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러스먼트 게임
이노우에 유미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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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어? 그럼 그만둬. 안전하지만 시시한 일이거나 위험하지만 재미있는 일, 둘 중에 하나를 해야지. 위험하면서 재미도 없는 일을 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야."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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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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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뒤티유욀은 자신이 벽으로 드나드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43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정말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의사는 체력을 과도하게 소모하라는 처방을 내렸지만 종일 앉아서 일을 하는 뒤티유욀은 업무 외 시간이나마 신문 읽기와 우표수집 정도만 할 뿐이어서 도무지 체력을 쓸 일이 없어서 벽을 드나드는 능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전혀 쓸 일은 없는 채 그저 보유만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회사에 상사가 바뀌면서 새로운 변화의 지시가 내려오는데 이 변화를 거부하던 뒤티유욀은 벽으로 드나드는 능력을 인지하게 되고 그 때부터 이 능력을 왕성하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주로 부자들의 물건을 도둑질하며 의적으로 칭송받다가 스스로 감옥에 갇혔고 또 탈출을 하여 나름 변신을 하여 유유자적 살고 있었다. 하루는 길을 가다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그 여인과 사랑에 빠졌는데 그 여인은 유부녀였다. 어쩔 수 없이 늦은 밤 몰래 그녀의 남편이 없는 사이 그녀의 집에서 뜨거운 사랑을 종종 나누게 되었다. 그 날은 두통으로 언젠가 처방받은 약을 먹고 그녀의 집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새벽이 되어 늘 하던 것 처럼 벽을 통해 그녀 집에서 나왔는데 갑자기 몸에서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더니 뒤티유욀은 그만 벽 속에 그대로 갇혀 버렸다.

 

약 20쪽이 되는 분량의 이 소설의 줄거리는 정말 위의 요약이 전부이다. 서너 페이지에 있는 삽화를 빼면 순수히 내용은 15쪽 정도뿐이 안되는 것 같다. 요즘 기준으로 치면 단편소설 축에도 끼지 못할 만큼 짧아서 아마 어디 응모하지도 못했을 분량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현재까지 인구에 회자되면서 널리 이름을 알리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2~3년 전에 연극무대로 올려지기도 했다. 내용이 이렇게나 짧은데 각색은 어떻게 되었고 연출은 어떻게 되었을지 다시 공연된다면 꼭 연극을 보러가고 싶을 정도이다.

 

이 작품은 1943년에 발표되었다. 그 당시를 기준으로 본다면 멀쩡한 사람이 벽으로 드나드는 초능력을 가졌고 별 쓸잘데기 없는 곳에 그 어마어마한 초능력을 쓰고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벽에 갇힌다는 기발한 상상력이 정말 신박했었을 것 같다. 그래서 많이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기가 있었을 것이다. 무엇인든지 처음 시도한다는 것은 새롭다는 것에 대한 위험과 엉뚱한 것에 대한 용기와 모험에 대한 호기심이 동반되어야 그 '처음'을 완성할 수 있는 법이다. 지금의 관점에선 그닥 새로울 것 없는 환상동화이지만 1943년 프랑스를 생각해보라. 우울한 그 시대에 이런 기발한 환상을 꿈꿀 자 별로 없었을 터.

이 작품을 두 번을 읽으면서 (왠만해서 한 번 본 것을 두번 보지않는 편인데 책이 너무 짧아 두번보기에도 전혀 부담이 없었다.) 드는 생각이 세 가지 정도 있었다.

 

첫째, 사람은 역시 여유가 있어야 자기의 능력을 개발하게 된다.

지루하기 짝이 없을 만큼 변화가 없고 여유가 충족한 생활을 하던 차에 뒤티유욀은 자신만이 가진 능력, 벽으로 드나드는 능력을 깨닫게 된다. 새벽에 일어나 교통지옥에을 통과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빡빡하게 몸과 머리를 쓰고 소금에 절여진 배추같은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라면 내가 뭘 갖고있는지 알아차릴 수가 전혀 없을 것이다. 뒤티유욀이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알고 찾아간 의사의 처방은 "체력을 소모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즉, 제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체력을 소모하면 능력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일상이 스스로를 절인 배추와 같이 만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들이여 자신이 놓치고 있는 능력은 없는지 여유를 갖고 찬찬히 관찰해볼지어다.

 

둘째, 사는데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뒤티유욀이 그렇게 좋은 능력이 있었다해도 상사가 바뀌지 않고 또 상사가 바뀌었더라도 업무에 변화를 주지 않았더라면 뒤티유욀은 살던 대로 살았을 것이고 자신의 능력을 되찾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뒤티유욀은 강하게 거부했지만 어쨌든 상사덕분에 능력 개발을 이루었다.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 우리에게 자극을 주는 모든 외부 변화에 대부분 감사하고 볼 일이다.

