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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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두 번이나 읽게 되었다.

처음은 그냥 줄거리만 따라 읽었는데, 우리 정서와 동떨어진 그저 유명한 소설일 뿐이었다.

이번에 다시 한번 더 읽게 되었다. 토론을 하기 위해서 앞번보다 더 글자를 곱씹어가며, 인물의 마음을 상상하면서 천천히 읽었다.

정성을 들여 책을 읽으니, 책은 내게 더 깊이 들어왔다. 영미권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떤 평론가는 이 책을 두고 여성판 '허클베리 핀'이라고도 하였다.

6살에서 9살에 이르는 시기 동안 미국 남부 앨러바마주 메이콤이라는 마을에 사는 어느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경제공황 무렵인 1932년 경의 세상과 어른들의 이야기를 그린 책이 '앵무새 죽이기'이다.

주인공 진 루이스 핀치, 일명 스카웃은 오빠 젬과 사이좋은 오누이 사이다. 스카웃과 젬은 여름 방학마다 놀러 온 스카웃과 동갑 내기 남학생 딜과 함께 메이콤의 단조로운 일상을 놀이와 호기심과 모험으로 가득 채워 나날이 새로운 날들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소설의 화자가 꼬마 소녀 스카웃이기에, 같은 여성으로서 나는 어느 평론가의 여성판 '허클베리 핀'이라는 평가에 동의하는 바이다. 아주 좋아하는 톰 소여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보다 나는 스카웃의 모험과 호기심에 더 공감을 많이 느꼈다. 아마 동성으로서 내 유년 시절을 연상하며 스카웃에게 감정이입이 되었으리라.

스카웃과 젬의 아버지는 애티커스 핀치라는 오십 줄에 들어선 남자인데 직업은 변호사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생소하면서도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이 바로 이 애티커스 핀치라는 남자였다. 아, 애티커스가 변호사여서거나 명사수라서가 아니다. 내가 감명받았던 것의 애티커스 핀치의 자녀 교육법이었다.

인간의 생애 중에서 가장 에너제틱하고 하루 중 걸음 수가 제일 많을 시기가 6살 무렵 무터 12살 무렵까지이다. 애터커스는 두 자녀를 두었는데 두 명이 다 이 시기에 해당되었고 게다가 아빠 애티커스는 이 에너제틱 한 아이를 양육하기에는 나이가 좀 많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티커스는 아이들을 너무나 잘 양육하고 있었다!

스카웃과 젬은 잘못한 일이 있어서 애티커스에게 야단을 맞은 적도 많지만 단 한 번도 아빠에게 맞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스카웃도 젬은 아빠가 때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었다.

스카웃과 젬이 옆집에 사는 은둔의 부 래들리 아저씨를 밖으로 끄집어 내려는 짓궂은 여러 시도를 들켰을 때에도, 학교 친구 월터 커닝햄과 치고받는 싸움을 벌여 학교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었을 때에도, 이웃에 사는 듀보스 할머니에게 버릇없는 말대꾸를 하였을 때에도, 애티커스는 고함을 치거나 바닥을 손을 때리거나 가슴을 치는 일 없이 조곤조곤 말로 아이들을 설득시켰다. 아이들이 설득되지 않더라도 손이나 매로 아이들을 때리는 법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설득되지 않으면 설득되지 않는 대로, 가정의 규칙을 들어가며 '안되는 건 안된다'라는 것을 강조하였고 가족의 일원으로 동참하려면 그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하였다.

또 스카웃과 젬이 어른들의 세계-힘과 권력이 우선되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고 관행이 우선되며 위선의 예절이 난무하는-에 반발하며 반항과 질문을 계속할 때에도 애티커스는 인내를 갖고 하나하나 대답을 해주며 아이들에게 어른의 세상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흔히 우리가 이론적으로 알고 있고 맞다고 생각하는 그 교육법을 행하고 있는 부모가 바로 애티커스였다.

'앵무새 죽이기'는 작가 하퍼 리의 자전적 소설인데 어쩌면 소설 속 애티커스 핀치가 실존 인물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하퍼 리는 정말 행운아가 아닌가!

게다가 애티커스는 강간죄의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는 흑인 톰 로빈슨을 변호하는 변호사인데, 여전히 흑백의 이분법이 만연하던 시절, 흑인을 변호한다는 것은 동네에서 왕따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나팔을 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것을 걱정하는 스카웃과 젬에게 애티커스는 이런 말로써 그의 임무를 정당화하였다.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앵무새 죽이기'를 번역한 김욱동은 책의 말미 '작품 해설'에서 '앵무새 죽이기'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넘치는 작품이라고 하였다.

