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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지음 / 생각의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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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수치에 대한 해석은 늘 비슷하다. 나빠지면 나빠지는대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좋아지면 좋아지는 대로 ‘샴페인을 터뜨려서는 안된다. 그래서 경제 날씨와 관계없이 늘 우산을써야 한다. 또 하나, 경제예측 수치는 그야말로 요해 불가다.

_ 경제예측이라는 점쟁이 중 - P215

비천한 출신 배경 때문에 그는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경구는 피하고, 구체적인 일상에 뿌리내린 사례를 통해 지혜를 나누려 했을 것이다. 그가 어설픈 점쟁이를 경계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다. 틀렸으면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지, 그 틀린 말이 내일은 옳을 것이라 몽니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겠다. 오늘날 여전히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경제모델도 이솝의 낮은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 진실을 말할 때조차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이솝이 남긴 지혜다.

_ 경제예측이라는 점쟁이 중 - P220

그래도 아랫목에 앉은 이들은 아궁이에 더 가까우니, 그들의 소리도 더 가깝다. 윗목은 아직 춥다고 소리쳐도 소용없다. 윗목 사람들의 목소리는 방문을 치고 들어오는 찬바람에 쓸려갔다. 병들고 죽고서야 그들이 보였다. 아랫목 사람 성화 탓에 아궁이로 들어가는 장작은 줄었다. 하지만 그들은 장작을 줄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아궁이를 건실하게 하는 ‘건전화consolidation‘ 라고 불렀다. 항간의 오해와는 달리 경제학은 필요하다면 기꺼이 문학적 표현을 사랑한다.

_ 경제방면의 책을 읽다 중 - P224

옳음을 말하는 우리가 실상 길을 막고 서 있다는 것이고, 존 버거가 말한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예 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문제다.

_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할 때 중 - P231

따라서 19세기의 존 스튜어트 밀을 21세기에 불러오는 일은 소수의 진정한 자유를 찾는 일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끌어내고 경제·정치제도를 바꾸는 일이다. 노련함의 목소리가 아니라 세월을 버틴 거칠고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짐짓 늙은 척하지 않는 것이다.
늙어감이란 무엇인가. 워즈워스는 다시 묻고 답했다. "한가롭게 펼쳐진 해변에 축 처져 비틀거리는 버드나무다. 단언컨대,
일흔을 향해 가던 밀은 이 구절엔 결코 동의하지 않았으리라.

_ 낮은 소리에 자유를 준 경제학자 중 - P236

이자율상승이라는 무거운 추를 우리의 몸에 꽁꽁 묶어서 불황이라는늪으로 내려간 뒤 끝내 살아남은 자들이 바닥을 딛고 올라오는날을 기다린다. 늪에 빠져 아우성인 사람들에게 밧줄을 던져줄 생각은 없다. 밧줄을 던지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래서는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울프 소설의 남편 친구가 말했듯이, 서풍이 부는 날에는 등대로 갈 생각조차 말아야 한다.

_ 등대로 함께 찾아가려면 중 - P240

표적이 정확히 보이면 투표하고, 표적이 사정거리를 벗어나 있으면 투표용지를 주머니에 넣어두라고 했다. 나는 표적이 보이지 않는데 투표하러 간다.

_ 투표하러 가며 묻는다 중 - P248

착한 사람들은 죽음의 총량을 줄이는 것이 최선임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들이 택한 방식은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다. 즉 위험의분배를 바꾸어 특정 그룹의 사람들이 온전히 그 위험을 떠맡도록 한다. 그 그룹의 이름은 명징하게도 비정규직이다. 그들은 일터의 바깥에 있다가 죽을 때만 한가운데에 들어온다. 착한 사람들이 목소리 높인 선거였기 때문일까. 나와 남의 온갖 더러운 사생활을 내놓고 따지면서도 이렇게 ‘더럽게도 위험한‘ 일에 대해서느 막을 아낀다.

_ 투표하러 가며 묻는다 중 - P249

시리아 난민들이 그동안 배운 것이 있다면 타인이 심어주려는 희망을 의심하는 법이다. 이젠 눈물조차도 믿지 않는다. 믿지않는다기보다는, 눈물의 지속성을 믿지 않는다. 눈물은 왜 떨어지는가. 결국은 땅 위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기 때문이다.