 

셋째, 자신의 주변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한다.

정리 정돈을 잘 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의약품이 어디에 있는지 뭐에 쓰는 약인지 정도는 알고있는 사람으로서, 그냥 두통약이겠거니 짐작하고 알약을 먹어서 능력을 잃게되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과유불급이라고 자신의 능력을 막 써도 되는 지경이 되니 긴장을 늦추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첫 눈에 반한 사랑하는 여인에 온 맘을 다 쏟고 있었기 때문일까? 뒤티유욀은 체력을 소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두통약으로 잘못 알고 먹는 실수를 한다. 능력이 생긴 이후에 처음처럼 약간의 긴장과 생각을 하고 지냈다면 충분히 방지할 수 있는 실수였다. 사람은 익숙해지면 편해지고 편해지면 습관이 된다. 습관이 되는 순간 생각의 횟수는 줄어드는 것이 이치이다.

 

이 책에는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외에도 생존 시간 카드, 속담, 칠십 리 장화, 천국에 간 집달리 의 4개 작품이 더 실려있다. 개인적으로는 '생존 시간 카드'가 너무나 재미었었고 어릴 적 보던 환상특급에서 나올 법만 이야기여서 기발한 상상력과 전개에 푹 빠져서 보았다.

속담과 천국으로 간 집달리는 전래동화같은 느낌이 있었고 칠십 리 장화는 안데르센의 따뜻한 동화같은 분위기의 책이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분위기의 글을 쓴다는 것에 놀랍고 그 시절에 이렇게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또 놀랍니다. 여러모로 부러울 따름이다. 그래서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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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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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특혜자들 역시 우리를 시샘하고 있다. 우리가 신비와 미지의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 은근히 부러운 모양이다. 정작 우리는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무의 장벽을 지각하지 못하는데, 우리가 없는 동안에도 삶을 계속 영위하는 그들은 오히려 그것을 민감하게 느끼기 때문에 더욱 샘이 나는 것이다. 그들은 상대적인 죽음을 마치 후가처럼 여기먼서 자그들은 사슬에 매여 있다고 느낀다. 대체로 그들은 염세주의에 잘 빠지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에 반해서 나와 같은 범주의 속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면서 더욱 빠른 생활 리듬을 따르다 보니 명랑한 기분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 P59

고백할 만한 속내 이야기가 없어서 그저 남의 얘기를 듣기만 해야 하는 신세만큼 처량한 것도 없다. 누구나 알다시피, 고전 비극에서 우리를 진자 슬프게 하는 것은 주인공의 비밀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의 비극이다. 평생 특별한 일이라곤 겪어본 적이 없는 순진한 사람들이 자기 모험을 자랑스러워하는 주인공의 장황한 이야기를 체념한 채 다소곳하게 듣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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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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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박완서 읽기 3번째.

그의 데뷔작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박완서는 40의 나이에 등단햇다. 요즘이라고 해도 여자 나이 40이면 첫 시작을 하기에는 자신감이 결핍될 듯한 나이인데 1970년에 여자 나이 40에 등단을 했으니 아마도 그 때 문단에서는 약간이라도 센세이션이 되었음직하다.

 

<니목>은 박완서 작가가 취직하여 다녔던 미군PX의 경험을 일부 반영하여 쓴 소설이다. 그때 만났던 박수근 작가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20대 젊은 여성들이 전쟁이라는 참상을 어떻게 겪고 느꼈는지가 옥희도(아마도 박수근)라는 인물을 가운데 두고 그려내었다.

 

1.4후퇴 후 전쟁이 약간은 익숙해져 벼린 날에 경아는 서울의 아주 오래된 한옥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고있다. 경아는 생계를 위해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가게에서 미군을 상대로 스카프나 손수건에 그림을 그리라고 영업을 하고 정산을 하는 일을 하고 있다. 4명의 환쟁들이 일을 하고 있는 가게에 진짜 화가인 유부남 옥희도가 생계를 위해 합류한다. 전기수리공인 황태수가 경아에게 호감을 느끼며 다가오는 중인데 경아는 유부남인 옥희도에게 마음이 끌려 그를 사랑하게 되고 만다. 그것은 유부남 옥희도도 마찬가지. 서로는 각자가 가지고 있던 결핍과 불안을 잠시라도 녹여줄 그런 대상이 필요했던 것인데 마침 그 곳이 각자가 서있었던 것이다.

