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가면 길이 된다
이상헌 지음 / 생각의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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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수치에 대한 해석은 늘 비슷하다. 나빠지면 나빠지는대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좋아지면 좋아지는 대로 ‘샴페인을 터뜨려서는 안된다. 그래서 경제 날씨와 관계없이 늘 우산을써야 한다. 또 하나, 경제예측 수치는 그야말로 요해 불가다.

_ 경제예측이라는 점쟁이 중 - P215

비천한 출신 배경 때문에 그는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경구는 피하고, 구체적인 일상에 뿌리내린 사례를 통해 지혜를 나누려 했을 것이다. 그가 어설픈 점쟁이를 경계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다. 틀렸으면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지, 그 틀린 말이 내일은 옳을 것이라 몽니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겠다. 오늘날 여전히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경제모델도 이솝의 낮은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 진실을 말할 때조차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이솝이 남긴 지혜다.

_ 경제예측이라는 점쟁이 중 - P220

그래도 아랫목에 앉은 이들은 아궁이에 더 가까우니, 그들의 소리도 더 가깝다. 윗목은 아직 춥다고 소리쳐도 소용없다. 윗목 사람들의 목소리는 방문을 치고 들어오는 찬바람에 쓸려갔다. 병들고 죽고서야 그들이 보였다. 아랫목 사람 성화 탓에 아궁이로 들어가는 장작은 줄었다. 하지만 그들은 장작을 줄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아궁이를 건실하게 하는 ‘건전화consolidation‘ 라고 불렀다. 항간의 오해와는 달리 경제학은 필요하다면 기꺼이 문학적 표현을 사랑한다.

_ 경제방면의 책을 읽다 중 - P224

옳음을 말하는 우리가 실상 길을 막고 서 있다는 것이고, 존 버거가 말한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예 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문제다.

_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할 때 중 - P231

따라서 19세기의 존 스튜어트 밀을 21세기에 불러오는 일은 소수의 진정한 자유를 찾는 일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끌어내고 경제·정치제도를 바꾸는 일이다. 노련함의 목소리가 아니라 세월을 버틴 거칠고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짐짓 늙은 척하지 않는 것이다.
늙어감이란 무엇인가. 워즈워스는 다시 묻고 답했다. "한가롭게 펼쳐진 해변에 축 처져 비틀거리는 버드나무다. 단언컨대,
일흔을 향해 가던 밀은 이 구절엔 결코 동의하지 않았으리라.

_ 낮은 소리에 자유를 준 경제학자 중 - P236

이자율상승이라는 무거운 추를 우리의 몸에 꽁꽁 묶어서 불황이라는늪으로 내려간 뒤 끝내 살아남은 자들이 바닥을 딛고 올라오는날을 기다린다. 늪에 빠져 아우성인 사람들에게 밧줄을 던져줄 생각은 없다. 밧줄을 던지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래서는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울프 소설의 남편 친구가 말했듯이, 서풍이 부는 날에는 등대로 갈 생각조차 말아야 한다.

_ 등대로 함께 찾아가려면 중 - P240

표적이 정확히 보이면 투표하고, 표적이 사정거리를 벗어나 있으면 투표용지를 주머니에 넣어두라고 했다. 나는 표적이 보이지 않는데 투표하러 간다.

_ 투표하러 가며 묻는다 중 - P248

착한 사람들은 죽음의 총량을 줄이는 것이 최선임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들이 택한 방식은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다. 즉 위험의분배를 바꾸어 특정 그룹의 사람들이 온전히 그 위험을 떠맡도록 한다. 그 그룹의 이름은 명징하게도 비정규직이다. 그들은 일터의 바깥에 있다가 죽을 때만 한가운데에 들어온다. 착한 사람들이 목소리 높인 선거였기 때문일까. 나와 남의 온갖 더러운 사생활을 내놓고 따지면서도 이렇게 ‘더럽게도 위험한‘ 일에 대해서느 막을 아낀다.

_ 투표하러 가며 묻는다 중 - P249

시리아 난민들이 그동안 배운 것이 있다면 타인이 심어주려는 희망을 의심하는 법이다. 이젠 눈물조차도 믿지 않는다. 믿지않는다기보다는, 눈물의 지속성을 믿지 않는다. 눈물은 왜 떨어지는가. 결국은 땅 위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기 때문이다.

눈물을 믿지 않는 곳, 요르단에서 묻는다 중 - P264

차별당해 보지 않은 자가 차별의 고통을 알기란 힘들다. 좀안다는, 그리고 할 만큼 했다는 미망이 차별의 그림자를 길고깊게 한다. 차별은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많아야 아주 서서히 사라지는 놈이다. 싫은 소리도 옆에서 해야 한다. 지레 이해했다고 앞에 서서 목청 높여 말하는 순간 그것은 훈계가 되고 때때로 혐오에게 보내는 초대장이 된다. 차별은 악착같은 놈이다. 우리가 차별이 없다고 외치는 순간 우리 머리 위로 차별이라는 놈은고개를 내밀며 뱀의 혀처럼 날름거린다. 브루스는 이걸 알게 되었을 것이다.

_ 차별하지 않는다는 네게 묻는다 중 - P270

추억이란 때로는 내가 쌓아 올린 강고한 성곽이다. 타인을 허용치 않는 그곳에서 쏟아내는 말은 성곽 안에서만 증폭되는 메아리다. 바깥으로 나온 추억은 정체불명의 소음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추억이란 말하는 자에게는 달콤하고, 듣는 자에게는 씁쓸하다.

_ 추억의 성곽에서 묻는다 중 - P279

"가벼운 슬픔은 말이 많고 큰 슬픔은 말이 없다." 탐탁지 않지만, 세네카의 이 말만은 진실하다.

_ 어버이날에 묻는다 중 - P282

방향과 떨림이 섞여서야 비로소 세상의 나침반이 된다. 내가 그 방향을 향해 제대로 서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것이 나침반이라면, 방향과 떨림 어느 하나만 봐서 될 일은 아니다. 나침반 끝이 흔들린다고 방향을 부정하는 것이 반동이고, 방향의 존재를 이유로 제가 선 곳이 옳다고 목소리만 높이는 것이 퇴보다. 둘 다 앞길을 막기는 매한가지다.

_ 떨리는 것들을 보며 묻는다 중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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