눈물을 믿지 않는 곳, 요르단에서 묻는다 중 - P264

차별당해 보지 않은 자가 차별의 고통을 알기란 힘들다. 좀안다는, 그리고 할 만큼 했다는 미망이 차별의 그림자를 길고깊게 한다. 차별은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많아야 아주 서서히 사라지는 놈이다. 싫은 소리도 옆에서 해야 한다. 지레 이해했다고 앞에 서서 목청 높여 말하는 순간 그것은 훈계가 되고 때때로 혐오에게 보내는 초대장이 된다. 차별은 악착같은 놈이다. 우리가 차별이 없다고 외치는 순간 우리 머리 위로 차별이라는 놈은고개를 내밀며 뱀의 혀처럼 날름거린다. 브루스는 이걸 알게 되었을 것이다.

_ 차별하지 않는다는 네게 묻는다 중 - P270

추억이란 때로는 내가 쌓아 올린 강고한 성곽이다. 타인을 허용치 않는 그곳에서 쏟아내는 말은 성곽 안에서만 증폭되는 메아리다. 바깥으로 나온 추억은 정체불명의 소음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추억이란 말하는 자에게는 달콤하고, 듣는 자에게는 씁쓸하다.

_ 추억의 성곽에서 묻는다 중 - P279

"가벼운 슬픔은 말이 많고 큰 슬픔은 말이 없다." 탐탁지 않지만, 세네카의 이 말만은 진실하다.

_ 어버이날에 묻는다 중 - P282

방향과 떨림이 섞여서야 비로소 세상의 나침반이 된다. 내가 그 방향을 향해 제대로 서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것이 나침반이라면, 방향과 떨림 어느 하나만 봐서 될 일은 아니다. 나침반 끝이 흔들린다고 방향을 부정하는 것이 반동이고, 방향의 존재를 이유로 제가 선 곳이 옳다고 목소리만 높이는 것이 퇴보다. 둘 다 앞길을 막기는 매한가지다.

_ 떨리는 것들을 보며 묻는다 중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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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원청기업은 이런 비효율적 하청을 왜 도입하는 것일까. 비용과 위험을 하청을 통해 전가할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여러 가지 간단치 않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기업 내에서의 지대 추구 행위도 그런 이유 중 하나다. 원청기업의 고위)직원들이자신의 배타적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회사 전체의 이익과일치하지 않는 생산방식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_ 또 다른 울타리 치기: 하청과 중간척취 중 - P120

그랬더니 몇 년 전에는 정부가 묘수를 내었다. 어린이날의 기쁨을 튼실한 소비로 이어가기 위해, 그다음 날을 임시공휴일로 제정했다. 사람들은 모처럼 생긴 여유로운 시간에 장 보러 나섰다. 백화점과 시장의 매출이 몇십 퍼센트 올랐다. 머리 좋다는 경제전문가들은 정책이주효했다고 희색인데, 정작 소비자들은 갸우뚱했다. 다음 주에갈 쇼핑을 임시공휴일에 앞당겨서 한 것뿐인데 소비가 늘었다고하니 그 계산법이 의뭉스러웠다.

_ 굳세어라,소비자여! 중 - P124

고만고만한 뻔한 수입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에게는 "둘에 둘을 더하면 변함없이 넷이 된다. 하지만 정치라는 비유클리드적non-Euclidean 세계에서는 부분이 전체보다 크기 쉽다. 다시, 조지 오웰의 말이다.

_ 네 코앞의 일을 제대로 본다는 것 중 - P131

민간부문의 ‘주연‘ 역할만큼 공공부문의 ‘마중물‘ 역할도 중요하다. 상충관계로 볼 일만은 아니다.

_ 일저리의 진정한 가치 중 - P134

게다가 최근에는 실업률이 낮아지고 기업들이 사람 구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데도 임금은 계속 정체되는 현상이 잦다.
저명한 노동경제학자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David Blanchflower는 ‘포기의 경제학‘ 때문이라고 한다. 일자리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그저 기회가 있는 만큼 일한다는 것이다. 일자리 기회가 생기면 이런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서 임금이 늘지 않는다. 임금 협상을 해줄 노조도 없다. 허깨비 같은 임금과 물가 걱정 때문에 긴축정책은 이제 두 발 앞서고, 적극적인 팽창정책은 두 발 느리다.

_ 일자리와 정치 중 - P137

지난 세계화 시대에는 시민들이 분배에 대해 물으면 답변은늘 ‘평균적 개선‘이었다. 분열되는 거친 현실을 가상의 평균으로봉합하려는 시도였다. 돌이켜 보면 이런 엇갈리는 ‘세계주의’ 대화에서 세계화가 오래 버티기는 힘들었다.

_ 세계주의를 경계한다 중 - P140

정치와 경제를 자신의 공간으로 다시 불러오려는 노력에는 ‘낡은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딱지가 붙는다. 정치적 거부감은 이거리만큼 커졌고, 정치적인 빈 공간도 생겨났다. 그 빈자리는 트럼프류의 신종 애국주의 정치가 메웠다.

