 기회를 얻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총 16개의 수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16개 수업은 나름의 제목을 갖고 있지만, 나도 내 나름으로 각각의 수업에서 얻어 낸 키워드가 있다.


1장 바디/스피릿/마인드. 자기 머리로 생각하라. 꿀벌 독서법

2장 큰 질문을 경계하라

3장 진실의 반대말은 망각과 은폐. 우리를 감쪽같이 속이고 있는 것, 죽음

4장 운명과 자유의지

5장 존경vs사랑. 관습vs도발 혹은 삐딱

6장 디테일의 진실. 타자성의 철학

7장 진선미-순수, 실천, 판단의 기준

8장 스토리텔링이 있는 부유한 삶. 인생의 3단계 - 관심/관찰/관계

9장 꿈꾸는 삶

10장 상처와 고통

11장 눈물 한 방울

15장 도마뱀의 창조성. 한국인


김지수 작가가 이어령 교수를 거의 신급으로 존경하고 사랑한 관계로 책은 마지막 수업을 정리한 것이라기보다는 이어령의 말을 경전으로 만들려고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점이 오히려 약간의 반감을 생기게 했다고나 할까?


과도한 경전화의 느낌을 알아서 편집하고 나면, 이어령의 말들은 생전에 그가 이룬 수많은 일들처럼, 그의 말조차 무수히 많은 것들을 이루어 내고 있다.

그의 말을 읽음으로써 필부(匹婦)인 나는 전혀 몰랐던 지식과 사상을 알게 되었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16개의 수업 중에 마지막 몇 개의 수업은 앞의 수업을 반복하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앞의 수업을 잘 들었으면 뒤에 있던 수업은 밑줄을 긋지 않아도 절로 반복 효과가 나는, 아주 바람직한 수업이었다.

모두가 가슴에 새길만하고 머리에 쌓아둘 만한 가치 있는 수업이었으나 그래도 내가 스스로를 돌이켜 보고 생각을 되새김한 가장 좋았던 수업은 두 번째 수업 '큰 질문을 경계하라'였다.


이어령 교수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질문을 두루뭉술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어떤 양봉업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문학이란 무엇입니까?"

이어령 교수는 이런 경우가 왕왕 있었다고 하며, 그의 개인적 경험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이런 유의 큰 질문 - 책 한 권으로도 답이 모자랄만한 총론 같은 질문이 아주 많다고 하였다.


아마도 우리는 질문하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거나, 질문하는 것을 고깝게 보고 돌출된 행동이라고 여기는 문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이 논문을 쓴다면 "8.15 해방과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같은 것을 많이 쓴다면, 서양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하나의 사례를 가지고 세세하게 따지고 드는 논문을 많이 쓴다는 것이다.


나도 이와 관련된 사례가 있다.

회사를 다닐 때 외국인과 한국인이 섞여 워크숍을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한국인은 두어 명이었고 외국인은 열 명 정도인 워크숍이었다.

워크숍에서는 더 좋은 중간 관리자가 되기 위한 몇몇 활동을 하였는데 그중 하나는 팀끼리 토론을 통해 우리 회사에 맞는 중간 관리자는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논의하고 발표하는 것이었다.

좋은 중간 관리자라, 어찌 보면 뻔한 대답이 나올만한 주제이다. 아랫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스스로 솔선수범하고, 상사와 회사가 요구하는 것을 밑으로 잘 전달하는 것. 뭐 이런 뻔한 교과서적인 답을 준비하면서 나는 토론에 활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서양에서 온 동료들은 이 뻔한 내용을 갖고 어찌나 시시콜콜 대화를 하고 대립을 하고 갑론을박을 하는지 나는 이 모습이 우스울 지경이었다.

아니, 뭐 이리 진지하고 세밀하게 사례를 들어가며 토론을 한단 말인가!

발표 시에 보니 서양의 동료들은 아주 디테일한 본인들의 사례를 들어가며 좋은 중간관리자에 대하여 구체적인 상을 제시하였다. 내가 준비한 것은 너무나 광범위하고 그야말로 뻔한 말이어서, 발표에서 나는 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면서 공교육에서 질문과 발표의 교육을 받지 못한 주입식 교육법 탓을 하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가 '질문 있습니까?'라고 할 때 내 질문은 주로 두루뭉술한 거대 담론적인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질문을 했는데, 질문이 멍청해 보여서 타인의 따가운 눈초리를 감당해 내야 할 수도 있고, 시간도 없는데 뭐 그런 것까지 묻는다고 그런 건 따로 조용히 가서 질문하라는 불평을 들을 수도 있다. 이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가장 안전한 질문, 그리고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도 화려한 미사여구로 있어 보이는 질문을 하다 보니 내 질문은 주로 '큰 질문'이 되었다.


이어령 교수의 두 번째 수업을 들으면서 내 질문의 허점을 깨닫게 되었고 문제점을 알 수 있었다.

수업을 받고 공부를 하고 배운 것이 있다면 그 수업은 아주 좋은 수업이다.

게다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기에 돈이 들지 않았다.) 배웠다면 더더욱 금상첨화일 터이다. 모든 수업이 다 좋은 수업이었지만, 이어령 교수에게서 들은 마지막 수업 중 두 번째 강의가 내게 딱 그런 수업이었다.


밑줄을 여러 군데 그었다. 수업 내용은 반복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배운 것을 두고두고 보고 익히기 위하여, 밑줄 그은 문구들을 나의 '좋은 말 모음집' 노트에 고이고이 필사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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