참담한 전쟁의 가운데 경아는 전쟁이 모든 것을 황폐화시키고서야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쩌면 어서 빨리 황폐해지기를, 그러기 전에 자기가 먼저 황폐해지기를 바라며 버티고 있는 삶이다. 그 속에서 순수한 맑은 눈빛을 한 옥희도는 경아에게 어쩌면 빨리 자신을 황폐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고 또 어쩌면 황폐해져가고 있는 자신을 구해줄 사람이라고 잠재 의식 속에서 생각했었을 지 모르겠다. 소설의 끝부분에 이유가 밝혀지긴 하지만 경아는 전쟁이 준 고통속에서 엄마를 미워하며 엄마의 모습을 한 오래된 한옥을 죽기만큼 싫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하소설이 아닌 다음에야 이야기는 크리스마스 전 어느 즈음부터 아직 그 겨울이 끝나기 전까지 겨우 몇 개월을 그렸을 뿐이다. 그런데 600페이지가 얼추 되는 제법 두껴운 책은 경아의 생각과 느낌의 절절한 묘사와 그가 바라보고 느끼는 전쟁 중 서울, 전쟁을 견뎌내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으로 가득차 있다. 그 묘사와 서술이 너무도 생생하고 박완서 특유의 생경하면서도 상상가능한 비유와 은유로 인하여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스하고 조금은 건조한 시선으로 하여 나는 오히려 익숙해져버린 그 전쟁이 한층 더 무섭게 다가왔다. '역시 전쟁은 안돼. 두 번 다시 전쟁은 절대 안돼.'라는 생각을 박 작가의 담담한 표현으로 인하여 역설적으로 전쟁과 죽음과 학살을 더 절절히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참 보수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종아하게 되었던 재미는 책인데도 첫 부분에 경아가 싱그러운 젊음을 가진 태수보다도 아이가 다섯이나 딸린 멀쑥한 옥희도에게 연정을 느끼고 사랑을 갈구할 때 나는 경아가 미웠다. "아니 젊은 아가씨가 어떻게 남의 남자를. 멀쩡한 가정을 깨려고 하나. 저 밖에 모르는 나쁜 가스나"라는 생각을 하며 주인공인데도 애착이 가지 않았고 오히려 경아를 일편단심 좋아하고 위해주는 태수를 응원하였다.

이것은 소설인데, 아니 현실일지라도 그들이 가진 감정을 제 3자가 뭐라 할 수 있겠냐마는, 유부남이라면 처음부터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있었나 보다, 나는. 경아가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의 도입부분에서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이 안되니 속도가 조금은 더뎠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아, 나는 내가 인지하고 있던 것보다 좀 많이 보수적이구나'라고.

어쨌든 나중에 경아의 그런 마음 끌림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등장하여서 그 미움으로 책을 마무리하지않을 수 있었어 좋았다.

 

국문학과를 입학하지 마자 전쟁이 일어나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23살의 나이에 결혼을 하여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육아와 가사로 전혀 글을 쓰지 못하다가 거의 20년 세월이 지난 후 박완서는 첫 작품을 내었다. 첫 작품 발표때까지 20년이 걸렸지만 첫 등단이후 박 작가는 그야말로 소설, 산문, 동화, 콩트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수많은 작품을 어느 젊은 작가 못지 않게 왕성하게 써내었다. 책 뒤에 붙은 작가 이력을 보니 그야말로 후덜덜하다. 20년 묵은 솜씨를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쓰고 소진하겠다는 결의까지 엿보였다. 그가 일생동안 써내었던 작품 수에 비하면 잘 알려진 소설은 의외로 몇 개 되지 않는 것 같다. 역시 후대에 길이 길이 이름이 남거나 혹은 시대에 두루 두루 회자되는 작품은 그만큼 어려운 가 보다. 하긴 모든 작품이 다 히트작이고 다 별 5개짜지이면 그 사람도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몇 개의 작품이라도 이렇게 오래도록 앞으로도 더 널리널리 읽힐 만한 작품을 쓰려면 역시 많이 일고 많이 써보아야 하는 것 같다. 박 작가의 두툼한 이력을 보며 누구나 다 아는 진리 하나를 또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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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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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나는 내가 전에 애송한 시의 구절을 생각해내려고 골몰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남의 흉내, 빌려온 느낌은 그것을 깨닫자 흥을 잃고 싱거워졌다. 그리고 가식없는 나의 것만의 남았다. - P37

"엄마. 우린 아직은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건 변화하게 마련 아녜요. 우리도 최ㅗ한 살아 있다는 증거로라도 무슨 변화가 좀 있어얄 게 아녜요?"
"왜? 이대로도 우린 살아 있는데."
"변화는 생기를 줘요. 엄마, 난 생기에 굶주리고 있어요. 엄마가 밥을 만두로 바꿔만 줬더라도....... 그건 엄마가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이잖아요. 그런 쉽고 작은 일이 딸에게 싱싱한 생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다는 걸 엄만 왜 몰라요?" - P127

조상들의 꿈을 아무리 공들여 닦아도 내 꿈이 달래지지는 않았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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