_ 세계주의를 경계한다 중 - P141

천박한 분노란 없다. 분노에 대응하는 천박한 방식만이 있을 뿐이다.

_ 세계주의를 경계한다 중 - P141

영국의 인류학자가 좀 더 쉽게 설명했다. "척도measure가 목표target가되는 순간 더는 좋은 척도일 수 없다."

_ 세계화 시대의 일그러진 경쟁 중 - P143

이렇게 보면 굿하트의 법칙은 그나마 척도가 옳을 때 맞는 얘기다. 잘못된 척도가 목표가 되면 그 척도는 사회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끈다. 그간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온 국가경쟁력 지표들을 경계하는 까닭이다.

_ 세계화 시대의 일그러진 경쟁 중 - P147

무엇보다도, 인류가 피 흘리며 쌓아올린 인권과 평등의 정신이 절대위기에 처했다. 이를 지키는 싸움이 우리의 절대명제다. 그러려면 우리의 고고한 지성도 변해야 한다. 그들과 대화하는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분석하고 명백한 언어로 답해야 한다. 트럼프는 미국에만 있지 않고, 세계 곳곳에 숨죽이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안다. 운전하는 아내에게 잘난척 ‘지성‘을 뽐내봐야 내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멸시의 눈빛뿐이라는 걸.

_ 트럼프 시대의 반지성주의 중 - P158

불평등은 차가운 경제법칙의 피할 수 없는 운명도 아니고절대 사소하지도 않다. 오히려 잘못 키웠다가는 큰불로 돌아오는 불장난과 같다. 싫어서 내던졌지만 멀리 돌아가서 결국 크게돌아오는 부메랑이다. 내일이 아니라고 모른 척했다가는 너 나할 것 없이 모두가 다친다. 싫고 좋고를 따지고 구분할 문제는 아니다.

_ 불평등이라는 부메랑 중 - P163

힘을 가진 자들이 해대는 몹쓸 일이 부끄러운 것은 분노의 감정이다. 나보다 못한 사람 때문에 부끄러운 것은 혐오와배제의 감정이다. 나는 저 사람들과 다른데 내가 그들처럼 취급받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니고 싶은 욕망이다. 우리에게 분노의 부끄러움은 적고 혐오의 부끄러움은 넘친다.

_ 또 다른 바이러스 중 - P168

뮤지컬 <빨래>에 나오는 노래 ‘슬플 땐 빨래를 해‘를 처음 들었다. 따스했지만 슬펐다. 일을 못 구하고 잘리는 일상을 서로 격려하면서 버틴다. 하지만 바깥세상은 꿈쩍하지 않는다.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라고 노래할 뿐, 누군가 그랬다. 이런 사람들의 젖은 마음을 꺼내서 마르게 하는 것이 정치라고. 그러길 바란다.

_ 인간의 체온을 지키려면 중 - P176

오늘도 거대한 상실의 하루였다. 상처는 깊어지고, 치유의시간은 아직 멀다. 인내하며 기다리는 굼벵이처럼 살다 보면 언젠가 우리 모두 장수하늘소가 되어 날 수 있을까. 금요일의 저녁은 그렇게 왔다.

_ 코로나 시대의 어떤 하루 중 - P181

전쟁은 어리석다고 중단되지 않는다. 어리석음은 항상 끈덕진 법이다.

_ 카뮈, 역병시대의 종교와 의사 중 - P184

그는 왜 역병과의 싸움에 자신이 나서야 하는지를 묻고 고뇌한다. 답을 멀리서 찾지 않았다. 답답해서 창문을 열자 도시의 소음이 몰려왔다. "가까운 공장으로부터 짧게 반복되는 날카로운기계톱 소리, 그 소리에서 그는 깨닫는다. 인간의 확신은 확성기를 통해 터져나가는 ‘구원의 진실‘이 아니라 바로 저 "매일매일의 노동"에 있다. 그리고 그 노동이 가져다주는 ‘구원‘. 카뮈는 말한다. "페스트 시대의 종교는 여느 때의 종교일 수 없다." 콜레라시대에도 유효한 얘기이고, ‘코비드19‘라는 암호명 같은 이름을가진 바이러스 시대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_카뮈, 역병시대의 종교와 의사 중 - P183

그다지 놀랍지 않은 것이 있다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은 어려운 시기에 더 고생한다는 ‘고생 가속화 법칙‘의 유효함이다.

