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백작은 생각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거야.
사실 지구는 지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동시에 태양 주위를 돈다. 은하수도 돈다. 더 큰 바퀴 속의 작은 바퀴인 셈이다. 천체는 돌면서 시계의 작은 망치가 내는 종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자연의 소리를 낸다. 그 천체의 종소리가 울리면 아마 거울은 불현듯 자신의 보다 더 진정한 목적에 맞게 일할 것이다. 즉, 우리 인간에게 자신이 상상하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그 실제 모습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p.65)

일부 사람들은 틀림없이 그걸 야만성의 부산물로 치부해버릴 것이다. 러시아의 길고 무자비한 겨울, 익숙한 기근, 정의에 대한 거친감각 등등을 고려하면 상류층 사람들이 최종적인 폭력 행위를 분쟁해결의 수단으로 받아들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투가 러시아 신사들 사이에 만연했던 것은 다만 장려한 것, 숭고한 것에 대한 그들의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뿐이라는 게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백작의 견해였다.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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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성으로 힘을 돋우고, 백작이 말했다. "신사는 책상으로 힘을 돋우니까." (p.26)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주었다.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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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의미가 있는 건, 유용한 종자들이 원산지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야말로 인류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거대한 축복이었다는 사실이다. 가령 안데스에서 생산되는 퀴닌은 채취자들이 안데스의 기나피나무를 빠짐없이 찾아낸다 해도 전 세계 수요에 턱없이 못미쳤다. 마크햄의 산업스파이 질이 무수히 많은 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의 목숨을 때이른 죽음으로부터 구해냈다. 감자가 유럽에 전파되고 고구마가 중국에 전래된 건 사회적·환경적으로 일부 부작용을낳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수백 수천만의 유럽인과 중국인을 기근으로부터 구해냈다. 종자 이동으로 인한 가늠할 수 없는 축복은, 그로인한 가늠할 수 없는 피해보다 언제나 우세하다. 비록 자유무역 신봉자들이 주장하는 것보다는 이득이 적다고 할지라도. "심지어 국경을넘는 씨앗 전파는 비록 추악한 자본주의의 영리 목적이거나 제국주의 침략의 일환일지라도 인류 전체 삶을 확장하고 향상시키는 선봉장이 되어왔다." (p.470)

하지만 문제는 언젠가 터진다. 그렇게 콜럼버스적 대전환의 사이클이 완성될 것이다. 한때 그곳에 주었던 선물을 앗아가면서, 나무들은 빠르게 죽어나가리라. 그 전염병은 우주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넓은 면적을 뒤덮을지 모른다. 불로 지진 듯한 검은 점이 중국 땅 끝지점에서 인도네시아 땅 끝까지 산재할 때, 그때 비로소 전 세계가이 병과 싸우기 위해 합동 대응팀을 꾸리고, 대응책을 모색하게 되리라. 더불어 그 일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플랜테이션 업자들은 우리가 호모제노센 세상,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점점 더 똑같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불현듯 자각할 것이다. (p.490)

탄 문화를 자랑스러워했다. 이런 점에서 아마도 둘째가라면 서러울거리에서 드잡이를 하고,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고, 군대와는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그들. 느슨하게 구획된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그리고 아메리카 출신 인종들로 이뤄진 멕시코시티의 군중은, 이 도시를 지구상 최초의 명실상부한 메트로 시티로 만들었다. 바로 호모사피엔스의 호모제노센, 콜럼버스적 대전환의 인간판 작품 말이다. 이곳은 아프리카인과 인디언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동양과 서양이 뒤섞인 장소였다. 이 도시의 거주자들은 뒤범벅이 된인종 정체성을 다소 부끄러워했지만, 자신들이 창조한 코스모폴리탄 문화를 자랑스러워했다. (p.574)

유럽 선박들이 아프리카 해안에 출몰하기 시작했을 무렵인 대서양노예무역 초반기, 아프리카와 유럽 간 뚜렷한 차이점은 경제라기보다 문화였다. 유럽은 노동력을 사고파는 경제 시스템이었다. 노동력자체가 거래 대상이었다. 그 단적인 예가 계약이민하인제도이다. 반면 아프리카에서는 땅에 사는 사람들의 노동력을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그 땅을 효과적으로 소유하는 수단이었다. 최종 목적지에 이르는길은 서로 달랐지만, 둘 다 땅과 노동력의 결합을 통한 결실로 이윤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경제학적 측면으로 볼 때,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은 생산요소 하나씩을 소유한 셈이었다. 유럽인은 ‘땅‘이었던 반면, 아프리카인은 ‘노동력이었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다. 두시스템 모두 노동력을 투입해 생산된 전체 혹은 일부를 소유할 권리가 소유자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여기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했다.
노동력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끌어가는 게 가능한 반면, 땅은그렇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노동력은 운반이 가능하다. 이 점이 훗날 노예무역의 핵심요소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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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어느 한 종의 벌레가 특정 농장의 감자에 적응한다면, 같은 품종이 심긴 다른 농장에 적응하기 위해 따로 노력할 필요가 없게 된다. 간단하게 말해 동일한 음식의 바다에서 이리저리 점프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철도와 증기선, 그리고 냉동차 등 근대 발명품들 덕에 벌레의 이동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용이해졌다. 즉 벌레들에게 풍성한 타깃을 선사해준 것은 농업의 산업화만이 아니었다. 더 빨라지고 촘촘하게 연결된 운송망은 먼 곳에 서식하던 해충들의 이동을 훨씬 쉽게 도왔다. 1898년 라일리의 후임으로 곤충학회 회장에 오른 하워드는 미국에 존재하는 최악의 해충 70종 중 자그마치 37종이 최근에 유입된 것이라고 추산했다(그 중6종의 출생지는 끝내 확신하지 못했다).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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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쓰촨성 역사학자 란용이 지적했듯, 인구 증가가 눈에 띄나타난 곳은 아메리카 작물을 재배하는 지역이었다. 정부가 장려한 서쪽 이주로 인해 새로운 곳에 터를 잡은 가족들은 가장 먼고사는 문제에 직면했다. 그런 그들이 매일같이 섭취했던 것은 옥수수, 감자, 고구마였다. 다시말해 중국이 세계 최대 인구 보유국으로 올라선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콜롬버스적 대전환이었다. (p.322-3)

중앙아시아와 이집트에서 문명의 역사는 밀과 보리의 발달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토착사회는 메이즈를 바탕으로 건설되었다. 아시아에서 중국의 역사는 쌀로 만든 종이 위에 쓰여졌다. 안데스 지역은 색다르다. 이곳 문명을먹여살린 것은 곡물이 아니라 덩이줄기 작물과 뿌리작물로, 이 중 가장 중요한 작물은 감자였다.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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