소설에서 사회적 약자라 하면, 은둔의 부 래들리, 누명 쓴 흑인 톰 래들리, 백인의 창고를 교회로 개조하여 예배를 드리는 메이콤 마을의 흑인 주민들, 백인이면서 흑인과 더 친하게 지내는 돌퍼스 레이먼스 아저씨 등이 있는데, 스카웃과 젬과 딜 그리고 애티커스는 이들 모두에게 그들의 친구와 같이 대하여 일체의 편견 없는 동일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이들에 대하여 선입견을 갖고 삐딱한 시선을 보내며 불친절한 행동을 드러낼 때, 우리의 주인공들은 상대가 부 래들리이든, 레이먼드 아저씨이든, 톰 로빈슨이든 간에, 눈에서 나오는 빛과 입에서 나오는 말이나 손끝에서 전해지는 행동이 늘 따뜻하고 온화하고 부드럽다.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애티커스가 한 말과 행동을 스카웃과 젬이 그대로 보고 배운 결과일 터이다.

딜이 만약 결이 다른 아이였다면, 스카웃과 젬과 친구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 딜이 스카웃과 젬과 친한 친구가 된 걸 보면 딜 역시 사람과 세상에 편견을 가지지 않은 큰 사람이다.

하지만 세월이 오래되어도 사람들이 고전이라고 부르며 좋아하는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 읽히는 시점에 따라, 읽히는 시공간의 다름에 따라 각기 다른 부분에서 마음이 움직인다.

나는 이번에 읽는 '앵무새 죽이기'에서는 이 구절이 유독 눈에 걸렸다.


아빠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말이다, 자업자득이란다. 우리는 보통 우리 수준에 맞는 배심원을 갖기 마련이거든. 우선 첫째, 용감한 메이콤 시민들은 재판에 관심이 없지. 둘째, 걱정도 되지. 그러니 그들은..."


톰 로빈슨의 재판이 열리고, 길머 검사와 애티커스 변호사는 배심원과 테일러 판사님 앞에서 동네 주민들이 꽉 들어찬 재판정에서 각각 증인 심문을 진행하였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모든 증거와 증언과 논리는 톰 로빈슨이 무죄이며, 톰을 고발한 백인인 동네 양아치 밥 유얼과 그의 딸 메이엘라 유얼이 톰을 모함한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래서 다른 재판과 달리, 배심원들은 오랜 토론을 가졌다. 하지만 재판의 결과는 의심만으로도 흑인은 유죄 판결이 내려져야 하는 시절이었고, 아무리 잘못된 고발과 기소라 하더라도, 고발인이 모두가(백인이든 흑인이든) 인정하는 양아치 백수건달이라 하더라도, 백인이 재판의 의뢰인이라면 그 의뢰인은 당연히 승리를 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잘못된 재판 결과를 보고, 스카웃과 젬이 아빠에게 물었다.

왜 우리나 모디 아줌마 같은 사람들이 배심원이 될 수는 없는 거예요?

이 질문에 대한 애티커스의 대답이 내가 이번에 이 책에서 유독 눈에 걸리는 구절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보통 우리 수준에 맞는 배심원을 갖기 마련이거든."

1932년 당시 미국 남부 메이콤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배심원을 둔 대가로 죄 없는 흑인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그 후 몇 십 년의 투쟁과 몇몇의 희생이 담보가 되어 현재 미국은 그보다는 나은 세상이 되었다. (흑백 차별에 한해서는)

나는 내가 제법 높은 수준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의 배심원 자리(지도자)에는 내 수준에조차 전혀 미치지 못하는 얄팍한 사람이 떡 하니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애티커스 말이, 수준에 맞는 배심원을 가진다는데, 지금 대한민국의 배심원 자리에 있는 사람이 우리의 현재 수준인 건가?

재판을 지고 나온 애티커스의 답답한 심정과 명백한 진실을 감추는 어른들을 보고 절망을 느낀 스카웃과 젬의 마음이 그 구절을 읽는 나에게 한치의 공백도 없이 고대로 시공간을 넘어 전달되었다. 내 마음은 답답하고 절망적이다.

지금 우리의 배심원 격인 자리에 계시는 분이 아랍에미리트에 가서 '아랍에미리트의 적이 이란이다'라는 말을 공개 석상에 하였다고 한다. 이란에서는 해명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자칫하다간 호르무즈 해협도 못 쓰고 원유 대금 8조의 향방도 안갯 속이라고 한다.

내 마음은 언제까지 답답하고 절망적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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