_ 불평등 바이러스 중 - P189

임금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선진국 경제는 뚜렷하게 회복했지만 노동시장을 떠난 노동자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언제 돌아올지를 두고 날 선 논쟁은 계속되지만 사실 누구도 알지못한다. 떠난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하니 돌아올 날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실업은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고용 회복은 느렸다. 구인난, 임금 폭등, 이에 따른 물가 대란. 친숙하지만 무시무시한 말들이 오갔다. 물자부족과 사람 부족으로 시작된 인플레이션이지만 곧 화살은 임금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았다. 정치의 또다른 균열도 멀지 않았다.

_ 갈림길 중 - P195

두 세기전 일을 새삼스레 떠올린 까닭은 역병이 결국 인간의 역병으로 귀결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감자 역병은 감자의 일이었는데, 이 일로 사람이 죽게 되는 것은 사람 때문이었다. 대책과 정책, 그리고 그 뒤에 깔린 이해관계, 신념으로 포장된 편견때문이었다. 인간 사이에 이미 떠돌던 역병이 사물 세계의 역병을 만나 인간의 고통을 증폭하고 죽음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_ 인간의 역병 중 - P200

아마르티아 센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거리를 대기근의 이유로 보았다. 멀리 있는 고통은 적극적 공감과 정책 대상이 아니라 통제 대상이다.

_ 인간의 역병 중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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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지음 / 생각의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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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사람들은 대부분 소작 생활을 하며 먹고살았고, 살림이 어려워지면 너른 공유지에서 방목도 하고 나무도 해오고 나물도 캐서 그럭저럭 살았다. 팍팍한 삶이었지만그럴 때마다 누구나 의지할 수 있는 나눔의 공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양모가 돈이 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지주들은 양을 키우기 시작했다. 너른 들판이 필요하다 보니 농민들을 몽땅 쫓아내고 울타리를 쳤다. 공유지에도 울타리를 쳤다. 항의라도 해보려 하면 주먹이 먼저 날아들었다. 칼날도 뒤따랐다. 농민들은 부랑자가 됐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갔다. 저항하다가 쓰러진 이도 있었다. 민란도 빈번했다.

_ 우리 시대의 울타리치기 중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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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지음 / 생각의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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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죽으면 잊히고, 살아 있으면 편리한 손가락질의 대상이다.

_ 죽음이 또 다른 죽음으로 잊히는 사회 중 - P45

남는 것은 그들의 죽음을 기록한 숫자일 뿐이다. 김훈 작가의 말은 그래서 아프다. "죽음은 무의미한 통계 숫자처럼 일상화되어서 아무런 충격이나 반성의 자료가 되지 못한다.

_ 거대한 공동의 묵인 중 - P50

만신창이 고철 덩어리 같은 배를 이리저리 기워서 바다로 내보냈다. 선원들의 걱정과 항의는 그저뱃전을 때리는 파도 소리에 불과했다. 배는 예정된 운명을 맞으러 바다로 나갔다. 울며 붉어진 친구들의 눈은 불타올랐다. 인ㆍ간이 어찌할 수 없는 바다가 저지른 ‘횡포‘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범죄‘였기 때문이다.

_ 30년의 다짐, 넌 무얼 했느냐 중 - P53

한국 노동권의 시간은 중층적이다. 노동권 보장이 남부럽지않은 노조도 있고, 억울한 일에 목소리를 합쳐 따져보는 것마저도 꿈같은 사람들도 도처에 있다. 정부와 경영계도 대기업 노조의 힘에 볼멘소리를 하면서 비정규직을 더 챙겨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사정을 살피는 첫걸음으로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데는 아직까지 모른 척이다.
그래서 100년이 지나도 노동권은 많은 이에게 "거친 꿈"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꿈이다. 루스벨트는 오늘도 서울거리에서 서성거린다.

_ 노동권,그 100년의 거친 꿈 중 - P62

4차 산업혁명의 다른 현장은 여전히 18세기 방직 공장이다.
디지털 플랫폼으로 무장한 배달업체에서 일하는 청년들은 하루12시간씩 일주일에 하루 쉬고 6일 일한다. 월 200만 원도 벌지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들은 ‘사장‘이라 불린다. 오늘날의일할 권리는 너무 편의적이다. 일자리가 필요할 때는 주지 않고,
일자리를 얻으면 내가 원하는 만큼 일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오언은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8시간노동‘이라고 했다.

_ 8시간 노동의 험난한 여정 중 - P65

게다가 우리는 ‘실패한 게으름‘에는 가혹하지만 ‘성공한 게으름‘에는 얼마나 관대한가. 운이나 권세 덕분에 자신의 재능과 노력 이상으로 벌고도 몇백 억 세금을 빼돌린 사람은 모른 척하다가도, 없는 사람의 몇만원에는 서릿발 치는 눈빛을 보낸다.

_ 게으름 탓이라는 강고한 신화 중 - P69

어느 일등 대학은 노동자 파업으로 도서관의 난방이 중지되자 학생의 학습권을 주장했다. 일등학생의 학습은 쉽사리 신성한 권리가 되고, 평범한 노동의 권리는 사회의 거추장스러운 부속물이 된다.

_ 나는 되고, 너는 아니 된다? 중 - P72

일을 시킬 때는 ‘갑질‘, 일값을 치러야 할 때는 ‘운명공동체‘. 하도급 구조는 이렇게 완성된다.

_ 임금체뷸사건 중 - P82

나의 노조는 필요하지만 너의 노조는 불편하다는 생각마저 생긴다.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그 생각은 거침없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의 결과로 노조 조직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한다. 물론 대부분 구조적 요인 때문이지만 적지 않은 부분은 ‘선택‘의 결과다.

_ 노동조합, 이로우나 허하지 말라 중 - P93

우리가 살고 있는 ‘노동의 미래‘에는 ‘어제의 노동자‘가 가득하다. 오손도손 가족이 모이는 명절을 앞두고 임금체불 소식이며 산업재해 소식은 여전하다. 날짜를 지운다면 언제 적 얘기인지 알쏭달쏭할 지경이다. 다만 그때는 기름 냄새 확 나는 신문에서 읽었고, 지금은 소파에 누워 부스스한 눈으로 스마트폰에서 읽을 뿐이다.
_ 노동의 미래와 어제의 노동자 중 - P98

또 하나, 일자리 숫자만 따지다 보니 일자리의 질을 보지 못한다. 예컨대 컴퓨터 시대의 문제는 대량실업이 아니라 좋은 중간층 일자리의 상실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문제는 일자리의 소멸이 아니라 플랫폼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이다. 또 그렇게 형성된 새로운 부가 나누어지는 방식의 문제다. 현란한 신기술이 가리키는 곳이 아니라 그 현란함 때문에 그늘진 곳을 살펴야한다._ 인공지능: 인간을 인간적으로 중 - P104

많은 나라에서 ‘기회의 평등‘을 위한 첫걸음도 내딛지 못했던 1950년대에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Michael Young은 미완의 과제에 서둘러 경고음을 울렸다. 기회 평등을 통해 성장한엘리트 계급이 모든 기회를 포획하거나 독점함으로써 그 역사적진보성은 역설적으로 사회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_ 키 작은 능력주의 중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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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층계급에게는냄새가 난다." 오웰은 기득권층이 이 세 마디 무시무시한 단어로 하위계층을 제압한다고 했다.

_ 이모 집의 냄새 중 - P29

2019년 11월 <경향신문>이 그해 산업재해로 사망한 분들1,200명을 모두 호명해 내었다. 40~50대가 50퍼센트를 넘고, 대부분 50인 이하 사업장에서 일하셨다. 우리 이모부 같은 사람들이다. 나는 저 많은 분들이 세상에 남겨둔 가족들이 궁금했다. 그들이 견디어 냈을 팍팍한 삶이 그들의 이름 밑에서 훌쩍거리고 있을 것 같았다.

_ 이모 집의 냄새 중 - P31

(다시 날짜 불명)이 모든 것들이 참으로 기괴하여 내 한번 따지려 하니, 나도 숨어 있는 자요, 저 죽음에 기대어 사는 자다.
나도 저 당당한 식인의 풍습에서 평온한 것이다. 그래서 콜럼버스처럼, 나도 편지에 적어 알리지 않고 여기에 홀로 적어둔다. 설마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겠는가.

_ 광인일기, 식인의 풍습을 보았다 중 - P37

따라서 죽을 각오는 비대칭적이다. 죽을 각오를 하거나 권하는 사람 중 죽은 사람은 드물고, 그런 각오의 압력 속에 선택의 여지 없이 묵묵히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죽는다. 죽을 각오로 일 하라고 해서 ‘죽을 만큼‘ 일하면 소리 내기도 힘들기 때문에 소리 없이 죽는다.

_ ‘죽을 사회‘를 권하는 사회 중 - P42

명량해전에서 시퍼런 칼날을 세우던 "사즉생"은 오늘날 시뻘건 탐욕과 뻔뻔한 무책임을 감추는 방패가 되었다. 하릴없이 충무공에게 불평한다.

_ "죽을 각오"를 권하는 사회 중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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